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화
황금조 꼬치 바비큐
닭…….
은 아니지만 그래도 꿩이라면 닭의 먼 친척 정도라 부를 수 있겠지.
그리고 황금조는 또 그 꿩의 먼 친척 정도라 할 수 있고.
그렇다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요리는 후라이드 치킨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운이 좋게 기름을 잔뜩 머금고 있는 의태화 같은 식물은 발견하지 못했기에 불가능.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요리법을 삶는 것과 스튜로 하는 것, 굽는 것이 남는다.
하지만 꿩고기는 닭고기에 비하면 지방이 적고 근육량이 많으므로 퍽퍽한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 그것이 식용으로 기른 것이 아니라 야생의 동물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그렇다면 퍽퍽하므로 살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오랜 시간 끓여야 하는 스튜와 육수가 우러나와 자칫 쉽게 퍽퍽해질 수 있는 삶는 요리는 논외.
자연스럽게 남는 것인 굽는 것으로 선택이다.
요리법을 결정한 나는 마리가 깃털을 모두 제거한 황금조 머리를 잘라내 피를 모두 뽑았다.
그 뒤, 충분히 피가 제거된 황금조의 고기를 발골한다.
그냥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직접 먹으면서 뼈를 발라내도 상관은 없지만, 이번에는 고기를 먹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마리가 같이 식사를 하므로 먹기 좋게 뼈를 발라낸다.
뼈는 나중에 따로 빼뒀다가 육수를 우릴 때 사용하면 되니 오히려 좋다고 할 수도 있겠지.
평범한 바비큐라면 여기서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해서 구워 먹어도 중간은 가지만 오늘은 오랜만의 육식이다.
결코, 평범한 수준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여기서는 비축해둔 조미료들을 다소 무리하게 소모하게 되더라도 성대하게 먹지 않으면 안 된다.
바비큐는 한국에서 삼겹살이나 다른 고기를 먹을 때 그러하듯 그냥 구워 먹어도 문제가 없고, 실제로 바비큐의 일종으로 취급하지만, 오늘 식사에 사용할 것은 바로 럽(Rub)이다.
럽이란 고기를 조리하기 전에 겉에 바르는 여러 가지 향신료를 말하는데, 한국의 양념갈비 또한 넓은 의미에서 럽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또 럽은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 수분이 없는 향신료를 바르는 드라이 럽과 수분이 있는 향신료인 웻 럽으로 나뉘는데 이번에 내가 사용하는 럽은 웻 럽 쪽이다.
우선 베이스가 되는 것은 지난 마을에서 구한 뒤 여러 가지 방면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는 무지개 벌꿀.
벌꿀에는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연육 작용 효과가 있으므로 맛을 내는 것 이외에도 식감을 살리기에 매우 좋은 선택이다.
안 그래도 닭고기보다 퍽퍽한 야생의 꿩고기의 육질을 연하게 해주겠지.
물을 사용해서 농도를 적절하게 조절해준 뒤, 그동안 장기 여행을 위해서 조금씩만 사용했었던 후추와 소금 같은 향신료를 아낌없이 넣는다.
그리고 자극적인 맛의 정점에 있는 것은 결국 매운맛.
의태화는 찾지 못했지만, 탐색 중에 발견할 수 있었던 산초를 소량 넣는다.
역시 전생의 입맛을 생각한다면 가장 베스트가 되는 것은 고추지만 없으니 대신 매운맛을 내는 산초를 넣는다.
산초는 중국 요리에도 많이 들어가는 특히 사천요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향신료니까 문제는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럽을 황금조의 고기에 골고루 발라준다.
그 뒤에는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는 그대로 양념에 재워두어야 맛이 살아난다.
대신 그동안 바비큐에 쓸 다른 야채들을 손질하고 배낭에서 쇠로 된 꼬챙이를 꺼낸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는데 그 쇠막대기들은 뭔가요? 화살이라기에는 촉과 깃도 없는 데다 길이도 짧고…….”
“당연히 요리도구지.”
쇠꼬챙이는 좋다.
휴대가 간편하며 격자형으로 엮어서 고정하는 것으로 간이 불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것으로 간단한 직화 불판의 완성.
하지만 쇠꼬챙이의 용도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남은 쇠꼬챙이에 손질해둔 야채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끼워 넣는다.
그리고 야채의 사이사이에 교차가 되도록 럽에 절여두었던 황금조의 고기를 끼워 넣는다면 간단한 즉석 바비큐 꼬치의 완성이다.
그렇게 남는 꼬챙이들을 모두 꼬치로 만든 뒤, 미리 준비해 두었던 모닥불 위에 그대로 올린다.
치이이익
황금조 꼬치는 그대로 불판에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자극적인 소리를 내며 먼저 청각을 한 번 자극하고, 이어서 고기가 구워지는 향기로 후각을 자극한다.
그 자극적인 향과 소리에 어린아이처럼 삐진 마음에 내키지 않는 티를 팍팍 내고 있던 마리의 눈이 불판 위로 향한다.
“...꿀꺽.”
“어떠냐. 제법 맛있어 보이지?”
“이, 이건 어렸을 때 엄마가 해준 고기 요리와는 완전히 다른데…….”
내 말에 어느새 마리는 마수 고기가 먹기 싫다고 티를 팍팍 내던 것도 잊고서는 엉덩이를 들어서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훗. 고기를 먹어본 적도 없는 인간종이 제대로 된 고기 요리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잖냐. 이게 바로 진짜 고기 요리다.”
그렇게 말한 나는 때마침 적절하게 익은 황금조의 꼬치구이를 뜨겁지 않게 커다란 나뭇잎으로 손잡이를 잘 감싼 뒤 마리에게 건네줬다.
이것이 오늘의 식사
황금조 꼬치 바비큐다.
.
.
.
꼬치를 받아든 마리는 떨리는 눈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음식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이건. 내가 알고 있던 고기 요리와는 완전히 달라.’
그녀의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 고기 요리란 어렸을 적 고기 맛이 궁금하다는 그녀의 말에 엄마가 해준 이름도 모르는 산새의 고기.
당연하게도 조리법은커녕 그 이전의 올바른 육류의 취급 방법도 알지 못했던 그녀의 엄마는 죽은 사냥감의 피는 신속하게 뽑아서 제거해야 한다는 기초적인 상식도 알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저 인간은 고기를 주로 구워서 먹는다는 지식만을 전해 들은 그녀는 아무런 양념이나 잡내 제거를 위한 조리를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채 그대로 직화로 굽기까지.
불 조절은 엉망이었으니 지나친 고온에 노출된 고기는 반은 그럭저럭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구워졌지만 남은 절반은 껍질이 모조리 타버릴 정도의 선명한 검은색.
그야말로 불쾌한 콘트라스트.
이미 그 외견을 본 순간부터 어린 시절의 마리는 고기를 먹고 싶다고 말을 꺼낸 것을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위해서 애써 익숙지도 않은 고기 요리를 만들어준 엄마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없는 일.
그렇게 각오를 하고 베어 문 고기는 마치 질긴 넝쿨 줄기를 삶아서 씹는 것 같았고, 맛에서는 생전 처음 맡아보는 역겨운 누린내가 배어 나왔다.
그 이후로 그녀는 두 번 다시 엄마에게 고기를 먹어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엘프의 피가 흐르는 탓에 고기를 싫어한다고 믿고 있었다.
먹어도 신체의 거부반응은 없지만 그래도 기호적으로 싫어하는 식품.
그것이 그녀가 고기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인식.
그러나 쿠르트가 해준 꼬치 요리는 어떠한가.
무지개 벌꿀을 베이스로 한 럽에 재워둔 고기는 문자 그대로, 꿀을 바른 것처럼 반짝이며 빛을 반사하며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꼬치에 끼워진 것은 야채와 고기 두 가지인데 지금 그녀의 눈길이 가는 것은 평생토록 주식으로 삼으며 먹어왔던 야채가 아니라, 어렸을 적 안 좋은 기억과 함께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은 고기였다.
우물우물
문득 눈을 돌리니 쿠르트는 자신에게 꼬치를 건네주고 진작의 자기 몫의 고기를 먹고 있었다.
꿀꺽
‘저렇게나 맛있게…….’
이제 더이상 고기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다는 것과 마수의 고기라는 것은 기억에 없었다.
그녀는 그저 홀린 듯이 꼬치를 입으로 가져가서 가장 위에 꽂혀있던 야채가 아니라 굳이 중간에 있는 황금조의 고기부터 물어뜯었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것은 지금까지 야채를 먹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강한 탄성.
생각보다 강한 저항력에 그녀는 힘을 줘서 고기를 빼내서 입안에 집어넣는다.
‘냄새가……. 안 나?’
누린내가 날 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황금조가 신선할 때 피를 모두 제거하고 럽을 발라서 마리네이드를 끝낸 고기에서는 야생동물 특유의 누린내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대신해서 느껴지는 것은 온갖 향신료들이 섞이면서 침샘을 공격해오는 럽의 맛.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꿩고기 특유의 깊은 육향이 연속해서 그녀의 미뢰를 타격한다.
꿩고기는 닭고기보다 지방이 적고 살이 질긴 경향이 있지만, 단점이 있다면 닭고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점도 가지고 있는 법.
닭고기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강렬한 고기의 풍미.
‘제대로 된’ 고기는 처음 먹어보는 그녀에게 그것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맛의 폭력이었다.
거기에 식감은 어떠한가.
어렸을 적 엄마가 해준 알 수 없는 새의 고기와 달리 탄내가 나면서 바스러지지도 지나치게 질기지도 않은 탱글탱글하면서 이빨을 기분 좋게 밀어내는 식감이라니.
'아아……. 인생 절반 손해 봤어.'
.
.
.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서 마리가 황금조 꼬치를 입안 가득 욱여넣으면서 울고 있었다.
“흑……. 흑…….”
“뭐야? 또 우냐?”
“제가 너무 한심해요. 저는 지금까지 보수적인 엘프의 마을이…….”
“아. 그러냐. 그거 두 번째다.”
“아앗! 두 번이나 했으면 한 번은 들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저도 꼬치 더 주세요!”
“마수 고기는 별로라며.”
내 말에 마리는 방금 전까지 그런 말을 한 자신에게 꿀밤을 날려주고 싶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비굴하게 말했다.
“헤헤헤. 제가 잘못했어요. 더 주세요!”
“싫은데? 내가 다 먹을 건데.”
“아앗! 쿠르트 씨! 잘못했어요! 제발 저에게 쿠르트 씨의 그 길고 뜨거운 걸 주세요!”
“야!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마! 그냥 꼬치라고 해!”
그렇게 오랜만에 하는 육식은 한 명뿐인 게스트의 호평 속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화에 들어갔던 주인공의 고기에 대한 묘사는 수정 했습니다.
커뮤니티에서 밈으로 소비되고 있는 소재를 넣으면 재밋을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삽입했습니다만
다른 작가분을 비하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서 제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비하할 용도로 사용한 표현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