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화
세이란은 말을 달리며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키안을 내려다보았다. 푸른 방에서 키안을 기다리는 동안, 오지 않으면 어쩌나 고민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짐작대로 키안은 푸른 방에 나타났다. 안도와 함께 불쾌감이 동시에 들었다. 자신에겐 오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결국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셈이었으니까.
‘거절하기 위해서 온 것이니, 봐줘야 하는 건가?’
세이란은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진의 제안을 거절하기 위해 왔다고 했던 키안의 말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것 하나로 불쾌했던 마음은 눈 녹 듯 사라져 버렸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이상했다. 자신은 키안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기분이 시시때때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키안에게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 거죠, 블랙?”
키안의 말투가 다시 정중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러자 세이란은 한 팔로 키안의 허릴 단단히 휘감은 후 말의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곧 도착할 거야.”
세이란은 키안이 움찔 어깨를 떠는 게 느껴졌다. 그의 입김이 키안의 목덜미와 귓불에 닿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분명 키안은 자신을 세이란이 아닌 블랙이란 용병으로 알고 있었지만, 몸은 이미 자신임을 깨닫고 반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태운 말이 황실 소유의 숲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패트리샤가 준비해 둔 오두막 앞에 멈췄다.
“여긴?”
“버려진 오두막이라고 알고 있다. 내게 편지를 보낸 자가 이곳으로 가라고 하더군.”
키안은 익숙한 오두막의 풍경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파튬의 가면무도회에서 수면제를 먹고 잠든 키안을 패트리샤가 데리고 왔던 그 오두막이었다.
‘하필, 이곳이라니.’
세이란이 먼저 말에서 내렸다. 그러곤 팔을 뻗어 키안을 안아 내린 후, 그대로 오두막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딜 가는 거죠?”
순간 키안은 혀를 꽉 깨물고 싶었다. 입으로 뱉어낸 순간, 너무도 멍청한 질문이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당연히 오두막에 도착했으니, 그 안으로 들어갈 게 뻔했던 것이다.
“몰라서 묻는 것이라면, 대답을 해줘야겠군. 난 지금 오두막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아직 받지 못한 게 있어서.”
블랙의 말에 키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받지 못했다는 게 분명, 키스일 게 분명했다. 그날, 용병 경매장에서 그가 말했었다. 돈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겁쟁이처럼 겁을 먹고 도망치고 싶다면, 그래도 상관은 없습니다.”
블랙의 도발에 키안은 키안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이내 겁쟁이라고 인정하고 도망치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겁쟁이입니다. 그러니 도망치게 놓아주세요.”
키안의 말에 블랙의 입가에 즐거운 듯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 계약은 없던 것으로 하지. 대신, 내 애인은 어때?”
당연히 거절하기 위해 고갤 든 순간, 붉은 눈동자가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키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낯설지 않아.’
용병 경매장에서도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특히 자신을 바라보는 이 붉은 눈동자를 본 적 있었다.
“혹시 절, 아시나요?”
키안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블랙이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오늘로써 이 오두막에 두 번째로 방문하는 것이라면, 대답이 될까?”
“읏-”
순간, 세이란이 고갤 숙여 키안의 입술을 덮쳤다. 특별히 반항하는 기색은 없었다.
‘키스만 한 후 놓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세이란은 키안의 순진함을 비웃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입술을 내어주는 여인에게 입술만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특히 자신은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세이란이 입술을 뗀 후 키안을 품에 안고는 오두막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놀란 키안이 내려달라는 듯 버둥거렸다.
“뭐하시는 거죠, 블랙?”
이상했다. 블랙이란 이름을 세이란은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두운 내면과 숨겨야 할 지독한 힘을 감추기 위해 만든 이름이었으니까. 하지만 키안이 부르자, 싫지 않았다. 왠지 섹시했다. 어둠을 지배하는 지독한 쾌락처럼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난 키스만이라고 한 적 없는데?”
“당장 내려놔.”
“또 말투가 바뀌었군.”
“죽고 싶지 않거든, 당장 내려…….”
그의 품에 안겨 있던 키안의 몸이 침대에 내려졌다. 그리고 등 뒤로 푹신한 느낌이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껴졌다.
“이제 내려놓았군.”
“당장 비켜.”
“내려놓으니, 비키라. 정말 요구사항이 많다니까.”
“나는 이미 대가는 치렀으니, 돌아갔으면 하는데?”
“대가라고? 설마 조금 전 나눴던 입맞춤을 말하는 건가?”
“당연한 것 아닌가?”
키안의 말에 세이란의 입가가 냉소로 비틀렸다.
“내 값은 아주아주 비싸지. 그리고 난 널 놓아줄 생각이 없어졌다. 흥미가 생겼거든.”
키안은 눈을 가늘게 뜨곤 블랙이란 자를 쏘아보았다.
“난 하지 않겠다고 한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곤, 조금 전 내가 입을 맞췄을 때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키안이 주먹을 꼭 쥐었다. 저항하지 않은 걸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
“참아냈을 뿐이야. 지불해야 할 대가라고 생각했으니까.”
키안의 대답에 세이란의 입매가 굳어졌다.
“그럼 이것도 참아낼 수 있는지 볼까? 만약 참아낸다면, 널 놓아주지.”
그 말과 함께 세이란이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러곤 손수건을 꺼내 들더니 키안이 쓰고 있던 가면을 툭 건드렸다. 놀란 키안이 고갤 돌리자, 머리카락이 키안의 얼굴을 가렸다.
“걱정할 것 없다. 나 역시 너처럼 내 얼굴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거든.”
블랙의 말에 키안은 그의 얼굴에 커다란 상처가 있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때 키안의 얼굴에 부드러운 천이 닿았다. 그러곤 가면으로 가렸던 얼굴을 손수건이 대신했다.
“이러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괜찮겠군.”
“지금 뭘 하는 거지?”
“뭘 하긴? 내가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전 말했을 텐데? 네가 견뎌낸다면, 널 보내주겠다고.”
툭 하고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블랙이 쓰고 있던 가면이 분명했다.
“대체 뭘 받는다는……. 읏!”
순식간의 그의 몸이 키안을 내리누르는 게 느껴졌다. 놀라 버둥거리자, 그가 고갤 숙이더니 키안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남자가 여자에게 원하는 것. 그러니 넌, 그걸 견뎌봐.”
“당장 비켜. 널 죽이고 싶진 않…….”
“나도 마찬가지야. 너에게 죽고 싶지 않거든.”
키안은 숨을 삼켰다. 눈을 가리자, 온 신경이 평소보다 더 예민해졌다. 그래서 더 알게 되었다. 지금 자신은 이 블랙이란 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이자가 자신이 원치 않는 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미친 게 분명해.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자에게 이런 믿음을 갖고 있다니.’
그 순간 말캉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키안의 입술을 쓸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감촉이 낯설지 않았다. 아니, 불쾌하지 않았다.
쪽 소리와 함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키안은 그를 밀어내는 대신 견디기로 했다.
“약속 잊지 마. 내가 견뎌내면, 날 보내주겠다는 그 말.”
눈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웃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궁금했다. 그의 얼굴에 난 상처가 얼마나 지독한지.
“흣-”
“딴생각하지 마. 이젠 죽을힘을 다해 견뎌야 할 테니까.”
그 말과 함께 세이란의 혀가 키안의 입술을 삼켰다. 저항도, 그렇다고 그의 혀를 받아들이지도 않는 키안을 보며, 세이란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어렸다.
‘이런 면에선 굉장히 고집스럽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세이란은 붉은 혀로 키안의 입술을 쓸었다. 자신의 타액이 묻은 키안의 입술이 무척이나 야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뛸 정도로.
‘이 모든 게 내 계획이었다는 것을 나중에라도 알게 된다면, 키안은 어떤 얼굴을 할까? 당연히 화를 내겠지?’
아니면, 원망을 하려나? 세이란은 붉은 혀로 키안의 입술을 열었다. 그러곤 키안의 고른 치열을 천천히 훑어 내리며, 입술 안쪽의 여린 살을 쓸어내렸다. 그 순간 꼭 닫혀 있던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그러곤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냈다.
“하아-”
세이란이 더운 숨을 내쉬며, 키안의 턱을 붙잡았다. 그저 입술을 겹친 것뿐이었지만, 마치 키안의 내벽을 꿰뚫고 들어간 것처럼 온몸이 뜨거웠다. 입안의 타액이 마치 내벽을 타고 흐르던 애액처럼 느껴졌다. 정말 미친 모양이었다.
세이란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날카로운 쾌감에 몸을 떨며, 깊숙이 혀를 묻었다. 그러곤 키안의 혀를 휘감고는 거칠게 빨아 당겼다.
“흣-”
키안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음란한 모양이었다. 세이란이 아니라, 다른 남자에게도 이렇게 반응하다니.
혀를 얽고 거칠게 빨아 당기는 그 아릿함에 시트를 쥔 키안의 손이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젖은 숨결이 섞여들었다. 반응하지 않기 위해 손수건으로 가려진 눈을 더욱 질끈 감았지만, 그의 혀가 예민한 부분을 쓸며 진득하게 혀를 얽어오자, 억눌렀던 신음을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키안의 반응에 그의 혀가 더욱 집요하게 안쪽을 쓸었다.
“하아-”
나른한 열감이 아랫배가 수축했다.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 그에게 반응하며, 다리 사이 여린 속살 사이로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이상해. 왜 몸이 마음대로…….’
키안은 그에게 입술을 붙잡힌 채 몸을 떨었다. 그의 손이 키안의 목덜미에 닿았다. 금방이라도 드레스 앞자락을 끌어내릴 듯했다.
“싫어.”
키안이 그를 밀어내며,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자 블랙의 입술 새로 픽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옷을 벗지 않고 하는 걸 즐기는 모양이군. 굉장히 자극적이야.”
그의 비아냥거림에 키안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굳이 그에게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굉장히 야한 몸이군.”
세이란은 드레스를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키안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이 오두막에서 키안을 안았을 때를 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몸 아래서 지독한 쾌락에 몸을 떨던 그 표정이 너무도 예뻐, 평생 자신의 눈 속에 담아두고 싶을 정도였다.
세이란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키안을 내려다보았다. 언젠가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사랑을 나눌 날을 상상하자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이제 견딜 시간이다.”
그 말과 함께 세이란이 속옷과 함께 드레스 자락을 위로 밀어 올렸다. 그러자 날씬하고 곧은 두 다리가 드러났다. 키안이 본능적으로 다릴 오므렸다.
“약속하는 거지, 블랙?”
“당연하지. 하지만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그 말과 함께 세이란이 키안이 입고 있는 여성용 속옷을 끌어내렸다. 레이스로 된 속옷은 너무도 얇아 조금만 힘을 주면 찢어질 것 같았다. 세이란은 손바닥만 한 속옷을 바닥에 떨어뜨린 후, 키안의 다릴 붙잡고는 양쪽으로 넓게 벌렸다.
“흣-”
순식간에 다리가 벌려지는 느낌에 키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꽉 닫혀 있던 밀부 사이로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뜨거운 숨을 뱉어내는 블랙의 숨소리도, 그리고 그가 뿜어내는 나른한 열기에 반응하는 자신의 심장 소리 역시 똑똑히 느껴졌다.
눈을 가린다는 건, 느끼지 못한 모든 감각을 일깨우는 행위였다. 그리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마치 세이란 님처럼 느껴져.’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하아- 흣-”
그의 입술이 키안의 허벅지 안쪽을 쓸어내리는 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그곳엔 세이란이 만들어놓은 붉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 분명 블랙이란 자 역시 그 흔적을 봤을 테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어둠 때문에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벌써 젖었군. 이렇게 해선 견딜 수 없을 텐데?”
그의 비아냥에 키안의 온몸이 붉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세이란의 붉은 눈동자가 열기로 짙어졌다.
세이란이 고갤 숙여 키안의 밀부에 입술을 비볐다. 그러자 물기를 머금고 있는 속살이 울컥 뜨거운 애액을 뱉어냈다. 그 나른한 감각에 세이란은 몸을 떨었다. 키안의 반응에 세이란은 확인하고 싶어졌다.
“설마 날 네가 원하고 있는 사내로 착각하는 건 아닐 테지?”
키안은 움찔 몸을 떨었다.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그 목소리에 키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그런 모양이군. 뭐, 상관없다. 나 역시 그러니까.”
“마음에 담은 사람이 있다는 건가?”
“그래.”
키안은 블랙의 목소리에 담긴 깊은 떨림에 놀랐다. 정말 지독히도 마음에 품은 여인이 있는 모양이었다.
“너 역시 있나?”
그의 물음에 키안은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울컥 밀려들었다. 그에게 말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진심을 들었으니, 자신 역시 진실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있다.”
“그럼 잘됐군. 앞으로 너와 내가 몸을 섞을 때마다 서로가 원하는 상대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니까.”
“나는 그럴 생각이……. 하읏-”
순간 밀부에 닿는 뜨거운 혀의 감촉에 키안이 신음을 흘리며, 허릴 비틀었다.
“그럴 생각이 없는 것치곤, 몸은 정직하군.”
이젠 붉어질 곳도 없었다. 이미 온몸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아무 생각 하지 마. 오직 느끼는 대로 반응하면 돼. 이게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규칙이다.”
그의 속삭임은 아주 매혹적인 유혹이었다. 언제나 감추고 억누르는 것에 익숙한 키안에게 느끼는 대로 반응해도 된다고 말은 지독한 독과도 같았다.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치명적인 독.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키안의 본능은 자신을 애무하고 있는 블랙이란 자가 세이란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미친 생각이지만, 몸이 그렇게 반응하고 있었다.
“정말 그래도 될까?”
“돼.”
망설이는 키안과는 달리 블랙의 목소리는 너무도 단호했다. 그 순간 긴장으로 굳어 있던 키안의 몸에서 스르륵 힘이 빠져나갔다.
“좋아. 그럼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줘.”
키안의 대답이 떨어진 순간, 세이란의 혀가 밀부 입구를 꾹꾹 찔렀다. 그 선연한 감각에 키안은 허릴 비틀며, 느른한 신음을 뱉어냈다.
정말 약속 하나는 잘 지키는 사내였다. 키안은 그가 주는 날카로운 감각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황제의 독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