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판타지 속 괴물이 되었다-21화 (21/35)

제 21화 나는 검은촉수를 집어삼킨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긴장을 하며 나는 원형 경기장의 거대한 철창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했을 때에는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일적 영상속으로만 보던 동물우리에 내가 있다니....'

'하지만 뭐 넓직하고 바닥의 흙도 푹신하니 좋네.'

아마 고위 마족들의 애완동물이라 그런지 힘을 좀 쓴 듯했다.

레이븐에게 전해듣기로는 오늘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총 4마리의 몬스터와 싸워 이겨야 한다고 들었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총 16경기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 내가 먹으면 좋을텐데...'

4마리 밖에 흡수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잠시후 밖에서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엄청난 환호 소리가 들렸다.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흐음...내 차례가 오려면 좀 멀었나...? 지루한데..'

나는 그렇게 똬리를 틀며 잠시동안이라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 나를 가두던 철창 문이 열렸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나갔고, 사육사가 조심히 나를 향해 먹이를 흔들며 대기실로 유인했다.

애완동물 중에서는 지능이 떨어지는 놈도 있어 이런 방법을 사용했을거란 생각을 하면서 나는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밖에서 경기를 소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 바로 다음 경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번에 등장하는 펫들은....오! 두 마리 모두 매우 귀한 녀석들입니다!"

반대쪽 진영에서 철창이 열리더니 이내 내가 상대해야할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체락스 후작의 애완동물입니다! 이 마물로 말할 것 같으면, '군락의 주인, 카라카'의 후손인 검은촉수입니다!!"

함성과도 같은 박수와 환호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운다.

철창 너머로 녀석을 바라보자 놈의 신형이 언뜻 보였다.

수없이 많은 검은 촉수들로 뒤덮여 본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촉수들에서는 기분나쁜 점액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덩치는 나보다 조금 작지만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결코 만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이내 함성이 잦아들고 드디어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철창문이 위로 올라갔다.

"자~! '검은 재의 땅'의 주인인 환마, 레이븐 공작의 새로운 애완동물을 소개합니다! 다들 놀라지 마십시요! 공작께서는 무려! 공허의 괴물을 길들여서 참가하셨습니다!"

내 거대한 몸을 이끌고 경기장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나오며 관중들은 꽤나 흥분해 있었다.

"설마...그 포악한 공허의 괴물을...."

"레이븐 공작이 꽤나 공들였구만...."

"허...정말이로군..찾는 것도 쉽지 않았을터인데.."

"단단히 준비하셨구만...."

나는 많은 관심에 호응하듯 촉수괴물을 향해 포효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

"자!!!!시작합니다!"

심판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나는 곧바로 녀석이 있는 곳으로 산성 브레스를 뿜어냈다.

콰아아아아아

'난 녀석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때문에 일단 원거리에서 공격하여 녀석의 반응을 지켜본다.'

촉수 괴물은 두꺼운 여러 개의 촉수로 벽을 만들어 브레스를 막아냈다.

녀석의 촉수팔이 줄줄 흘러내리며 녹아내렸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산성으로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이번엔 불을 입안에 잔뜩 머금고 최대한 달구었다.

'어디 네 놈이 활활 타오르면서도 잘 버틸 수 있나 볼까?"

나는 양 팔을 바닥에 찍어 고정시킨 다음 막강한 열기를 담은 브레스를 뿜어냈다.

워낙 강하게 뿜어낸 탓에 브레스가 지나간 경로의 바닥의 흙들이 뭉텅이로 뜯겨져나가고, 엄청난 풍압이 브레스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푸화아아아아아

녀석은 자신의 몸을 튕기며 피하려고 브레스 경로를 벗어났다, 하지만 온전히 피하지 못한 탓에 여러 촉수다발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타오르는 촉수들이 몸에서 떨어져나가고 새로운 촉수가 계속해서 새로이 자라났다.

'갉아먹는 전략이 전혀 통하지 않는군....재생도 할 수 없을만큼 네놈의 촉수들을 처참하게 뜯어내주마!'

키아아아아아아

나는 양손을 쫙 펼쳐 날카로운 손톱을 과시했다.

나는 녀석에게 재빠르게 접근해 촉수를 붙잡아 뜯고 손톱을 박아넣었다.

쫘아아악! 푹! 쫘아아악!

쉴새없이 촉수를 뜯어내었다.

'뭐야....너무 쉽잖아...이럴 리가 없는데?'

그 순간 나는 내 몸이 점점 굼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라?'

녀석의 촉수가 점점 두꺼워지고 많아지더니, 이내 내 몸을 둘둘 말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입에 물을 머금고 바위조차도 반으로 가르는 엄청난 수압을 담은 브레스를 뿜어냈다.

촤아아아아악!

촉수는 그대로 잘려 떨어져 나갔고 나는 재빨리 몸을 뒤로 내빼며 거리를 벌렸다.

수많은 촉수가 단번에 잘려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관중들도 피가 사방으로 튀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신음을 흘렸다.

나는 녀석과의 거리를 확보한 후 내 몸상태를 확인했다.

촉수들의 혈흔과 끈적거리는 점액체로 점칠되어 팔과 몸사이에 점액이 거미줄처럼 쭉 늘어져 있었다.

'녀석의 촉수에는 끈적거리는 점액체가 잔뜩 있어...계속 근접해서 싸우다간 내 몸이 엉겨붙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될거야.'

나는 서둘러 날개를 펴 상공으로 올랐다.

하지만 날개까지도 끈적한 점액체가 많이 붙어 있어 잘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이런.....이렇게 되면 상당히 불리한데...'

나는 끈적한 점액체를 두른 채 꿈틀거리는 검은촉수 녀석을 바라보았다.

'갉아먹는 전략이 놈한테 통하지 않을거라 판단했지만....방법이 없어.'

나는 재빨리 놈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재생능력에 대해 생각했다.

'녀석의 재생능력은 무한하지 않을거야. 분명히 한계가 있겠지. 그 한계가 올때까지 난 브레스를 뿜는다. 아까 보니 불로 태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듯 했지.'

그렇게 생각하고 브레스를 뿜으려고 입에 고온의 불을 머금은 순간

갑자기 녀석의 촉수가 길어지더니 내 꼬리를 붙잡았다.

촤라라라락

곧이어 수많은 촉수가 내 몸을 붙잡기 시작했다.

'젠장...신체를 변형시키는 특성이 있었나??'

나는 아직 다 모으지 못한 브레스를 내뿜었고, 녀석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듯 계속해서 나를 잡아당겼다.

'너무 성급했다...'

나는 재빨리 조금이나마 달궈진 녀석의 촉수 부분을 톱낫처럼 생긴 팔을 이용해 잘라내고 다시 거리를 벌렸다.

'이런...하늘로 올라서 녀석이 안 닿는 거리에서 공격하려 했는데....그건 힘들겠어.'

나는 녀석의 촉수를 잘라내며 놈을 바라보았다.

'약점이 분명 있을거야....그것을 찾아내야만 해....'

그렇게 녀석의 몸을 뚫어져라 노려보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하였다.

'저 녀석...바닥에 닿은 촉수들에 흙이 잔뜩 붙어 있잖아?'

등장할 때만해도 녀석의 촉수는 깨끗했다. 그런데 지금은 바닥에 흙이 뭉텅이로 붙어있어 이동하는데 불편해보였다.

'아까 몸을 튕기면서 이동할 때 붙었나보군....잠깐..흙이 붙어?'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네 놈의 약점을 찾은 것 같구나.'

나는 땅에 손을 박아넣어 돌무더기를 잔뜩 들었다.

'어디 그 몸이 어느정도의 무게까지 버티나 볼까?'

나는 서둘러 녀석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꼬리를 휘둘러 경기장의 수 많은 흙들을 녀석에 몸에 뿌렸다.

녀석은 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당황했는지, 그저 큰 돌들만 간간히 촉수로 막아내고 나머지 공격은 신경쓰지 않았다.

내 반복되는 행동에 관중들 또한 의문을 표했다.

"저 공허의 괴물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돌과 흙으로 지금 저 검은촉수를 잡으려는건가?"

"똑똑하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아님 무슨 작전이라도 있는 것인가?"

군중들이 카니지를 향해 옅은 비웃음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지켜보던 레이븐 공작은 내가 무엇을 꾸미는지 눈치 챈 듯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나는 촉수를 잘라내고 피해가며 계속해서 녀석에게 흙과 돌을 던졌다.

그렇게 경기장을 7바퀴 정도 돌았을까, 녀석의 몸은 흙과 돌로 뒤덮여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다.

꿀렁...꿀렁....꿀렁.....

녀석을 감싼 수많은 돌과 흙이 꾸물꾸물거리며 움직였다.

아마도 녀석은 이 돌과 흙들을 떼어내기 위하여 상당한 힘을 빼고 있으리라.

'크킄 네놈의 그 더럽고도 역겨운 끈적한 점액체들이 이젠 무기가 아니라 방해물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충분히 녀석을 묶어뒀다고 판단하고 녀석 주변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놈은 내가 무언가 준비한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돌과 흙을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파바바바바바바

그렇게 녀석 주위로 거대한 땅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녀석이 올라가있는 지반마저 무너뜨려 녀석을 거대한 땅굴로 떨어뜨렸다.

마치 싱크홀 같은 땅굴 속에 갇힌 녀석은 더욱 돌 무더기와 흙더미속에 파뭍였다.

나는 충분히 밑작업이 끝났다고 판단하여 구덩이 바깥에서 녀석을 바라보았다.

크르르르르륵

{이걸로 끝이다!}

나는 입에 산성을 가득 머금은 채 구덩이에다 뿜어냈다.

콰아아아아아

구덩이는 금새 산성용액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으며, 녀석은 돌무더기와 함께 연기를 태우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난 네놈이라도 온 사방에서 덮쳐오는 산성 용액을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구덩이를 가득 메울때까지 산성 브레스를 뿜어냈다.

철퍽 철퍽

어느새 구덩이는 산성 용액으로 가득차 구덩이 주변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검은 촉수가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촉수를 지면으로 뻗었다.

'안되지, 안돼. 넌 거기서 다 녹을 때까지 나올 수 없다고.'

나는 녀석이 뻗는 촉수를 톱낫과도 같이 생긴 팔로 족족 잘라내었다.

하지만 녀석은 펄펄끓는 산성 용액 속에서도 힘이 남아났는지 끊임없이 촉수들을 꺼내들어 밖으로 나오고자했다.

'정말 끈질기네!'

경이로운 재생력, 끊임없이 불어나고 늘어나는 촉수, 모든 것을 달라붙게 하는 점액질, 자신의 몸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탁월한 신체 변형 능력.

나는 녀석의 뛰어난 특성들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이 놈을 먹어치운다면 난 더욱 강해질 수 있다!'

나는 침을 질질흘리며 녀석이 빠진 구덩이를 빙빙 돌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더 이상 촉수를 꺼내지 않는 녀석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은 무력화되었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산성 용액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녀석을 끄집어내었다.

'크으으으윽! 아무리 나라도 이건 좀 많이 아프네!'

서둘러 녀석을 끄집어 올려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철퍼덕

녀석은 반쯤 재생되다말아 아무렇게나 엉겨붙은 촉수들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콰직 콰드드득 으직

녀석을 거침없이 먹어치웠다.

카니지의 승리를 알리는 소리였다.

"...자! 뛰어난 전략으로 검은 촉수를 공략한 공허의 괴물! 레이븐 공작의 애완동물, 카니지가 승리하였습니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박수갈채와 귀청이 떨어지는 환호속에서 난 촉수의 피를 흩뿌리며 포효했다.

키아아아아아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