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막간, 모험의 시작
습지 주변에 위치한 리저드맨의 마을은 새벽 쯤이면 언제나 물안개로 사방이 흐려진다.
그렇게 리저드맨의 마을을 감싸는 안개는 침략자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천연의 방패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물안개 속에서 두 명의 리저드맨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정말로 마을을 떠날 셈이냐…?”
마을의 전사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의 전사인 대전사 키르슈는 내게 물었다.
놈은 내가 아직 스스로 탈피도 하지 못해서 부모가 탈피하는 걸 도와주던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죽마고우나 다름없었다.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된 문답이었다.
그 녀석으로서는 내가 떠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완전히 굳어진 뒤였다.
왜냐하면, 나는 더는 이 마을에서 살아갈 수 없는 몸이었으니까.
“그래. 나는 이 마을을 떠날 거다.”
“어째서냐! 어째서 우리 마을을…!”
그야…….
“이 마을에는 식도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투성이니까.”
고기가 누린내가 진동하든, 인간 상인들에게 온갖 희귀한 조미료를 구해와서 간을 맞추든 대충 입에만 들어가면 맛있다고 외쳐대는 녀석들을 상대하는 건 질렸다
“겨우 그딴 이유 때문이냐! 음식 따위 결국 다 입에 들어가면 똑같은 것을!”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리저드맨은 모두 불에 구운 고기와 생고기를 식감으로밖에 구분 못 하는 바보들이다!
그런 내 생각은 얼마 전 우연히 만난 인간 소년과의 식사로 인해서 더욱 확고해졌다.
그래. 무릇 사람이라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움을 느낄 줄 알고, 내일은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향상심을 가지고 종래에는 자신만의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 하나 정도는 가슴 안에 품고 살아야 한다.
그러니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마을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넓은 세계를 탐험하고 미지의 미식 영역을 탐구할 것이다.
그래. 그것은 분명 맛의 구도자.
나는 맛의 구도자가 될 운명이었어!
“이 망할! 지금 네가 마을을 떠나면 마을 최고 사냥꾼의 자리가 비어버리지 않느냐?!”
“해가 저물어도 다음날이면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내가 없어도 다른 사냥꾼이 나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다.”
“망할……! 그래! 다른 사냥꾼이 최고 사냥꾼의 지위를 이어받는다고 해서 베르데 밀림의 바실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놈은 네가 아니면 해치울 수 없어!”
“그럴 것 같아서 며칠 전에 놈을 사냥했다.”
“뭐, 뭐라고?”
“이건 그 바실리스크의 이빨로 엮어 만든 목걸이다. 대전사라면 이 정도 장신구 하나쯤은 달아 둬야지.”
내가 놈에게 밤새 만든 목걸이를 건네자 녀석은 내 손을 뿌리치며 동공을 세로로 길게 찢으며 눈물을 참았다.
내가 바실리스크까지 잡은 걸 깨닫자 정말 더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겠지.
“젠장! 대전사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어차피 네가 사냥꾼이 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가지게 된 명예인데!”
“그래도 대전사는 내가 아니라 너다. 받아라.”
애초에 나는 전사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사냥꾼의 길을 택한 것도 몸을 쓰는 직업이면서 유일하게 직접 다른 사람을 해칠 일이 없는 직업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고.
사냥꾼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전사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키르슈에게 목걸이를 건넸고, 결국 키르슈는 내가 건넨 목걸이를 마지못해서 받았다.
"정말……. 떠나는 것이냐?"
이제는 몇 번째인지도 알 수 없는 질문.
그러나 나는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나는 세상을 돌아볼 거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존나.
많이.
“쳇……. 네가 초월자가 되던 그날. 마을 모두는 초월자의 탄생을 기뻐했지만 나는 어쩐지 이런 날이 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냐.”
“그래.”
“그럼 난 간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안부 전해줘.”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길을 떠나면 분명 나를 막으려 들 테니까.
내가 떠나는 것을 알리는 것은 키르슈뿐이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마을을 떠나려 했다.
“쿠르트!”
“라키아…! 네가 여기를 어떻게?”
그때, 떠나는 나를 뒤쫓아서 나온 것은 키르슈와 마찬가지로 내가 탈피를 스스로 하지 못할 정도의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해온 또 하나의 소꿉친구인 라키아였다.
키르슈가 마을 내에서 대전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듯이 라키아 또한 마을에 한 명밖에 없는 주술사의 길을 계승 받을 예정인 견습 주술사였다.
“점을 쳐봤는데 조만간 마을의 기둥 하나가 사라질 거란 예지를 받았어. 그래서 너와 키르슈는 항상 주시하고 있었지.”
“쳇. 이래서 주술사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라키아에게만은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라키아는 리저드맨이면서도 도마뱀보다는 어딘가 우파루파를 닮은 면이 있는 동글동글한 얼굴이 귀여운 분홍빛의 리저드맨 여성이었다.
그 귀여운 외모 덕에 내 또래의 젊은 리저드맨 사이에서는 아이돌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지.
만약 그녀가 견습 주술사가 되지 않았다면 분명 그녀를 두고 리저드맨 간의 싸움이 벌어져서 몇 명쯤은 탈피 전까지 흉터가 사라지지 않을 부상을 입었겠지.
하지만 내가 그녀를 피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나는 비록 리저드맨으로 환생했지만 자아는 이미 인간으로서 20년을 넘게 살아온 몸.
아무리 귀엽게 생겼다고 한들 리저드맨을 이성으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젠장. 옛날에는 귀엽다는 생각도 안 들었는데 최근에는 리저드맨의 미의식이 옮은 것인지 점점 라키아가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것도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
“난 떠날 거야. 말리지 마.”
“응. 안 말려. 그야 점괘에서는 네가 떠난다고 나왔으니 말려도 의미가 없는걸.”
“...그러냐. 너라면 울면서 막을 줄 알았는데.”
“울면서 막는 걸로 됐다면 그렇게 했지.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해도 넌 떠날 거잖아?”
“....”
“그러니까 웃으면서 보내줄 거야.”
쳇. 이래서 들키고 싶지 않았어.
나는 두 사람에게 얼굴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키르슈. 울지마라. 대전사라는 녀석이.”
“뭐래. 자기도 울 것 같으면서.”
“라키아. 주술 연습 열심히 해라. 너는 맹한 면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배는 노력해야 한다.”
“응. 알고 있어.”
“그리고 내 움막에, 너를 위해서 바실리스크 머리뼈로 만든 투구를 준비해뒀으니까 가져라.”
“응. 고마워.”
“그럼 난 간다.”
그렇게 말한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길을 떠났다.
그것이 이 세계에 환생하고 나서 내가 일평생을 보냈던 고향과의 이별이었다.
.
.
.
“가버렸네.”
“응. 가버렸어.”
더이상 친구의 뒷모습도 보이지 않은 희뿌연 물안개를 노려보던 키르슈는 문득 라키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용케도 순순히 보내줬네.”
“점괘에는 어차피 떠난다고 나왔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이 헤어짐이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라고 나왔거든. 곧 재회할 수 있을 거야.”
라키아는 끝내 쿠르트에게는 말하지 않은 숨겨진 또 하나의 점괘를 말해주며 장난스럽게 혓바닥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며 키르슈는 생각했다.
결국, 언제나 맹한 것처럼 보여도 의외의 순간에 자신과 쿠르트에게 한 방을 먹인 것은 언제나 라키아였다고.
.
.
.
후우. 저 습지대의 물안개에 감춰진 리저드맨의 비밀스러운 마을을 벗어나는 것이 내 목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막상 길을 떠나고 나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샌가 나 또한 리저드맨의 삶에 물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늦은 일이다.
나의 정체성이 인간이든 리저드맨이든 이제 나는 더 이상 리저드맨의 마을에 남아있을 수 없었으니까.
“그보다 인간 세상에 가면 뭐부터 해야 하지.”
물론 일신의 무력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굶을 걱정 따위는 없었다.
그래. 지난번에 만났던 그 소년이 말한 것처럼 모험가 일이나 할까.
아니, 오히려 모험가밖에 선택지가 없다.
세상을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면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을 테니.
그러고 보면 이 몸으로 환생하고 나서는 해산물은 구경도 못 했는데 일단은 바다가 있는 쪽으로 향할까.
당장 바다가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지만. 하하하.
“꺄아아아악!!”
기분 전환을 할 겸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걷고 있었더니 어디선가 여성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래. 이럴 때는 차라리 몸이라도 움직이면서 머리를 비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산적들에게 습격당한 고귀한 신분의 여성을 구하는 게 클리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비명이 들린 곳으로 달려가니 그곳에는,
불을 뿜는 식물에게 습격당하고 있는 엘프 여성이 있었다.
뭐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공을 세로로 길게 찢다 = 눈에 힘을 주다를 뜻하는 리저드맨의 관용구입니다.
탈피를 스스로 하지 못할 정도 = 코흘리개 시절을 뜻하는 리저드맨의 관용구입니다.
탈피 전까지 사라지지 않을 흉터 =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상처를 의미하는 리저드맨의 관용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