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판타지 속 괴물이 되었다-19화 (19/35)

제 19화 나는 마(魔)의 귀족을 만났다.

까악 까악 까악 까악

푸드더더덕

수많은 까마귀들이 날아든다.

던전에 입성한 카니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들어 본 적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던전, 마계

그 누구도 클리어하지 못했으며, S등급 헌터들도 초입 부분밖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전설의 던전.

"가장 마력의 농도가 짙은 곳으로 왔으니 분명히 이곳이 마계겠지."

재와 같은 검은 흙, 검게 시들어 버린 나무, 하늘에서 나를 응시하는 듯한 붉은 달.

비록 이젠 거대한 괴수가 된 카니지라도 이러한 초위험군 던전에서는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들어갔었던 던전들과는 차원이 달라....여긴 그 스웜프 드래곤과 같은 강적이 넘쳐나겠지.'

나는 서둘러 몸을 움츠리고 부피를 최대한으로 줄였다.

{아빠...여기..좀..무섭다}

{맞아..그리고 불길해..}

어리긴 해도 드래곤이라는 건가, 녀석들은 지금 불어오는 이 불길한 바람을 감지했다.

갑자기 나뭇잎이 떨어지고, 불쾌한 감각의 가루들이 내 몸을 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잔뜩 긴장한 내게 한 사념이 전달되었다.

{호오....오랜만에 들어온 먹잇감인 줄 알았는데....난민이로구나.}

{...누구냐}

나는 주변에 기감을 펼쳐봤지만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그래. 우리 길잃은 늑대와 두 마리의 새끼 악어들은 어째서 이곳에 왔지?}

{...인간들로부터 도망쳐왔다.}

잠깐 대답이 없더니 이내 다시 사념이 전달되었다.

{호오...진실이로구나...거짓말할 줄 알았는데.}

거짓말을 하거나 뭉뚱그려서 답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닐 것이다.

'솔직하게 말한다...놈에게 나는 공격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려야 해.'

처음에 던전에 입성할 때는 준성체가 된 자신이라면 나름대로 마계에서도 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어...지금의 나는 놈이 어디 있는지도, 누구인지도 모른다. 이미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졌어.'

놈은 나를 알고, 나는 놈을 모른다.

'젠장....전혀 감지되지 않잖아..아무것도 모르겠어...'

더욱 집중하여 감각을 끌어올렸지만 정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꽤...애쓰는구나 크크킄}

나는 녀석의 조롱을 애써 무시한 채 물었다.

{내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음....내 능력으로 알아낸 것이긴 하지만...굳이 그러지 않았어도 지금의 너를 보면 딱 알 수 있었을 것 같구나.}

{인간놈들의 문으로 건너 온 것, 재생되고 있긴 하지만..분명히 상처를 입은 몸 그리고...}

{겁에 질린 양의 얼굴}

{....예리하군.}

잠시 후 숲에서 한 검은색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솔직하게 대답해준 보상이다. 나와 얼굴을 맞대며 대화할 기회를 주지.}

나는 검은 형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분명 인간을 닮았지만...피부가 지나치게 창백하고 등에 달린 거대한 한 쌍의 검보라색 날개는 그가 인간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욱 자세히 보니 키가 2m쯤으로 보이며, 흑단 같은 고운 머리카락과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아리따운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고풍스러운 보라색 드레스 차림으로 챙이 넓은 검은색 빅토리아풍 모자를 쓴 채 한 손에는 파이프 담배를 오염하게 들고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과연....마족(魔族)인가?}

"호오..시골 촌뜨기인 줄 알았는데...용케도 알고 있구나. 본녀는 환마(幻魔) 레이븐 공작이다."

인간의 언어는 아니었지만...어째서인지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마법의 힘이리라.

'말에서 높은 격과 힘이 느껴진다....이 여자는 S등급 몬스터다...'

{레이븐....공작..? 그렇다면 이곳은 너의 영토인가..?}

"그래...다는 아니지만 일부는 내가 관리하고 있지."

{잠깐만...그렇다면 이곳엔 다른 마족들도 있다는 건가..?!}

"있긴 하지....자리만 축내면서 마계의 고혈을 빨아먹는 녀석들."

아마 다른 마족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듯했다.

{그렇군...레이븐...공작? 질문을 해도 되겠나?}

"하핫...꽤 생긴 것처럼 용감하구나. 덩치값도 못 하는 버러지들이 꽤 많은데 넌 좀 다르네. 그래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거라. 본녀는 현재 네가 꽤 흥미로우니 말이야."

{인간놈들의 문에서 왔다고 했는데....다른 문도 있나?}

"으음..? 아아 모를 만도 하지. 시골녀석들은 그저 평생 그곳에만 사니까 말이야."

{있다는 말이겠군...}

"물론이다. 우리들의 '세상'은 붙어 있다. 물론 '문'이 없는 상태로 말이지. 그 '문'을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

레이븐이 말하는 '세상'은 곧 던전이고, '문'은 게이트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던전..그러니까 내가 살았던 세상에서 다른 몬스터들이 사는 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건가?}

"그래....격이 높아지면 그런 것 따윈 일도 아니다.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교묘하게 짜인 '실'들을 조금 비틀어 바꾸면 해결될 일이지."

{....그렇군...알겠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

실은 뭐고 그걸 뭘 어떻게 비튼다는 건지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냥 대충 맞장구를 쳐줄뿐.

"흐음...설마 너는 그 문 여는 법을 몰라서 역겨운 인간놈들의 세계를 넘나들며 다른 세상을 이동했던 거냐...? 사냥을 하려고 갔던 게 아니고?"

{니가 말하는 문을 여는 법을 모르니...그럴 수밖에...}

그러자 갑자기 레이븐은 벙찐 표정을 짓더니 배꼽을 잡으며 크게 웃었다.

"푸흐흡...아하하하하하하핫!"

나는 부끄러운 마음과 민망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어냈다.

{하하하....뭐 그렇게 된 거다.}

이게 그렇게도 웃겼는지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웃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스왈로우와 새비지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한마디씩 했다.

{으응...저 아줌마 이상해.}

{그러게 말이야...계속 이상하게 웃어..}

어느 정도 진정했는지 웃으면서 나온 눈물을 닦으며 내게 말했다.

"아하핫...아~ 정말 이렇게 웃어 보는 건 오랜만이구나....처음엔 단순히 흥미만 있을 뿐이었는데 이젠 상당히 호감이 가는구나."

나는 그녀를 멋쩍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그렇게도 웃긴 건가?}

"으흠? 아아 나는 다른 촌놈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보통은 모르면 그곳에서 평생 살지 않느냐?"

{나는....진화해야 한다. 평생 한곳에서만 머물 수 없다.}

"호오...진화라...확실히 너는 공허의 괴물이니 그럴 수 있겠구나."

나는 이 불편한 자리를 벗어나기 새로운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래...대답해 줘서 고맙군. 그런데 난 쫓기는 몸이라 시간이 없다. 혹시 나에게도 그 '문'을 여는 법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겠나?}

그녀는 잠시 담배를 입에 물더니 연기를 뿜어냈다.

"후우...무례하군."

{무례..하다고? 어떤...점이..}

"내가 아까 너한테 호감이 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었지.}

"내가 아끼는 것하나 지키지 못할 만큼 약해 보이나?"

{...나를...지켜 준다고?}

그녀는 작게 웃어 보이며 나를 바라봤다.

"그래...단 조건이 있다."

{...들어나보지}

"내 애완동물이 되어라. 공허의 괴물이여. 물론 너의 그 두 아이들도 내가 잘 보살펴주지."

나는 순간 잘못 들었는지 내 귀를 의심했다.

{애완동물?}

너무 황당한 나머지 마음속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래...대부분의 고위 마족들은 애완동물을 가지고 있지...드래곤이든, 데저트 웜이든. 나도 이제 그런 게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바라보며 고민하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인지 내게 한마디를 더 건네왔다.

"그래...충분히 당황할 만하지. 이런 귀한 몸의 애완동물이 되다니...너 같은 촌뜨기 괴물에겐 충분히 과분한 처사이기는..."

{아니.}

더는 못 들어주겠다고 판단한 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나는 누군가의 애완동물 따위는 되지 않는다.}

그녀는 생각보다 더욱 당황했는지 잠깐 입을 벌리며 나를 바라봤다.

"...아? 너 말이야...이게 얼마나 영광인지 모르는구나. 이 몸은 무려 마계 서열 5위의..."

{아니...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재차 나의 의지를 전했다.

{나는 야생의 사냥꾼이다. 누군가가 주는 사료만 먹고 사는 것은 죽느니만 못한 삶이지.}

그녀는 내 확고한 의지를 알았는지 차갑게 표정이 굳어졌다.

"이런..이런.. 네 의지가 그렇게 확고하다면야..."

{이해해 줘서 고맙군. 나는...}

그 순간

검보라색 기운이 그녀의 주위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보라색의 까마귀 날개는 활짝 펴지고 그녀의 보라색 눈은 더욱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거절당한 건 살면서 처음이다...내게 모욕감을 줬구나 애송이."

크르르르륵!

꾸익! 꾸익!

나와 두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그 기세에 짓눌렸다.

나는 서둘러 뒤로 물러나며 반격을 준비했다.

'나한테 적의가 없다고 판단했는데....이렇게 일이 틀어질 줄이야..'

공작은 소유욕과 자존감이 굉장히 강한 스타일인 듯했다.

'이곳은 녀석의 영토다....이곳에서 저 공작과 싸우는 건 매우 불리해...게이트 밖으로 나가야만 하나? 하지만 거긴 지금 헌터들이 둘러싸고 있을 텐데..'

그렇게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 내게 공작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마지막 기회다. 내 애완동물이 되어라. 지금이라도 내게 용서를 구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너와 싸우겠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누군가의 발밑에서 살아가는 짓 따위는 더는 하지 않는다!}

누군가 발밑에서 받아먹는 인생은 인간 시절의 김진현으로 족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카니지는 겁쟁이가 아닌 사냥꾼으로서 죽을 것이다.

그렇게 마녀는 매섭게 노려보며 기운을 더욱 증폭시켰다.

콰아아아아

나무들이 뽑혀 나가며 흙이 그녀를 중심으로 튀겨나간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폭풍을 부리는 신과도 같은 모습이 되었다.

엄청난 힘의 차이를 느꼈지만 카니지는 자신이 뿜을 수 있는 최대한의 브레스를 입안에 머금었다.

{나는....절대...굴복하지...않는다!}

그 순간

"아하하하하핫!"

갑자기 그녀가 기운을 거두며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으음?}

나는 입에 머금었던 산성을 도로 가라앉히며 그녀를 바라봤다.

"아하하핫! 나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당돌한 녀석은 정말 처음이야!"

{나를...갖고 논거냐..?}

"아하핫... 그래..뭐 싫다는 놈 억지로 끌어다가 내 밑에 둘 생각은 나도 없다."

{그것참...고맙군..}

나는 순식간에 변하는 그녀의 감정선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다.

그녀는 이내 날개를 접고 다시 파이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뭐...네놈을 쫓는 인간 놈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 주마."

{...하지만 아주 강한 자가 한 명 있다. 그자는...}

"누군지 대충 알아. 녀석은 한번 내 영토에 온 적이 있다."

{직접 싸워 봤나..?}

"꽁지빠지게 도망가더구나."

'상상하던 것 이상이다.'

만약 저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마족은 인류가 정해 놓은 여타 S등급의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다르리라.

{그렇다면...기왕 나를 도와주는 김에 한 가지 더 도와줄 수 있겠나?}

그녀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나를 바라봤다.

"흐음...말해 보거라."

{아까도 말했지만...'문'을 여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길 바란다.}

"떠나려 하는가? 아쉽게 됐어. 이곳에서 지낸다면 평생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나는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좋다. 다만 조건이 있다."

{조건?}

"그래...내 '애완동물'인 척해서 이번에 투기장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해라."

{투기장...대회?}

"그래 우리는...그러니까 마계의 귀족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자기 애완동물을 데리고 투기장에서 경기를 벌이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난...}

"알고 있다. 너보고 내 애완동물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런 '척'을 하고 참가하라는 것뿐."

{어째서지..?}

그녀는 내 몸 구석구석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궁금해서다."

{궁...금?}

"그래. 아무리 마계의 귀족들이라도 공허의 괴물을 볼 기회는 흔치 않지. 더군다나 공허의 괴물을 길들인 귀족은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너를 데리고 경기에 참가했을 때 다른 귀족들의 반응이 어떨지."

'엄청나게 강한 녀석이지만 뜻밖에 유치한 면도 있군.'

'하지만 나도 다른 귀족들의 드래곤이나 데저트웜같은 녀석들을 먹어 치울 수 있다면 더 빨리 성체가될 수 있을 테니 손해는 아니지'

카니지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좋다. 참가하도록 하지.}

"이건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아 그리고 만약 네가 모두 이겨서 우승하게 된다면....너의 그 두 아이를 위해서도 깜짝선물을 주도록 하지."

{깜짝 선물이라면...?}

"미리 알면 깜짝 선물이 아니지."

그녀는 요염하게 웃어 보이며 내게 다가왔다.

"잠깐이겠지만, 내 애완동물이 된 것을 환영한다."

나는 그녀를 떨떠름하게 바라보며 답했다.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환마여.}

그렇게 카니지는 다음 주에 열리는 마계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PIA1619743412734,제네실수 님 후원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 글임에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