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화 여동생은 백묘가 되었다.
어두운 영화관 속에서 커다란 스크린이 천천히 내려온다.
곧이어 스크린에서 밝은 빛이 나오더니 내 몸을 사로잡았다.
"하나야. 나쁜놈들 있으면 오빠한테 다 말해! 내가 다 혼내줄게!"
"그래..? 그럼 엄마랑 아빠도 혼내줄거야?"
"그건....안돼...아무리 그래도 엄마 아빠잖아..."
'이건....'
'옛날...일인가?'
놀이터에 두 아이가 있었다.
"오빠는 커서 뭐하고 싶어?"
"나는 커서....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영웅이 될거야!'
"우와! 멋있겠다~! 근데 오빠는 약하잖아. 영웅들은 막 초능력도 쓰고 그러던데?"
"야! 나도 다 커서 어른이 되면 분명히 세질거야!"
"푸헤헷! 바보~ 그럴리가 없잖아!"
"야!"
도망가는 여자아이와 그 뒤를 따라 달리는 남자아이.
놀이터에서 손과 옷에 잔뜩 흙을 뭍인 채 놀고 있는 작디작은 두 아이.
'즐거웠는데...'
저 당시에는 오빠와의 관계도 어색하지 않았었다.
정말 순수했던 시절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순간 어디선가 저음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리 하겠나]
'다시 돌아가...?'
행복하게 웃으며 서로를 위로하던 나와 오빠.
비록 집에서는 끔찍한 폭력과 폭언이 그들을 옥죄었지만, 서로의 등을 맞대며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또한 존재했다.
지금처럼 어딘지 모를 추운 공간속에서 혼자 외로이 해매는 것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나을 것이다.
"응. 다시 돌려보내줘."
[그곳엔 지금보다 더욱 절망스러운 날이 기다리고 있을것이다.]
"상관 없어. 오빠와 함께한다면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테니까."
[...두 운명의 실은 결국 서로에게 닿았다.]
그 순간 갑자기 스크린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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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선....선생님! 여기 환자 분이 일어나셨습니다!"
병실 내부가 소란스럽다.
'여긴....여긴 어디지?'
칠흑같던 내 세상에 뿌연 빛이 감싼다.
이윽고, 나는 오랜잠에서 깨어나듯 힘겹게 눈을 떠 주위를 살폈다.
'여...여긴...병원?'
그녀는 아픈 머리를 감싸고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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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비록 아직도 비몽사몽하긴 하지만 처음 일어났을 때보단 머리가 덜 아팠다.
"일어났구나! 하나야! 진짜 다행이다! 나는 너 평생 못 일어나는 줄 알고 아흐흑"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스며든다.
"엄...마?"
"진짜 다행이야!"
"....일어났구나"
"저 보호자님? 환자분께서는 지금 안정을 취하셔야합니다."
내 손을 꼭 잡고 우는 한 여성과 그녀를 말리는 의사, 좀 떨어진 곳에서 나를 지켜보는 아빠가 희미하게 보였다.
"...어떻게 된거에요...?"
의사가 안경을 고쳐 쓰더니 조심히 입을 열었다.
"환자분께서는 약 5년간 누워 계셨습니다."
엄마는 상당히 기쁜지 나를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린 채 웃었다.
"니가 그 때 몬스터한테 당하고 지금까지 쭉 잠만 잤단다....하지만 이렇게 무사히 깨어났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녀는 과거 자신이 쓰러지기 전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오빠와 함께 즐겁게 고등학교 입학식을 가던 날.
갑자기 나타난 게이트에서 나타난 늑대 몬스터.
그리고 날 두고 도망친 오빠.
그렇게 깊이 생각이 잠긴 내게 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엄마가 미안해....어렸을 때 많이 힘들게 했지? 너마저 날 떠났으면...난 어떻게 하면 좋았겠니.."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
"그래...나도 지금까지 너를 함부로 대했던 것을 사과하마..."
평소와 다른 말투로 내게 말을 걸어오는 아빠.
그리고 나는 엄마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너마저?'
말이 이상했다. 너마저 날 떠났으면 이라니...누군가 엄마 곁에서 사라졌다는 말인가?
나는 혼란스러운 이 와중에도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빠는요...?"
엄마가 나를 바라보더니 포옥 안아준다.
"오빠는...."
나는 갑자기 나를 끌어안은 엄마를 살짝 떼어냈다.
"엄마...진정해요...진정하고 오빠는 어디있는지 말해줘요..네?"
목소리가 잠기고 덜덜 떨린다.
"오빠는...날 볼 면목이 없어서 바보처럼 집에 있는거죠? 그렇죠?"
분명 날 두고 도망쳤던 그 날.
오빠라면 바보같이 자책감에 사로잡혀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네 오빠는...."
엄마는 눈을 질끈 감으시면서 말을 더 이상 이어가시지 못했다.
"엄마..?"
이 상황을 지켜보던 아빠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빠는 네 복수를 한다며 헌터가 되었단다. 하지만....."
쿵
심장이 내려앉는다.
불길한 생각이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가며 몸이 순식간에 식어가는 기분이었다.
"네 오빠는 죽었다."
툭
내 안에 있던 작은 실이 끊겨 나간다.
"...네?"
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아빠에게 되묻는다.
"그게...무슨..말이에요?"
아빠는 내 시선을 회피한 채 힘겹게 말을 건냈다.
모든게 당황스러운 이 상황.
잠깐 자고 일어난 듯 한데 5년의 시간이 지나고 엄마와 아빠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게다가 약하디 약했던 오빠가 헌터가 되었고 몬스터에게 죽음을 당했다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그녀는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떳다.
"이건...꿈..?"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꿈...꿈이여만 하는데..."
창밖에서 노을이지며 붉게 물든 빛이 병실에 퍼져나갔다.
그에따라 따뜻한 온기가 그녀의 몸을 적시고, 밝은 빛에 눈이 부셨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그 어느때보다 춥고 어두웠다.
"하...하하.."
'이거...꿈이잖아.'
열린 창문속에서 바람이 들어와 그녀의 고운 머리카락을 살살 흔들었다.
'근데...왜 이렇게....현실적이야..'
"아하하....."
그 순간 그녀의 눈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눈부신 빛이 그녀를 감싼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하나의 부모와 의사는 뒤로 물러나며 눈을 가렸다.
"갑자기...이게 무슨.!"
당황하며 상황을 전부 이해하기도 전에 하나의 곁에 머물던 빛들이 그녀의 몸으로 흡수된다.
"....."
하얗게 비어버린 그녀의 눈.
"오빠"
작게 빛나던 그녀의 마음은 하얗게 덧칠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가..."
새하얀 고통에 점점 몸이 덮여진다.
"꼭...찾아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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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술...공석이 된 백묘의 자리를 맡을 인재는 알아봤나?"
"청오, 너도 알다시피 계속 찾고는 있다만 요 근래에 쓸만한 각성자가 없다."
대한민국 4대 길드 '십이신장'의 원탁 회의장 내부.
녹자, 청축, 홍인, 적진, 백사, 청오, 벽미, 흑신, 황유, 금술, 청해.
이들은 모두 각자 자신이 맡은 인식저해 마법이 걸린 동물 가면들을 쓰고 있었다.
총 11명의 인원이 원탁을 둘러싸고 한창 회의중이었다.
그들은 일전에 던전에서 사망한 '백묘'의 자리를 대신할 인재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던 것이다.
십이신장은 길드내에서 가장 뛰어난 12명을 선정하여 등극시키는 방법을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십이신장에 위치하고 있는 11명을 제외하고는 딱히 이렇다할 인재가 없었던 것이다.
십이신장, 그들은 모두 S급에 가까운 A등급 헌터.
그렇다보니 그들 중 한명이 당하면 다시 인원을 채우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백묘 녀석....자신의 실력을 과하게 믿더니 결국 뒈져버렸군."
"뭐...그 여자가 무리해서 토벌나간게 한두번이 아니잖아. 예상했던 일이다."
"흠...그럼 백묘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그 순간 압도적인 기운이 십이신장들의 기감을 강타했다.
"...! 황유...방금 느꼈나..?"
"그래...느꼈다. 이건...A등급 중에서도 상위권이겠군.."
그런 와중에 탐지기술이 가장 뛰어난 '황유'는 A등급중에서도 상위권 각성자의 것임을 감지한 것이다.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흑신, 지금 당장가서 누구인지 확인해 줄 수 있겠나?"
"물론이다. 만약 이 기운이 새로 각성한 자의 기운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입해야만 한다."
정보 수집에 능한 금술이 흑신을 보며 입을 열었다.
"흑신, 떠나기 전에 정보특작부에서 통신기기를 하나 받아서 가도록해라. 해당 각성자에 대한 정보가 모이는 그 즉시 정보를 모아서 건네주겠다."
"알겠다."
그렇게 흑신은 그림자에 녹아들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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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 터벅
김하나는 자신을 부르짖는 부모와 의사를 내버려 둔 채 병원을 빠져나온다.
"지금...지금 당장 찾아야만 해."
그녀의 주변에는 하얀색 기운이 넘실 거리며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오빠가 도망갔을 때....난 전혀 화나지 않았어.'
오빠라도 무사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난 이렇게 살아있고 오빠는 이 세상에 없다니.
그렇게 마른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목적없이 걷기 시작했다.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 끝없이 공허한 마음이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할지 당장 그녀는 몰랐다.
'난...난...뭘 어떻게 해야하지..?'
하얗게 타버려 더 이상 재도 안남은,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만 같은 그녀의 정신이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분명 꿈속에서는 오빠와 함께라면 그 어떤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차디찬 공간속에서 나온 것이다.
'차라리 거기 계속 남아있는게 나았어.'
그렇게 군중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끝없이 계속 걸어가고 있는 그녀 앞에 한 남자가 길을 막았다.
"아직 앳된 숙녀군."
"...."
하나는 그저 공허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검은 코트와 검은 원숭이 가면.
"길을 막아서 미안하네. 일단 내 소개를 하지 나는..."
하나는 남자를 무시하고 계속 걸어나갔다.
"잠깐....복수하고 싶지않나?"
"복...수?"
우뚝 멈춰서며 검은 남자를 바라봤다.
"그래...우리 '십이신장'이 도와줄 수 있다."
"어떻게...뭘 도와줄거지?"
"....네 오빠를 죽인 몬스터를 알고있다."
"!!!"
남자는 검은 가면속에서 하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네 오빠, 김진현과 함께 던전 토벌을 나간 토벌대원들도 알고있지."
"........"
"지금 네가 원하는 모든 정보들을 우리는 갖고있다."
하나는 그저 남자를 공허히 쳐다만 볼 뿐이었다.
이윽고 남자는 품속에서 하얀 토끼 가면을 꺼내 내밀었다.
"우리 '십이신장'의 일원이 되어 힘을 보태라.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것이다."
김하나는 남자를 한참을 바라보고는 이내 백묘의 가면을 집어들었다.
"그래..."
"좋다...같이 가도록하지..."
흑신은 김하나와 함께 십이신장 본부로 나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로소님 10코인 후원감사합니다. 처음 받는 후원이라 많이 떨리기도 하였고, 엄청 들뜬 기분으로 글을 쓸 수 있었네요. 앞으로도 열심히 집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