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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독사과-74화 (74/139)

제 74 화

그의 속삭임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귓가에 울리는 심장 소리가 그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를 붙잡은 걸, 후회하지 않았다. 아마 후회는 아주 먼 미래에 하게 될지도 몰랐다.

좀 더 오래, 그리고 좀 더 많이 그를 눈에 담아둘 걸 그랬다며 안타까워할 게 분명했다.

“키안…….”

열기로 젖은 그의 목소리가 귓속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그가 손을 뻗어왔다. 뺨에 그의 손이 닿는 순간, 입술이 겹쳐졌다.

두 사람을 삼킨 격정에 서로의 입술을 비비며 젖은 입술을 삼켰다. 심장이 터져 버릴 듯 뛰고 있었다.

“키안, 파티장에 있는 내내 네 생각만 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열기를 삼키며 입술을 비비는 것도. 그리고 성급하게 자신의 입술을 열고 혀를 밀어 넣는 것도. 자신이 갖고 싶어 미칠 것 같다는 말처럼 느껴져, 심장이 뛰었다.

순식간에 키안을 침대에 눕혔다. 그러곤 몸을 겹치며, 입술에 농밀한 키스를 퍼부었다.

“흣-”

열기로 젖은 신음을 뱉어내며, 키안이 그의 남성에 아랫배를 문질렀다. 본능적인 반응이었지만, 그 야릇한 행위에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몸을 떨었다.

세이란이 입술을 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잠깐만 기다려. 씻고 올 테니까.”

세이란이 몸을 일으키기 전, 깊숙이 키스를 해왔다. 그 나른하고 농밀한 감각에 키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를 휘감고 진득하게 입술을 쓸던 혀가 멀어지자, 키안은 아쉬움에 숨을 삼켰다.

안타까워 한숨을 내쉬자, 그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참아.”

세이란이 키안을 침대에 눕힌 채, 욕실로 들어갔다. 목욕통 안에 깨끗한 물이 가득했다. 서둘러 겉옷을 벗고 셔츠 차림이 된 그는 대충 씻기 시작했다. 목욕을 할까도 했지만, 그러기엔 다리 사이가 너무 욱신거려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어느 정도 개운해지자, 세이란은 깨끗한 수건을 물을 묻힌 후 서둘러 욕실을 나왔다. 그러곤 침대로 빠르게 걸어갔다.

“말도 안 돼.”

순간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신의 팔을 붙잡곤 촉촉이 젖은 눈빛으로 자고 가라고 유혹할 땐 언제고, 그사이 잠들어 버리다니.

세이란은 고갤 숙여 키안의 숨결을 확인했다. 술 냄새가 났다. 목소리며, 걸음걸이에선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생각보다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다니.”

생각해 보니, 여기서 자고 가라며 붙잡은 것부터가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는 증거였다. 멀쩡한 상태론 절대 할 말이 아니었다.

“오늘 밤도 죽어나겠군.”

세이란은 더운 숨을 삼켰다. 무방비 상태로 잠든 키안을 보자, 또다시 다리 사이가 짙은 열감에 부풀어 올랐다.

세이란은 질끈 눈을 감고는 지독한 열기가 사라지길 기다렸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줄기에 날카로운 쾌락이 몇 번이나 관통한 후에야 세이란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곤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는 키안의 옷은 벗겨내기 시작했다.

욕실에서 가져온 수건으로 키안의 얼굴과 목을 깨끗하게 닦았다. 생채기가 난 손 역시 닦아준 후, 약상자에서 소독약을 꺼냈다.

“갖고 싶은 걸 눈앞에 두고도 갖지 못하다니.”

상처를 치료한 후 그는 일부러 자신의 손수건으로 키안의 상처를 감쌌다. 여전히 그의 마음엔 어둡고 음습한 질투의 감정이 남아 있었다.

“매 순간 지키고 있을 수도 없고.”

사실 생각만 해도 열받았다. 자신이 곁에 없는 사이 키안의 곁에서 상처를 치료해 주고, 술도 함께 마시고 집까지 데려다준 사내가 있었다는 게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이제 알았으니, 다른 사내를 가까이하는 일은 없겠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사무엘 스텐호프에게 질투를 느낀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그를 조금 멀리할 테니까.

“오늘도 자고 갈까?”

세이란은 키안이 누워 있는 침대를 보자 유혹을 느꼈다. 이젠 습관이 될 것 같았다, 함께 잠드는 게.

“몇 번을 잤다고 중독이 되려 하다니.”

세이란은 아쉬움을 뒤로하곤 이불을 끌어다 키안의 몸에 덮어주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이 키안의 방에 있다는 걸 가브리엘이 알고 있었다. 분명 새벽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

그는 고갤 숙여 키안의 입술에 키스했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그의 키스에 반응했다.

입술을 열고 혀를 얽어오는 키안을 보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심장을 갉아먹던 질투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키안에게서 가까스로 입술 뗀 그가 방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자, 그의 예상대로 레녹스 공작가의 집사 가브리엘이 초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러다 세이란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보곤, 허릴 숙였다.

“주인님께선……?”

“지금까지 주사를 부리다, 잠이 들었다.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야.”

가브리엘이 세이란의 시선을 피해 안도하는 게 보였다.

“아침엔 숙취에 좋은 차와 음식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께선 지금 돌아가시는 겁니까?”

“그래야지. 가브리엘, 너에게 부탁 하나만 하고 싶은데, 들어줄 수 있겠나?”

“말씀만 하십시오, 전하.”

“만약에 키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나에게 연락을 해줬으면 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전…….”

가브리엘이 놀란 표정으로 세이란을 올려다보았다. 한순간 선한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고갤 숙였다.

“약속하겠다, 가브리엘. 어떤 상황에서든 레녹스 공작가를 지키겠다고. 그러니 너도 약속해 줬으면 한다. 무슨 일이 생기든 꼭 나에게 먼저 알리겠다고 말이다.”

세이란의 단호한 목소리에 가브리엘이 엉겁결에 고갤 끄덕였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전하.”

**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전하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시다니 말입니다.”

알렉산더 스텐호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헤링턴 백작 역시 덩달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전하께서 렌스터 공작가의 영애를 두고, 이름도 없는 한미한 가문의 영애에게 첫 댄스를 신청하시다니. 전쟁터에 나가셨다가 미쳐 버린 건 아니실 테죠? 소문엔 테란국의 기사들을 잔혹하게 죽이셨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유스타나의 귀족이라면 황태자 세이란이 전쟁터에서 어땠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테란국인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그가 밟고 선 땅은 온통 피에 물들어 있었다고 했다.

“계획적이었는지도 모르겠군. 이번 사교 시즌 동안 황태자비를 뽑겠다고 하셨을 때부터 의심이 들더라니.”

“혹시 그 말은 전하께서 황태자비로 그 천한 가문의 영애를 점찍어두셨다는 겁니까, 공작님?”

알렉산더 스텐호프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대답은 렌스터 공작이 아니라, 흥분한 헤링턴 백작이 대신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전하께서 단단히 미치신 게 분명합니다. 유스타나 제국의 황태자로서 그런 추태를 보이시다니. 전 전하께서 그 영애를 두 팔로 안고 밖으로 나가셨을 땐, 너무 놀라 턱이 빠질 뻔했지 뭡니까.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게다가 또 입술에…….”

순간 옆에 앉아 있던 알렉산더 스텐호프가 헤링턴 백작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그러자 한참 떠들어대던 헤링턴 백작이 렌스터 공작의 눈치를 보며,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젠장 할! 눈치 없이 또 입을 놀리다니.’

헤링턴 백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곤 서둘러 렌스터 공작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공작님, 마음 쓰지 마십시오. 분명 그 영애가 예쁘긴 하지만, 기품 있고 우아하신 레이디 베로니카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게 다 호기심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도 혈기왕성한 분이시니 여자가 필요하셨을 겁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분명 그 영애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보상 차원일 겁니다.”

알렉산더 스텐호프가 동의하자, 싸늘하던 방의 분위기 점점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렌스터 공작의 표정 역시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당연히 그렇겠지. 어차피 한미한 가문의 계집이 황태자비가 될 일은 없을 테니까.”

렌스터 공작의 말에 조마조마한 얼굴로 눈치를 살피던 헤링턴 백작의 얼굴이 펴졌다.

“공작님, 계획이 있으신 겁니까?”

“유스타나 제국엔 귀족 회의가 있지 않나. 황실의 숭고하고 고귀한 피가 그 천한 계집으로 인해 더럽혀지는 꼴을 보아 넘길 순 없는 일이니까.”

그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황태자인 세이란이 부득불 우긴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럼 귀족들을 포섭해야겠군요.”

알렉산더 스텐호프의 말에 헤링턴 백작이 고갤 끄덕였다. 그러곤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어쩌면 에버콘 공작과 데칸 공작의 표를 우리 쪽으로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아센 공작님 쪽인데…….”

“아센 공작가는 황제 폐하의 최측근이십니다. 그리고 황태자 전하의 대부시기도 하고요. 분명 전하의 편을 들 겁니다.”

알렉산더 스텐호프 백작의 말에 헤링턴 백작 역시 동의했다.

“그렇겠군요. 거기다 리치문트 공작과 레녹스 공작 역시 전하의 편을 들 테고요. 그럼, 우리가 설득해야 할 가문이 딱 두 개로 추려지는군요.”

남은 두 가문은 바로, 캐슬리스 후작가와 스펜서 자작가였다. 하지만 두 가문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설득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그건 차차 고민하도록 하고, 나는 먼저 일어나 봐야겠군.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각났거든.”

렌스터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헤링턴 백작과 알렉산터 스텐호프 역시 따라 일어섰다.

“어딜 가실 계획입니까?”

헤링턴 백작의 물음에 렌스터 공작이 그걸 몰라서 묻느냐는 얼굴을 했다.

“불확실한 상황에선 당연히 우리 편으로 만들 사람을 찾아가야 하지 않겠나?”

그 말은 제임스 에버콘 공작을 만나겠다는 뜻이었다.

“두 사람은 캐슬리스 후작과 스펜서 자작과 접촉할 방법을 찾는 게 좋겠군. 아, 잠깐. 그전에 그대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게 있다.”

“그게 뭡니까, 렌스터 공작님?”

“캐슬리스 후작과 스펜서 자작을 꼭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네? 하지만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불리하지 않겠습니까?”

헤링턴 백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자 렌스터 공작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머리가 나쁜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쳇, 군사력이 막강하지 않으면 진즉에 버렸을 텐데.’

짜증이 치밀었지만, 렌스터 공작은 최대한 관대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권표가 있다는 걸 잊은 모양이군.”

기권이란 말에 그제야 이해가 된 듯 헤링턴 백작과 알렉산더 스텐호프가 고갤 끄덕였다. 그때 렌스터 공작이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황실 사냥 대회에서 귀족들과 접촉하는 게 가장 모양이 좋겠어. 아무런 의심 없이 귀족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세 사람이 서둘러 루시타니아 상단이 운영하는 사교 클럽의 밀실을 나섰다.

잠시 후, 텅 빈 방 안의 벽이 열렸다. 그리고 벽 안에서 상단의 주인인 루칸 백작과 세이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는군요, 전하.”

“사냥 대회에서 사슴만 사냥할 생각이었는데, 뜻밖의 것을 사냥해야 할 상황이군.”

세이란의 서늘한 목소리에 옆에 서 있던 알베르트 루칸이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그 사냥의 대상이 아니란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황제의 독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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