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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판타지 속 괴물이 되었다-29화 (29/35)

제 29화 블랙드래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드디어 마지막 날이군.'

카니지는 몸을 일으키며 상태를 확인했다.

'컨디션은...최상이다.'

반쯤 녹아내린 몸은 다시 검은빛을 띠는 비늘이 돋아나 있었고, 줄줄 흘러내린 날개의 피막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재생력 관련 특성이 없었다면....정말 고생했겠는 걸'

그때 밖에서 결승전을 알리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오늘 투기대회의 우승자가 결정되는 마지막 대결이 곧 시작됩니다!"

이어서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대기실에서 카니지는 눈을 감고 아련히 들리는 함성 소리와 함께 자신에게 말했다.

난 공허의 괴물인 이터. 블랙드래곤도 결국, 나의 사냥감일 뿐. 난 최정점에 있는 포식자, 그 무엇도 내 앞을 가로막을 순 없다.

그렇게 되뇌이자 이내 긴장이 사라져가고 내 몸의 근육들은 사냥감을 쫓기 위해 최대로 팽창되어 갔다.

이윽고 카니지는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느끼며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지금까지 다양한 전략으로 적을 공략하며 끊임없이 진화하여 강력해지는 모습을 보여 준 레이븐 공작의 공허의 괴물, 카니지!!!"

철창이 열리고 나는 경기장 안으로 진입했다.

"어떤 강한 몬스터도 그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모든 생명체는 그의 브레스 앞에 죽음을 맞이했다. 대공 바알의 블랙드래곤, 멜류시오!!!!"

반대쪽 대기실에서 철창이 열리고 온몸이 검은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드래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놈이 지닌 한 쌍의 날개는 지금까지 봐 왔던 그 어떤 드래곤의 것보다 거대하여 날개 한쪽만 해도 이미 놈의 체장길이를 넘어서는 듯했다.

거대하면서도 매끈한 꼬리는 몸의 2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네 개의 다리는 적당한 근육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놈의 외형은 드래곤으로써 갖출 수 있는 가장 매력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다. 마치 고통과 공포로 빚어진 조각과도 같았으니까.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괴물과 모든 것을 멸하는 용의 싸움! 지금 바로 시작됩니다!"

나는 마지막 결전인 만큼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에서 사념을 전달했다.

{반갑군. 블랙드래곤, 멜류시오.}

블랙드래곤 멜류시오는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애완견의 삶에 꽤 만족한 듯한 눈빛이로구나.}

나는 씨익 웃어 보이며 손을 땅에 짚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수많은 검은촉수들을 박아넣고 놈에게 이동시켰다.

{애완견? 무슨 소리지?}

{너는 지금, 이 자리에 네 의지로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꽤 즐거워 보여서 말이다.}

{하하...뭔가 오해하는 게 있는 모양이군.}

내 검은촉수들이 멜류시오의 발밑으로 이동을 마쳤다.

{나는...이곳에 내 발로 직접 들어온 것이며}

콰드드드드드득

수많은 가시촉수들이 멜류시오에게 뻗어 나갔다.

{누군가의 애완동물도 아니다! 크하하하하}

하지만 멜류시오는 엄청난 속도로 날개를 펴 상공으로 떠올랐다.

그로 인해 내 가시촉수들은 허공을 꿰뚫을 뿐이었다.

내 비겁한 기습에 분노할 법도 한데 멜류시오의 눈에는 다른 감정이 엿보였다.

{...뭐라고?}

녀석은 생각보다 더 크게 당황했는지 잠깐 몸이 굳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멜류시오는 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도약했다.

{다시 말해 봐라!}

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놈에게 산성브레스를 내뿜었다.

퐈아아아아아

{말 그대로다! 난 너희 같은 애완견들이랑 다르지! 난 이 마계에서 대회가 끝나는 대로 나갈 거다!}

내 말이 그렇게 충격이었던 건지 산성브레스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멜류시오는 멈춰 섰다.

'뭐야...안 피해?'

콰앙!

멜류시오가 자기 몸으로부터 검은 기운을 터뜨리며 산성 브레스를 막아 냈다.

{....그게...정말이냐...?}

놈의 보라색 눈이 일렁거렸다.

{...그렇게도 못 미더운가? 다시 한번 말해주지. 난 이곳에 계약관계로 잠시 온 것뿐이다. 대회가 끝나면 다시 자유의 몸이다.}

나는 놈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너....너!!!}

멜류시오의 눈에서 광기가 터져 나왔다. 이내 날개를 활짝피며 내게 빠른 속도로 활공하기 시작했다.

놈의 주둥이에서 붉은 열기가 넘실거렸다.

나는 그에 맞받아치든 거대한 가시꼬리를 놈에게 휘둘렀다.

콰앙!

내 꼬리는 그대로 멜류시오의 얼굴을 가격했고, 놈은 경기장 벽으로 날아갔다.

쿵!

나는 이어서 재빠르게 놈을 향해 각종 질병과 독이 깃들은 산성 브레스를 내뿜었다.

지금 녀석의 몸은 내가 낸 상처로 인해 질병과 독이 침투하기 좋은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방심할 순 없지.'

현재 내가 지닌 질병과 독은 다른 일반 몬스터라면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놈은 블랙드래곤, 일부 몬스터에게는 악신으로 숭배받고 던전 하나를 주름잡는 압도적인 격을 가진 존재.

그런 존재에게 있어서 내 독과 질병은 단순히 신체 능력을 약화시키는 정도 혹은 잠깐 피해를 입히는 정도이리라.

'자....이제 어떻게 나올셈이냐.'

이번엔 불을 머금으며 녀석을 노려봤다.

놈이 기습적으로 공격을 나설 것을 대비해서 미리 브레스를 뿜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순간

펄럭

거대한 날개가 쫙 펴지며 바람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인해 상당한 풍압과 흙먼지가 내게 몰려들어왔다.

'크으윽!'

거대한 몸으로 인하여 엄청난 무게를 지닌 내 몸이 날아가거나 하진 않았지만 내 시야를 잠깐 방해하기엔 충분했다.

일순간 검은 형체가 내 앞에 일렁거리더니 블랙드래곤의 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놈의 손이 내 목을 부여잡고 당기자 내 몸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크르르르륵!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놈의 팔에다 손톱을 박아넣고 녀석의 배를 톱낫으로 공격했지만, 어째서인지 반응하지 않았다.

{너....정말 이 대회가 끝나면 나간다고?}

{.크..크킄 그래...이겨도 누군가의 노예짓을 계속하는 네놈과는 다르게 말이지.}

순간 멜류시오의 손아귀가 느슨해지며 왠지 녀석에게서 전의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회가 끝나고 자유의 몸으로 돌아가는 내게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품은 듯했다.

{...하지만 네놈이 여기서 나갈 일은 없겠는데?}

{...무슨 말이지?}

{너는 여기서 나한테 죽을 테니까.}

블랙드래곤 멜류시오의 입가에 검은 기운이 몰려들었다.

'저건....미친! 놈이 데스 브레스를 뿜으려한다!'

데스 브레스, 블랙드래곤의 필살기이자 최후의 무기, 얼마나 많은 강자들이 그 브레스 앞에 쓰러졌던가.

죽음의 기운이 깃든 브레스를 내뿜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말살시키는 힘.

예외로 언데드나 이미 죽음의 기운에 익숙해진 네크로맨서한테는 그다지 큰 영향을 줄 수 없지만, 이 부류들은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생물한테는 가히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공격이다.

아무리 공허의 괴물이라도 죽음의 기운과 관련된 특성을 흡수하지 않았다면 가차 없이 죽을 것이 분명했다.

그야말로 신화에 나올 법한 공격

그런 무자비한 기술이 카니지를 향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나는 재빨리 육중한 가시 꼬리를 휘둘러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아!

다행히도 내 꼬리공격으로 인해 궤도가 비틀린 데스 브레스는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내 왼쪽 팔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나는 재빨리 놈에 얼굴에다 파이어 브레스를 내뿜었다.

뜨거운 열기에 노출되자 놈은 급히 거리를 벌렸고, 나도 재빨리 몸을 일으켜 상태를 점검했다.

내 왼팔은 이미 그 색을 잃어 까맣게 썩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기운이 팔을 타고 몸으로 넘어오려하던 찰나였다.

'젠장...팔을 자르는 수밖에 없겠어.'

이대로 두다간 팔을타고 사기가 몸으로 넘어올 거다. 팔은 지금 자르면 다시 재생할 수 있지만, 만약 사기가 몸 전체로 퍼져 버린다면 그때는 이미 늦었으리라.

서걱

나는 내 오른팔의 톱낫으로 내 왼팔을 잘라 냈다.

툭 하고 떨어진 내 왼팔은 어느새 검은 가루로 변하여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잘린 내 왼 팔은 촉수가 꾸물꾸물거리면서 재생이 되고 있었다.

'...엄청나게 짙은 농도의 사기다...이런 걸 연속으로 뿜어내는 미친 짓거리는 하지 않겠지?'

나는 조용히 멜류시오를 노려봤다.

다행히 이런 짙은 농도의 데스 브레스는 연속으로 사용할 수 없는지 놈은 거리를 벌린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

.

블랙드래곤 멜류시오, 그녀는 지금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과연 자신이 이 공허의 괴물과 필사적으로 싸워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록 처음에는 놈의 도발에 넘어가 분노를 못 이겨 거세게 공격하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는 이 공허의 괴물을 이겨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이긴다한들....무엇이 남지?'

살아남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겨서 무엇하지? 매년마다 빌어먹을 마족놈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할 텐데.'

그녀는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생물로써 당연히 가져야 할 삶의 의욕을 잃고 만 것이다.

'전부...부질없는 짓이다..'

그녀는 억지로 끌어올린 사기를 거둬들이며 팔을 내려뜨렸다.

그렇게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자 공허의 괴물이 먼저 몸을 움직여 내게 빠른 속도로 도약해 왔다.

키아아아아아아아!

덥석!

놈의 날카로운 손톱이 내 목에 박히며 나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앙!

나는 그를 공허한 눈빛으로 쳐다 봤다.

이 빠져나갈 수 없는지옥 같은 곳에서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려는 순간

{....무슨 속셈이지?}

공허의 괴물, 카니지가 내게 사념을 전달했다.

{...죽여라.}

{너는 이렇게 나약하지 않다. 그리고 네놈의 표정.}

나는 눈을 떠 공허의 괴물을 바라봤다.

잔혹한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지만서도 어째서인지 그 너머에 작은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네놈의 표정은 너무도 공허하군. 마치...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말이야.}

{왜 동정이라도 가나? 어차피 날 죽여서 흡수해야 하지 않나.}

{......}

{빨리 끝내라 사냥꾼.}

{블랙드래곤, 나는 너와 싸우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지.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생각이냐?}

{....네놈이라면...네놈이라면 계속 누군가의 인형노릇을 하고 싶나?!}

멜류시오의 눈에 분노가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순간 카니지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늘을 지배하는 악룡! 세상에 죽음을 흩뿌리는 악신!}

그녀의 사념은 감정이 섞여 점점 거칠어졌다.

{한때 신과도 같은 존재였던 내가!}

그녀가 카니지의 목을 부여잡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지경까지 추락했는데! 내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 있을 성싶으냐!}

{......}

{나는 바알과 언약을 맺었다! 나를 이긴자에겐 복종을 맹세하라고! 그렇게 난 바알에게 보기 좋게 당했고, 이 경기장으로 끌려왔다!}

카니지는 그런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를 이긴들 평생을 이 빌어먹을 대회에서 죽을 때까지 싸우겠지 !....죽여라. 죽여서 날 해방 시켜라 괴물.}

{네가 원하는 것이 정말 그것이냐?}

카니지가 그녀의 보라색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일 텐데.}

{......}

카니지의 잔혹한 성정을 담은 사념은 어느새 조금이지만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네가 원하는 것을 똑바로 말해라. 멜류시오.}

그녀의 마음에 혹시 모를 기대감이 올라찼다.

{무.엇.을. 원하지?}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대답했다.

{....자유.}

그녀가 겪었던 끔찍한 고문과 폭행이 떠오른다.

{자유를...원한다....}

용의 둥지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자유를 갈망한다!}

그 순간 카니지가 멜류시오의 목을 부여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땅바닥에 다시 내려꽂았다.

{네가 패배했다고 선언해라.}

{...?}

{지금 진행자에게 사념을 보내라. 너의 패배라고.}

{그게 무슨....}

{나는 너를 이겼고, 너의 주인이 되겠다. 블랙드래곤.}

그 순간 내 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특성 '공감 능력'을 획득합니다.

공감 능력: 대상의 감정을 분석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사냥감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주의: 과도한 공감은 사냥에 불필요한 속성입니다.]

.

.

.

"어....어...그러니까...블랙드래곤, 멜류시오가 사념으로...패배를 선언했습니다..."

당황한 진행자는 말을 더듬으며 관중들에게 알렸다.

"공허의 괴물, 카니지..도....항복을...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관중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몬스터의 항복,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승자.

더군다나 상대는 자신에게 패배한 상대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잔혹한 괴물, 공허의 포식자.

모두가 예상치 못한결과에 당황하고 있던 찰나

콰앙!

붉은 기운이 경기장을 감쌌다.

이내 한 남자가 경기장에 들어섰다.

"....그게 지금 무슨 말이지?"

두 몬스터 앞에 대공 바알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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