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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판타지 속 괴물이 되었다-30화 (30/35)

제 30화 검은 대지에 들어온 불청객

'....이 자가...대공인가?'

카니지는 눈앞에 붉은 마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의 힘이라니... 지금의 나조차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이게 무슨 짓거리지?"

바알이 천천히 나와 블랙드래곤을 향해 다가왔다.

"공허의 괴물. 자네는 패배자를 살려 두는 그런 녀석이 아니지 않나? 더군다나 전투는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았다."

나는 새로 얻은 특성 '공감 능력'을 통해 바알의 감정을 엿봤다.

[대공 바알: 호기심, 분노, 짜증 - 재사용 대기시간 10분]

내 앞에 시스템 창이 떠오르며 현재 바알의 주된 감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험한데....'

그렇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 옆에 있던 블랙드래곤, 멜류시오의 사념이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바알. 난 너와의 약속을 지킨 것일 뿐이다.}

"한번 들어나보지."

{넌 분명 내가 패배한다면 승리한 자에게 복종을 맹세하라고 했지? 그리고 난 이 괴물에게 항복했다. 그러니 이제는 이 괴물이 내 새주인이지. 틀린가?}

바알이 턱을 쓸어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틀린 말은 아니군."

{그러니 너는....}

"그럼 저 뱀 새끼를 죽인다. 그리고 너랑 다시 싸워서 이긴다. 이러면 되나?"

순식간에 바알이 내 앞으로 다가와 내 배에 손을 얹었다.

콰앙!

굉음이 울려 퍼지고 내 거대한 몸은 순식간에 경기장 벽으로 날아갔다.

쿵!

크르르르륵!

내 외피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고, 내 날개는 뼈가 으스러지며 형태가 무너졌다.

"감히...이따위 장난질을 벌여?"

바알이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블랙드래곤 멜류시오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슈아아아아

내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검보랏빛 날개가 있는 여인.

환마 레이븐 공작이였다.

"아무리 대공이시라도...이건 선을 넘으시는 겁니다. 제 애완동물을 죽이실 생각이십니까?"

레이븐의 눈에서 보라색 안광이 피어오르며 바알을 노려봤다.

"환마. 그냥 꺼져 주지 않겠나? 목숨만은 살려주지."

"하! 드디어 정신이 나가신 듯 하군요. 바알. 오늘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실 생각이십니까?"

레이븐의 손에서 보라색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슈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오

보라색 기운과 붉은 기운이 서로 충돌하며 막강한 풍압이 터져 나온다.

마계 1위와 5위의 팽팽한 신경전.

아무리 고위 마족들이라도 함부로 끼어들 수 없었다.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다가 먼저 바알이 기운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후...추태를 보였군. 그래...마물들끼리 항복할 수도 있지. 블랙드래곤도 약속을 지킨 것일 뿐이고."

바알이 기운을 거두자 레이븐도 따라 기운을 거뒀다.

식은 땀을 흘리던 레이븐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마계의 5위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그녀라도 바알의 기세를 정면으로 맞붙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원래라면...내가 직접 우승한 마물에게 축하해줬을 텐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군."

"누가 단단히 망쳐 놓긴 했지요."

바알은 한쪽 눈을 찌푸리며 레이븐을 노려봤다.

"뭐...우승 축하하고, 잘 가시게나."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나중에 받아 가도록 하지요."

"...이틀 후에 내 영지에 다시 오도록 하게. 아 그리고 멜류시오 다음에 날 만나게 된다면 기대해도 좋을 거다."

{...그럴 일은 없어.}

바알이 피식 웃으며 경기장의 귀빈실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렇게 대회는 흉악한 분위기 속에서 끝을 맞이했다.

'나 근데...바알에게 마왕을 만날 수 있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카니지는 아픈 배를 매만지며 머뭇거렸다.

{그...바알 대공..?}

"....말해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은 카니지는 그냥 말을 거뒀다.

{아..아무것도 아니다.}

레이븐은 카니지와 블랙드래곤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경기장 밖으로 나섰다.

"카니지. 돌아가자."

나와 블랙드래곤은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

.

.

나와 멜류시오는 레이븐이 연 보라색 게이트로 들어가 마계의 '검은 숲'에 진입했다.

레이븐이 뒤를 돌며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채 나를 바라봤다.

"후우...카니지. 무슨 생각으로 그 녀석을 살려준 거냐?"

카니지가 뜸을 들이자 멜류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바알과 용언으로 언약을 맺었다. 나를 이긴 자에게 복종을 맹세하는 것이었지. 카니지는 날 이겼고, 나의 주인이 되었다. 그뿐이다.}

"흐음...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다. 바알이 왜 그토록 심하게 분노했는지 알 수 있겠어."

레이븐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하하하하! 카니지! 이래서 내가 널 안 좋아할 수가 없구나!"

{....무슨 말이지?}

"아하하하! 이 세상 그 누구도 바알의 것을 빼앗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물며 그가 아끼는 것이라면 더더욱."

레이븐이 나를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근데 넌 주인이 보는 바로 그 앞에서 그냥 날강도마냥 그의 애완동물을 빼앗은 게 아닌가?"

{....아까는 미처 거기까지 생각 못했다만 듣고 보니 그렇군.}

"그는 살면서 이렇게 눈 뜨고 코베인 적은 장담컨데 단 한 번도 없을 거다. 근데 애완동물이란 놈이 그따위 짓을 하다니 지금 네가 여기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다."

{으음...}

"아하하! 뭐 덕분에 재밌었다. 그 오만한 놈이 분에 못 이겨서 부들부들거리는 건 정말 돈주고도 못 보는 귀한 장면이거든."

{하하...그런가}

"그런데 말이야."

그 순간 레이븐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다음부턴 조심하도록 하여라. 너는 바알한테 제대로 찍힌 모양이니까."

{...알겠다.}

"그럼 내 저택으로 가도록 하지. 그곳에서 너와 네 아이들에게 줄 선물이 있으니."

{알겠다.}

{으음?...아이도 있었군요. 벌써 짝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아 길가다 주운 애들이다.}

{호오...그건 그것대로 놀랍습니다.}

나는 어색하게 존댓말을 하는 멜류시오를 바라보며 멋쩍게 사념을 보냈다.

{어울리지도 않는 존대는 그만둬라.}

멜류시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주인이시지 않습니까? 바알에게 그렇게 교육 받았습니다.}

{....솔직히 나는 너를 내 밑에 둘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그냥 편하게 말해라.}

{하지만....알겠습..알겠다. 고맙다 공허의 괴물.}

{내 이름은 카니지다.}

{...고맙다 카니지.}

.

.

.

{굉장하군...}

카니지가 도착한 레이븐의 저택은 그야말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저택이었다.

음울함과 어둠을 자재로 만든 대저택.

레이븐의 시종들이 저택의 문 앞을 지키고 있었으며, 그리고 그 문은 레이븐의 큰 키를 고려한 것인지 상당히 크게 설계되어 있었다.

엄청난 덩치를 가진 카니지도 이 저택 앞에서는 그저 작은 손님이였을 뿐이다.

"밖에서 기다려라. 네 아이들과 선물을 건네줄 테니."

{나는 못 들어가나?}

"하하 들어올 수는 있고?"

그 말을 듣자 나는 특성 신체변형을 통해 몸을 작게 만들어 비교적 굉장히 작아졌다.

45m를 넘어선 내 몸길이는 대략 15m 정도로 줄어들었으며 체고 또한 5m에서 2m 정도로 줄어들었다.

'으음..이렇게 극단적으로 몸을 작게 해 본 적은 없는데...너무 불편하군..'

마치 전신을 압박붕대로 칭칭감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몸을 억지로 작게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느라 체내의 에너지도 조금이지만 더 빨리 소모되는 듯했다.

"호오..그런 것도 할 수 있었구나."

{이번에 촉수 녀석을 먹고 흡수한 특성인데...너무 불편해. 아무래도 밖에서 기다리는 게 나을 듯싶다.}

나는 다시 내 몸을 원상태로 되돌렸다.

"뭐....알아서 하도록. 금방 다시 올 테니 기다려라."

레이븐 공작은 자기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와 멜류시오 둘만 남게 되었고,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이 흐름을 먼저 깬 것은 멜류시오였다.

{으음...상당히 멋진 저택이지 않은가?}

{확실히 고위 마족이 사는데라 그런지 격이 다르군.}

{그래 카니지, 앞으로 너의 계획은 무엇이지?}

{나는 앞으로 여러 던전을 다니면서 사냥해 나갈 거다.}

{단순하지만 명확하군.}

{그러는 넌, 어떻게 할 생각인가?}

멜류시오는 잠시 과거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용의 둥지로 가는 법도 모르고, 돌아가서 또 그렇게 지겹도록 시간만 축내는 건 사양이야. 무엇보다...'

그녀는 조용히 카니지를 바라봤다.

'이 괴물이 어디까지 성장하는지, 어떻게 사냥하는지. 옆에서 보고 싶다.'

멜류시오는 왠지 모르게 카니지가 마음에 들었다.

{글쎄. 일단 네가 날 지옥에서 꺼내줬으니 그 은혜는 보답해야겠지. 내 고향인 용의 둥지를 찾기 전까지 널 따라다닐 셈이다.}

{알겠다.}

카니지와 멜류시오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이 저택의 문이 열리며 레이븐이 다가왔다.

그녀의 손엔 두 마리의 작은 스웜프 드래곤이들이 있었다.

경기장에 입장하기 전보다 확실히 더 살이 오르고 몸이 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아빠다! 어디 갔었어!}

{아빠...더 커졌다!}

두 스웜프 드래곤들은 나를 보자마자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저게 네 아이들인가?}

{그래. 일 전에 내가 거뒀지.}

{공허의 괴물은 다들 살육에 미쳐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군.}

{아마 내가 특이한 모양이지.}

나는 레이븐으로부터 두 헤츨링을 건네받았다.

"카니지, 내가 우승하면 너의 두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했었지?"

그녀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보라색을 띠고 있는 물약이었다.

"두 개 준비했느니라."

{그게 무엇이지?}

"놀라지마라. 마계 특산품인 '성장촉진제'다."

{성장촉진제?}

"그래. 너에겐 앞으로 계속 위험한 상황이 닥칠테지. 전투의 연속일 테니까. 그러니 그 두 헤츨링들은 필시 짐 덩이가 될 터."

{....}

이 문제는 나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끊임없이 전투를 해나갈 텐데 마음만 앞서서 데려온 이 두 어린 드래곤들은 확실히 큰 짐이었다.

"우리 마계에서는 애완동물 대회에 참가시키게 하기 위해 어린 마물에다 이 성장촉진제를 먹이지. 종과 개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성능은 확실하느니라."

{그렇군...지금, 이 두 아이들에게 딱 필요한 물건이군.}

"근데 부작용이 있지."

{부작용?}

레이븐이 크게 당황한 나를 보며 쿡쿡 웃었다.

"뭐..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몸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필요한 에너지가 엄청나기에 극심한 허기를 느낀다는 것이지."

{...지금 내겐 당장 줄 먹이가 없는데?}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했다."

레이븐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택의 문이 열리면서 큰 수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곳엔 다량의 고기들이 들어 있었다.

"이 촉진제를 복용한다면 헤츨링들은 더 이상 네 발목을 잡지 않을 거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이런 고급 성장촉진제는 구하기 쉬운 게 아니거든."

그녀는 두 헤츨링들 입에 성장촉진제를 들이붓기 시작했다.

처음에 스왈로우와 새비지는 고개를 흔들며 먹지 않으려 했지만, 이내 맛이 괜찮았는지 곧잘 먹었다.

{윽...이상한 느낌이 들어..}

{나두...}

두 헤츨링들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파! 아파!}

{끄아악!}

둘은 꾸엑꾸엑 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거야.}

나는 녀석들을 달래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대략 5분 정도 지나자 성장이 멈췄다.

스왈로우와 새비지는 대략 10m가량으로 몸집이 불어났다.

{오! 나 키 커졌다!}

{그러네!}

"음...보니까 아성체 말기 정도로 된 것 같은데?"

{많이...성장한 건가?}

"아니...이 정도면 조금밖에 안한 거다. 원래라면 완성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성체 혹은 준성체라도 되었어야 하는데...아무래도 이 어린 드래곤들은 뛰어난 개체라 그런 듯싶구나."

{뛰어나다고?}

"그래.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많은 녀석들은 효과가 적지. 좋은 의미다."

{알겠다.}

{신기하네. 이렇게 갑자기 몸집이 커지는 건 처음 봤어.}

멜류시오는 스왈로우와 새비지가 신기하다는 듯 앞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스왈로우와 새비지는 멜류시오를 바라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이 아줌마는 누구야?}

{왜 아빠랑 같이 있어?}

{아..아줌마?}

처음으로 멜류시오의 눈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크흡!}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우..웃지 마!}

{아 그래. 이 '아줌마'는 내 친구다. 그러니 편히 대하도록.}

{이익!}

멜류시오는 얼굴이 구겨지며 나를 노려봤다.

그 순간

"티격태격하는 건 좋은데...나중에 해야 할 것 같구나."

레이븐 공작의 보라색 기운이 퍼져나갔다.

"아무래도 불청객이 온 듯하니."

카니지가 레이븐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러자 저 멀리 붉은 게이트가 열리면서 마의 기운을 흩뿌리는 무리가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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