제 15화
북방식 샤벨 타이거 스튜
“도시다!”
도시가 보이자 마리는 두 팔을 벌려가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리액션 지난번에도 하지 않았나.
뭐, 지난번에 들른 작은 마을과는 달리 이 정도의 크기의 도시라면 감탄할 만하기는 하지.
시골 마을을 떠나서 부지런히 걸은 결과, 나와 마리는 드디어 대도시라고 할 만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험가들과 교역의 도시 아스트람, 유스티아 왕국의 수도 다음으로 거대한 도시이자 모험가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
나조차도 전생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많은 인간종이 모여있는 곳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니 한평생을 엘프의 마을에서만 살다가 처음으로 마주한 대도시의 풍경은 평범하게 감탄스러운 것이겠지.
“...모르는 엘프인 척해야겠다.”
물론 그거랑은 별개로 시골 출신 티를 팍팍 내는 마리는 창피했기에 나는 그녀의 곁에서 슬쩍 멀어졌다.
.
.
.
도시 안으로 들어선 뒤 마리는 무엇이 그리 웃긴지 배를 잡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웃지 마라.”
“하지만 너무 웃긴걸요.”
“사람이 곤경에 처했던 게 우습냐?”
젠장. 내가 성에 들어서려고 할 때는 꼬치꼬치 캐물으며 결국에는 문전박대를 하려고 했던 주제에 마리가 나서자마자 헤벌쭉 웃으며 바로 통과시켜주다니.
도시에 막 도착했다고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바보한테 도움을 받다니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엘프가 그렇게 좋냐?
저런 종 차별적인 인간이 도시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성문의 문지기를 하고 있다니 파라디온의 수준도 알 만하구만.
기껏해야 키가 2m 정도에다 사냥꾼 일을 해서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고 인간사회에서 신분을 증명할 신분증이 하나도 없었을 뿐인데.
…….
아니. 그래도 신분증이 없는 건 마리도 똑같았잖아.
나는 억울해.
후우. 예상치 못한 트러블로 인해서 잠시 머리에 열이 올랐다.
좋지 않은 일이다.
모처럼 리저드맨으로 태어나고 처음으로 대도시에 도착했는데 저기압으로 지내는 것은 나만 손해 보는 일이다.
“저기. 쿠르트 씨. 모험가 길드로 가죠! 저 모험가 등록이 하고 싶어요!”
“아니. 그 전에 가야 할 곳이 있다.”
이 불쾌한 기분은 ‘그곳’에 가서 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모험가 길드 먼저 들리자는 마리의 말을 무시하고는 표지판을 따라 걸어갔다.
.
.
.
“시장이다!”
시장에 들어선 나는 나의 떨리는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 두 팔을 벌려서 환호성을 내뱉었다.
과연 파라디온은 모험가의 도시이기도 했지만, 교역의 도시이기도 했다.
대륙의 중요한 길목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파라디온에는 대륙 곳곳에서 들어오는 수입품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그런 수입품 중에서는 당연하게도 리저드맨의 마을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작은 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귀중한 식재료들이 넘쳐난다는 이야기였다.
“맙소사! 내 눈을 믿을 수가 없군! 치즈를 이렇게 종류별로 팔다니! 베르데 밀림을 지나는 상인들은 기껏해야 한두 종류! 그것도 몇 번 중의 한 번꼴로 팔 뿐이었는데!”
“이건 샐러맨더의 고기! 내가 살던 곳에서는 서식하지 않았던 생물인데! 맛이 궁금하군! 하지만 돈이 부족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꿈은 아니겠지! 설마 저건……. 간장인가! 저것만 있다면 찜닭 같은 동양식 요리는 물론이고 데리야키 소스도 만들 수 있어!”
이런 젠장!
여기는 천국인 것이었냐고!
과연 이것이 무역의 중심지 파라디온의 수준인가!
“...모르는 리저드맨인 척해야겠다.”
뒤에서 마리가 무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희귀한 식재료를 구경하는 것보다는 중요하지 않았기에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
.
.
그러나 이 세계에도 자본주의의 법칙은 통하는 법.
희귀한 식재료라면 당연히 귀한 만큼 프리미엄이 붙는 법이었고, 그런 희귀한 식재료는 내가 가진 돈으로는 원하는 만큼 살 수 없었다.
희귀한 식재료가 마친 자신을 구매해달라고 애원을 하는데도 구해줄 수 없는 사내의 슬픔을 아는가?
그래.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이었다.
돈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는 리저드맨의 생활 양식에 익숙해져서 잊고 있었을 뿐, 결국 인간사회는 돈이 있어야 풍족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나와 마리는 모험가 등록을 하기 위하여 모험가 길드를 찾았다.
도시의 한복판 제법 땅값이 비쌀 것 같은 위치에 거대하게 자리한 모험가 길드는 마치 주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왁자지껄했다.
아니,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는 인간들이 많은 것을 보면 틀린 인상도 아닌가.
내가 문을 열고 길드에 들어서자 일순간 모험가들의 떠드는 소리가 줄어들며 수많은 시선이 내게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파라디온이라는 지리의 특성상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모험가가 오가기 때문일까? 그들은 낯선 방문객인 나의 등장에도 처음 눈길을 한 번 준 것 이외에는 신경 쓸 가치가 없다는 듯 다시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소설 같은 데에 보면 주인공이 처음 모험가 길드에 들어서면 여지없이 '푸하하하. 너 같은 꼬마가 모험가를 하겠다고?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시지!' 같은 소리를 하면서 시비에 걸리던데 역시 현실은 생각보다 타인은 처음 보는 타인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기껏해야 몇몇 사내들이 엘프인 마리에게 눈길을 보내는 정도였으니까.
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는 곧바로 접수처의 안내원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서 오세요. 모험가 길드입니다. 무슨 일을 원하시죠?”
“모험가 등록을 하고 싶은데.”
“아. 모험가 등록 말씀이신가요? 모험가 등록에는 유스티아 왕국화로 5 실버의 등록금과 간단한 자격심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자격심사에는 1 실버의 금액이 추가로 들어가며 심사비는 자격에 미달하여 등록되지 못하더라도 돌려드리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들었음을 인지하였고 동의하시나요?”
내가 생각했던 것 같은 분위기랑은 다른데.
뭔가 보험에 가입하는 것 같은 느낌이잖아.
역시 뭔가 대충 마법이라는 두 글자로 안일하게 넘어가는 수상할 정도로 편리한 수정구 같은 것에다 손바닥을 올리면 알아서 상태창이 뜨는 구조는 아닌 건가.
“알겠다. 여기 나와 뒤의 이 엘프까지 해서 두 사람의 몫 12 실버다.”
“두 사람분 납입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곧 자격심사를 맡아줄 사람을 부를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
“그러지.”
그보다 12 실버인가. 생각보다 등록에 돈이 많이 들어가네.
시장에서 희귀한 식재료가 보인다고 무턱대고 구매를 했으면 돈이 부족할 뻔했다.
“거봐요. 제가 아까 시장에서 있는 돈 다 털어서 식재료들을 사겠다고 했을 때 말리길 잘했죠?”
마리는 의기양양한 눈으로 ‘엣헴’‘ 같은 소리를 직접 입으로 내며 말했다.
“원래부터 길드 등록에 필요한 돈 정도는 남기려고 했었거든.”
“진짜요?”
“크흠, 그보다 여기는 주점이나 음식점의 역할도 겸하는 것 같네. 아무래도 모험가 길드의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여러 가지 부가시설들이 같이 딸려 들어 왔나 본데. 여기서 보이지는 않지만 간단한 의무시설이나 숙박 시설도 있을지도 모르겠네.”
“아! 지금 말 돌린 거죠! 맞죠?”
“그보다 모험가들이 먹는 것을 보니 나도 배가 고픈데 기다리면서 뭐라도 먹을까?”
“아! 그러면 전 꼬치가 먹고 싶어요!”
단순하기는.
근처에 자리를 잡아서 마리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곧 준비가 끝난 듯 접수원이 우리를 호출했다.
그렇게 안내 데스크로 가니 그곳에는 약간 푸른빛이 도는 검은색의 장발을 하프 업 스타일로 묶은 것이 인상적인 키가 큰 여성과 접수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키는 170cm 중반 정도는 돼 보였는데, 이는 일반적인 인간 모험가 남성의 키가 170cm 중반대에서 180cm 정도 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순수한 인간 여성치고는 상당한 장신인 셈이었다.
그것만 본다면 단지 키가 클 뿐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전체적으로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가졌음에도 군데군데 드러난 근육이 그녀가 제법 수준이 높은 모험가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가죽으로 된 탱크탑 형태의 경장 갑옷을 보아하니 북방의 바바리안 민족인가.
바바리안이라고 하면 갈색빛 피부의 터질듯한 근육을 가진 거한일 거라 생각했는데 피부도 새하얗고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우락부락하다기보다는 그냥 건강미 넘치는 여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오히려 상당히 미녀이지 않을까.
“이쪽은 모험가 접수를 도와주실 은 등급의 베테랑 모험가 카리나 님입니다. 카리나 님. 이쪽은 새로 모험가를 지망하는 리저드맨 쿠르트 씨와 엘프인 마리시아 씨입니다.”
“엘프가 아니라 하프 엘프인데요!”
“만나서 반갑다. 하프 엘프 마리시아 양. 그리고 리저드맨인 쿠르트. 그러면 우선 그쪽의 리저드맨부터 심사하도록 하지.”
“나부터라는 군. 너는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라.”
“알겠어요! 쿠르트 씨 힘내세요!”
모험가 등록을 하는데 힘내고 말고 할 게 뭐 있나.
그렇게 나는 카리나와 함께 모험가 등록을 위해서 심사장으로 이동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심사비인 1 실버는 모험가 길드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심사를 담당하는 베테랑 모험가에게 수고비로 돌아가는 돈 입니다.
베테랑 모험가들이 흔쾌이 심사를 봐주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