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꿈나무에게 집착 받고 있습니다-14화 (14/14)

<에필로그>

3년 뒤.

“감자 축제 관련 기획은 잘 진행되어 가고 있는 거야?”

집무실 의자에 앉아 서류에 사인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시에나가 앞에 있는 제인에게 물었다. 제인은 시에나의 말에 외눈 안경을 끼고 서류를 뒤적였다.

“예, 올해도 풍년이라 감자 수확량도 충분하고, 설문 조사에서 축제에 참여하겠다는 응답도 예년의 두 배가 넘어가고 있어요.”

“다행이네. 제인이 알아서 잘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

셔츠에 검은 바지를 차려입고 안경을 낀 그 모습이 영락없이 시에나가 예전에 상상하던 집사의 모습과 흡사해 시에나는 슬그머니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서류를 뒤지던 제인이 끙, 신음을 내며 시에나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 그 감자밭에 고블린들이 침입해 왔었는데요. 경계를 좀 더 갖춰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맞아, 그랬었지.”

작년 역시 감자 농사는 풍년이었지만, 고블린들이 밤새 감자를 잔뜩 가져가 버려 적지 않은 손해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에나는 별로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괜찮아. 이번 년에는 수호신이 왔다 갈 테니까.”

“아, 그럼 안심이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병력을 차출해서 증원하는 편이 좋긴 하겠다.”

“네, 그럼 조치하겠습니다.”

“응, 수고해 줘. 또 필요한 일은 없고?”

“오늘은 이 정도면 되는 것 같아요. 혹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말씀드릴게요.”

“그래, 참. 테오랑 언제 결혼할 셈이야?”

“결혼은… 네!?”

제인이 화들짝 놀라 시에나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시에나가 짓궂은 미소를 흘리며 제인에게 말했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거야? 테오와 연애한 지 꽤 오래되었잖아.”

“그, 그, 그렇긴 하지만….”

하루 종일 집무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시에나는 묘하게 소문에 밝았다. 가면이 깨져 버린 제인은 홧홧한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나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돼.”

“어… 네?”

“내가 결혼하지 않아서 미루는 거라면, 난 정말 상관없으니 괜찮다는 거야.”

제인은 시에나의 말에 말문이 막힌 듯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제국을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 신분으로 처음 대백작이 된 시에나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혼이었다. 감자의 고장으로 유명한 마르바스 영지를 다스리고 있는 데다가 록사나의 창시자로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시에나는 제국 최고의 신붓감이라 소문이 자자했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구애의 편지를 받는 제인의 입장은 썩 편치는 못했다. 귀한 종이로 적힌 편지들을 고작 불쏘시개로 써야 했으니까. 책과 글을 사랑하는 제인은 항상 눈물을 머금고 편지들을 벽난로 안에 집어넣었다

그렇지만 제인은 딱히 시에나에게 결혼을 종용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 정도 지위와 돈을 가진 여자가 굳이 결혼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불경한 생각도 들었다. 시에나는 혼자였지만 제인과 사용인들의 도움을 받아 바깥일과 안주인의 일을 모두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물론 그 역할을 수행하는 데 수호신의 도움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마르바스 영지는 출산 휴가도 제법 잘되어 있는 데다 성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탁아소와 같은 복지 시설들을 많이 설치해 놓아 아이를 낳아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제인은 시에나보다 먼저 결혼할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그리고 마르바스성의 유일무이한 집사로서 매일 일에 치여 살면서도 일은 재미있었고 보람찼다. 테오와 사귀는 건 그저 연하남의 재롱이 제법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이 삶이 만족스럽다 보니 딱히 결혼하고픈 생각도 없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제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에요.”

“그래? 그렇다면 괜찮지만. 혹시 나 때문이 아닌가 걱정돼서 물어본 거야.”

“후후,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만약 결혼한다고 해도 계속 여기서 일할 테니 걱정 마세요.”

“그래 주면 고맙지. 나도 결혼 때문에 제인 같은 인재를 잃고 싶진 않거든.”

시에나는 정말로 안심한 기색이었다. 제인이 키득거리며 시에나가 사인한 서류들을 바닥에 탁탁 쳐서 정리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실례할게요. 푹 쉬고 내일 뵙겠습니다.”

“응. 내일 보자.”

옆구리에 서류철을 끼운 제인이 쿵, 문을 닫았다. 또각또각, 복도를 울리는 구두 소리가 제법 멀리까지 들렸다. 시에나는 집무실을 은은히 비추는 환한 보름달을 보며 기지개를 켰다.

“후아, 피곤하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 볼까.”

한 장소에서 오래 있다 보니 뼈마디에서 뚝뚝 소리가 났다. 운동 좀 해야겠다고 시에나가 혀를 찼다.

“내일부터 성 주변이라도 뛰어야 하나.”

시에나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 스트레칭을 했다. 오늘따라 달이 요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스트레칭이 끝난 후에도 창문을 열어 두고 달구경을 하던 시에나가 문득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어…?”

짙은 색의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성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벌써 올 리가 없는데.”

시에나는 제가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비볐다. 다시금 쳐다보자 그 남자는 원래부터 없었던 듯 사라져 있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잘못 봤나 보네.”

“뭘 잘못 봤어?”

시에나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기겁하며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남자가 제 입술로 입을 막지 않았으면 정말 그렇게 되었을 테였다.

“꺄… 읍…!”

정신이 든 시에나가 이내 남자를 표독스럽게 노려보았지만 그는 봐달라는 듯 제 혀로 시에나의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남자는 사막 지대를 지나왔는지 그의 옷에서 태양과 버석한 모래의 냄새가 났다.

“응… 흐으….”

가볍게 치열을 쓰는 입맞춤에도 시에나는 불에 달군 치즈처럼 노골노골해졌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저를 몰아쳐 오는 통에 시에나는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남자의 손이 거칠게 시에나의 바지 단추를 풀었다. 지이익.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방을 울렸다.

“아…!”

그는 사막에서 물을 찾듯 시에나의 안을 침범했다.

“나 씻어야… 흐으.”

포동한 엉덩이를 양손으로 꽉 쥐며 음핵을 혀로 굴리는데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대로 주저앉을 것 같아 시에나가 남자의 머리를 콱 잡아챘다. 그 바람에 로브의 후드가 뒤로 떨어지며 그의 검푸른 남색 머리칼이 드러났다. 결 좋은 남색 머리카락이 시에나의 손에 한가득 잡혔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잖아.”

남자의 목소리는 듣기 좋은 저음이었다. 그는 달콤한 목소리를 하고는 시에나의 의견을 명백하게 무시했다. 시에나는 사막 지대를 구르다 왔음에도 유난히 깨끗한 그의 몸을 보며 억울한 눈빛을 했다.

“자기는 마법으로 다 처리해 놓고…!”

조금 전에 클린 마법을 이용해 온몸을 깨끗하게 만든 걸 가지고 이렇게 앙탈을 부린다. 남자는 씩 웃었다. 저야 먼지 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온 데다 들어가야 하는 입장이니 마법으로 빠르게 처리한 거지만, 시에나는 달랐다.

“내가 네 체향 좋아하는 거 알잖아.”

막 목욕을 하고 나와 향유를 바른 시에나도 좋지만, 남자가 제일 좋아하는 건 한 번의 섹스가 끝나고 땀에 푹 젖은 시에나였다. 잔뜩 지쳐 있는 시에나의 위로 엎어져 그녀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으면 시에나 특유의 향과 제 체향이 섞여 말로 할 수 없는 오묘한 향이 난다. 창피함에 묘하게 굴욕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시에나를 보며 남자는 검은색 눈동자를 반짝였다.

“어떻게, 흣. 벌써 온 거예요.”

“보고 싶어서, 좀 빨리 해결했어.”

“무리하지 말라고 했… 잖아요.”

“괜찮아. 정말 무리하지 않았어.”

내겐 네 얼굴을 못 보는 게 더 힘든걸.

남자의 속삭이는 듯한 말과 야한 표정이 시에나의 무언가를 건드렸는지 그녀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격한 신음을 터뜨렸다.

“아… 흣, 아아-!”

시에나의 신음과 함께 그녀의 안에서 울컥, 애액이 쏟아져 내렸다. 한 번 간 탓에 다리에 완전히 힘이 풀렸지만 남자가 시에나의 엉덩이를 단단히 잡고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시에나의 입 안에서 하얀 숨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그제야 창문이 계속 열려 있어 안의 온도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 그거야 제가 덥혀 주면 되는 거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제법 뻔뻔해진 남자가 시에나의 바지를 그대로 벗겨 버렸다. 시에나가 기겁했지만 남자의 눈동자는 이미 욕망으로 선득하게 변해 있었다. 아아, 이렇게 된 남자를 말릴 수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진짜 여기서 할 거예요?”

“응.”

“하지만 여기는… 침대도 없는데…!”

“그런 건 걱정하지 마.”

많은 물건을 두지 않는 시에나의 성격 탓에 집무실은 휑할 만큼 가구가 적었다. 벽 한쪽을 메운 빼곡한 고서장을 제외하면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책상과 의자, 그리고 간이 의자 하나 정도. 그러나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이렇게 하면 되잖아.”

“꺄악!”

시에나는 제 몸이 갑자기 붕 뜨는 바람에 짧게 비명을 질렀다. 남자가 훤히 벗겨진 제 하체를 잡고 들어 올렸던 탓이었다. 남자는 시에나를 공중에 들어 올린 채로 툭, 툭 시에나의 셔츠 단추를 벗기기 시작했다.

“흐으….”

거칠고 두툼한 기사의 손이 여린 속살에 이따금 닿을 때마다 시에나가 앓는 소리를 냈다. 한참을 밖에 있다 나온 남자의 손은 시에나의 따끈한 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차가웠다. 그 소리가 제법 만족스러웠는지 남자는 일부러 올록볼록하게 올라온 손등뼈로 툭툭, 그녀의 맨살을 자극했다. 남자가 일부러 그런다는 사실을 알아챈 시에나가 세모눈을 뜨자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렇게… 흐… 웃겨요.”

“그냥, 귀여워서.”

유난히 선명한 달빛이 시에나의 나신을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귓바퀴를 훑고 내려간 남자의 손가락이 턱과 쇄골을 지나 가슴에 둥그렇게 호선을 그렸다. 선홍색 유두를 손끝으로 툭 건드리자 이내 그것이 빳빳하게 선다. 먹기 좋게 변한 유실을 남자가 입 안에 머금고 혀로 굴리자 시에나로부터 밭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응. 아… 흐아-.”

젖꼭지를 빨면서도 제 하반신을 시에나의 비부에 비비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시에나는 아까 간 것도 잊고 또다시 가려 하는 야속할 만큼 예민한 육체를 원망했다.

철컥. 남자가 벨트를 풀고 제 안에 숨겨진 물건을 꺼내었다. 흉기로 써도 될 만큼 길고 두툼한 그것은 뜨거운 열을 품고 끈적한 쿠퍼액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 넣지… 아흑-!”

“크윽….”

사전 경고도 없이 남자의 것이 시에나의 안을 꿰뚫었다. 남자의 것이 워낙 거대했던지라 시에나는 셀 수 없을 만큼 그와 몸을 섞었지만 항상 첫 삽입은 으레 긴장하게 되었다. 시에나의 안에 들어온 남자가 신음을 흘리며 시에나의 엉덩이를 콱 쥐었다. 감도 좋은 몸이 착실하게 반응해 왔다. 그런데 시에나가 밑에서 뚝뚝 물을 흘리면서도 남자를 밀어 대었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남자가 행위를 멈춘 채 시에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얼굴….”

“뭐?”

“원래대로 바꿔 줘요. 머리색도….”

아하. 그래서 앙탈을 부렸던 건가. 귀엽긴. 남자는 시에나를 한 팔로 지탱하며 한쪽 손을 이마에서 턱까지 쓱 내렸다.

“이젠 됐지?”

손짓 한 번에 남자의 남색 머리칼과 검은 눈은 검은 머리칼과 금색 눈동자로 바뀌었다. 코가 더 높아지고 선명한 턱선이 드러나자 남자는 영락없는 제가 봐 왔던 데이몬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데이몬의 얼굴이 너무 유명해진 탓에 그는 이렇게 밖에 나갈 때면 종종 변장하고 업무를 보곤 했다. 시에나가 그제야 안심하며 데이몬의 목에 제 팔을 둘렀다.

아까부터 고양이처럼 미묘하게 저를 거부해 왔던 게 이것 때문이었나. 데이몬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겨우 참아 냈다. 아, 정말 귀엽단 말이지.

“네에. 으흣, 아흑…!”

시에나의 속살이 그의 성기를 꽈악 붙잡고 놔주지 않았지만 데이몬은 지체 없이 빼내며 다시 쳐 올렸다. 그에 맞춰 애액이 울컥, 안에서 터져 나왔다.

“내 얼굴이 아닌 게 싫었어?”

“…그래요. 이상해. 다른 사람이 날 범하는 것 같아.”

입을 삐죽이며 말하는 것도 귀여워 미칠 것 같았다. 데이몬은 부드러운 귓불을 잘근잘근 물고 빨며 피스톤질을 반복했다. 계속되는 자극에 빳빳하게 선 유두를 손가락으로 콕 집어 궁굴리자 아직 여유로워 보이는 데이몬과는 달리 온갖 성감대를 다 자극받고 있는 시에나가 그의 위에서 계속해서 자지러졌다.

“아, 흑…!”

“토벌하러 간 거긴 하지만, 함께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막에서 잠을 이룰 때 별똥별이 몇 개나 쏟아졌는지 몰라.”

“아, 아앙, 응…!”

“듣고 있어 시에나? 매일 일하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아. 몸도 챙겨 가면서 해야지. 축제가 끝나면 휴양지로 놀러 가자. 전에 말했던 키니에 마을 알지?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곳 말이야. 거기 숙소에 묵어 봤는데, 거기에 몸을 담그면 피부가 좋아지는 느낌이 들어. 함께 가서 며칠 푹 몸 담그면 피로도 풀릴 것 같지 않아?”

“읏, 우우….”

“대답이 없네. 그리고 밤에는 사막에 가서 별을 보자. 여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별들이 무수해.”

“흐윽, 으, 아읏, 아학. 아아앙-!”

아니, 대답할 틈이라도 주고 묻든가!

시에나는 제 할 말만 하면서 쉴 틈 없이 몰아쳐 오는 데이몬을 정말 딱 한 대만 때리고 싶었다. 얄밉기 그지없는데, 이 차가운 실내에서 불꽃처럼 뜨거운 남자가 땀을 뚝뚝 흘리며 애달프게 저를 쳐다보면서,

“시에나….”

제 이름을 부르면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이름을 부를 때면 그 절절한 감정이 전부 전해져 오는 듯했다.

“아으으응, 하아, 핫, 아…!”

“읏… 하아. 아, 너무 좋아.”

시에나는 제 배 속이 저릿저릿하고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또 한 번의 절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데이몬 역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지 속도를 올려 몰아쳐 왔다.

“흣, 이름, 이름을 불러 줘. 시에나.”

“하아, 데이… 데이몬…! 하아아앙-!”

“사랑해. 사랑해, 시에나… 사랑해.”

녹아내릴 듯한 목소리로 데이몬은 시에나의 귓가에 계속해서 고백했다. 시에나는 이미 정신을 놓고 짐승처럼 그에게 매달렸다. 절정에 다다른 시에나가 교성을 지르며 데이몬의 자지를 안에서 쥐어짰다. 결국 더 견딜 수 없었던 데이몬은 시에나의 낭창한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그녀의 안에 씨물을 뿌렸다. 정액이 내벽을 때리는 것을 느끼며 시에나가 그의 검은 머리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으, 하아….”

“후우….”

이대로 죽어도 좋을 만큼 만족스러운 관계였다. 시에나의 몸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로 저를 끌고 갔다. 데이몬이 시에나의 둥근 이마와 콧잔등, 볼, 입술, 밀빛 머리칼에 쉴 새 없이 키스했다. 시에나는 온몸이 녹진해져 반쯤 잠든 상태로 그의 입맞춤을 받았다.

“…시에나.”

“…네에.”

“미안.”

데이몬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시에나가 번쩍 눈을 떴다.

“안 돼!”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시에나가 바락 달려들며 사과를 거부하자 데이몬이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시에나가 그의 얼굴을 덥석 잡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 좀 내려 주고 가요!”

시에나의 간절한 부탁에도 데이몬은 묵묵부답이었다. 시에나는 불안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데이몬을 불렀다.

“…데이몬?”

이름에 응답하듯 그의 속눈썹이 움찔, 떨렸다. 갓 우화한 나비의 날개처럼 그가 서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동자를 바라본 시에나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별로 반갑지 않은가 봐, 응?”

“마르바스으….”

말꼬리를 늘리며 시에나가 어색하게 그의 눈치를 봤다. 쭉 찢어진 동공이 집요하게 시에나의 시선을 쫓았다.

“안 반가운 게 아니고… 응!”

시에나가 제 안에서 뭉클뭉클 커져 오는 성기에 경악했다. 마르바스는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시에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데이몬이 쓰다듬는 것과 같은데도 어쩐지 섬뜩한 불안감이 들었다.

“자세 좋고.”

시에나는 여전히 마르바스에게 안겨 공중에 떠서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이게 민망해서 데이몬에게 조금만 정신 차려 보라고 한 건데.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개진 시에나를 보며 마르바스가 킥킥 웃었다.

“아까는 그렇게 예쁘게 울더니 왜 그렇게 부끄러워해?”

“저, 저리 비켜… 아학!”

“그건 안 되지.”

마르바스를 밀치며 내려오려던 시에나가 얕게 쳐 올리는 마르바스의 것에 신음을 토해 냈다.

“삼 일 동안 나 없어서 몸이 아주 달아 있었지?”

“아, 아니야…!”

“그럴 땐 혼자 하라고 내가 하는 법을 가르쳐 줬을 텐데?”

“안… 했어!”

진짜 안 했다. 그런 민망한 짓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래? 그럼 지금 해 보자.”

“무슨…!”

마르바스가 시에나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쿵, 쿵 배 속이 울렸다. 마르바스가 시에나를 한 손으로 안고 나머지 손으로 책상 위를 훑었다. 우당탕. 책상에서 서류며 책이 떨어져 큰 소리가 났다.

“미, 미쳤어…!”

시에나가 깜짝 놀라 마르바스의 어깨를 짝 소리 나게 때렸다.

“아얏, 아파라.”

마르바스는 엄살을 부리며 담요를 책상 위에 깔고 그 위에 시에나를 앉혔다. 속옷을 전부 벗고 있어 시에나가 다급히 셔츠를 끌어당겨 가리려고 했지만 워낙 짧은 탓에 가리기는 턱도 없었다. 제 몸을 가리려고 애쓰는 시에나를 보며 마르바스가 키득, 웃었다.

“뭐 하러 가려. 어차피 다 볼 건데.”

“누가 보여 준대?”

“어어. 약속했잖아.”

“내가 무슨 약속을 했다고 그래?”

“3일 전에 한 약속도 벌써 까먹었어?”

“내가 언….”

그제야 기억이 난 듯 시에나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그래, 떠올랐다. 떠나기 전 데이몬과 마르바스가 번갈아 가며 괴롭힌 탓에 새벽별이 뜰 때에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온몸이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있는 시에나를 또 괴롭히려는 마르바스에게 반쯤 울면서 돌아오면 마음대로 하게 해 줄 테니 제발 그만하라고 했었다. 마르바스는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알았다고 했었고, 시에나는 그 말을 끝으로 기절하듯이 잠들어 버렸다. 자고 일어나니 마르바스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기억이 난 모양인데.”

아아, 기억력도 좋지. 시에나는 제 기억력을 원망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 잠깐만.”

“일단, 다리부터 벌려 보실까, 우리 아가씨?”

간도 쓸개도 다 빼 줄 것처럼 달콤한 목소리를 하고서는 음란한 말만 툭툭 뱉어 낸다.

“혼자 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이 훌륭한 선생님이 충분히 교육해 줘야지.”

시에나는 제 다리를 벌리는 손길에 기겁하며 마르바스의 손목을 잡았다.

“뭐야. 설마 천하의 대백작인 시에나가 거짓말을 했다는 건 아니겠지?”

“그, 그렇게 비꼬지 마.”

“너까지 이러면 앞으로 나는 누굴 믿고 살아야 할까.”

급작스레 우는 체를 하는 마르바스를 보며 시에나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마르바스는 계속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우울한 척을 했다.

“마지막으로 안 했으니까 이번엔 내가 먼저였는데, 데이몬 유혹에 또 홀라당 넘어가서는… 아주 실망이 커.”

침울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눈빛에 시에나는 결국 두 손 두 발 드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하면 될 거 아니야!”

“잘 생각했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정이 밝아지는 마르바스를 보며 시에나는 제가 또 낚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에나는 마르바스를 노려보며 다리 사이로 손을 뻗었다.

“그렇게 작게 벌려서야 손가락 하나 들어가겠어?”

실낱같은 틈새 사이를 선득한 눈동자로 지켜보던 마르바스가 말했다. 시에나는 얼굴을 홧홧하게 붉히고는 다리를 조금 더 벌렸다. 그런데 이다음엔 어떻게 했더라. 사고가 정지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전체적으로 문질러.”

“…이렇게?”

머뭇거리는 손길에 마르바스가 후,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해서는 백 년 가도 못 가. 조금 더 깊게, 세게.”

시에나가 마르바스의 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러나 수치심이 앞서서인지 손길은 여전히 서툴렀다. 보다 못한 마르바스가 다가가 그녀의 작은 손 위에 크고 거친 손을 얹었다.

“아… 흣!”

“…이렇게.”

마르바스의 손이 안쪽을 깊게 압박하며 위아래로 둥글게 문지르자 시에나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마르바스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후에는 시에나도 익숙하게 제 것을 매만졌다. 작지만 긴 자극에 시에나의 질 안쪽이 습하게 젖기 시작했다.

“으… 흐으….”

“잘하고 있어. 이제 중지랑 검지로 내벽 주변을 만져서 애액으로 충분히 적셔.”

이미 한 번의 사정을 끝낸 터라 질 주변은 애액과 정액투성이였다. 시에나가 손에 끈적이는 애액을 적셨다. 비록 조명은 없다 해도 달빛이 워낙 밝아 시에나의 실루엣이 전부 드러나고 있었다. 한쪽 팔로 지탱한 채 다리를 벌리고 손가락으로 제 몸을 애무하는 시에나의 모습에 데이몬의 자지가 아플 만큼 커져 있었다.

“하아…. 젖은 손 그대로 음핵에 비벼. 그래, 거기 톡 튀어나와 있는 부분.”

“응… 아…!”

시에나의 신음에 마르바스가 욕설을 내뱉었다. 마르바스가 욕망이 담긴 눈은 시에나에게 고정한 채 손으로 제 거대한 기둥을 훑어 올렸다.

“그대로… 서서히 속도 올려. 손 마르면 질 안에 손가락 넣어서 다시 적시고. 그래. 잘하네.”

“아흣… 학….”

시에나는 충실히 마르바스의 말을 따랐다. 시에나의 젖은 손가락이 음핵을 서서히 돌리며 자극을 더해 갔다. 손이 조금 말랐다 싶으면 이따금 회음 밑으로 흘러내리는 애액으로 손을 다시 적셨다. 음핵을 만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에나의 신음이 더욱 커졌다.

“응, 아아… 아흑… 아…!”

“하, 시에나. 아….”

마르바스 역시 그런 시에나를 보며 뿌리 끝부터 귀두를 빠르게 훑었다. 선단 끝에 방울진 쿠퍼액이 마르바스의 손 위로 흘러내렸다. 저를 보고 흥분하고 있는 마르바스의 근육이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자 몸이 더워졌다. 세게 할수록 거세지는 쾌락에 시에나의 손이 저절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내 제 손으로 느끼는 첫 번째 절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으응, 아, 흑, 아아앗…!”

시에나가 절정에 이르는 것과 동시에 마르바스 역시 두 번째 절정을 맞이했다. 퓻, 퓨웃, 마르바스가 손을 쓸어 올릴 때마다 정액이 그의 배 위에 튀었다. 시에나 역시 질에서 흘러내린 애액이 회음을 지나 담요 위를 가득히 적셨다.

하아, 하아. 절정이 지나간 자리에 더운 숨소리만 방 안을 울렸다. 시에나의 나른한 눈동자가 마르바스와 마주쳤다. 둘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어 입을 맞추었다.

“흐으… 응….”

뜨거운 키스에 온몸이 녹아 버릴 것 같았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마르바스의 혀가 말라 있던 시에나의 입 안을 촉촉하게 적셨다. 혀가 얽히는 야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히 울렸다.

시에나의 목을 타고 내려간 마르바스의 입술이 시에나의 젖꼭지를 덥석 물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놀라 시에나의 몸이 파드득 떨렸다.

“아학…!”

집요하게 유두를 빠는 애무에 정신을 놓고 있던 시에나가 제 안으로 서서히 손가락이 들어오는 걸 깨달았다. 마르바스의 손가락은 성기만큼 굵진 않았지만, 길고 도톰해 시에나가 흥분하는 포인트를 만져 주기에는 충분했다. 익숙한 체크 포인트를 훑자 시에나가 그의 등을 긁으며 자지러졌다.

“아흑, 아…!”

“3일 내내 네가 등에 남긴 상처를 매만지면서 자위했어. 마지막 날에는 거의 사라져 있어 아쉽더군.”

“벼… 흣, 변태….”

“뭐, 나만 그런 건 아니야.”

마르바스뿐 아니라 데이몬도 그랬다는 소리였다. 둘이 같은 몸을 사용하는 걸 알면서도 시에나는 마르바스나 데이몬이 상대에 대해 말할 때면 꼭 바람을 피우는 기분이 들었다. 때때로 드는 죄책감에 가슴에 짐이 얹어진 듯 느껴지면서도 본 게임에 들어가면 둘이 주는 쾌락에 머릿속이 곤죽이 되어 버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마르바스가 손가락을 하나 더 들여 본격적으로 씹질을 하며 시에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막은 정말 좋았어. 이 수많은 별빛 속에 널 홀딱 벗겨 놓고 네 안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지 그것만 생각했다고.”

“아흑, 아…! 어떻게 그런….”

“어떻게 그런 것밖에 생각을 못 하냐고? 내 생각에도 그래. 그런데 네 안에 다섯 번을 사정하고도 너만 보면 또 이렇게 벌떡 서는데 어떡해? 그래도 난 솔직하게 너한테 다 말하잖아. 데이몬은 뭐 다른 줄 알아? 걔도 달콤한 척 온천이니 뭐니 꼬셨지만 사막에서 밤새 너랑 그 짓 할 생각밖에 없었다고. 내가 솔직한 개새끼면 걔는 음흉한 개새끼야. 질은 걔가 더 나쁘다고.”

“아응… 흑, 아아아!”

시에나가 반박할 새도 없이 마르바스가 몰아쳐 왔다.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탓에 쾌락에 젖은 시에나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질 주변을 압박하며 기분 좋은 곳을 깊숙이 찔러 오자 시에나의 아랫배가 바글바글 끓었다.

“아아, 나 이상해…! 그만…! 그만…!”

“내가 괜히 담요 깐 줄 알아? 안심하고 싸라고.”

절대 그 생각이 없어 보이는 마르바스의 말투에 시에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결국 계속되는 자극에 시에나의 요도에서 투명한 액체가 스프레이처럼 뿜어져 나왔다.

“흐읏, 으, 아앙, 앗, 아학, 아…!”

강한 쾌락이 머리를 때려 시에나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시에나가 사정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바스는 손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으로는 질 안을 자극하고, 손바닥과 손목 사이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으로는 음핵을 자극해 더 많은 쾌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퓨웃, 퓻. 마르바스의 손이 시에나의 것을 자극할 때마다 무수히 튀어나오는 액체가 마르바스의 팔을 축축하게 적셨다.

“아… 정말….”

시에나가 수치심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마르바스가 시에나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들어갈게.”

예고와 동시에 마르바스가 시에나의 포동포동한 허벅지를 끌어당겨 질과 자지를 마주했다.

“아흑…!”

사정으로 인해 예민해진 몸 안에 마르바스가 들어오자 시에나가 거의 자지러지는 신음을 냈다. 초반부터 자극이 너무 거세 숨 쉬기조차 벅찼다.

“학… 아흑… 하아, 앗, 아으….”

“미치도록 예뻐. 어떡해야 하지? 3일이 영원 같았어. 몬스터들을 베어 넘기면서도 네 안에 들어가는 상상을 했어. 그런데 항상… 너는 내 상상을 뛰어넘어. 네 보지가 얼마나 쫀득한지 알아? 내 모양으로 만들어져서는 한 번 박으면 나가지 말라고 다닥다닥 달라붙어 온다고. 씨발, 꼴리게.”

“조, 조용히… 해…!”

“이틀 뒤에 또 출정이야. 이번엔 일주일이나 나가 있어야 한다고. 지금 이렇게 말해 둬야 네가 일주일 동안 독수공방하면서 내가 한 말들 반찬 삼아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지금은 이렇게 딸기처럼 새빨갛게 얼굴 붉히면서 부끄러워해도 나중엔 마르바스가 어떻게 말했더라? 상상하면서 이 쪼끄만 구멍을 손가락으로 쑤시고 있을 거라고.”

“나는… 흣, 너가 아니야… 아흑…!”

시에나의 목소리까지 흉내 내는 마르바스를 보며 시에나가 기가 막히다는 눈빛을 보냈다. 경멸 섞인 눈빛을 감사히 받아 내며 마르바스가 시에나의 하얗고 가는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그래, 맞아. 고귀한 아가씨는 나랑은 완전히 다르지.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출세했지. 평생 손가락이나 빨다가 인생 종 칠 줄 알았더니 이제는 이 안에 들어와 있고 말이야.”

앙. 마르바스가 시에나의 손가락 끝을 깨물며 말했다. 뭉근하게 느껴지는 아픔에 시에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홱, 손을 뺐다. 그 반동으로 뒤에 있던 책들이 와르르 무너지며 큰 소리가 났다. 시에나가 당황할 새도 없이 마르바스가 양손에 깍지를 끼고 몸을 숙여 더욱 깊숙하게 들어왔다.

“흐윽, 아…! 아흑!”

시에나가 느끼는 깊은 곳을 집요하게 찔러 댈 때마다 허리가 휘었다. 시에나는 너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쉬어 버린 목소리로 소리 없는 교성을 지르며 마르바스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르바스가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기 직전,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똑똑.

“…!”

시에나는 너무 놀라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마르바스 역시 피스톤질을 뚝 멈추고 밖을 향해 예민하게 신경을 세웠다.

“…제인이에요. 아래층에 있다가 큰 소리가 두 번이나 나서… 괜찮으신가 해서요.”

제인은 걱정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시에나가 당황하며 흔들리는 동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서류와 책을 바라보았다. 시에나의 집무실 밑은 제인의 방이었다. 아까 마르바스가 저를 책상에 눕히려 한 번, 지금 시에나가 실수로 떨어뜨린 게 한 번으로 두 번인 모양이었다. 제인이 이상함을 느끼고 올라와 보는 것도 당연했다.

“백작님? 거기 아직 계신가요?”

제인이 재차 물어봄에도 불구하고 시에나는 좀처럼 답할 수 없었다. 이대로 문을 열고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조바심이 나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혹시 주무세요?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신은 자신의 편이 아닌 모양이었다. 시에나는 끼이이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철컥.

“어? 잠겼네… 안 계시나.”

제인의 말에 온몸을 빠르게 순환하던 피가 식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하고 마르바스를 보자 그가 눈을 찡긋해 보였다. 힘을 써서 문을 잠근 모양이었다. 시에나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은 마르바스의 자지가 시에나의 안을 찌르며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미쳤어?’

입 모양으로 온갖 욕을 해 대는 시에나를 보며 마르바스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아, 안 돼. 시에나는 제 안을 찔러 오는 마르바스의 페니스를 느끼며 신음을 참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르바스는 시에나의 어깨를 잡고 아주 작정하고 들이쳐 왔다. 시에나가 뾰족하게 눈을 세웠지만 소용없었다.

“아흣….”

“백작님?”

저도 모르게 나온 목소리에 시에나는 거의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시에나의 표정이 아주 볼만했는지 마르바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웃음을 참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결국 참을 수 없었는지 시에나의 품속에 고개를 묻고 큭큭댔다. 몸 안에 들어와 있는 페니스가 웃을 때마다 격하게 떨려 오는 게 선명하게 느껴져 시에나는 제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쥐어박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잘못 들었나….”

그러나 다행히도 제인은 눈치채지 못했고, 이내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슬리퍼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시에나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마르바스는 아주 실컷 웃었는지 눈가에 맺힌 눈물까지 닦아 내고 있었다.

“진짜… 미쳤어?”

“너무 귀엽잖아. 문은 아까 진작에 잠가 놨는데.”

“그럼 나한테 알려 줬어야지! 그리고 들킬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게 어딨어…!”

혹 제인이 큰 소리를 듣고 돌아올까 시에나가 작은 목소리로 화를 냈다. 파르륵 화내는 걸로 보아 진짜 아까 상황이 당황스럽긴 했나 보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마르바스가 순순히 시에나에게 사과했다.

“미안, 아무리 귀여웠다 해도 그러면 안 됐는데.”

“당연히 안 되지. 다시는 그러지 마.”

“알았어. 다신 안 그럴게. 미안해.”

긴 시간 동안 추삽질이 거의 없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바스의 것은 여전히 시에나의 안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마르바스가 슬쩍 시에나의 안에 들어왔다 나가며 물었다.

“끝까지 해도 돼?”

“안 된다고 해도 할 거잖아.”

“그래도 허락받으면 좋잖아. 응?”

교태를 부리는 마르바스의 행동에 시에나가 결국 푸실푸실 웃음을 터뜨렸다. 작정하고 녹이는데 어떻게 이길까.

“그래. 해.”

“그럼, 뒤돌자.”

마르바스는 시에나의 허락만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굴다가 갑자기 폭군처럼 변해 시에나를 그대로 쭉 끌어당겨 뒤돌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안에 고여 있던 애액이 마룻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시에나가 당황해 뒤를 돌아보자 마르바스가 제 성기를 그녀의 엉덩이 골 사이에 비비고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엉덩이 골 사이를 가르고 마르바스의 검붉은 성기가 위아래로 비벼졌다.

“아학… 흐…!”

쿠퍼액이 뚝뚝 떨어지던 선단이 음핵에 비벼지자 시에나가 발끝을 세우며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세웠다. 마르바스가 만족스럽다는 듯 마구잡이로 흐트러져 있는 시에나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등의 오목한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살살 매만졌다. 금방이라도 들어올 듯 꺼떡이는 마르바스의 성기는 시에나의 질 입구와 음핵, 회음만 살살 애무할 뿐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시에나가 안달이 나 반쯤 눈물이 고인 채로 마르바스를 올려다보았다.

“왜… 왜 안 넣어?”

“넣어 줬으면 좋겠어?”

키득 웃으며 말하는 마르바스의 태도에 시에나가 굴욕적인 얼굴을 했다. 그 표정을 본 마르바스의 안에 시에나에 대한 정복욕이 끓어올랐다. 아아, 이대로 저 얼굴 위에 제 씨물을 뿌릴 수만 있다면.

“안… 할 거야?”

“흐응, 자지 넣어달라고 말해 봐.”

“…돌았니?”

바로 험한 소리가 나오는 시에나를 보며 마르바스가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미소 띤 얼굴로 시에나를 바라보긴 했지만 말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시에나가 경멸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르바스는 시에나의 엉덩이 위에 프리컴을 뚝뚝 흘리면서도 표정만은 여유만만이었다. 기어코 시에나의 입에서 그 말을 들을 모양이었다. 이 미친놈은 세상에 제일가는 변태 새끼일지도 모른다.

“말해 봐. 나랑 씹질하고 싶잖아. 자지 넣고, 푹푹 쑤셔 달라고… 말해 봐.”

“아으….”

마르바스는 시에나의 귓불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소름이 돋을 만큼 달콤하고 에로틱한 목소리에 젖꼭지가 꼿꼿하게 솟아오르며 밑이 움찔거렸다. 애액이 흐르는 안은 여전히 마르바스의 것을 원하고 있었다. 결국 시에나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 자…. 아, 그냥 하면 안 돼…?”

시에나가 거의 눈물을 반쯤 그렁거리면서 마르바스를 바라보았다. 마르바스는 그런 시에나의 요부 짓에 정신이 나갈 뻔했다.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는 그런 시에나를 살살 달래었다.

“말해 봐. 한 번만, 응? 나는 매번 하는 거잖아.”

“아… 진짜… 그거…넣어줘.”

“뭐라고?”

“씨이, 자…. 자지 넣어 달라고…!”

“잘했어.”

“아흑…!”

그와 동시에 마르바스의 것이 시에나의 안으로 쑥 들어왔다. 제 안을 빠듯하게 채우는 마르바스의 페니스에 시에나가 열에 달뜬 신음을 내뱉었다. 마르바스는 시에나의 가슴을 쥐고 단숨에 시에나를 몰아쳐 왔다. 끼익, 끽. 움직일 때마다 책상이 덜컹거려 아래에 있는 제인이 들을까 조마조마했다.

“하악, 아, 윽… 하응… 읏. 아…!”

“아… 시에나. 시에나. 돌아 버리겠네. 어쩌자고 이렇게 들어갈 때마다 좋아서는…!”

“응… 마르바스, 아. 마르바스으…!”

시에나는 착실하게 마르바스의 이름을 불렀다. 저번에 술을 마시고 했다가 데이몬의 이름을 부른 탓에 밤새 괴롭힘당한 후 시에나는 절대 둘의 이름을 헷갈리지 않았다. 시에나가 마르바스의 이름을 부르며 밭은 신음을 흘릴 때마다 마르바스의 입가에 가학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넌… 후우.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네가 얼마나 야한지 모르지?”

“모… 흑, 몰라….”

“네 머리카락이 새하얀 등을 전부 가리고 있다가 내가 움직일 때마다 물결친다고. 이렇게. 네 속살이 언뜻언뜻 드러날 때마다 박고 있는데도 너한테 발정해.”

“아…! 좋아…! 아흐으…!”

찰싹, 마르바스가 시에나의 엉덩이를 때렸다. 시에나의 엉덩이가 금세 복숭아색으로 물들었다. 그걸 보는 마르바스의 눈에 묘하게 갈증이 일었다. 마르바스의 손이 탐욕적으로 시에나의 부푼 유방을 주물렀다. 아래로 내려와 쳐 올릴 때마다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는 가슴이 미치도록 색정적이었다. 밀가루 반죽같이 탱글탱글하고 말랑거리는 가슴은 마르바스의 손안에서 주무르는 모양대로 변했다.

“아… 젠장. 너무… 너무… 좋아… 시에나. 시에나…!”

“아흑… 아, 하악. 앙, 좋아… 아앙. 흐으, 아아…!”

마르바스가 시에나의 깊은 곳을 빠르게 찔러 왔다. 그 빠른 속도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둘은 서로에게 절정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시에나가 엉덩이를 붙이며 그에게 더 깊이 다가가려 했고, 마르바스는 시에나의 숨겨진 스폿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격한 추삽질에 음낭이 턱턱 부딪히며 자극을 더했다.

“으…!”

“아흑, 아아. 하아앙-!”

머릿속에 전류가 튀며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잠깐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한 쾌감이 몸을 때렸다. 동시에 온몸에 힘이 풀렸다. 마르바스가 빠르게 제 아랫배를 들지 않았다면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격한 숨을 내쉬었다. 마르바스가 시에나의 땀에 젖은 등에 계속해서 입을 맞추었다. 땀에 푹 젖어 매끈매끈한 등에 닿는 촉감이 미치도록 좋았다. 마르바스는 아예 시에나의 등에 얼굴을 박고 그녀의 체향을 폐부 깊숙이 들이쉬었다. 시에나는 너무 지쳐 거의 탈진 상태였다. 시에나의 지친 얼굴을 보니 죄책감이 조금 들긴 했다. 마르바스가 시에나의 벗은 몸에 담요를 두르고 그녀를 안아 올렸다. 시에나는 깜짝 놀라 조금 바둥대긴 했지만 전적으로 마르바스의 손에 제 몸을 맡기고 있었다.

작은 소동물이 거인이나 다름없는 인간을 완전히 신뢰한 채 제 몸을 완전히 맡겼을 때 인간의 기분이 이러할까. 시에나는 그저 너무 지쳐 그런 것뿐이지만 마르바스는 괜스레 벅차오는 기분에 입술을 깨물었다.

“시에나, 누워 있어.”

“응….”

시에나를 침대 위에 올려놓은 마르바스가 따뜻한 물과 빳빳하게 말린 수건을 들고 왔다.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시에나의 몸을 닦아 주었다. 시에나가 얌전히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흥분했을 때 너무 깨물어 댔는지 새하얀 시에나의 몸이 마르바스의 키스 마크로 인해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운 한편 또 은근히 색정적으로 느껴졌다. 마르바스가 너무 빤히 봤는지 시에나가 경계심 강한 눈으로 노려보며 시트를 끌어 올려 몸을 가렸다.

“미안, 미안. 이젠 안 그럴게. 마저 몸 닦아 줄게.”

마르바스의 말 한마디에 시에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시트를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능숙한 솜씨로 몸을 닦아 준 마르바스가 시에나의 이마에 쪽, 입을 맞추었다. 나른해져 꾸벅꾸벅 졸고 있던 시에나의 정신을 깨운 건 마르바스가 끼워 준 반지였다.

“어…?”

시에나가 벌떡 일어나 침대에 앉아 반지를 살폈다. 두 개의 흑요석 가운데 큼직한 다이아가 박혀 있는 반지는 딱 봐도 결혼반지였다. 시에나가 놀라 마르바스를 바라보았다. 마르바스가 큼,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카이난에게 얼마 전에 복권을 준비하겠다고 했어.”

“황자로… 돌아가려고?”

“사실 나는 평생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약속한 게 있으니까.”

“무슨….”

“가장 행복한 신부로 만들어 주겠다고. 나는 평생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만, 그래도 남편 될 사람이 너무 묻혀 사는 것도 별로 보기 좋진 않아 보여서.”

“난 상관없는데….”

“그럼 결혼만 하고 다시 잠적하지 뭐.”

황자직을 뭘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시에나가 황당하다는 듯 마르바스를 올려다보았다.

“사실 난 별로 상관은 없어. 그런데 데이몬이 계속 결혼식은 크게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러려면 황자인 게 나으니까. 하아, 결혼식 로망은 걔가 제일 많을지도 모르겠어.”

“진짜 그럴지도 몰라.”

시에나가 후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일단 너무 걱정하진 마. 네가 신경 쓸 일 없게 할게.”

“알았어.”

“복권하고자 한 건 데이몬 생각이긴 했지만… 나도 아예 생각이 없던 건 아니야.”

“뭐가?”

“그래도 대백작 옆에 있으려면 적어도 황자 정도는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푸후, 이상한 말이야.”

대백작이랑 황자를 비교하는 말에 시에나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바람에 시트가 홀랑 내려가 버렸다. 하도 물고 빨아 새빨갛게 부풀어 오른 유두와 울혈 자국을 내놓고도 시에나는 말갛게 웃었다. 마르바스가 말을 잇지 못하고 집요하게 시에나를 바라보자 시에나가 다시금 시트로 몸을 가렸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시에나, 미안.”

“뭐?! 안 돼!”

눈만 감아도 죽은 듯이 잠들 자신이 있는데. 시에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마르바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느새 그의 동공은 순식간에 줄어들어 있었다. 날카로웠던 인상 역시 순해져서는 무뚝뚝한 인상이 되었지만, 아랫도리는 여전히 흉물스러웠다.

“시에나.”

“도련님….”

시에나가 겁먹은 눈으로 데이몬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하고 간절하게 데이몬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야속했다.

“그냥… 자고 있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도련, 도련님… 읍…!”

결국 시에나는 본의 아니게 유혹한 죄로 세 번째로 일을 치러야 했다. 두 남자(?)와 사는 동안 이런 일이 하루에도 두세 번씩 일어났다. 한 번은 데이몬으로, 한 번은 마르바스로. 또 데이몬으로… 시에나는 그때마다 두 남자가 주는 열락에 빠져 허우적댔다.

둘은 같은 몸에 있으면서 서로를 질투하고, 그러면서도 시에나에게 욕정했다. 둘의 인격이 합쳐지며 데이몬이 시에나와 잘 때 마르바스 역시 같은 쾌감을 느끼면서도 굳이 그 인격으로 돌아가 시에나를 가지고서야 만족했다. 기분상의 문제라나 뭐라나.

“아흑…!”

“시에나, 사랑해.”

마르바스가 자국을 남긴 부분 위에 하나하나 키스 마크를 덧붙이며 데이몬이 속삭였다. 가끔 이 상황이 웃기게도, 심각하게도 느껴지긴 하지만… 이 선택을 후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제 그들에게는 이게 보통이고, 가장 완벽한 일상이었으므로.

* * *

“후우….”

데이몬은 앞에 기절하듯이 잠든 시에나의 안에 네 번이나 정수를 쏟아 내었다. 시에나는 결국 네 번째 파정 전에 기절했다. 음흉한 개새끼라고 마르바스가 뒷담화를 했던 게 뭐 하나 틀린 게 없었다. 시에나의 안을 빠져나오자 애액과 정액이 섞인 거품이 함께 주르륵 흘러나왔다. 데이몬은 미리 대 놓았던 수건으로 시에나의 안을 꼼꼼히 닦아 주었다.

“도련님… 더 이상은 안 돼요… 마르바스… 저리 가아….”

꿈에서도 시에나는 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에나의 잠꼬대에 데이몬이 큭, 웃음을 터뜨렸다. 시에나의 몸을 닦아 주고 뽀송한 옷을 입힌 뒤 이불까지 잘 덮어 준 데이몬이 시에나의 이마에 키스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칵, 문을 닫은 데이몬이 시에나의 옆방 문을 열었다. 시에나의 옆방은 데이몬의 방이었다. 옆방 쓰기. 로하엘이 있던 시절부터 강하게 염원했던 소원이 몇 달 전에 드디어 이루어졌다.

데이몬은 방에 딸린 샤워실에서 간단하게 몸을 씻었다. 샤워실에 딸려 있는 전신 거울이 그의 몸을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온몸이 무기인 듯 단단해 보이는 근육과 몬스터들과 싸우며 몸에 생긴 무수한 흉터들이 그의 강함을 증명해 주는 듯했다. 복근의 결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보고 있던 데이몬이 오랜만에 제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흐응….”

눈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난색 계열의 눈동자는 다정하다. 단단한 턱과 우뚝 선 코로 조금 무뚝뚝한 인상을 자아낸다. 두꺼운 눈썹을 매만지며 제 둥근 동공을 보던 데이몬이 이내 눈을 감았다 떴다. 긴 속눈썹이 나비의 날개처럼 나붓이 팔락였다.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 잠깐 사이에 데이몬의 얼굴은 확 변해 있었다. 콧날과 턱선은 더 날카로워졌고, 삐죽이 솟아오른 눈꼬리는 사나워 보였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눈동자였다. 동글동글하던 홍채는 길쭉하게 찢어져 고양이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래도 이게 낫지.”

마르바스는 거울을 바라보며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3년 전부터 데이몬은 없었다.

그저 자신이 지어낸 것일 뿐.

데이몬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던 마르바스로서는 데이몬을 연기하는 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마르바스가 그렇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시에나가 여전히 데이몬을 사랑하고 있었기에.

3년 전 그날, 마르바스가 완전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제 육체 안에 잠재된 힘이 세계를 멸망시킬 정도라는 것 역시 사실이었고,

새로 들어온 힘과 융합해 함께 소멸시키는 데에 정신 하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 희생양이 그저 마르바스가 아닌 데이몬이었을 뿐이었다.

개처럼 손을 핥으며 시에나에게 애정을 구걸할 때부터 기다려 온 기회였다. 데이몬의 정신을 누르고 제가 위로 올라가는 것. 그리고 시에나를 차지하는 것.

그 순간이 왔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시에나를 안고 있을 때라 의심을 사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 제가 무서워 떠는 줄 알고 있었단다. 아아, 순진한 아가씨 같으니.

그러나 마르바스는 예상대로 데이몬의 정신을 전부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힘에 잠식되어 잠들어 있던 데이몬의 정신이 융합과 소멸을 거치며 중간에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는 개싸움이 일어났다. 방대한 힘 사이에서 둘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사흘 밤낮을 내리 싸워 대었다. 이렇게 싸우다 아예 백치가 되어 버리거나 죽을 수도 있었지만 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난한 싸움의 승자는 마르바스였다. 데이몬의 정신이 힘과 함께 어느 정도 소멸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마르바스 역시 싸움 도중 힘을 소멸시키는 데에 정신의 일부를 소모해야 했다. 승자가 결정된 후 데이몬의 정신은 저 구석에 처박히게 되었다.

완전히 소멸시키고 싶었지만 그 당시의 마르바스로는 무리였다. 부적인 정신이었던 그가 이 정도 한 것으로도 대단한 거지만 마르바스는 불안했다.

데이몬의 정신은 아주 약간만 남아 있던 터라 제가 누구인지 생각하는 것을 멈추면 바로 소멸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르바스는 그가 살아남을 거라는 것을 예감했다. 데이몬은 마르바스였고, 마르바스는 데이몬이었으니까.

그래서 마르바스는 둘로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르바스일 때에는 시에나를 끊임없이 조련했다. 저와의 잠자리에서 더 만족하도록, 제가 없으면 살 수 없도록. 시에나를 천천히 제게로 물들여 왔다. 제가 선택받기 위해.

그리고 역시나 데이몬은 그 희미한 정신 속에서 살아남았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징그러운 생명력이었다. 살아남은 데이몬은 끊임없이 지분을 키우며 마르바스를 압박해 왔다. 데이몬을 연기하는 마르바스를 깊이 혐오하며 시에나를 끊임없이 그리워했다.

3년의 세월 동안 데이몬의 정신은 무섭도록 성장했다. 이제는 언제 또 허벅지에 칼을 꽂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마르바스는 지금도 제정신을 차지하려 애쓰는 데이몬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7년 내내 독식해놓고, 욕심만 더럽게 많아서는.”

예전이라면 모를까 시에나라는 천국을 맛본 마르바스는 데이몬에게 순순히 몸을 넘길 마음이 전혀 없었다. 시에나는 데이몬의 반려이면서 마르바스의 반려였다.

이제는 익숙해진 두통을 가볍게 받아들이며 마르바스가 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마르바스가 곧 시작될 또 한 번의 싸움을 기대하며 차가운 눈동자를 날카롭게 빛냈다.

“어디, 또 한번 싸워 보자고.”

THE END.

[sd_공금○.타사X.요게X.개인소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