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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판타지 속 괴물이 되었다-10화 (10/35)
  • 제 10화 검은 악마가 강림했다.

    '예상대로야...'

    나무 그늘에 숨어 있던 나는 외출중이던 리자드맨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돌아와서 자신이 먹다 버린 어린 리자드맨 시체를 부여잡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저 어린 리자드맨의 부모인가?'

    지금 바로 모습을 드러내도 상관없겠지만 나는 기다렸다.

    '지금 나갔다가는 오히려 내게 달려들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어.'

    아마 저 리자드맨은 지금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자식을 눈앞에서 잃은 부모의 마음은 말 안 해도 알테지만 거기에 더해 시체까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면 그 상태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지금까지 기다려 온 시간과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된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리자드맨의 통곡이 잦아들고 눈에서 분노가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제야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그늘에서 나와 리자드맨을 향해 다가 갔다.

    크르르르르르르르

    울음소리가 들리자 녀석은 당황한 듯하였으나 이내 분노와 공포가 섞인 눈동자로 나를 노려봤다.

    마치 이 사태를 내가 일으킨 거냐고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에 응하듯 갈라지고 찢어지는 듯한 기이한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키에에에에에에!

    리자드맨은 나의 포효를 듣더니 몸을 덜덜 떨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얼굴에서 분노는 잃지 않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내 굳게 마음을 먹었는지 어딘가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빙고!'

    나는 계획대로 되었음을 깨닫고 위장 색을 띤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디로 가는지 한번 확인해볼까?'

    칠흑빛 날개를 퍼덕이며 녀석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자 나는 저 멀리 한 부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저기로 가는구나.'

    대충 감각향상으로 부락을 관찰하니 불의 기운이 강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까는 산(acid)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지더니 이번엔 불 냄새?'

    아마 부락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는 것만 같았다.

    '이건 꽤 호재인데....이런 부락이 몇 개 더 있다면 나는 아마 여러 가지 특성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앞으로 흡수할 특성이 기대되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잔혹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

    .

    .

    케륵! 케륵! 케륵!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미 리자드맨 그룸은 악마로부터 도망가고 있었다.

    잠시 뒤를 돌아봤지만 녀석은 쫓아오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서둘러야 해! 녀석이 다른 리자드맨 부락까지 공격할 수도 있어!'

    생각을 마친 그녀는 서둘러 파이어 리자드 부락으로 달려 나갔다.

    이 던전에서 서식하는 리자드맨의 부족은 총 다섯 개로 '파이어 리자드', '워터 리자드', '액시드 리자드', '윈드 리자드', '드래곤 리자드'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호전적인 부족은 파이어 리자드다.

    게다가 액시드 리자드 부족과 비교적 가장 근접해 있는 부족이기에 그녀로선 최선의 선택지였다.

    '만약.....파이어 리자드로도 안 된다면.....'

    그녀는 파이어 리자드도 괴멸당한다면 가장 위험하고도 강력한 부족인 '드래곤 리자드'에 접촉해서라도 그 악마를 죽일 생각이었다.

    '꼭.....꼭 복수해 주마 놈!'

    그렇게 다짐하고 파이어 리자드 부족에 다다른 그녀는 저 멀리 입구를 바라봤다.

    두 개의 입식 횃불과 길목을 지키고 있는 한 마리의 붉은 리자드맨.

    그녀는 그 리자드맨이 문지기라는 것을 느끼고 도움을 요청했다.

    케르르르!

    {도와줘! 파이어 리자드!}

    케륵?

    {음..? 액시드 리자드?}

    파이어 리자드 문지기는 목이 잘린 어린 리자드를 안고 뛰는 액시드 리자드의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케르륵!

    {그 애는....}

    케르르륵! 케르르르륵!

    {악마가 나타났다! 악마가 강림해서 부족원들을 모두 죽였다! 곧 이곳에도 악마가 도착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다!}

    케르르륵?

    {전설 속의 악마?!}

    문지기는 악마가 나타났고 그 악마가 액시드 부족원들을 몰살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의심했지만, 이내 그녀의 행색과 그녀가 안고 있는 어린 리자드맨을 보고 납득했다.

    무엇보다도 이런 일로 거짓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케르륵 케르륵

    {기다려라 액시드의 일원이여, 지금 당장 족장님에게 안내하겠다.}

    문지기 리자드맨이 문을 열고 그룸을 안으로 데려갔다.

    부락안에는 붉은색 비늘을 지닌 리자드맨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초록색 비늘을 지닌 액시드 리자드맨 그룸은 그사이에서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가장 호전적이고 배타적인 부족답게 그룸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가시밭길 같은 곳을 지나서 족장의 집 앞에 도착했다.

    족장의 집은 거대한 천막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천막 주변에는 입식 횃불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문지기 리자드맨은 천막을 열어젖히고 족장을 대면했다.

    케르르르륵

    {족장님, 액시드의 부족원이 급히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들여보낼까요?}

    쿠룩! 쿠룩! 쿠룩!

    팔굽혀펴기를 하며 운동하고 있던 근육질의 리자드맨, 족장 '차쿤타'는 문지기를 바라봤다.

    쿠르르륵?

    {많이 심각한 사안인가?}

    케르르륵

    {족장님이 직접 들어 보셔야 할 정도입니다.}

    쿠륵

    {알았다. 들여보내라}

    그렇게 천을 거두며 족장의 방으로 들어간 그룸, 그녀는 거친 숨을 진정 시키며 그를 바라봤다.

    숨을 몰아쉰 족장은 팔굽혀펴기를 멈추고 자세를 고쳐 앉은 그는 그녀가 들고 있는 목이 잘린 아이를 바라봤다.

    쿠르르륵?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룸은 아이를 슬픈 눈으로 잠깐 바라보더니 이내 족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케르르륵

    {나도 사건이 일어날 때는 보지 못했지만....우리 마을과 녀석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난 깨달았다.}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입술을 짓이기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

    .

    .

    설명을 들은 파이어 리자드 족장  차쿤타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쿠르르르륵....

    {악마.....악마가 나타났다라...}

    쿠르르르륵....

    {과거의 재앙이 다시 한번 일어나려 하는가....}

    예로부터 리자드맨 사이에서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지옥에서 태어난 한 악마가 고통과 공포, 증오를 세상에 흩뿌리며 어지럽혔고, 그 악마는 마침내 신성한 용과 맞붙어 패배하고 지옥으로 다시 추락했다.

    그리고 그 신성한 용은 악마와의 전투 후 지쳐 본래 지니고 있던 다섯 가지의 힘을 나누어 리자드맨이 생겨났다. 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악마가 다시 용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 족장은 침음을 흘렸다.

    쿠르르르륵

    {악마 일 수도 있겠지만...섣불리 판단하긴 이르군....}

    차쿤타는 부족장을 불렀다.

    쿠르르르륵!

    {부족장 밖에 있는 거 다 아네! 어서 이리 와 보게!}

    스윽

    단안경을 쓰고 로브를 뒤집어쓴 붉은 비늘의 리자드맨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케에에에르

    {부르셨습니까?}

    쿠르르르르륵

    {밖에서 다 들은 거 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액시드 녀석들의 부락을 확인해 보고 이 액시드 녀석의 말이 맞다면 지금 당장 다른 모든 리자드맨 부락에 이 사실을 알려라.}

    케에에에..

    {알겠습니..}

    쿵!

    지축이 흔들리고 엄청난 진동이 부락에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족장과 부족장, 그룸은 천막을 열어젖히고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곳엔 거대한 한 쌍의 칠흑빛 날개를 펼치며 거대한 몸집으로 파이어 리자드맨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리고 족장 차쿤타는 녀석의 피로 물든 눈빛을 보고야 말았다.

    전설의 악마. 위대한 신성한 용에게 패배하고 지옥에 처박혀 복수의 날을 꿈꾸던 끔찍한 악마.

    분노로 가득 차고 학살에 목마른 잔혹한 악마가 세상에 복수하려고 강림한 것임이 분명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

    온 늪지대를 뒤덮는 악마의 울음소리.

    차쿤타는 악마가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온 고통을, 분노를 되갚아 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쿠르르르륵

    {부족장...액시드 부락에 가서 확인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이 액시드 리자드와 함께 다른 부족에 가서 이 사실을 전해라.}

    차쿤타는 그 즉시 기존의 명령을 철회하고 새로운 명령을 내리고, 그는 자기 등 뒤에서 무장하고 있던 쌍도끼를 빼 들고 양손에 쥐었다.

    쿠르르르륵

    {....악마여....덤벼라!}

    .

    .

    .

    나는 날개를 퍼덕이며 위장 색을 띤 채 이 붉은 리자드맨 부락을 상공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잡았던 산성 냄새를 풍기던 녀석들보다 훨씬 많고 강해 보이는군.'

    녀석들은 대부분 왜인지 훅훅 거리면서 운동하고 있었다.

    '아...이 미친 헬창 도마뱀 녀석들...'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녀석이 있었다.

    '저 녀석은 근육에 무슨 짓을 한 거지?'

    물 양동이를 어깨에 메고 스쿼트를 하는 미친 도마뱀 새끼를 보고야만 것이다.

    그 녀석은 도마뱀인데도 불구하고 꼬리붙은 고릴라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끔찍한 비주얼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어지럽구만....'

    저것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괴물의 몸으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근육통을 괜히 내가 겪고 있는 듯했다.

    나의 주된 사냥법은 총 두 가지로 기습과 공포였다.

    기습은 나를 인지하지 못한 단일 대상 혹은 소수를 상대할 때 유용했으며, 공포는 나보다 약하지만 다수의 것들과 상대할 때 유용했다.

    이번 리자드맨 부락을 상대할 때 나는 공포를 이용한 사냥을 하려 했다.

    몸길이 10m에 가까운 육중한 몸체, 괴물을 연상시키는 징그러우면서 흉악한 턱과 입, 화룡정점으로 악마의 그것을 연상 시키는 한 쌍의 칠흑빛 날개.

    이러한 생김새는 당연 피식자들에게 압도적인 공포를 불어넣어 자기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하여 말 그대로 카니지가 학살을 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런데'

    크룩! 크룩! 크룩! 크룩!

    온갖 역기를 들며 운동하는 붉은 리자드맨들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저 미친 헬창 도마뱀 새끼들은 겁이 없을 것만 같았다.

    '이러면 작전에 차질이 생기는데'

    한참을 내려다본 카니지는 이내 결심한 듯 위장 색을 풀고 붉은 리자드맨 부락으로 낙하했다.

    쿵!

    내가 땅에 내려앉자 수많은 리자드맨들이 나를 보며 당황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몇몇 리자드맨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겁에 질린 리자드맨도 있는 반면 대부분의 파이어 리자드는 눈의 호승심을 불태우며 나를 노려봤다.

    '공포를 이용한 학살은 못 하겠군.'

    상황을 분석한 나는 이내 전투 태세를 갖추며 주변을 돌아봤다.

    '족장으로 보이는 놈은....아직 안 왔나?'

    그렇게 둘러보고 있던 내게 세 마리의 리자드맨들이 거대한 천막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까 내게서 도망치던 초록색 비늘의 리자드맨, 단안경을 쓰고 로브를 뒤집어쓴 리자드맨...그리고 다른 리자드맨에 비해 덩치가 훨씬 크고 터질 듯한 근육으로 무장한 붉은 리자드맨.

    그중에서 거구의 근육질 리자드맨은 나를 보더니 등에서 쌍도끼를 빼 들어 나에게 겨눴다.

    '저 거대한 덩치의 붉은 리자드맨이 족장녀석이겠군.'

    족장의 얼굴에서는 놀라움은 찾을 수 있었지만 두려움은 볼 수 없었다.

    '녀석들은 전사야....사냥감이 되어 공포에 떨만한 녀석들이 아니다. 이번엔 사냥꾼이 아니라 전사로서 싸워야겠군.'

    나는 침을 흘리며 뱀과도 같은 몸을 일으켜 세워 잔뜩 몸을 부풀렸다.

    평소에도 거대한 몸체로 존재감을 뿜어내던 카니지가 더욱 커지자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대학살을 불러일으키는 검은 재앙의 악마가 불의 전사들을 향해 포효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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