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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이 내게 집착한다-149화 (149/168)

149화

엘레노어는 의외로 무언가를 던지는 일에는 재능이 있었다.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어, 종종 귀엽게 자랑하곤 했다.

‘하지만 받는 건 또 잘 못한단 말이지.’

물론 부케를 전속력으로 던지지는 않을 테니, 웬만한 운동신경이라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엘레노어가 웬만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카이델이 조심스럽게 일어서서 엘레노어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혹시 모르니까.’

엘레노어는 카이델이 다가온 것도 모르고 자리에 서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친구의 부케를 받아 보는 것은 처음이라 가슴이 설렜다.

그때 힐데가르트가 뒤돌아 엘레노어와 눈을 맞췄다.

‘던진다. 받아.’

‘네, 걱정 마세요!’

눈빛으로 짧은 대화를 나눈 뒤, 힐데가르트가 다시 뒤돌아섰다. 엘레노어는 손을 내밀고 제게로 날아올 부케를 기다렸다.

휙.

부케는 약간 엇나가기는 했지만 안정적인 궤도를 그렸다. 엘레노어가 힘껏 팔을 뻗었다.

그런데…… 어라?

부케는 엘레노어의 손끝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망했다……!’

손끝에 매끈한 리본의 감각이 여운처럼 남았다. 엘레노어가 좌절감에 몸부림치며 눈을 질끈 감았던 그때였다.

“와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유쾌한 웃음이 따뜻한 공기 중으로 번져 갔다.

눈을 뜨고 힐데가르트를 보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녀가 보였다. 엘레노어가 조심스럽게 뒤돌아섰다.

“……!”

그러자 한 손에 부케를 든 카이델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잡았어.”

그 순간 엘레노어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온갖 색으로 가득한 이곳에서, 오롯이 그 혼자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도 놀라고, 아직도 설렌다는 게 신기해.’

언젠가 그에게 타르트를 찍어 건넸던 날이 떠올랐다. 아직 그에 대한 두려움도 채 가시지 않았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가 내민 타르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먹은 그가 꼭 저렇게 웃어 보였다.

사르륵 휘어지는 눈. 슬쩍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고른 치열. 뺨에 길게 팬 보조개.

웃자마자 무뚝뚝하던 인상이 완전히 변하는 걸 보고 어찌나 충격을 받았던지. 이제는 무뚝뚝한 얼굴보다 웃는 얼굴이 더 익숙한데도, 아직도 가끔은 심장이 철렁했다.

‘저런 남자가 내 약혼자라니.’

엘레노어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 순간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이델이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리저리 몸을 던지는 건 평생 내가 할 테니…….”

그가 엘레노어를 향해 부케를 건네며 미소 지었다.

“그대는 받기만 하면 돼.”

***

힐데가르트, 달리아, 버나데트는 이른 아침부터 발렌타인 공작저에 모였다.

오늘 세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임무가 있었으니, 결혼식 날 엘레노어가 입을 완벽한 드레스를 찾는 것이었다.

공작저의 넓디넓은 응접실은 온통 새하얀 드레스로 가득했다. 꼭 실내가 눈으로 완전히 뒤덮인 것 같은 풍경이었다.

“와…… 이게 다 엘레노어를 위해 만든 드레스들이라는 거죠?”

“어차피 입을 수 있는 건 딱 하나라는 걸 알면서도?”

“확실한 건 카이델 그놈도 제정신은 아니라는 거지.”

세 사람은 산처럼 쌓인 드레스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이내 눈을 반짝이며 드레스들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엘레노어를 꾸며 주는 일은 재미있었다. 뭘 입어도 예쁘니 자꾸만 흥이 났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다.”

엘레노어는 힐데가르트처럼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지만, 새하얀 도화지처럼 무엇을 걸치든 곧잘 소화해냈다. 마른 듯하면서도 은근히 볼륨이 있어서,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몸매였다.

“그건 너무 과감하지 않을까요?”

“아냐. 엘레노어는 목선이 예뻐서 이런 디자인도 괜찮다니까.”

“그렇기는 한데……. 아, 이런 건 어때요?”

“아, 그것도 괜찮다. 엘레노어, 이 순서대로 입으면 돼.”

고생은 오롯이 엘레노어의 몫이었다.

“또요……?”

엘레노어가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겨우 두 시간 만에 엘레노어의 뺨이 홀쭉해져 있었다.

달리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한참 남았어. 각하께서 보는 눈이 있으시네. 다 너한테 잘 어울리는 걸 골라두셨어.”

“그래서 더 고르기 힘든 것 같아.”

“그러니까. 난 아까 세 번째로 입어 본 드레스가 지금까지 중에선 제일 마음에 드는데.”

“난 방금 입은 거.”

“아, 그것도 예뻤지. 이거랑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달리아와 버나데트가 나란히 앉아 티아라 카탈로그를 살폈다.

“아 해 봐. 당 떨어질라.”

힐데가르트가 초콜릿을 들고 다가왔다. 엘레노어가 얼른 그것을 받아먹었다.

엘레노어가 일취월장한 힐데가르트의 제국어 실력을 칭찬했다.

“와, 이젠 그런 말도 아세요?”

힐데가르트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듀이랑 나랑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다고. 발음도 많이 늘었지?”

“네. 이제는 진짜 자연스러운데요?”

엘레노어가 꼴깍꼴깍 물을 들이켜곤 활짝 웃었다. 카이델과 연무장에서 운동할 때처럼 체력이 달렸다.

힐데가르트가 다 안다는 듯 슬며시 웃어 보였다.

“드레스 입어 보기 힘들지?”

“네……. 허리가 정말 끊어질 것 같아요.”

“나도 두 번은 못 하겠다 싶더라.”

힐데가르트가 엘레노어의 머리 위에 베일을 씌워 주며 말했다. 반짝거리는 티아라까지 얹자, 엘레노어는 당장 버진로드를 걸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눈부신 신부의 모습이 되었다.

“그러니까, 두 번은 없다고 생각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

힐데가르트가 어깨를 으쓱하며 작게 덧붙였다.

“네 신랑이 하는 걸 보아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힘들면 언제든지 나 찾아와. 내가 혼내 줄 테니까.”

“그럴게요. 든든하다.”

엘레노어가 눈썹을 찡긋하며 물었다.

“힐데는 결혼하니까 어때요?”

한창 깨가 쏟아지는 신혼을 즐기고 있는 힐데가르트가 뺨을 붉히며 웃었다. 그녀답지 않은 수줍은 미소였다.

“좋아. 요즘 너무 행복해. 살면서 이렇게 많이 웃은 적이 있었나 싶어.”

“정말요?”

“그럼. 벌써 보고 싶은걸.”

힐데가르트가 엘레노어의 손을 꽉 잡았다. 맞잡은 손을 통해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예쁜 내 친구. 너도 그럴 거라고 확신해.”

***

늦은 저녁, 카이델의 집무실.

타원형의 테이블을 둘러싸고 네 남자가 앉아 있었다. 카이델과 드와이트, 아드리안, 이즈멜이었다.

일종의 총각 파티였으나, 어둑한 방 안에는 한숨 소리만 울려 퍼졌다.

“하아.”

아드리안이 앞에 놓인 잔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 왔는지.”

이즈멜이 잔을 코 높이까지 들며 동의를 표했다.

“같은 생각이네. 귀한 술이라도 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정말 재미없을 뻔했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이 기댄 카이델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차갑고 서걱거리는 것이 엘레노어와 있을 때는 180도 달랐다.

그가 딱딱하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초대한 적이 없습니다만.”

“그래서 왔어.”

이즈멜이 슬쩍 눈을 휘며 말했다.

“자네에게 초대장이 왔다면 코웃음을 치며 던져 버렸을 텐데…….”

와인의 향을 음미하던 그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안 오니까 그것도 묘하게 기분 나쁘단 말이지. 그래도 인연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카이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전하께서는 성격이 좀 이상하십니다. 아십니까?”

“그래, 바로 그 얼굴이 보고 싶었지. 벌레라도 씹은 것 같은 그 표정.”

“허.”

“요즘 답지 않게 너무 웃고 다녀서 배가 아프더군.”

아드리안이 서늘하게 웃으며 손안에서 와인 잔을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엘렌이 속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지금 얼굴이 본모습에 가까울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드와이트, 엘레노어의 오빠로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갑자기 제게로 질문이 돌아오자, 드와이트가 습관처럼 허리를 바로 세웠다.

“저는 각하가 제 매부라는 데 더없이 만족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지?”

“이유야 많지만…….”

잠시 머뭇대던 드와이트가 솔직하게 고백했다.

“제 결혼 선물로 수도에 있는 저택을 주셨잖습니까. 저는 무조건 각하 편입니다.”

아드리안이 못마땅한 눈으로 드와이트를 보며 물었다.

“평생의 우정은, 잊었냐?”

드와이트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보니 그런 것 같네. 잊었어.”

“치사한 놈.”

이즈멜도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꼬박꼬박 녹을 받지 않았나?”

“월급을 건드리시는 건 너무합니다, 전하. 제가 얼마나 뼈 빠지게 일을 했는지 아시는 분이…….”

“퇴직금도 내가 얼마나 신경 써 줬는데. 내 정성이 느껴지지 않던가?”

이즈멜의 말에 드와이트가 명쾌하게 대답했다.

“느껴졌습니다만, 그래도 저택이 더 비쌉니다.”

카이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 뫼젠까지 오가는 길이 좀 고단하지 않으십니까?”

카이델의 말에 드와이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차라면 며칠 전에 이미 선물로…….”

카이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길을 새로 닦을까 합니다. 저번에 가 보니 포장되지 않은 길목이 많더군요. 오갈 때 몸이 피곤하실 듯해서 염려가 되었습니다.”

카이델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이즈멜과 아드리안을 대할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부란 이런 것이다.’

카이델의 주변에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되면 두 분께도 제가 선물을 드리는 셈이 됩니다. 전하께서는 도로공사에 쓸 국고를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으실 테고, 브로든 상단도 운송 과정이 훨씬 매끄러워질 테니…….”

세 사람은 말할 의욕을 잃고 말았다. 나라와 나라를 잇는 길을 다시 닦는 것은 보통 작업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선물로 턱턱 안겨 주는 것도 놀라운데, 카이델에게 그것이 전혀 무리가 아니라는 점이 더더욱 놀라웠다.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델이 벽장에서 술 한 병을 꺼내왔다.

“어쨌든 축하해 주려 여기까지 걸음 하셨으니, 오늘 좋은 술만큼은 아낌없이 내어드리겠습니다.”

병에 붙은 라벨을 살피던 이즈멜이 눈을 크게 떴다.

제국에 단 세 병뿐인 귀한 와인이었다. 그는 이 한 잔의 가격이 말 한 필에 맞먹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즈멜이 진심 어린 호기심으로 물었다.

“우리에게 이런 걸 턱턱 내어주고 나면, 엘레노어에게는 대체 뭘 선물할 생각이지?”

“제가 가진 모든 것.”

카이델은 손님들의 잔을 손수 채워 주며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엘레노어를 떠올리고 있는 것인지, 그의 미소가 더없이 부드러웠다.

“그러니, 저를 선물한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요.”

카이델의 말에 이즈멜과 아드리안의 얼굴이 와락 구겨져 들어갔다.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투덜거렸다.

“엘레노어가 이른 시일 내에 환불받아야 할 텐데.”

“교환이라든지요.”

“가능하면 아주 뼛속까지 털어 주었으면 좋겠군.”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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