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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독사과-135화 (135/139)

제 135 화

진이 초조함을 감추곤 서둘러 테란의 막사를 빠져나왔다. 아무도 없는 숲에 다다르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다행이야, 들키지 않아서.”

처음엔 분명 자신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약을 제조하러 갔다던 말을 들은 후엔 다행히 납득한 듯 보였다.

‘그나저나 계획이 수정되었다니. 서둘러 패트리샤에게 알려야 해.’

하지만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패트리샤는 자신에게 절대 오두막을 나와선 안 된다고 했었다.

분명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은 자신에게 화를 낼 터였다. 그렇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북쪽 숲에 독을 풀어 황태자 전하와 레녹스 공작을 위험에 빠뜨린 것에 대한 죗값을 조금이라도 치르고 싶었다.

그래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연관된 레녹스 공작 부처의 마차 사고 역시 자신의 짐작이 맞는다면 레녹스 공작가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진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랜슬롯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나무 뒤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놀란 진이 고갤 들자, 검은 코트를 입은 여인이 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너무도 평온하군.”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밤이었다. 마치 어둠이 모든 추악하고 위험한 것들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내일은 블랙으로 제국민 앞에 서시겠네요.”

키안이 창문 앞에 서서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세이란 옆에 섰다.

“응. 아마 지금쯤 그들의 귀에 내가 블랙이란 정보가 들어갔을 거야.”

“황실 기사단이 전하와 함께 있을 겁니다.”

“든든하군. 하지만 지금은 날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키안이 고갤 들자, 세이란이 손을 뻗어 키안의 제복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자, 잠깐. 뭐하시는 겁니까?”

“이런 것,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왠지 배덕해 보이잖아. 남자의 제복을 풀어내는 것 말이다.”

세이란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키안을 내려다보며, 마저 단추를 풀어 내렸다.

“이런 취미가 있으셨습니까? 완전 변태셨네요.”

“너, 내 성적 취향에 대해 불만이 많은 모양이군. 지금까지 좋아했으면서 말이야.”

“제가 언제……?”

순식간에 키안의 뺨이 붉어졌다.

“그럼 지금부터 좋아하게 만들어야겠군. 다신 불만을 갖지 못하도록 말이다.”

세이란이 고갤 숙이더니 키안이 입술에 키스를 해왔다. 살짝 입술이 떨어진 사이 키안이 낮게 속삭였다.

“저기, 밤이 늦었습니다. 셀서스 궁으로 돌아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갈 거야. 조금 있다가.”

세이란이 키안의 턱을 붙잡았다. 그러곤 턱을 기울이더니 더욱 깊숙이 혀를 얽어왔다.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침대까지 가는 것조차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그가 벽으로 키안을 밀어붙였다.

“흐읏-”

입술을 떼지 않은 채 옷이 벗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입술이 귓불을 삼켰다. 뜨거운 열기에 키안이 어깨를 움츠리자, 세이란이 그녀의 양 어깨를 누르며 부풀어 오른 가슴을 핥아 내렸다.

뜨겁고 말캉한 혀가 가슴을 삼키고 집요하게 괴롭혔다. 아릿한 아픔과 함께 짙은 쾌락이 회오리치듯 밀려들었다.

“아하-”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키자, 세이란이 더욱 집요하게 가슴을 빨아 당겼다.

“흐음, 그만…….”

“정말 그만두길 바라는 건 아니지?”

고갤 든 그가 짓궂게 물어왔다. 정말 이럴 때 보면 장난기가 넘치는 아이 같았다.

“원합니다. 그 어떤 순간보다, 지금 전하를 원합니다.”

세이란이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그의 짙은 녹색 눈동자가 어느새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천 년 전에도, 지금도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건 오직 너다.”

그의 말에 키안은 유스타나 제국을 세운 구스타프 1세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억이 났다.

이상하게 여겼었다. 황제가 황후를 맞아들이지 않다니.

‘한 사람밖에 담을 수 없는 심장이었기 때문이었던 거야. 몸도 마음도.’

키안이 손을 뻗어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 순간 키안의 몸이 위로 들렸다. 이내 등에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흣, 하아-”

예고도 없이 뜨겁고 단단한 그의 남성이 애액으로 젖은 입구를 열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갑작스럽게 이뤄진 결합에 키안의 허리가 야릇하게 비틀리며 그의 남성을 힘껏 조였다. 버거운 듯 내벽 안쪽의 여린 속살이 바들바들 떨렸다.

“들어가자마자 이렇게 조이다니.”

그의 나른한 속삭임에 키안의 얼굴은 물론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건 너무 커서…….”

“지금 칭찬하는 것이냐?”

“칭찬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겁니다. 그러니 천천히 움직……. 읏!”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남성이 키안의 내벽을 파고들었다. 뭉툭한 남성의 끝이 내벽을 긁으며 진퇴를 거듭했다.

“흐음-”

순식간에 젖은 내벽이 강하게 수축하며 그의 남성을 조였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결합된 밀부가 하나처럼 녹아내렸다.

짙은 쾌락에 몸을 떨며, 세이란이 키안의 입술에 키스했다. 타액으로 젖은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그럴수록 안타까운 듯 서로의 입술을 찾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건 비단 입술뿐만이 아니었다. 애액으로 젖은 밀부의 입구를 파고드는 남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땀으로 젖은 몸이 하나처럼 얽혀 흔들릴 때마다 결합된 부분에서 야릇한 소리가 났다.

“하아, 으음- 아앗! 제발 천천히…….”

아찔한 쾌락에 키안이 입술을 깨물며 바들바들 떨었다. 두려웠다.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정도로 농밀한 쾌락이 몸이 떨렸다.

하지만 키안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세이란의 움직임은 더욱 거칠고 집요하게 변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겹쳤다. 날이 밝으면 어떤 위험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두 사람의 몸짓은 안타까울 만큼 절박했다.

끝없이 계속되는 행위에 키안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짙은 격정이었다. 그래서 키안은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매달리는 것 외엔 할 수가 없었다.

쾌락의 파도가 두 사람을 휩쓸었고, 야릇하게 흔들리는 두 사람의 몸 위로 새벽의 여명이 비춰들기 시작했다.

**

검술 대회의 두 번째 날이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원형 경기장 안은 시합을 보기 위해 온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오늘 시합에 용병 블랙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서 경기장의 열기기 한층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다 황태자 전하께서도 시합에 나오시는 것 아냐? 용병 블랙을 대적할 만한 사람은 전하뿐이실 테니 말이야.”

“레녹스 공작님은 왜 빼는데? 그분 역시도 검술에선 뒤지지 않는 실력자인 걸 모르는 거야?”

“하지만 그분은 이제 황태자비시잖아.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대회에 참석하겠어?”

“이제 그러시려나?”

“당연하지.”

“그런데 어제 황태자 전하 옆에 서계실 땐, 여전히 황실 기사단의 제복을 입고 계셨잖아. 거기다 대신전의 광장에선 죄인이긴 하지만 어린 소녀에게 날아드는 돌을 몸으로 직접 막으시기도 하고.”

“그건 그렇지. 나도 그 모습을 보며, 역시 레녹스 공작님이란 생각이 들었거든.”

사실 대신전의 광장에서 보여준 키안의 모습은 제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어린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다니.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귀족가의 레이디라면.

“저기 공작님이야.”

사내의 말에 주위에 있던 구경꾼들의 시선이 원형 경기장의 로열석으로 향했다.

오늘도 기사단 제복을 입은 키안의 옆엔 은빛 늑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다시 봐도 유스타나 제국 신화에 등장하는 수호수를 닮지 않았어?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가?”

“하지만 늑대일 뿐이라잖아.”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원형 경기장에 모인 구경꾼들의 시선은 은빛 늑대에서 떠날 줄 몰랐다.

부우우웅~!

그때 시합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리자 귀족들은 물론, 경기장으로 몰려든 구경꾼들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숨을 죽인 채, 본선에 진출한 용병들이 나오길 기다렸다. 아니, 용병 블랙의 등장을 기다렸다.

“황태자 전하께서 보이시지 않는군요.”

옆에서 들려온 제임스 에버콘 공작의 목소리에 키안이 고갤 돌렸다.

“전하께선 폐하를 뵈러 가셨습니다. 곧 도착하실 겁니다.”

“그렇군요. 전 또 가면이라도 쓰고 검술 대회에 참가하는 줄 알았지 뭡니까. 언제든 말동무라 필요하시면 말씀하십시오, 레녹스 공작. 아니, 이젠 레이디 레녹스라고 불어야겠군요.”

제임스의 입가가 냉소로 비틀리며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키안이 서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버콘 공작님, 앞으로 저를 황실 기사단의 단장인 키안 레녹스로 불러주십시오. 저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키안의 단호한 태도에 제임스 역시 뭐라 꼬투리를 잡을 수 없는지 고갤 돌렸다.

그때 구경꾼들의 함성 소리가 원형 경기장을 울렸다. 서둘러 고갤 돌리자, 검정색의 갑옷을 입고 얼굴에 가면을 쓴 블랙이 막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경기장을 압도하는 강한 카리스마에 구경꾼들 역시 숨을 죽였다.

블랙은 등장만으로 이미 유스타나 제국민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렸다.

‘아무 일 없을 거야. 긴장할 것 없어.’

키안은 떨리는 손을 꼭 마주 잡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체 뭐지? 이 불길함의 정체는?’

키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제임스 에버콘 쪽으로 고갤 돌렸다. 그러다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헬로이즈 공주의 보랏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내 헬로이즈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헬로이즈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키안은 헬로이즈의 입술을 읽는 데 집중했다.

“세 번째 신탁.”

세 번째 신탁이라고? 키안은 세 번째 신탁이란 말에 엘렌이 유스타나 제국에 내려졌다던 세 개의 신탁을 떠올랐다.

‘하지만 세 번째 신탁은 내 쌍둥이 오빠가 아니었던 건가?’

키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헬로이즈를 바라보았다.

만약 내 오빠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 순간 헬로이즈의 보랏빛 눈동자가 햇살을 받아 날카롭게 빛났다.

‘보랏빛 눈동자라…….’

잠깐…….

“꿈에서 보았어. 내 오라버니였던 마법사 마기코스의 눈동자와 같아.”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었다. 그런 착각을 하다니. 당연히 이번 생도 당연히 자신과 쌍둥이로 태어났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천 년 전 쌍둥이 마법사가 헬로이즈 공주로 환생하다니.

키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황제의 독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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