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바실리스크 스테이크 간이 정식
하압
오물오물
꿀꺽
바실리스크의 고기를 입에 넣고 가장 처음으로 느낀 것.
그것은 맛의 폭력이었다.
그것도 그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보통의 맛있음이 고블린의 강타라고 친다면 ‘이것’은 오우거의 혼신의 휘두르기.
아니, 오우거 따위가 아니다. 그야말로 바실리스크와 포식수가 연합해서 몰아붙이는 공동전선이었다.
‘이, 이게 바실리스크의 고기라고?’
겉에는 충분히 연육 작용이 되어서 질긴 느낌은 없었지만, 완전히 연육 작용이 이루어지지 않은 속은 묵직한 중량감을 자랑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어필하였다.
거기에 뱀고기는 닭고기와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하였는데 원래 뱀고기에서 이런 맛이 나는 것인지 바실리스크의 고기이기 때문에 이런 맛이 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맹세컨대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온 어떤 닭고기보다도 압도적인 풍미를 자랑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이 새콤달콤한 소스. 이것이 포식수의 맛?’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동물과 마수를 유혹해서 먹잇감으로 삼았던 포식수가 끝내 맺은 과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생명을 수확해서 맺은 그 열매는 다시 인간종의 손에 의해서 수확되어서 인간에게 먹힌다.
그 안에 농축된 것은 수많은 생명의 에너지인가.
아니면 포식수의 삶을 응축한 것인가.
강렬한 산미가 혀에 닿는 것과 동시에 침샘을 폭발시키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과일 특유의 은은한 단맛이 지나치게 시다는 느낌을 지워내며 입맛을 돋운다.
그와 동시에 포식수 소스가 입안에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믿을 수 없이 맛있다고만 생각했던 바실리스크 스테이크가 사실은 무거운 맛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하지만 그 무거운 맛을 깨닫는 것은 불쾌함이 아니라 과실 소스로 씻어내리면서 얻는 상쾌하게 리프레시.
마치 자신의 몸이 더러운 줄도 모르고 있다가 시원한 물로 샤워를 했을 때 비로소 개운함과 함께 사실은 자신의 몸이 더러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 같은 상쾌함.
그렇게 이미 입안에 고기는 모두 씹어 삼키고 없어졌음에도 테오는 한참을 여운에 잠긴 듯이
멈춰서서 여운을 즐겼다.
그 맛에 폭력이, 입안에 있던 음식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 슬퍼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면 자신이 먹은 것은 이것으로 겨우 바실리스크 스테이크의 한 조각.
조금 전과 같은 쾌감을 아직 몇 번이나 더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테오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다시 한번 나이프를 들었다.
그렇게 나이프를 잘라서 고기를 포크로 찍고 입에 옮기기를 반복하던 테오.
계속해서 입에 고기를 옮기다가 문득 고기만 계속해서 먹으니 목이 메는 것을 느꼈다.
무의식중에 물잔으로 손을 옮기려다 그는 자신의 식탁 위에 아직 손도 대지 않은 또 하나의 접시가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알 수 없는 고기 스튜.’
분명히 그 고기 스튜는 맛이 있어 보인다.
아니, 분명히 말도 안 되는 무력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요리 솜씨를 가진 눈앞의 리저드맨이 내준 음식임을 감안 한다면 무조건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괜히 어중간한 맛의 스튜를 먹는다면 지금 먹고 있는 바실리스크 스테이크의 여운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마치 천상의 맛을 먹고 있는 것과 같은 이 황홀경에서 다시 인간세계로 끌려 내려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테오가 먹은 바실리스크 스테이크는 그런 생각을 품게 만들 만큼 충격적인 맛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오는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스푼을 토끼고기 스튜로 옮긴다.
‘하지만 만약 이 스튜도 저 스테이크만큼 맛있다면…….’
꿀꺽.
기대감에 가득 찬 그의 손길은 이제 더 이상 그가 의식하고 멈추려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스푼은 고기를 듬뿍 담은 한 숟갈을 퍼 올려서 그대로 입에 넣는다.
후릅.
그것은 또 다른 맛의 폭력.
바실리스크와 포식수라는 두 강자에 신경이 쓰여서 한눈을 판 사이에 사각에서 기습해오는 외뿔 토끼의 비수.
그것은 마수 생태계 최약체라 불리는 외뿔 토끼의 유쾌한 반란이었다.
스튜의 조리법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핵심은 훈제된 외뿔 토끼의 고기.
그로서는 평생 맛보지도 못한 온갖 향신료들의 풍미와 함께 느껴지는 훈연재로 사용한 포도주를 담갔던 오크통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포도주의 향기.
테오는 고기를 씹으면서도 정녕 이것이 자신이 평소에도 종종 먹었던 외뿔 토끼의 고기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평소에는 여자아이라고 의식하지도 않았던 마을의 소꿉친구가 축제 날 몰라보게 이쁘게 단장을 하고 나와서 심장이 두근거렸을 때의 느낌일까?
물론 테오는 이성 소꿉친구는 없었기에 진짜 그런 느낌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분명 이성 소꿉친구가 있었다면 그런 느낌이겠지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것은 마치 포식수의 유혹이다.’
먹잇감에 극도로 행복한 환상을 보여주어서 먹잇감이 황홀경 속에서 죽어가게 만드는 포식수.
만약 포식수가 환상을 보여준다면 지금과 같은 광경을 보여주겠지.
정신을 차리면 리저드맨에게 두려움도 잊고 몇 번이고 리필을 요청한 뒤였다.
한창 자라날 시기의 청소년이 몇 시간 동안 은 등급 마수에게 전력으로 쫓겨 다니다가 처음으로 먹은 끼니는 그 나이대의 청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폭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맛을 알아버리면 더는 평범한 음식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
.
.
‘거 참, 맛있게도 먹는구나.’
처음부터 바실리스크 스테이크도 외뿔 토끼 스튜도 넉넉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몇 번 리필한 정도는 상관 없었다.
그보다는 같은 식탁에 앉아서 이렇게 맛있게 음식을 나누어 먹은 게 얼마 만인지.
애초에 리저드맨이라는 종족은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미각 자체가 심각하게 부족했기 때문에 고기를 대충 구워줘도, 심혈을 기울여서 구워줘도 다 맛있다고 퉁치는 녀석들이니.
나조차도 벽을 넘기 전에는 음식에 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내 요리 솜씨를 제대로 알아보는 인간이 얼마 만인지.
아니,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 세계에 전생하고 나서는 처음 아닌가?
나는 아예 접시에 얼굴을 박으며 먹어서 코와 볼에 소스와 스튜를 덕지덕지 묻히고 있는 소년을 보면서 생각했다.
역시 나는…….
“푸하…! 정말 잘 먹었습니다!”
“그래. 맛있게 먹었다니 됐다.”
“정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봐요! 그……. 아! 생각해보니까 아직 이름도 모르네. 저는 테오라고 해요. 아저씨는 이름이 어떻게 돼요?”
역시 밥이 최고다.
소년은 이제 더는 내게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졌다.
“내 이름은 쿠르트다.”
참 빨리도 물어본다.
.
.
.
그렇게 배부르게 바실리스크 스테이크 정식을 먹어치운 테오는 어딘가 후련한 얼굴을 했다.
“저 원래는 모험가를 꿈꿨어요.”
“그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베르데 밀림에 겁도 없이 들어왔으면 대충 자살 지망 아니면 모험가 지망이니까. 사실 둘이 큰 차이가 없기는 하지.”
“하하하. 뭐, 그래서 모험가가 되려고 하는데, 누나가 반대해서요. 누나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이 밀림에 바실리스크를 사냥하러 왔어요. 사실 쿠르트 아저씨가 잡은 커다란 녀석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한 마리 바실리스크를 사냥했거든요.”
어쩐지 크기가 좀 크더라.
한 마리가 더 있었구나. 하기는 원래 이 밀림에 살고 있던 녀석이라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빌 리가 없으니.
“그래서 원래는 그 바실리스크 시체를 들고 가서 누나한테 인정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만두려고요.”
그런데 그 작은 녀석은 이놈이 사냥한 거였나.
꼬마 녀석이 제법 재능이 있네.
그보다 좀 더 크면 잡아먹으려고 지켜보던 녀석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잡혀버릴 줄이야. 이래서 아끼면 똥 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건가.
“아저씨를 보니까 왠지 지금까지 모험가가 되기 위해서 조급해했던 게 다 바보 같아졌어요. 그러니까 당분간은 열심히 수련하면서 누나에게 인정받는 걸 목표로 할래요. 이런 위험한 짓을 하면서 억지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진짜로 누나에게 인정받는 걸로요.”
“그래도 덕분에 더 큰 놈 하나 잡았으니 없던 일로 할까…….”
“아저씨. 듣고 있어요?”
“아니. 하나도 안 듣고 있었는데.”
내 말에 테오는 맥이 빠진 것처럼 어깨를 축 늘어트리더니 곧 기운을 되찾고는 말했다.
“아저씨.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그럴 거면 지금 당장 은혜를 갚지 그러냐.”
“하하하. 외상으로 달아둘게요!”
여기가 무슨 음식점이냐고.
그 말을 끝으로 테오는 오두막을 나섰다.
녀석에게도 돌아가야 할 집이 있을 테니까.
누나도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한참을 테오가 사라진 방향을 보던 나는 곧 몸을 돌려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밥도 먹었으니 바실리스크의 부산물들을 정리해볼까.
원래는 밥을 먹고 나서 바실리스크를 사냥하려 했는데,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쳐서 밥을 먹기 전에 바실리스크를 사냥해 버렸다.
이미 몇 시간을 내버려 둬버렸으니 더 이상 바실리스크 시체의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부산물들을 정리해야겠지.
그리고 오두막의 정리도 끝마쳐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첫 번째 에피소드가 끝이 났습니다.
이 에피소드에 사용된 요리 기법은 모두 현실의 요리에서도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니 모두 실생활에서 응용해서 맛있는 식사를 드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