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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독사과-32화 (32/139)

제 32 화

구스타프 1세의 비밀의 방에 다녀온 키안은 다시 목욕을 해야 했다. 지하로 연결된 좁은 통로를 지나가서인지, 머리며 옷에 거미줄이 묻어 있었다.

욕실을 나온 키안은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대충 말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선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상자를 노려보았다. 다시 봐도 믿기지 않았다.

“사실일까?”

세이란은 이것이 천 년 전에 사라진 마법사의 언어인 유스타나의 별이라 했다.

“금기의 힘인 유스타나의 별이라니.”

소멸됐어야 할 마법사들의 주술인 유스타나의 별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유스타나 제국에 큰 파장이 일 게 분명했다. 사실 지금도 유스타나 제국에는 마법의 힘이 존재했다.

‘유스타나의 여섯 개의 루멘(Lumen:빛)이라 불리는 힘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나니까.’

하지만 자신이 가진 힘은 맹수를 다루는 것일 뿐, 파괴된 마법사의 힘과는 달랐다.

키안은 수건을 내려놓은 후 상자에 새겨진 마법사의 표식을 쏘아보았다. 금빛으로 양각된 삼각형 안에 붉은 눈동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눈빛이 너무도 강렬해 키안을 삼켜 버릴 것만 같았다.

“붉은 눈동자라… 어딘가 익숙해.”

키안은 이 상자에 새겨진 주술의 의미가 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고대어인 유스타나의 별을 해독할 수 없었다.

순간 키안은 현기증에 눈을 질끈 감았다.

“뭐지? 몸이 이상해.”

현기증이 가시자, 이번엔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자꾸만 의식이 흐려지며, 졸음이 쏟아지려 했다.

‘대체 왜? 설마, 조금 전 비밀의 방에서 마신 붉은 액체 때문인 건가?’

만약 그렇다면, 세이란에게도 같은 증상이 일어날 터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키안은 방에 있을 수 없었다. 주섬주섬 겉옷을 입은 키안이 방을 나섰다. 비밀의 방을 나오기 전, 그에게 화가 나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복도를 따라 걸었다. 하지만 현기증에 자꾸 걸음이 느려졌다.

“정신 차려, 전하께 가야 해.”

키안이 머릴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 했다. 그러다 입술 안쪽을 꽉 깨물었다.

“윽-”

낮은 신음과 함께 키안의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키안은 몸을 바로 했다. 잠시 후 몽롱하던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안도한 것도 잠시, 서둘러 세이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1층으로 향했다.

**

세이란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몸이 이상했다. 구스타프 1세가 만들어놓은 비밀의 방에 다녀온 후, 그의 몸은 감기에 걸린 듯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열기가 금방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제길, 대체 왜 이러지?”

세이란은 욕실로 들어가 차가운 물에 몸을 담갔다. 심장이 타는 듯 뜨거웠다. 아니, 이건 심장을 불에 지지는 것 같은 지독한 열기였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세이란은 눈을 감았다.

‘제길, 그때와 뭐가 다른 거지?’

세이란은 멀어지려는 의식을 집중했다. 그가 본 미래의 한 조각에 이 붉은색의 묘약이 있었다. 누가 이 묘약에 마법에 주술을 걸어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한 것은 이 붉은 묘약엔 마신 자의 몸을 보호하는 고대의 주술이 걸려 있었다. 그래서 무리한 방법을 써서라도 키안에게 억지로 마시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세이란은 거친 숨을 내쉬며 차가운 물에서 나왔다. 대충 몸을 닦은 후 옷을 입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면, 키안에게도 똑같이…….

“으윽-”

옷을 입던 세이란이 고통에 몸을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대체 왜……? 라고 생각한 순간 세이란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 키안에게 가야 했다. 하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온몸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열이 오르던 몸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심장만은 태울 듯 뜨거웠다.

똑똑똑, 똑똑똑.

“전하, 접니다. 전하.”

세이란은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키안의 목소리에 안도했다. 자신과는 달리 키안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전하, 접니다. 키안입니다, 전하.”

또다시 자신을 부르는 키안의 목소리에 세이란은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길, 이번엔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닌데. 대답을 해야 하는데…….’

세이란은 뜨거운 숨만 내쉴 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전하, 들어가겠습니다.”

방으로 들어오겠다는 말에 세이란이 침대에 엎드린 채 고갤 가로저었다.

‘들어오지 마. 돌아가, 키안.’

하지만 이 말 역시 그의 입속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문이 닫히고, 키안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제길. 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 세이란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의식이 자꾸만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걸 세이란은 가까스로 붙잡았다.

방은 어두웠다. 하지만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검은 실루엣은 세이란의 것인 모양이었다.

‘주무시고 계셨던 건가?’

키안은 잠시 망설였다. 괜히 세이란에게 다가갔다가, 곤히 잠든 그를 깨울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를 깨우더라도, 그의 상태를 확인해야만 안심이 될 것 같았다.

키안은 최대한 인기척을 줄인 채 그에게 다가갔다. 침대와 가까워질수록 조금 이상했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 역시 이상했다.

“전하.”

키안이 손을 뻗어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 순간, 키안은 그의 몸이 너무 차가워 화들짝 놀랐다.

“불을 켜서…….”

확인해야 했다. 키안은 불을 켜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제야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알았다.

“안 돼. 하아­ 켜지 마.”

갑자기 들려온 세이란의 목소리에 키안이 고갤 홱 돌렸다. 그러곤 재빨리 침대 위에 자릴 잡고 앉았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몸이 너무 차갑습니다. 의사를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하아, 하아- 그럴 필요 없다. 하아, 넌 어때?”

세이란이 거친 숨을 내쉬며 키안의 상태를 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다행이야, 넌 괜찮아서.”

세이란이 남은 힘을 끌어모아 키안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키안에게 닿기 전에 힘없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놀란 키안이 재빨리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전하.”

키안이 세이란을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이미 무겁게 내려앉은 세이란의 눈꺼풀이 들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마 의식을 잃으신 건가?”

초조함에 키안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전하, 정신 차려 보세요. 전하, 눈을 떠보세요.”

“난, 괜찮……. 돌아가. 어서, 이 방을…… 나가.”

세이란은 밭은 숨을 뱉어내며 키안을 밀어냈다. 그러곤 키안에게 괜찮다며 당장 돌아가라고 명했다.

“전하.”

하지만 아픈 세이란을 두고 갈 순 없었다. 무엇보다 세이란의 몸은 너무도 차가웠다. 마치 죽은 사람의 몸처럼 차가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키안은 두려움에 고갤 숙여 세이란의 가슴에 귀를 댔다.

두근, 두근.

다행히 심장은 뛰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키안은 우선은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해야 했다. 키안은 침대 위로 올라와 그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뜨거워……. 하아, 너무도 뜨거워. 심장이 타버릴 것 같아. 하아-”

“뜨겁다니, 아닙니다. 지금 전하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갑습니다.”

“심장이……. 으윽!”

세이란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졌다. 몸이 타버릴 것 같았다. 지독한 열기에 정신이 혼미했다. 키안이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전하.”

키안은 세이란이 옷을 벗는 모습을 보며, 그를 만류하려 했다. 이렇게 몸이 찬데, 옷을 벗다니.

“이상해. 몸은 얼음장인데, 뜨겁다니. 심장이 타버릴 것 같다니.”

문득 키안은 전쟁터에서 몸이 차가워져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던 사람을 떠올랐다.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해.”

키안은 손을 뻗어 세이란의 심장이 있는 가슴 부근을 문질렀다. 손바닥에 세이란의 단단한 가슴이 느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키안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맺혔다. 하지만 세이란의 몸은 따뜻해지긴커녕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어쩌지?”

불안감에 키안은 온몸이 떨렸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저체온증으로 세이란이 죽을 것만 같았다.

‘세이란 님이 죽는다고?’

키안의 심장이 욱신거렸다. 한 번도 그가 죽을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적의 검이 날아드는 전쟁터에서도 그가 전쟁에서 이길 것이란 걸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눈앞에서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전하, 키안입니다. 눈을 떠보십시오.”

세이란을 깨우는 키안의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아니, 두려움에 처음으로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했더라? 기사들이 떨어진 체온을 올리기 위해…….

그때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렸다. 연인 사이라면 맨몸으로 살을 부비며, 사랑을 나누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했었다.

키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맨몸으로 살을 부비는 것도, 그리고 그와 사랑을 나누는 것도 키안에겐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하아­ 하아.”

세이란이 몸을 뒤척이며 바들바들 떠는 게 보였다. 손에 닿는 그의 몸 역시 이젠 얼음장 같았다.

“정말 이대로…….”

키안이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손을 뻗어 문을 굳게 걸어 잠근 후, 다시 침대로 돌아온 키안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세이란을 보며 결심을 굳혔다. 망설이며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사락, 사락.

바닥에 키안이 입고 있던 옷이 떨어졌다. 옷을 벗는 키안의 손이 두려움과 긴장으로 바르르 떨렸다. 만약 이 상태에서 세이란이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모든 게 끝이었다.

하지만 키안에게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세이란이 죽음이었다.

옷을 다 벗은 키안은 가슴에 둘러진 붕대에 손을 뻗었다.

사락, 사락. 붕대마저 바닥에 떨어지자, 키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입술을 깨물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를 살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내 비밀이 밝혀진대도, 어쩔 수 없는 거야.’

결심에도 불구하고 몸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키안은 가까스로 다리를 움직여 세이란이 누워 있는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흣-”

세이란의 차가운 몸에 닿자 키안은 흠칫 몸을 떨었다. 너무 차가웠다. 그 서늘한 감촉에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망설임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의식이 없는 세이란과 사랑을 나누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키안은 그의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본능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몸으로 그를 감싸듯 끌어안고는 천천히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가슴과 가슴을, 그리고 배와 배를 마찰시키고, 손으론 차가운 세이란의 팔을 문질렀다.

최대한 자신의 온기를 그에게 주기 위해 키안은 한 치의 틈도 없이 그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킨 후 부지런히 위아래로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키안의 새하얀 피부가 마찰로 인해 붉어졌다. 그의 맨살과 닿아 있는 여린 가슴과 아랫배가 쓸려 아릿했다. 하지만 키안은 멈추지 않고 계속 몸을 움직였다. 마음속으론 세이란의 몸이 따뜻해지길 간절히 빌었다.

처음엔 서툴게 움직이던 키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요령을 터득한 듯 그의 몸 위에서 균형을 잡고 빠르게 움직였다. 이내 방 안엔 맨살이 부딪히는 소리와 키안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성적인 긴장감을 드러내는 숨소리와는 달랐지만, 묘하게 나른했다.

방 안의 공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새 야릇한 열기가 두 사람을 감싸기 시작했고, 남녀의 맨살이 하나처럼 섞이며 단단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황제의 독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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