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독사과-128화 (128/139)

제 128 화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헬로이즈 공주님.”

키안은 마주 앉은 헬로이즈의 보랏빛 눈동자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말 그대로입니다. 황태자 전하께선 그대를 살린 대가로 죽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 말은 전하께서 전쟁터에서 죽을 운명이던 날 살렸단 건가요? 그리고 대가가 전하의 목숨인 거고요?”

“이제야 제대로 이해한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전하께선 그대 때문에 죽게 될 것입니다.”

진실이었다. 황태자인 세이란이 키안 레녹스에겐 절대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 하지만 헬로이즈는 그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세이란이 키안 레녹스를 싸고돌면 돌수록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아주 깊고 잔혹한 상처를.

그렇게 되면 상처받은 키안 때문에 세이란 역시 아파할 테니까.

“전하께서도 알고 있나요?”

“당연히 알고 계실 겁니다. 마지막 전투에서 예언의 별 아래 태어난 루틴 공작을 만났을 테니까요. 그가 경고했을 겁니다. 정해진 미래를 바꾸는 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키안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려 애썼다.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세이란이 미래를 보았고, 자신을 살리기 위해 미래를 바꿔 버렸다니.

“그렇게 당신 대신, 그분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황태자 전하도 죽을 겁니다. 당신 하나 때문에.”

헬로이즈의 보랏빛 눈동자에 원망이 묻어 있었다. 지독한 슬픔과 함께 당장에라도 키안의 목을 조르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분노가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게 상처를 주고 싶은 모양인데, 실패한 것 같군요. 그 정도론 내 심장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이 그렇게 말랑하지 않아서.”

키안의 담담한 목소리에 헬로이즈가 주먹을 꼭 쥐는 게 보였다.

“정말 이기적이군요.”

“이기적인 건 당신입니다. 어제 그대가 제게 알려주었지요. 내 오빠와 부모님이 테란인의 손에 죽었다고. 그런데 뻔뻔하게도 채 하루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테란의 공주인 그대가 날 찾아와 원망을 말을 쏟아내다니.”

낮게 울리는 키안의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헬로이즈는 키안의 서늘한 기세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어쨌다는 거죠? 나 역시 내 사람을 잃었습니다.”

헬로이즈가 격앙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러자 키안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게 경고했다.

“난 지금 당장에라도 그대의 목에 검을 찔러 넣고 싶은 걸 참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죽고 싶지 않거든, 돌아가세요.”

“당신 가족에게 생긴 일은 다 당신의 운명이…….”

“운명이라고 했나요? 그게 대체 뭐죠? 누군가의 선택으로 바뀔 수 있는 게 과연 진짜 운명일까요? 나는 그런 의문이 드는군요. 지금 이것이 정해진 미래란 생각이. 혹시 그런 생각을 공주께선 해보지 않았나요?”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죠? 이것이 정해진 미래였다니. 절대 아니에요. 바뀌기 전의 미래엔 내가 유스타나 제국의 황태자비였습니다. 전하의 옆자린 당신이 아니라 제 것이었단 뜻이죠. 그리고 나와 전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유스타나 제국의 주인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키안의 속을 뒤집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키안의 하늘빛 눈동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오히려 더 냉정해질 뿐이었다.

“이제야 알겠군요. 그대의 운명을 망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대의 욕심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미쳤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려거든 당장 그만둬.”

흥분한 헬로이즈가 예의 따윈 집어 던진 채 소릴 질렀다. 그 모습을 보며 키안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분명 그대에게도 그대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구할 기회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선택하지 않았고, 그 결과 사람을 잃은 겁니다. 세이란 님과는 달리.”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런 기회 따윈 없었어. 완벽한 미래가…….”

키안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헬로이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세이란 님께선 하셨습니다. 그러니 헬로이즈 공주님,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스스로를 원망하세요. 욕심 때문에 모든 기회를 놓친 당신 스스로를.”

헬로이즈의 보랏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키안이 지적할 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뭔가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당신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내게 당신을 죽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 망설이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죽인 원수입니다. 만약 다음번에 당신을 만나게 된다면, 내 목숨을 걸고 그대를 죽일 겁니다. 그러니 각오하세요. 이건 빈말이 절대 아닙니다.”

키안의 말에 흔들리던 헬로이즈의 보랏빛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흥분으로 벗어 던졌던 예의 역시 되찾은 듯 다시 공주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내 생각과 같군요. 사실 나 역시 그 말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다음에 그대를 만났을 땐, 그대를 죽일 것이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두 사람의 싸늘한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엔 냉기가 가득했다.

“서로 할 말은 끝난 것 같군요.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키안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그러곤 헬로이즈를 혼자 남겨둔 채 방을 나왔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언제 왔는지 황실 기사단의 드레이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문밖에 서 있었다. 그 옆엔 헬로이즈 공주의 호위기사인 이고르가 있었다.

“난 괜찮다. 이고르, 들어가 공주님을 모시고 가도록 해요.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드레이크, 우린 기사단으로 간다. 기사들에게 해야 할 얘기가 있거든.”

키안의 말에 드레이크가 고갤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연병장에서 단장님께서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시지요.”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은 황실 기사단이 모여 있는 연병장으로 향했다.

**

패트리샤는 손에 쥔 검을 내려놓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평소처럼 검술 훈련 중이었지만, 주위를 살피는 패트리샤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하필 저자의 막사 옆이라니. 아니, 운이 좋은 건가? 의심을 사지 않은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그를 감시할 수 있으니 말이야.’

패트리샤는 술집 랜슬롯에 이고르와 만났던 테란국의 기사인 알버트를 쏘아보았다. 검을 쥔 모습하며, 날렵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그 역시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블랙 님만큼 뛰어난 자야.’

패트리샤는 알버트의 실력을 확인한 후 자신의 막사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까지 진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자릴 비운 후 움직일 테지. 그렇다면, 미끼를 던져야겠군.’

패트리샤는 검을 든 채로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벌써 훈련을 다 한 거야?”

막사 안을 청소하고 있던 진이 패트리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잠깐 다녀올 곳이 있어서 나갔다 오려고.”

“그래? 어딘데?”

진이 깨끗하게 세탁된 수건을 패트리샤에게 건네며 관심을 보였다.

“테란에 갔던 정보원이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거든.”

“테란의 정보원? 그런 게 있었어?”

“응. 그동안 국경이 막혀올 수 없었는데 가까스로 돌아온 모양이야. 가서 만나봐야지. 중요한 정보를 아주 많이 가져왔을 테니까.”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하고 있었지만, 패트리샤의 시선은 진의 표정을 날카롭게 살피고 있었다.

“그렇다면 서둘러야겠네. 어서 가봐. 검은 내가 정리해 놓을 테니까. 내가 네 종자잖아.”

진이 패트리샤가 들고 있는 검을 받아 들며 말했다.

“연습용이긴 하지만 날카로워. 조심해. 다칠 수 있으니까.”

“걱정 마. 이 정도쯤은 할 수 있으니까. 내가 누구 친군데.”

패트리샤가 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음이 복잡했다. 평소라면 당장에라도 테란의 첩자냐고 묻고,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패트리샤는 기다릴 생각이었다. 진이 먼저 얘길 해주길.

그래서 지금 덫을 놓고 있었다. 아니, 기회를 주고 있었다.

“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니야. 오랫동안 보아왔는데도 네가 낯설게 느껴져서.”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오늘 화장을 많이 했거든. 잘생긴 기사들이 아주 많은 것 같아서 말이야.”

진이 붉게 칠한 입술을 내밀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 모양이야. 낯선 이유가 예뻐져서 그런 것 같아. 그럼, 다녀올게. 랜슬롯에서 만나기로 했거든.”

패트리샤는 진에게 약속 장소까지 말한 후 막사를 나왔다.

“진,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 그자에게 가지 마.”

패트리샤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테란의 첩자가 아니길.

**

키안과 드레이크가 황실 기사단의 연병장 앞에 멈춰 섰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단장님?”

드레이크가 키안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실망했을 거야. 지금까지 내가 그들을 속여왔으니까.”

사실 이런 나약한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드레이크의 물음에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불안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단장님께선 어떻게 하셨을 것 같으십니까? 황실 기사단의 누군가가, 아니, 제가 제국법을 어기는 죄를 지었다면 말입니다.”

“그거야 당연히 타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도왔겠지.”

키안이 두 번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드레이크의 눈빛에 안도의 감정이 떠올랐다.

“저희 역시 그렇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저희의 목숨을 단장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단장님과 황태자 전하께선 저희를 무사히 지켜내셨고요. 황실 기사단은 황태자 전하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만, 단장님이신 레녹스 공작님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저희에게 단장님은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니 저희를 마주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드레이크의 말에 키안이 주먹을 꼭 쥐었다.

“거짓말쟁이를 믿어주는 건가?”

“저흰 저희가 눈으로 본 것만을 믿습니다, 단장님.”

“고맙다, 드레이크.”

키안이 천천히 숨을 고른 후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두려웠다. 황실 기사단은 레녹스 공작으로 살아온 키안에겐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단장님, 괜찮으신 겁니까? 스텐호프 기사님의 말론 머리에 상처가 나셨다고 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연병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레오가 키안을 발견하고 재빨리 뛰어왔다.

“아,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보시다시피 다 나았고.”

아레오가 키안의 말을 확인하려는 듯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다.

“호들갑은. 단장님께선 괜찮으니, 그만 물러서도록 해.”

드레이크가 핀잔을 주자, 아레오가 입을 내밀며 볼멘소리를 했다.

“드레이크 님께선 맨날 나만 혼내신다니까요. 전 그냥 걱정되어서 그런 것뿐인데 말입니다.”

키안은 드레이크와 아레오가 평소처럼 말씨름하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사무엘 스텐호프와 눈이 마주쳤다.

“크게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단장님.”

“걱정해 줘서 고맙다.”

“스텐호프 기사님뿐만 아니라 저희 모두 걱정했습니다, 단장님.”

아레오가 다시 끼어들자, 이번엔 드레이크가 주먹으로 아레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 입 좀 제발 다물어.”

“아얏, 너무하십니다. 그 큰 주먹으로 제 머리를 박살 내려 하시다니 말입니다.”

“너, 진짜…….”

“드레이크 경, 괜찮다.”

키안의 말에 드레이크가 아차 싶었는지 재빨리 평소의 무뚝뚝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단장님.”

“아니야.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평소와 다름없는 것 같아서.”

키안은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을 대하는 기사들을 보며, 안도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단장님께 의논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

“검술 대회에 참가하는 용병들이 너무 많아 예선전을 치러야 할 상황입니다. 하지만 대회가 열리는 날까지 예선전을 치를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입니다.”

“그럼 오늘 오후부터 당장 예선전을 치러야겠군. 지금 바로 공고하고, 준비가 되는 대로 시작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단장님.”

키안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드레이크가 일사불란하게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단장님, 저기…….”

“묻고 싶은 게 있으면 해도 좋다, 아레오.”

“그게 신탁에 대한 얘길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직접 단장님께 듣고 싶습니다.”

순간 키안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황실 기사단의 기사들이 자신이 단장의 자리에 있는 걸 원치 않는다면, 당연히 물러날 생각이었다.

“그래, 사실이다.”

“그럼 단장님께서 황태자비가 되신 이후에 황실 기사단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기사단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새로운 단장님을 뽑는 건가 해서요.”

아레오의 말에 황실 기사단의 기사들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지는 게 보였다.

“그건 황태자 전하께서 결정하실 것이다. 새로운 단장이 오게 될 수도 있고.”

“저희는 원치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단장님은 원치 않습니다.”

키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구 할 것도 없이 한목소리를 냈다. 그때까지 미동도 없던 키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깊은 신뢰를 담고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들을 보자, 심장이 뜨거워졌다.

“내가 여인인데도…….”

“저희에겐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장님께선 오직 실력만으로 이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 그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겁니다.”

드레이크의 단호한 목소리에 기사들 역시 고갤 끄덕였다.

“나는…….”

“황실 기사단에 새로운 단장은 없을 것이다.”

갑작스레 들려온 세이란의 목소리에 키안을 비롯해 기사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당분간 기사단의 단장은 바뀌지 않는다. 레녹스 공작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세이란이 키안의 옆에 서며 말했다. 그러자 어두웠던 기사단의 얼굴이 밝아졌다.

“레녹스 공작, 그대 생각은 어때?”

“저는…….”

키안은 잠시 말을 멈추곤 자신의 바라보고 있는 기사들을 쭉 둘러보았다. 기대감에 눈을 빛내고 있는 기사들을 보자, 또다시 가슴이 벅차올랐다.

“황실 기사단의 기사들이 원하는 한, 이대로 있고 싶습니다.”

“그렇다는군. 이제 이런 쓸데없는 것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움직이도록 해. 이틀 후에 있을 검술 대회에 키안 레녹스 공작과 함께 참가할 생각이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키안이 놀란 표정으로 세이란을 보았다.

“귀족 회의의 결정이다. 그날 유스타나 제국의 황태자비로서 내 옆에 서야 할 거야.”

“저는…….”

“키안, 난 이 순간을 너무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네가 내 옆자리에 당당히 서는 날을 말이다.”

세이란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서 있는 키안의 뺨을 쓸어주었다.

“전하.”

놀란 키안이 기사들을 의식하며 그의 손을 밀어내려 했다.

“걱정할 것 없다. 이미 너와 나에 대한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서 우리가 뭘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뻔뻔하기까지 한 그의 태도에 순간 어이가 없었다.

“지금 뽀뽀하실 겁니까?”

아레오가 한술 더 떠서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러자 키안이 처음으로 얼굴을 붉히며, 세이란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미안하지만 뽀뽀는 아니다. 키스라면 모를까.”

그 말과 함께 세이란이 키안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러곤 저항할 새도 없이 고갤 숙여 키안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와아아-”

“휘익- 휙!”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고, 입으로 휘파람을 부는 이들도 있었다. 입술을 뗀 세이란이 키안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널 아끼는 자들의 함성이다, 키안. 그러니 절대 물러서지 마.”

황제의 독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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