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화
황금조 꼬치 바비큐
위기였다.
그것은 내가 리저드맨의 마을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겪는 그 무엇보다도 힘겨운 위기였다.
처음에는 작은 불씨였다.
하지만 모든 화재가 그렇듯이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서 도저히 막을 수가 없게 된 이후였다.
고기가 먹고 싶다.
마리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나서 지금까지 줄곧 마리의 식성에 맞춘 식단만을 만들어왔다.
육류 요리를 만들어서는 마리가 먹을 수 없고 두 개의 요리를 따로 내자니 시간도 노력도 두 배로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만 고기를 먹고 마리에게는 채식 식단을 주는 것은 종족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임을 알아도 왠지 따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 또한 함께 반강제로 채식 챌린지에 도전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처음에는 고기가 먹고 싶을 때마다 마리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숨겨두었던 바실리스크 육포를 꺼내먹는 것으로 달랬지만 그래봤자 여행자의 배낭 안에 들어갈 정도의 양밖에 되지 않았다.
바실리스크 육포는 곧 바닥을 드러내었고 어느새 고기를 못 먹은 지도 보름 가까이 지났다.
몇몇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종이 그러하듯 리저드맨 또한 잡식성이었기 때문에 채식만 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으나, 근본적으로 채식보다는 육식에 가깝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니 금단증상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고기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고-기
입천장에서 딱히 이빨을 톡톡 치지 않고 발음되는 두 글자의 여행
고.기
나는 고기가 먹고 싶었다.
.
.
.
그렇게 나는 오늘도 고기가 없는 풀로 가득한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이제는 마을에서 사두었던 호밀빵도 바닥이 난 까닭이었다.
물론 샐러드라고 해서 객관적으로 나쁜 수준인 것은 아니었다.
샐러드를 요리할 때에도 나는 가장 샐러드에 어울리는 드레싱을 만들기 위해서 가진 재료와 풀과의 궁합 등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계속 같은 드레싱만으로는 쉽게 질리기 때문에 계속해서 드레싱의 변주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채식은 나의 정신력을 깎아 먹기에 충분했다.
후우. 고기 먹고 싶다.
“저어. 쿠르트 씨. 듣고 계세요?”
“아니. 하나도 안 듣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마리가 내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며 질문을 하고 있었다.
내 말에 마리는 볼을 부풀리며 불만스럽다는 제스쳐를 한 번 취한 뒤, 다시 질문을 건넸다.
“그러니까 제 말은 쿠르트 씨는 왜 계속 야채만 먹냐는 이야기였어요. 쿠르트 씨는 고기 안 드시나요?”
“뭐라고? 그거야 당연히…….”
안 그래도 고기를 못 먹어서 심란한데 누구를 놀리나.
마리의 질문에 어이없어하며 반박하려던 나는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여기서 내가 솔직하게 ‘사실은 나도 고기가 매우 먹고 싶었지만, 엘프인 너를 배려해서 육식을 참고 있었다.’라고 신사답고 점잖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마리는 그에 대한 답으로 ‘어머. 쿠르트 씨.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앞으로는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드셔주세요!’ 같은 흐름이 되고 그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녀의 말을 수용하면 되는 것이다.
정말 완벽한 계획이다.
“그거야 당연히 너 때문이지. 엘프는 고기를 못 먹으니까.”
자. 이러면 너는 지금까지 자신이 무의식중에 배려를 받았다는 사실에 당황하면서 나에게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권유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먼저 말을 꺼낸 것도 마리이고 지금까지 내가 배려를 해주었다는 어필도 되니 그 누구의 감정도 상하지 않는 상냥한 세계의 완성이다.
“네? 저 고기 먹을 수 있는데요? 저 하프 엘프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말한 적 없었거든!”
“꺄악!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세요!”
“그런 중요한 사실을 왜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거야!”
“그야 안 물어봤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나는 참을 수 없이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 저녁 메뉴가 고기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
.
“그런데 고기가 그렇게 맛이 있나요?”
“뭐냐. 너 고기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거냐?”
“아뇨. 먹어본 적은 있는데요. 엄마가 저를 위해서 몇 번 해주기는 했는데 막 이상한 구린내가 나고 퍽퍽해서 씹기도 힘들기만 하던데…….”
“엄마라면 인간? 엘프?”
“아. 엘프요. 저는 아빠가 인간인 쪽이거든요.”
그렇다면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불을 쓰는 요리가 발달하지 않은 엘프인데 거기에 더해서 평생 고기 한 번 먹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고기를 먹어볼 일이 없는 인간종이 고기를 굽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엘프 마을에 푸줏간이 존재 할 리도 만무했으니 고기는 직접 사냥해서 조달했을 터.
하지만 고기를 먹어본 적도 없으니 피를 빼서 누린내를 제거해야 한다는 상식도 몰랐겠고, 고기를 너무 오래 강한 불에 구우면 안에 있는 수분이 모두 증발해서 질기고 퍽퍽해진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거기에 직접 먹어보며 간을 맞출 수도 없으니 그런 요리를 하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식탁에 올라간 것이겠지.
아. 고기 먹을 줄 모르네.
“그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물론이다. 이게 다 오랜만의 고기……. 아니, 지금껏 진짜 제대로 된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는 너에게 최고의 고기 요리를 해주기 위해서다.”
“흐음…….”
내 말에 마리는 수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그래도 내심 고기 요리가 궁금한지 그 이상의 제스쳐는 취하지 않았다.
나와 마리는 현재 잠시 경로에서 이탈하여 때아닌 사냥에 나선 상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멧돼지를 한 마리 사냥해서 그대로 바비큐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정도로 큰 식재료는 손질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 뿐더러 여행 중에는 모두 처리를 할 수 없는 관계로 상당 부분을 버릴 수밖에 없다.
마을의 근처였다면 먹지 못하는 멧돼지의 고기는 팔아버리면 그만이었지만 마을도 없는 이런 숲속에서는 결국 다 소화하지도 못할 분량의 짐승을 사냥하는 것은 내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다.
사냥꾼은 사냥해도 되는 것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그러므로 목표는 한 단계 눈을 낮춰서 치킨이다.
물론 진짜 닭을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적당히 먹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조류를 잡는 것이 오늘의 목표였다.
그렇게 나와 마리는 부지런히 움직인 끝에 제법 사냥할 만한 새를 발견하였다.
크기는 일반적인 닭보다 조금 더 큰 정도에 전체적인 외형은 꿩을 닮았다.
아니, 꿩을 닮은 게 아니라 실제로 꿩의 아종이라 볼 수 있겠지.
“황금조(黃金鳥)에요.”
“마수로군. 하지만 먹을 수 있는 종류의 마수다.”
황금조는 꿩이 마수화된 생물로 마수이기는 하지만 외뿔 토끼처럼 식용에는 문제가 없는 얼마 안 되는 마수 중의 하나이다.
음. 오늘 저녁은 저게 좋겠군.
“에엑. 마수를 먹게요?”
“뭐가 문제지? 너도 얼마 전에는 마수의 기름으로 튀긴 감자튀김을 먹었잖아.”
“하, 하지만…….”
“불만은 받지 않겠다.”
마수라는 말에 마리는 싫은 표정을 지었지만, 오랜만에 고기를 맛볼 생각에 흥분한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에휴. 알았어요. 평소에는 그래도 저를 위해서 많이 맞춰주셨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맞춰드릴게요.”
마리는 전혀 체념하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활을 꺼내 화살을 겨누었다.
“아니. 화살은 쓰지 않는다.”
“왜요?”
“고기가 상할 수도 있잖아.”
“...그러면 어떻게 잡게요.”
“내가 직접 잡아 오지. 기다려라.”
나는 그녀가 뭐라 반박하기 전에 빠르게 앞으로 뛰쳐나가서 황금조에게 손을 뻗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황금조는 당황한 듯 깃털을 번쩍이며 전기를 내뿜었다.
황금조는 겉면에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깃털을 매개로 전기를 내뿜는 마력 기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자신이 먹잇감을 사냥하는데 사용하는 용도가 아니라 자신을 덮치는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수단이자 번식기 때 전기를 내뿜어서 구애하기 위한 용도였다.
그리고 겨우 그 정도 수준의 전기는 내게 정전기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했고 나는 그대로 손에 오러를 둘러서 황금조의 목을 잡아 비틀었다.
이 정도 크기면 둘이서 나눠 먹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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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거기서 직접 뛰어나가서 황금조를 맨손으로 잡아 오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딱히 위험한 마수도 아니었는데 뭘.”
“아니, 그렇다고 전기를 내뿜는 황금조를 맨손으로 잡아요?”
마리는 아까부터 마수를 먹는다는 사실이 그렇게 내키지 않는지 쫑알쫑알 불만을 내뱉었다.
정작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성실하게 황금조의 깃털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뽑고 있었지만.
“투덜거리는 것 치고는 깃털을 아주 정성스럽게 뽑는데?”
“그거야 황금조의 깃털은 화살 깃으로 쓰면 좋으니까 뽑아두는 것뿐이에요.”
내 말에 마리는 절대 마수 고기가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마수 고기가 먹기 싫으냐.”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샐러드 먹으면 안 될까요? 샐러드 맛있잖아요.”
“호오. 내가 기껏 사냥을 해왔는데 그렇게 말한다 이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편식하는 아이는 꿩고기로 혼내주는 수밖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점심 맛있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