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독사과-139화 (139/139)

제 139 화

“으흠- 으읏!”

키안의 입술 새로 만족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너 역시 날 원했던 모양이군.”

키안의 반응에 세이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곤 더욱 집요하게 입안을 헤집곤 혀를 얽어왔다. 키안은 몸속에 이는 뜨거운 열기에 몸을 떨었다. 그러다 세이란이 입술을 뗀 순간 거친 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도미니크 대신관께선 무사히 깨어나셨습니다.”

그녀의 말에 세이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엘렌을 만난 모양이군.”

“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말했고?”

“여행을 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키안의 말에 세이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버지와 함께 가겠군.”

세이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 공식적으로 황제인 윈슬러는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엘렌의 도움으로 죽음 직전에서 깨어난 것이다.

“네. 폐하의 몸이 회복되면 곧바로 떠날 모양이었습니다. 국혼엔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황좌를 세이란에게 물려주면서부터 정해진 일이었으니까.

“너는 어때?”

세이란의 눈동자가 초조한 듯 키안의 표정을 살폈다. 엘렌을 통해 레녹스가에 벌어진 모든 불행한 사건에 아버지인 윈슬러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황제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키안의 말에 세이란이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아버지께서 제일 잘하신 일은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널, 내가 있는 로열 아카데미의 기숙사에 넣었다는 것이다.”

“저 역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땐 몰랐었다. 자신을 테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로열 아카데미에 보냈다는 사실을. 그래서 원망했었다. 아니, 자책했었다.

그때 세이란이 고갤 들어 키안의 턱을 붙잡곤 자신을 보게 했다.

“키안, 내가 아버지 대신 사과하겠다.”

키안이 고갤 가로저었다. 사실 며칠 전 만난 엘렌이 윈슬러의 편지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편지에 적힌 내용을 통해, 황제인 그의 고뇌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 역시.

“전 괜찮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천 년 전의 인연으로 인해 많은 이가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 상처를 품고 평생을 속죄하며 살아가야 할 수도 있었다.

“키안, 넌 나에게 독사과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너무도 매혹적이라 삼킬 수밖에 없었다.”

세이란이 꿈을 통해 미래를 본 순간부터 그랬다. 키안을 살리는 건, 유스타나 제국의 황제로서의 완벽한 삶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키안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해도 자신의 손에 쥐어진 독사과를 놓을 수 없었다.

“절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순간 그가 입술을 겹쳐 왔다. 그러곤 입술을 핥고 혀를 얽어오자, 또다시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세이란이 손을 뻗어 키안의 벨트를 풀었다.

“아, 미치겠군. 앞으로 바지는 금지다, 키안 레녹스. 쉽게 풀 수가 없잖아.”

성급한 열정에 벨트가 풀리지 않자, 성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키안의 바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읏- 아음!”

순식간에 파고든 그의 남성을 받아들이며, 키안이 허릴 비틀었다. 온몸으로 퍼지는 쾌락의 열기에 키안은 기쁜 듯 몸을 떨었다.

“하아, 미치는 줄 알았다. 널 안고 싶어서.”

“읏, 저 역시……. 하흣!”

내벽을 긁듯 거칠게 파고드는 그의 남성으로 인해 키안의 허리가 위험스럽게 비틀렸다. 단 한 번의 진입으로 절정에 다다르다니.

키안은 격정에 몸을 떨며 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 빨라. 난 아직 시작도 않았는데 말이야.”

그 말과 함께 세이란이 그동안 참아왔던 욕망을 채우기 시작했다. 마치 이성의 고삐가 풀린 듯 세이란은 미친 듯이 키안의 몸을 탐했다.

서로에게 열중한 나머지 그곳이 시녀들의 통행이 잦은 장소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흠, 흠­”

시종장 아이크는 헛기침을 하며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얼굴을 붉힌 채 그쪽으로 통행하려는 시녀와 시종들을 쫓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세이란과 키안은 쾌락에 몸을 떨며,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욕망을 욕심껏 채웠다.

**

유스타나 제국의 황제 세이란과 키안 레녹스 공작의 결혼식 날이 밝았다.

대신전에서 열리는 결혼식을 보기 위해 키엘체의 거리는 이른 새벽부터 제국민들로 가득했다.

그들의 손엔 새로운 황제와 아름다운 황후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꽃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셀서스 궁의 성문이 열렸다. 그러곤 흰색과 금빛으로 수놓인 황실 기사단의 제복을 입은 기사들이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나왔다.

이내 구스타프 황실의 문장이 그려진 마차가 모습을 드러냈고,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인 황제 세이란과 키안이 마차에 앉아 제국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황제 폐하와 레녹스 공작님이야.”

“쯧쯧, 이제 공작님이 아니라 황후시라고.”

옆 사람의 타박에 구경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뭐라고 부르면 어때? 두 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랑 신부라는 게 중요하지.”

그 말에 동의하듯 사람들은 준비해 온 꽃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키안은 제국민들이 뿌려주는 꽃잎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쁜 모양이군. 내 신부가 되는 게.”

세이란의 말에 키안이 그를 흘끗 보자, 그의 입꼬리가 기쁜 듯 올라가 있는 게 보였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국민들을 속인 자신을 황후로 받아들여 주다니. 키안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젠 카이우스도 모자라, 제국민에게 질투를 느껴야 하다니.”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놀라 키안이 그를 보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와는 달리 여전히 입가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질투는 제가 해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어젯밤에도 폐하께선 제국법을 바꾸기 위해 대신들과 밤새 회의를 하신 걸로 아는데요. 결혼식 전날에도 회의라니.”

“설마 날 기다린 것이냐?”

“기다린 적 없습니다. 다만 벨라가 새벽까지 눈을 부릅뜨고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결혼식을 치르기 전, 신랑이 신부를 보러오는 풍습을 구경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폐하께서 오시지 않아서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키안이 서운한 듯 그 사실을 꼬집어 말하자, 세이란이 미안한 얼굴을 했다.

“다 계획이 있어서 그랬다.”

“계획이라고요?”

“그래.”

“그게 뭡니까?”

키안의 물음에 세이란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바로 말하는 대신 흰색 드레스에 베일을 쓰고 있는 키안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오늘 내가 너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했던가?”

순식간에 키안의 볼이 핑크빛으로 물들자, 세이란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와아아아!”

갑작스러운 세이란의 행동에 그들을 지켜보던 제국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키안이 붉어진 뺨을 감추기 위해 고갤 숙이려 하자, 세이란이 그녀의 턱을 붙잡곤 제지시켰다.

“앞으로 고개 숙이지 마.”

키안은 세이란의 녹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갤 끄덕였다. 이제 키안 레녹스는 죄인이 아니다. 황제 세이란 구스타프의 신부였다.

“그나저나 뭡니까? 그 계획이란 것 말입니다.”

키안이 다시 묻자, 세이란이 키안 쪽으로 고갤 숙였다. 그러곤 낮게 속삭였다.

“오늘 새벽까지 일을 모두 처리해, 2주간 너와만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난 그 2주 동안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계획이고. 어때? 마음에 드는 계획인가?”

키안이 대답하려는 순간 마차가 멈췄다. 어느새 결혼식이 열리는 대신전에 도착한 것이다.

드레이크가 말에서 내려 마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세이란이 먼저 마차에서 내린 후, 키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키안.”

세이란이 속삭이듯 그녀를 불렀다. 자신에게 내밀어진 그의 손을 바라보던 키안이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제가 지금까지 들은 계획 중 가장 완벽한 것 같습니다.”

키안이 바닥에 말을 내딛기 직전 세이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세이란이 눈을 빛내며 키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시치미를 떼며, 제국민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키안, 최대한 빨리 결혼식을 해치우는 게 좋겠다. 나는 한순간도 머뭇거리고 싶지 않거든.”

벌써부터 키안과 보낼 2주를 생각하자 온몸이 뜨거워졌다.

순간 세이란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리 사이에 자리한 남성이 반응하려 하고 있었다.

아아, 미치겠군. 이러다 결혼식 날 아래를 세운 신랑으로 역사서에 기록될까 봐 무서울 정도였다.

“키안, 나 참지 못할 것 같다.”

세이란의 속삭임에 키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것을 보곤, 얼굴을 붉혔다.

“맙소사. 안 됩니다, 폐하!”

생각보다 목소리가 커서인지 드레이크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드레이크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드레이크, 대신관을 협박해 최대한 빨리 결혼식을 끝내도록 해.”

“네?”

드레이크가 세이란의 명령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키안이 재빨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드레이크 경, 폐하의 말은 신경 쓸 필요 없다. 밤새 회의를 하셔서 피곤하신 모양이야.”

“아, 네.”

드레이크가 먼저 대신전의 계단을 올랐다. 그러곤 굳게 닫혀 있던 신전의 문을 열었다.

땡, 땡, 땡!

신전의 종탑에선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종이 울려 퍼졌고, 하늘에서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잎이 눈처럼 흩날렸다.

“준비됐어?”

키안이 고갤 끄덕이자, 세이란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붉게 깔린 카펫 위를 두 사람은 한 걸음 한걸음 걸어 올라갔다.

마지막 계단에 오른 두 사람은 대신전으로 들어가기 전 제국민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곤 환호하며 기뻐하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세이란의 손을 잡고 대신전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문이 닫혔다.

또 하나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날 때쯤엔, 새로운 문이 열릴 터였다.

새로운 역사가 될, 유스타나 제국의 문이.

The end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