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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판타지 속 괴물이 되었다-11화 (11/35)

제 11화 잊지마라. 나는 전사가 아니라 사냥꾼이다.

"블러드....녀석이 이곳에 왔었다는 가정이 확실해졌군."

코서 채한림은 바닥에 널려 있는 다량의 혈흔과 살점을 보고 블러드가 이곳에서 학살을 벌였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곳은 던전의 초입 부분이다... 이곳에서 헌터들이 바로 당할 리는 없지.'

던전에 입성하기 전 그녀는 해당 던전의 등급과 던전에 입장한 토벌대에 대한 정보를 받았기에 알 수 있었다.

'상위 C등급 게이트에서 C등급 헌터 둘에 D등급 헌터가 다섯 그리고....E등급 둘이 초입 부분에서 사체도 안 남기고 당할 확률이 몇이나 될까?'

당연히 0에 수렴했다.

채한림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장갑을 벗고 혈흔을 매만졌다.

차게 식어 찐득해지고 굳어 버린 혈흔이 그녀의 손에 달라붙었다.

".....적어도 방금 일어난 것은 아니군."

그녀는 더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이곳에 더는 오래 있을 수 없었다.

'피와 살냄새를 맡은 벌레 몬스터들이 득실득실거리겠군.'

지금은 수가 많지 않아 채한림 혼자 처리하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꼬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더욱 깊은 곳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군.'

그녀는 혈흔이 맺혀져 하나의 길처럼 된 것을 발견하고는 그곳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성한 숲을 지나자 한 질척거리는 늪을 발견했다.

'여기서부터는 혈흔이 남아 있지 않군...'

질퍽거리는 진흙과 얕은 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미약한 혈흔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또 다른 단서를 발견하였다.

'저기에 움푹 파여 있는 길이 있어.'

진흙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지나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필시 이 흔적은 육중한 몸체를 가진 녀석이 지나간 흔적이리라.

'크다고는 생각했지만....이게 녀석의 흔적이라면....정보를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겠군.'

그녀는 수첩을 꺼내 들어 새로운 정보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자 그럼 네놈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 한번 볼까....'

그렇게 그녀는 카니지의 흔적을 쫓아 매섭게 추격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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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아아아악! 서걱! 콰직! 푸슉!

썰리고 물어뜯기고 터져 나가는 잔혹한 참상의 비명이 카니지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크르르르르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산성이 섞인 독점액을 내뱉기 시작한 카니지.

이에 맞서 붉은 리자드맨 전사들과 주술사들도 입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 설마 했지만 진짜 브레스를 사용할 줄이야!'

브레스, 드래곤과 그에 유사한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굉장히 위협적인 공격이다.

때문에 보통 이런 브레스를 뿜는 몬스터는 상위 등급에 속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봐도 무방한 보기 힘든 공격기술이었다.

'근데 이런 끔찍한 곳을 고작 C등급 두놈과 D등급 다섯, E등급 두놈으로 왔단 말이야?? 또 측정 오류 뭐 이런 건가?'

카니지는 이 던전을 C등급 내지는 D등급으로 예상했다. 그도 그럴게 보통 던전에 입성하는 헌터들과 던전의 등급은 서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아까 잡아먹은 헌터들의 등급을 대충 파악한 그는 당연히 이 던전의 등급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 난이도라면 최소한 B급 정도는 될 텐데!'

그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전사의 복부에 가시가 박힌 꼬리를 휘두르며 생각했다.

'녀석들은 원거리 전투와 근거리 전투에 모두 뛰어나다....아까처럼 인질을 사용했어야 했나...'

어쩌면 아까 그 노란빛과 초록빛을 띠던, 산성 냄새를 풍기던 리자드맨들도 이렇게 강했을 수도 있었다. 내가 인질을 사용했기에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일 뿐.

그렇게 생각한 카니지는 후회하고야 말았다.

'아까처럼 했어야 했는데...괜히 정면전투를 벌였나....'

기습과 매복을 통한 '사냥'에는 익숙하지만 서로가 자기 기량을 모두 뽐내며 싸우는 이런 '전투'에는 익숙하지 못한 카니지는 상당한 고초를 겪고 있었다.

'그래....이것도 다 살이 되고 뼈가 되는 경험이니 미래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겠지.'

그는 초록빛 가스와 침을 내뱉으며 미래에 있을 일들을 생각했다.

'앞으로 나는 강한 인간들과 더욱 강한 몬스터들과 정면승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거야...그때  경험이 부족하게 되면 큰 낭패지.'

케르르르르륵!

콰직!

투두두둑!

물어뜯고 뱉고를 반복하며 전투에 집중하던 카니지에게 갑자기 둔탁한 충격이 몰려왔다.

크르라아아!

{크으으윽!}

충격을 받은 꼬리 쪽으로 돌아보자 아까 그 쌍도끼를 들던 족장이 눈에 보였다.

붉은색의 근육질 도마뱀 녀석은 내 몸에 도끼를 내려치며 키틴질 갑옷들을 처참하게 부셔나가고 있었다.

크라아아아악!

나는 재빨리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녀석을 떼어냈지만 이내 금방 다시 접근하며 내 갑옷을 부셔나가는 족장을 보고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투지는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몸을 부풀려 압박감을 주었던 자세를 고쳐잡아 몸을 거두고 똬리를 틀었다.

맞는 표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오직 원거리 공격으로 상대하겠다는 나의 작전이었다.

실제로 내 맹독 가스와 산성을 맞은 녀석들은 무력화되어 바닥을 기며 숨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맹독과 산성 공격이 녀석들에게 효과가 있다!'

나는 족장을 바라보고는 침을 내뱉었다.

'저 미친 근육돼지 도마뱀 녀석과 근접전을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지.'

재생력 특성으로 부서졌던 키틴질 표피는 금세 회복되었지만 몸에서 심각한 허기를 느끼게 되었다.

족장은 교묘하게 침을 피해 가며 근접 공격을 위해 내게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쿠르르르륵!

{악마여!!! 순순히 지옥으로 되돌아가라!}

퍼석 퍼석

도끼로 내려치자 카니지의 단단한 외피는 부서지며 파편을 튀겼다.

키에에에에에!

나는 포효하며 가시가 박힌 꼬리를 횡으로 휘둘렀다.

족장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맹독이 깃든 가시 꼬리를 피했다.

'어떻게 해야만....어떻게 해야만 이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지?'

수세에 몰리고 내 공격수단이 통하지 않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들 근육이 터질 정도로 많길래 느릴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빠르잖아!'

난 주위를 둘러보며 무언가 쓸 만한 것이 있나 확인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지면으로 가라앉고 있던 내 몸이었다.

이곳은 늪지이기 때문에 땅이 축축하다. 즉 지반이 약하다는 뜻이다.

'...그래....사냥꾼이 전사가 되려하니까 이기지 못한 거야...명심해라. 나는 사냥꾼이다.'

전사처럼 싸우던 카니지는 자기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사냥꾼의 전투방식으로 돌아갔다.

'땅속에 숨어 녀석들을 낚아챈다.'

생각을 마친 나는 땅을 파서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반이 약하기에 내가 땅을 파는 것도 땅밑에서 움직이는 것도 비교적 쉬웠다.

그렇게 거대한 굴이 형성 되었고 나는 사냥을 개시했다.

'어디 한번 내 스타일대로 해볼까?'

.

.

.

차쿤타는 악마의 포효소리를 듣고 침음을 흘렸다.

키에에에에에에에!

이제 시작이다.

악마가 시작의 종을 울리고 초록색 액체를 내뱉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둑

차쿤타는 급히 뒤로 물러서 상황을 지켜봤다.

액체는 땅에 떨어지자 기체로 변했고 부족원들을 덮기 시작했다.

액체에 직접 맞은 부족원들은 살이 놀아내렸고, 기체에 감싸인 자는 목을 부여잡더니 켁켁거리며 나자빠졌다.

'액시드 녀석과 같이 침에 산성이 있고 추가적으로 독이 있는 건가?'

원거리 공격수단에 대한 분석을 마친 차쿤타는 연기를 피해 거리를 좁혀 녀석의 외피에 도끼를 내리쳤다.

콰직!

녀석의 외피질은 반들반들하면서도 딱딱한...마치 곤충의 것과 상당히 유사했지만, 강도는 차원이 달랐다.

'적어도 녀석의 살에 깊게 박힐 줄 알았는데....고작 외피를 부수는 정도인가?'

쐐애애애애애액! 악마의 꼬리가 차쿤타를 공격해 오자 그는 재빨리 도끼를 앞으로 들어 막아 냈다.

퉁!

막아 냈음에도 멀리 퉁겨져 나간 차쿤타는 녀석이 근접전에도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거리가 벌려지자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는 악마의 외피질이였다.

'갑옷 같은 단단한 외피질....그에 받쳐주는 뛰어난 재생력...압도적인 힘'

오랜만에 나타난 강적에 그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전설에 나오는 악마답군.... 엄청난 전투력이다.'

하지만 무언가 어색했다.

마치 녀석은 이런 전투방식이 익숙지 않다는 듯 자기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에 현세에 강림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녀석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단련해온 근육을 십분 활용하여 현란한 발걸음으로 악마가 내뱉는 액체와 가스를 피해 접근하여 착실히 피해를 입혔다.

'무한히 재생되지는 않을 거다....분명 끝이 있을 터'

확실히 악마의 재생력은 뛰어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뎌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악마는 이내 부풀렸던 몸을 똬리를 트는 것으로 변경했다.

'수비적으로 나오겠다는 건가?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악마!'

나는 녀석에게 순식간에 접근해 난타하기 시작했다.

퍼석! 퍼석! 퍼석! 퍼석!

외피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파편이 튀긴다.

악마도 가만히 있지 않고 나름대로 꼬리를 휘두르며 저항에 나섰다.

그에 따라 잠시 뒤로 물러난 그는 상황을 지켜봤다.

'이 상태로 승리를 굳혀주마!'

이미 속으로 승리를 다짐한 차쿤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녀석이 갑자기 땅을 파고들어 가기 시작했다.

'음?'

순간 당황한 그는 악마가 다시 지옥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건지 의심까지도 했다.

'아니...악마 놈의 눈빛은 절대 패배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악마가 들어간 땅굴을 바라봤다.

'녀석의 눈빛은 사냥꾼의 것이었다.....'

키에에에에에에에!

땅굴에서 악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대지를 진동했다.

차쿤타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부터 녀석의 본 실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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