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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판타지 속 괴물이 되었다-6화 (6/35)
  • 제 6화 나는 세상에 풀려났다.

    쾅! 쾅! 쾅! 쾅!

    이터의 등에서 수많은 촉수들이 뿜어져 나오더니 동굴 곳곳에 박히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

    무거운 진동과 함께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지층이 무너지고 종유석이 떨어지며 석순이 박살 나 파편을 튀긴다.

    천장에 붙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박쥐들은 매서운 진동을 못 이겨내고 이러지리 날아들며 기이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아귀도(餓鬼道)

    이 지옥과도 같은 풍경은 그야말로 하나의 작품였으며 공포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예술로 승화되고 있었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

    괴물의 울음소리가 온 지척에 퍼져나간다.

    동굴 밖 새들이 분주하게 도망가고 몬스터들도 두려움에 떨며 동굴로부터 멀어진다.

    이터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보라색 침덩어리를 뱉기 시작했다.

    치지지지직.....

    산성을 띠고 다양한 질병을 담고 있는 침이 온 사방에 튄다.

    "힐러 계열 마법사는 지금 당장 질병 면역 버프를 모든 대원에게 건다! 나머지 마법 계열 헌터는 벽을 세워 가스를 막는다!"

    쿠구구구구궁

    돌로 된 벽이 세워지지만 기껏 세운 벽이 무색하게 이터의 주먹질로 파편이 튀며 박살 난다.

    푸확!

    원거리 계열 헌터 한 명이 무거운 진동에 짓눌려 거리 조절하지 못한 채 그대로 촉수에 찔려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ㄱ..공대장..님...쿨럭"

    "쳐다보지 마! 이미 저지경이 되면 포션으로도 못살린다! 집중해!"

    냉철한 판단으로 오로지 이터의 척살만을 목표로 지휘했다.

    "마법 계열 헌터는 지금 당장 저 녀석의 발에다가 얼음 마법을 퍼부어라! 이동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야해!"

    녀석이 자신이 움직이기엔 동굴의 크기가 좁다는 것을 인지하고 동굴 밖으로 나가려하고 있었다.

    "녀석이 나가려한다. 절대 이 동굴 밖으로 못 나가게 해! 그리고 근접 계열 헌터들은 지금 당장 후열로 가서 동굴의 상태를 확인한다!"

    공대장 김태준은 매서운 공방 속에서 필시 이 동굴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리라는 것을 느꼈다.

    동굴이 무너지면 안에 있던 이터는 치명상을 입게 될 테고 그사이에 결정타를 박아넣으면 완벽하게 진행되리라 생각했다.

    '어차피 근접 계열 헌터들은 여기서 뭘 하기가 힘들다. 차라리 후열에 자리를 배치한 후 동굴의 상태를 보고 마법사와 원거리 헌터를 지키는 게 효율적이야.'

    무서울 정도의 정확하고 냉철한 판단은 차츰차츰 이터를 깎아내고 있었다.

    자기 이동 속도와 몸 상태를 확인한 이터가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몸을 말아 마치 공처럼 굴렸다.

    '이건!....위험하다!'

    "지금 당장 동굴 밖으로 대피한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헌터들 그들은 신속하게 동굴 밖으로 나와 동굴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동굴 입구를 봉쇄해!"

    그러자 마법사들이 돌과 얼음으로 벽을 세워 입구를 가로 막았다.

    '이제 녀석은 저기서 말려죽는 것밖에 남지 않았군.'

    승리를 확신한 공대장 김태준은 조소를 머금으며 동굴을 바라봤다.

    .

    .

    나는 이터라 불리는 괴물이자 이 숲과 동굴의 주인이다.

    어렸을 적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먹고 싸우고 먹고 싸우고의 반복적인 투쟁속에서 나는 살아남았다는 것을 느낄 뿐.

    이후 나는 어느 정도 성숙해졌다고 느꼈을 때 아이를 가졌다.

    나의 아이는 총 12마리였다. 솔직히 기대했다.

    나의 아이는 얼마나 강한 포식자가 되어 나와 경쟁하게 될 것인지. 얼마나 내 자손들이 세상에 공포를 흩뿌릴지.

    나는 지켜보기로 했다.

    근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나의 자손 중 첫째가 형제자매들을 무자비하게 포식하고 동굴의 다른 생물들을 적극적으로 사냥하고 있었다.

    '이 녀석...'

    이 녀석은 장차 모든 것을 사냥할 뛰어난 사냥꾼임을 알아챈 나는 그 아이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첫째를 떠나보내고 나는 숙면에 취했다.

    이상하게도 최근 더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줄어서 사냥을 하지 않고 나태해지고 있었다.

    '나태해졌군...이빨 빠진 사냥꾼이 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녀가 눈을 뜨고 사냥에 나서려는 순간 갑자기 무언가 날라와 터지기 시작했다.

    퍼버버벙! 슈우우우욱!

    갖가지 화살과 마법이 날아들고 날 공격했다.

    '내 권태기를 극복하기에 적당한 상대가 온 듯 하군.'

    그녀의 사냥본능이 다시 일깨워지는 순간이었다.

    전투가 조금 지속 되고 난 후 그녀는 깨달았다.

    '전투가 불리한쪽으로 기울고 있군.'

    언뜻 보기엔 늑대가 양떼를 모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녀석들은 착실하게 내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이대로면 승산이 없다....더군다나 내 보금자리가...이 동굴이 더는 못 버텨줄 듯 하군.'

    나는 잠시 몸을 말고 등에서 난 촉수들을 벽에 박아넣어 고정했다. 이는 마치 새총과 같은 모양새를 연상시켰다.

    동굴 밖으로 제시간에 걸어서 나가기엔 문제가 있기에 이런 방법을 채택한 것이었다.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생각이 들자 나의 몸은 튕겨져 나가듯이 나 자신을 동굴 입구로 향해 발사했다.

    쿠투웅!

    둔탁하면서도 무엇인가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쿠우우우우구구구

    동굴을 가로막던 무수한 얼음과 돌의 벽들이 처참히 박살 나 파편을 튀긴다.

    꽈아앙!

    동굴을 나오고 내가 숙였던 몸을 다시 피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 하는 어리석은 사냥감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미천한 것들....전부 먹어 치워주마'

    .

    .

    .

    '젠장...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을 줄이야.'

    동굴 입구를 가로막은 벽들을 보았을 때 그는 마치 철옹성과도 같은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저 괴물이 무너진 동굴 안에서 압사하리란 걸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저 괴물은 보란 듯이 뛰쳐나왔고 사냥감을 바라보듯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젠 정면승부밖에 남지 않았어....슬슬 녀석도 이 상황을 적응하는 듯하고...승부수를 던져야겠군.'

    상황이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자 김태준 공대장은 자기 힐러 계열 마법사에게 명령했다.

    "나한테 모든 버프 다 거십쇼! 이번에 확실히 끝을 내야만 하니까"

    수많은 버프를 두른 김태준은 쌍칼을 빼 들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 차분한 성격과는 정반대로  싸우면 싸울 수록 더욱 이성이 사라지고 전투에 집중하게 되는 '광인화'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추한 모습을 보여지는 게 싫어서 사용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군.'

    그는 잠시 눈을 감더니 붉은 안광을 피워내며 일순간 괴물의 목으로 도약했다.

    '녀석도 목이 잘리면 무사할 순 없겠지'

    괴물도 맞받아 치겠다는 듯 보라색 점액체를 뱉어냈다.

    "힐러! 제게 해독버프와 보호막을 걸어주십시오!"

    독이 든 침이 보호막에 막히고 가스를 맡아 중독됐지만 곧바로 해독되는 것을 느꼈다.

    '다 예상한 대로군!'

    그는 씨익 웃으며 괴물에 목에 붙어 두 칼을 각각 턱 밑부분과 쇄골 윗부분에 박아 넣었다.

    크에에에에에에!

    하지만 괴물은 자기 상처를 보고 당황하기보다 분노했다는 듯 케라틴질 손톱으로 무장된 흉악한 손을 휘둘렀다.

    "하하핫! 소용없습니다 이 멍청한 괴물놈!"

    광인화가 지속되면서 점차 이성을 잃어가는걸 실시간으로 느낀 김태준은 이성을 완전히 잃어 버리기 전에 서둘러 처치해야 했음을 깨달았다.

    그가 손톱을 피해 목뒤로 날아들고 괴물이 돌아보는 것을 막기 위해 마법사들이 얼음과 저주 마법으로 이를 저지했다.

    푹푹푹푹푹푹푹푹푹!

    목뒤에 완전히 자리 잡은 김태준은 쉴 틈 없이 칼을 박아 넣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눈에 이성이 사라지고 광기만이 남는다.

    푸슈우우우우욱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살을 파내고 목뼈를 깎아낸다.

    녀석의 살은 찢어지마자 촉수로 변해 다시금 김태준을 공격하지만 그는 수많은 마법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었고, 근접 전투 계열의 헌터들이 녀석의 발목을 공격해 이제는 중심도 잡기 힘들게 되었다.

    크르르에에에엑!

    "끝이다 괴물놈!!!!!"

    그가 마지막임을 깨닫고 두 검을 치켜들어 목을 베어냈다.

    서걱

    이미 너덜너덜해진 터라 생각보다 쉽게 목이 잘려 나갔다.

    그렇게 주체의식을 잃은 몸뚱이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나자빠진다.

    몸이랑 분리된 머리는 아가리를 쩍 벌린 채 추잡스럽게 혓바닥을 늘어뜨려놓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토벌...완료..."

    준성체 이터를 척살한 대원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말도....안 돼....'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나, 아성체 이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냉철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척살만을 위한 최선의 지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컨트롤 하는 능력에 한번 놀라고 전투에 임하자 광인이 되어 준성체 이터를 썰어 버리는 실력에 두 번 놀랐다.

    '준성체 이터가....저렇게 쉽게?'

    아무렇게나 나자빠져 있는 준성체 이터를 보고 나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발각되면....저렇게 되는 건가...?'

    원래 계획은 이터가 이긴다면 헌터의 남은 시체를 먹으려 했고 헌터가 이기면 충분히 지치고 수도 줄었을 테니 기습을 통해 준성체 이터와 헌터 모두 먹으려 했다.

    하지만 헌터 중 사망자는 한명밖에 없었고 나머지 대원들도 지치긴 했으나 전투의 수준을 보았을 때 내가 함부로 끼어들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강해도 너무 강하잖아.'

    그가 예측했던 A등급의 헌터들보다 훨씬 강했다. 이렇게 될 경우 그는 그들이 이터의 사체를 게이트가 닫히기 전까지 분해하는 것을 눈 뜨고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 던전은 끝났어. 어서 나가지 않으면 저 괴물 같은 헌터들과 같이 게이트를 나가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올 거야. 내가 먼저 나가야만 해.'

    던전은 보스가 죽으면 대략 3시간 후에 소멸하므로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다짐하고 게이트가 열린 곳으로 날아갔다.

    '분명 게이트 밖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을 테지. 내가 잘 빠져나갈 수 있을까?'

    나가기 전에 계획을 세웠다.

    '우선 나가기 전에 위장색 특성을 사용해서 모습을 숨겨야만 해. 그리고 고등급 탐지계열 헌터한테 발각되기 전에 하수구같은 곳으로 숨어야겠어.'

    그는 사전에 어떻게 할지 생각을 마치고 침을 삼키며 게이트로 나섰다.

    '돌아간다...내 고향으로'

    그렇게 세상엔 괴물이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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