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화 용마저도 내게 대적할 순 없다.
신성한 용과 사악한 악마가 서로를 노려본다.
이내 사악한 악마의 초록색 브레스가 효시가 되어 전투가 벌어진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끈적거리면서 모든 것을 녹아내리게 하는 초록색 숨결.
화아아아아아!
그에 대응하듯 용은 빨갛게 타오르는 불을 뿜어낸다.
두 브레스가 허공에 만나 산과 불을 튀기며 맞붙는다.
그 여파로 그 일대의 나무들은 뽑혀 나가고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리자드맨들은 두 기운에 휩쓸려 멀리 날아가버렸다.
이내 카니지는 브레스의 힘이 드래곤보다 약하여 불의 기운이 자신에게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쳇....순수 힘은 내가 밀린다는 건가.....'
그는 다급히 브레스를 끊고 자리를 급히 피했다.
쿠화아아아아아!
악을 태우는 불이 하늘에 흩뿌려지며 마치 화산 폭발과도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젠장....너무 강하잖아...'
억지로 브레스를 끊은 탓에 카니지의 입에서 초록색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이번엔 물의 힘이 깃든 브레스를 뿜어냈다.
예로부터 물은 불을 이겨 왔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이치다.
푸화아아아악!
바위를 반으로 가르는 엄청난 수압의 물이 스웜프 드래곤을 향해 쏘아져나간다.
녀석이 이 브레스를 맞는다면 아무리 단단한 비늘을 두르고 있더라도 큰 타격을 입으리라.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녀석이 갑자기 입에 푸른 무언가를 머금더니, 뱉어내기 시작했다.
'저건....화염구?'
근데 불의 색과 온도가 심상치 않다.
본디 불이란 온도가 높아질 수록 색이 달라진다.
근데 저 악어녀석은 불 중에서도 가장 뜨겁다는 청색빛 불을 내뿜고 있었다.
'저건 진짜 죽는다'
순간 카니지의 머릿속에는 위험을 알리는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녀석으로부터 멀어졌다.
내가 뿜었던 물은 이미 증발하고 뿌연 기체만을 남긴 채 사라진 지 오래였다.
{크하하하하! 나약한 것은 죄라고 떠들어 대더니 꼴사납게 도망치는 것이냐!}
녀석도 이번엔 무리하면서 뿜어낸 건지 이빨이 살짝 녹아내리고 있었다.
'자기 몸도 녹이면서 내뿜다니....제정신이 아니군.'
나는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상공에서 내려와 땅을 파기 시작했다.
'녀석의 신체 구조상 놈은 밑을 볼 수 없을 거다!''
그 사실을 인지한 나는 곧바로 땅굴을 파 녀석의 밑으로 이동했다.
파바바바바바!
순식간에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네놈의 뱃가죽을 뚫고 그대로 반으로 갈라주마!'
나는 그대로 땅속에서 입을 벌리고 지상으로 튀어 나가려 했다.
그 순간
쿵 쿵 쿵 쿵 쿵
둔탁한 진동음이 내 머리에 울렸다.
'큭! 무슨!'
위험을 직감한 나는 서둘러 고개를 내뺐다.
푸서서석!
흙이 무너져 내리고 녀석의 거대한 주둥이가 내 굴 속에 박혔다.
{같잖은 수를 쓰는구나 악마!}
녀석은 자기 머리를 땅에 내리쳐서 땅굴을 뚫은 것이었다.
'이런 바보 같은...! 이렇게 무식하게 힘만 센 녀석이 무슨 용이냐!'
나도 준성체로 진화하고 나서부터는 순수 육체적인 힘은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았지만, 녀석을 보고 내가 너무 자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순간 녀석의 입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이 자식...! 나를 통째로 익혀 버릴 생각이군!'
녀석의 속셈을 눈치챈 나는 재빨리 땅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땅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스웜프 드래곤의 모습이 보였고, 이내 내가 나왔던 땅굴에서 붉은빛이 번뜩이더니 겁화가 구덩이를 통해 쏟아져나왔다.
퐈아아아아아!
저 땅굴은 필시 펄펄끓는 용광로와도 같으리라.
그리고 이 순간, 나는 녀석의 빈틈을 발견했다.
'녀석은 지금 땅에 머리를 박고 있다...고로 이동하는 데에 지장이 생겼겠지...지금이다!'
나는 재빨리 분사형 기관을 통해 온갖 질병과 맹독이 혼합된 산성침을 내뱉기 시작했다.
침은 녀석의 몸에 닿아 녹아들더니 이내 기체로 변하여 녀석의 주변을 감쌌다.
'이제 놈은 맹독성 가스에 갇혀서 큰 피해를 입을 거다.'
하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분명 큰 피해를 입힐 순 있겠지만 이걸로 녀석이 금방 죽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쉬지말고 몰아 붙여야만해! 녀석은 적당히 해서 이길 수 있는 그런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다!'
카니지는 입에 끈적거리면서 뚝뚝 떨어지는 산성 용액을 입에 머금었다.
푸화아아아아!
초록색의 불꽃과도 같은 산성 브레스가 스웜프 드래곤을 강타했다.
{크아아아아아악!}
이내 녀석의 비명이 울러 퍼졌다.
'좋아 이대로 녹아내려라!'
그러자 연기 속에서 푸른빛이 일렁거렸다.
'설마...!'
그 순간 연기가 흩어지며 내 산성브레스를 뚫고 푸른 화염이 쏟아졌다.
키에에에에엑!
푸른 화염에 직격으로 맞은 나의 몰골은 처참해져갔다.
나의 키틴질 갑옷이 처참히 녹아내리고, 내 팔, 내 꼬리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타들어 가고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끝이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는다.
생물을 미치게 만드는 푸른 겁화 속에서 난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재도 안 남을 거야!'
내 브레스는 녀석을 이길 수 없다.
뜨거운 열기와 녹아내리는 내 몸으로 도망도 칠 수 없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뭐지?'
그 순간 나는 내 눈에 들어는 한 특성을 발견했다.
[특성 '용신 강림': 드래곤과 그와 관련된 몬스터들만이 지닌 특성으로 자기 힘을 극대화해 체구, 힘, 특성. 모든 것을 일정 시간 동안 크게 향상시킵니다. 하지만 변신이 풀린 후에는 막대한 허기에 시달립니다. 최대 지속시간 60분, 재사용 대기시간 72시간]
3일에 한번 쓸 수 있는 필살기.
드래곤 리자드를 잡아먹으면서 얻은 특성.
순간 나는 이 특성이야말로 내가 쓸수 있는 최후의 수단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특성 용신 강림!'
나는 고민 없이 특성을 사용했다.
쿠와아아앗!
검은 섬광이 내 몸 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내 몸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뼈이 뒤틀리고 근육이 찢어진다.
비대했던 내 덩치는 순식간에 더 커 졌으며, 녹아내렸던 내 몸들은 복구되고, 등에서 한 쌍의 날개가 더 피어올라 총 4장의 날개가 되었다.
'상태창'
[특성, 용신 강림 사용 중! 뛰어난 사냥꾼이 된 공허의 포식자 이터 '카니지'
체장 29m 51cm , 체장 5m 3cm]
드래곤
이터라는 괴물은 잠깐이긴 하지만 분명히 용이 되었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이다'
끓어오르는 파괴 본능이 뇌를 집어삼킨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내 입에서 산성과 불의 힘이 혼합된 노란색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화염속에서 산성이 튀어 나갔고, 그 일대는 전부 녹아내렸다.
{네놈!! 어떻게 용신의 힘을!!!!}
스웜프 드래곤, 드라카 또한 용신의 힘 특성이 존재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봉인되어 있던터라 제힘을 쓸 수 없었다.
{크아아아악! 네놈!!!}
나는 녀석의 절규를 무시하며 끝없이 브레스를 뿜었다.
하도 오랜 시간 동안 뿜어내서인지 목이 찢어질 듯 아프고 가슴이 불타는 듯이 뜨거웠다.
그렇게 계속되는 맹공에 결국 스웜프 드래곤은 네 다리가 모두 녹아내리고 단단한 비늘도 거의 벗겨졌다.
한 던전을 주름잡던 보스가 무력화되는 순간이었다.
이내 자기 승리를 확신한 카니지는 다 죽어 가는 드라칸에게 사념파를 보냈다.
{네놈의 그 잘난 수하들 중 용신 강림 특성을 지니고 있던 녀석이 있던데....고마워해야겠군. 꽤 맛있었다.}
{특성을....흡수했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의 특성을 고작 먹는 것 따위로 간단하게 흡수한다니.
{네놈.....'공허의 포식자'였구나.}
{그걸 이제 알았나? 네놈의 그 굼뜬 몸뚱이처럼 생각도 느리군.}
{악마 같은 것이 아니었어...}
공허의 포식자, 몬스터들 사이에서 이터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터는 끊임없이 성장하며 끊임없이 먹어 치우는 살아 있는 아귀도(餓鬼道) 그 자체.
몬스터들 사이에서도 이터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계속되는 진화로 인해 끊임없이 증가하는 막강한 전투력,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엄청난 흡수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자비할 정도의 호전성과 뛰어난지능, 가히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존재하는 포식자였다.
때문에 지능이 높고 나름 힘 좀 쓴다는 몬스터들도 충분히 성장한 이터만 보면 벌벌떨며 자리를 피했다.
그런 최강, 최악의 생물이 드라칸 앞에 있던 것이다.
{네놈.....나를 먹어서 내 특성을 모두 흡수할 셈이로구나!}
{당연한 말을...}
카니지가 막강한 브레스에 무력화된 드라칸을 입맛을 다시며 노려봤다.
{네놈도 곧 네 종복들과 함께 내 안에서 나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잠깐!}
드라칸은 녹아내리는 몸을 끝끝내 지탱하며 카니지를 바라봤다.
{부탁이 있다!}
{....설마 구질구질하게 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지금껏 엄청난 포스로 위압감을 자랑하던 드래곤이 목숨을 구걸한다고 생각한 카니지는 크게 실망했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을 말이지?}
드라칸이 잠시 고민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내 레어에 두 마리의 새끼가 있다...}
{해츨링말인가....?}
{그래.....내가 없으면 어차피 죽을 녀석들이지만.....부디 녀석들에게 기회를 주길 바란다...}
드라칸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저 잔혹한 괴물이 패배자의 부탁을 들어 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크크킄 하나 같이 전부 다 지 새끼들은 끔찍하게 좋아한다니까}
카니지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드라칸을 바라봤다.
'이런 몬스터들조차 자기 새끼들을 챙기는데....나는 왜....'
동정의 눈빛이었을까.
카니지는 입을 열었다.
{녀석들에게 시험을 내릴 거다.}
{!!}
{어차피 특성은 네놈 하나로도 충분해.}
{...고맙다...포식자여...}
{착각하지 마라. 네놈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단지....흥미가 생겼을 뿐}
{.......}
그렇게 드라칸은 편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