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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판타지 속 괴물이 되었다-28화 (28/35)
  • 제 28화 블랙드래곤의 과거

    블랙드래곤, 드래곤들 중에서도 가장 사악하며 성격이 포악하기로 유명하다. 때문의 놈들의 랭크는 최소 A등급 상위권이다.

    이들은 보통 화이트드래곤과 대립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지만, 화이트드래곤 단일개체로는 블랙드래곤을 이기기 쉽지 않다.

    헌터들도 블랙드래곤을 사냥한 경우는 단 한 번밖에 없다.

    그마저도 A등급 헌터들 다수와 S등급 헌터 둘이서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것을 잡은 것이다.

    그런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하는 블랙드래곤 중의 가장 포악하다는 아지다하카.

    그 악룡이 몸을 움직이는 날에는 항상 죽음이 서렸다.

    다른 블랙드래곤들보다 거대한 덩치는 그녀를 상대하는 모든 적들에게 위압감을 불어넣었고, 그녀가 내뿜는 짙은 죽음의 기운은 적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현존하는 모든 드래곤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손꼽히는 두 마리의 드래곤 중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악룡의 후손인 멜류시오, 그녀 또한 그 성정을 물려받았다.

    비록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준성체이지만, 워낙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에 다른 또래 블랙드래곤보다 덩치도 컸으며 품고 있는 죽음의 기운 또한 강렬했다.

    멜류시오는 준성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블랙드래곤 성체와도 같은 힘과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완성체가 되었을 때는 필시 그의 어미인 아지다하카와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의 강함을 얻으리라고 다른 드래곤들은 생각했다.

    때문에 완성체 드래곤들조차 가능한 한 그녀와 마주치기 않으려고 했다.

    그런 부족할 것 없고 평화로운 삶은 블랙드래곤인 그녀에게는 죽음보다 무료하게 느껴졌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사람으로 따지면 10대 중반, 한창 뛰어놀고 장난기 많을 시기였다.

    항상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 변함없는 주변의 풍경.

    그녀는 무엇인가 극적인 것을 원했다.

    피가 끓고, 이 주체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할 때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 순간 한 마족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세련된 붉은 정장과 뒤로 넘긴 머리, 한 쌍의 붉은 날개.

    그녀는 이 자가 말로만 듣던 마족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호오 마족인가...어떻게 이곳에 왔지?}

    그녀는 궁금했다.

    용의 둥지인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 왜 왔는지.

    원래라면 외부인이 침입하면 죽이는 것이 맞지만, 그녀의 심심함을 달래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공격하지 않았다.

    "으음...이 정도 크기인데 성체가 아니라니...신기하군."

    붉은 마족의 눈에서 빛이 나더니 나를 탐색했다.

    이내 놀란 눈빛으로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신기하군...신기해..이 정도면 정말 엄청난 녀석이야...내가 물건을 발견했군."

    {....난 물건이 아니다. 마족. 건방지군.}

    붉은 마족은 피식 웃어 보이더니 내게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아...너무 신기한 나머지 감탄이 나온 것일 뿐이다. 헌데...지루하진 않나?"

    {지루...하다고?}

    마족은 내 눈에서 무료함을 찾은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아는 듯했다.

    "그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이런 고리타분한 곳에서 시간만 죽이고 있기엔 아깝지 않나?"

    {...계속해 봐}

    "나를 따라온다면 매일매일 박진감 넘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다."

    {매일매일...?}

    "그래. 나를 따라온다면 너의 그 주체할 수 없는 힘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을 거다."

    멜류시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전투의 연속일 거다."

    지루했던 그녀의 삶에 한줄기의 빛과도 같은 말이었다.

    {오오...그럼 당장 갈..}

    "단, 조건이 있다."

    {조건?}

    붉은 마족이 씨익 웃으며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네가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승리한 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하! 복종? 패배?}

    멜류시오는 기가 찬다는 듯 붉은 마족을 째려봤다.

    {난 지지 않는다.}

    "흐음...그럼 우선 나와 한번 싸워 보지 않겠나?"

    {네놈이? 한낱 미물 주제에?}

    멜류시오가 거대한 몸을 일으켜 세워 힘을 과시했다.

    {철저하게 짓밟아주지. 주제도 모르고 내게 던벼드는 하찮은 미물놈.}

    멜류시오가 앞발로 그를 내려찍으려는 순간

    쾅!

    폭음과 함께 그녀의 머리에 큰 충격이 느껴지며 그녀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녀의 거대한 몸은 힘없이 쓰러지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어리석은 도마뱀. 항상 그렇게 자만심에 빠져사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다."

    그렇게 붉은 마족은 게이트를 열고 기절한 멜류시오를 데려갔다.

    .

    .

    .

    {크으으윽}

    그녀는 깨질 것같이 아픈 머리를 매만지며 일어났다.

    '무슨 일이..일어났던 거지?'

    분명 자신은 자기 레어에서 한 붉은 마족이 찾아와 자신을 끝없는 전투를 즐길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단 패배한다면 승리한 자에게 복종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그리고 놈이 나와 싸우자고 했고, 난 그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러주려고 했다.

    '근데...그 이후로부터 기억이 안 나...'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뭐야 여기는..'

    그녀는 일어나서 주변을 살피려 했다.

    철그렁 철컥

    하지만 쇠사슬이 그녀의 몸을 옭아매고 있었고,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뭐야! 이것들은'

    입에 불을 뿜어 녹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모이지 않았다.

    '어째서...?'

    "일어났나?"

    뚜벅뚜벅 뚜벅

    붉은 마족이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일 전에 내 소개하지 않아 잘 모를테지. 나는 마계의 대공 바알이라네."

    {네놈은...그 건방진 마족이구나.}

    "..아직도 본인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는 건가?"

    {...나를 이런 꼴로 만든 게 네놈이냐?}

    "그래. 하지만 서로 합의하에 한 것 아니었나?"

    {합의? 무슨 얼어 죽을 합의를...}

    "내가 말하지 않았나. 네놈이 패배하면 승리한 자에게 복종하라고. 그때 너는 승낙을 했고, 나에게 졌다. 그러니 이제부터 넌 내 노예지."

    {...내가 졌다고?}

    "그래. 단 일격에 진 거다. 너무 빨리 쓰러져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기억을 못 하나?"

    {그럴...리가..}

    멜류시오는 자신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일격에 패배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네놈...분명 더러운 술수를 쓴 것임이 틀림없다! 이 내가..}

    "더러운 술수?"

    대공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멜류시오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가까이서 본 대공의 얼굴은 마치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말 조심하게. 우리 마족은 순수한 힘을 숭상한다. 근데 마계의 1인자인 내게...더러운 술수?"

    대공의 붉은 기운이 지하실을 가득 메워 넘실거렸다.

    멜류시오는 비늘이 따가우며서 타들어 가는 듯한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아..알겠다..잠시만..}

    콰앙!

    바알이 멜류시오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말투부터 바꿔야할 것 같군."

    {이..이놈 감히 이 몸을 어디까지 능멸할 셈인가!!!}

    "....아무래도 교육이 조금 필요한 듯 하군."

    이 말을 기점으로 약 한 달간 멜류시오의 마음을 꺾기 위해 온갖 지독한 고문과 폭행이 이어졌다.

    .

    .

    .

    {그...그만...}

    멜류시오의 검은 비늘은 붉게 물들었고, 그녀의 자랑이었던 매끈하고 거대한 꼬리는 군데군데 파여 있었다.

    날개도 피막이 이곳저곳 잘려 더 이상 날 수 없게 되었다.

    "그만? 그만?"

    바알이 피가 잔뜩 묻은 손을 들어 올리자 그녀가 눈을 질끈 감으며 다급히 말을 바꿨다.

    {그..그만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흐음..."

    바알이 손을 털며 그녀를 내려다 봤다.

    "아직도 내가 한낱 미물로 보이나?"

    {아..아닙니다..}

    "그럼 무엇으로 보이지?"

    {대..대공 바알님이십니다}

    "아니 틀렸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지."

    {자..잠깐!}

    바알의 가학심은 멜류시오의 상상 이상이었고 그의 고문이 2주 동안 더 지속되었다.

    멜류시오는 더 이상 그에게 반항할 의지조차 남지 않았다.

    {위대하신 분이시여...제발...제발...살려주십시오...}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 모야인데...난 너를 죽일 생각이 없다."

    그녀는 조심히 바알을 바라봤다.

    바알의 표정은 언뜻 무표정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에서 희열이 맴돌았다.

    "다시 한번 묻지. 내가 무엇으로 보이지?"

    {...저의 주인님이십니다.}

    "흐음...나쁘지 않은 대답이로군."

    그는 갑자기 멜류시오에게 다가 갔다.

    {히..히익!}

    그녀는 급히 팔을 들어 얼굴을 감쌌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바알은 아무런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는 멜류시오를 옭아매는 쇠사슬을 풀고 있었다.

    {무...무슨}

    "내 애완동물이 되었으니 풀어 주는 것뿐이라네. 쇠사슬이 풀리면 반항이라도 해볼 생각인가?"

    멜류시오는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브레스를 뿜어서 공격할까? 하지만, 만약 통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그녀는 암흑으로 가득 찬 바알의 눈을 드려다 보았다.

    '저자는...오히려 내가 반항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여.'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과 그의 압도적인 역량 차이를.

    "오...구속을 풀면 공격할 줄 알았는데 아니군."

    {애완동물이 어떻게 주인을 공격하겠습니까....}

    "...으하하하하하!"

    바알이 폭소를 터뜨리며 멜류시오를 바라봤다.

    "그 포악한 블랙드래곤도 길들여지긴 하는구만. 크하하하하하"

    그렇게 한참을 웃더니 이내 웃음이 잦아들고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블랙드래곤이여, 너는 내 애완동물이 되어 투기장에 입장한다."

    {투기장이라함은...?}

    "너 같은 녀석들이 많은 곳이지. 애완동물들끼리 싸우는 곳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꼴로는 가서 남들의 밑바닥만 깔아주는 꼴이지."

    바알이 품속에서 한 물약을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다친 곳을 치료해주겠네."

    {.....감사합니다.}

    빨간 물약을 들이붓자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모든 상처가 깔끔하게 나았다.

    "흠...다시 보기 좋은 모습하게 되었군."

    {......}

    "일단 당장 다음 대회는 두 달 뒤에 있다네. 그때까지 몸을 잘 추스르고 있도록."

    멜류시오는 자리를 떠나는 바알을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기필코 복수할 것이다..마족!'

    .

    .

    .

    시간이 흘러 그녀는 바알의 애완동물이 되어 투기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첫 대회에 들어선 멜류시오.

    이곳에서 그녀는 그토록 바라던 흥미진진한 전투를 마음껏 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항상 어둠에 잠겨 있었다.

    잠이 들 때마다 꾸게 되는 악몽, 그때마다 느껴져 오는 쓰라린 고통과 공포.

    그렇게 마음속에 복수를 다짐하며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녀의 고통과 공포로 빚어진 데스 브레스는 적들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거뒀고, 그녀는 결국 첫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

    .

    .

    어느덧 우승하고 1년이란 시간이 흘러 두 번째 대회에 참가하게 된 멜류시오.

    그녀는 이 빌어먹을 마계에서 나가기 위해 온갖 방법을 구상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알과 용언으로 맺어진 계약.

    자신이 패배한다면 승리한 자에게 복종을 맹세한다.

    이 계약에 의하면 자유를 얻기 위해선 자신을 이기고 자비를 베풀어 줄 만한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이 투기대회에서 패배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대회가 끝난 후 바알에게 도전하여 이긴다면 마계를 나올 수 있겠지만, 첫 만남에서 느꼈던 그의 힘은 쉽게 그녀가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난 일격에 패배하겠지...'

    그야말로 빠져나갈 수 없는 무간지옥에 들어선 셈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인가....내가 만약 그때...바알의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렇게 절망하고 있던 사이 두 번째 대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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