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화
세이란은 키안의 말 한마디에 처음으로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키안, 난…….”
세이란이 키안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전하.”
키안은 세이란의 손이 어깨에 닿자, 본능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두렵다거나,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의 손이 닿자, 순식간에 온몸에 열이 났다.
‘이젠 시도 때도 없이 전하에게 육체적으로 반응하고 있어. 정말 진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키안이 서둘러 그의 손을 밀어냈다. 고갤 돌리려 하자, 이번엔 그의손이 자신의 턱을 붙잡곤 그를 보게 했다.
“전하.”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마음 같아선 키스를 하고 싶었다. 그러곤 자신 역시 키안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키안의 눈동자가 불안으로 흔들리는 것을 보자, 세이란은 깨달았다.
지금 이 상태에서 키안을 더 흔들었다간, 도망쳐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하.”
자신을 부르는 키안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세이란은 그런 키안을 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키안, 난 여자가 좋다. 한 번도 남자에게 욕망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걸, 너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세이란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기로 했다. 직진만 할 순 없으니까.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네 말처럼, 자기암시인 모양이야.”
세이란의 말에 키안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이미 예상한 바였지만 눈에 띄게 안도하는 키안을 보는 건, 그리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다음번엔 도망치지 못하게 덫을 확실히 놔야겠어.’
세이란이 키안의 턱에서 손을 뗐다. 그러곤 키안에게 뭔가 말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땀과 풀 냄새가 뒤범벅된 털 뭉치가 세이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윽, 이건 대체…….”
뭐야? 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세이란의 얼굴을 핥는 혀를 보며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너무하심미다. 두 분이서만 재미있게 노시다니. 카이우쯔도 끼어주십찌오.”
키안의 새끼 늑대와 방해꾼 꼬맹이 카이우스였다.
두 방해꾼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두 사람이 깔고 앉아 있던 모포가 순식간에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리고 세이란의 옷 역시 진흙을 잔뜩 묻힌 새끼 늑대 덕분에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진흙 범벅이 됐다. 그의 새하얀 셔츠엔 새끼 늑대의 앙증맞은 발자국이 떡하니 찍혀 있었다, 마치 영역을 표시하듯.
“윽, 제길. 당장 떨어져.”
세이란이 미간을 찌푸리며 새끼 늑대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고함 소리는 키안과 카이우스, 그리고 새끼 늑대가 만들어낸 웃음소리에 허무하게 묻힐 뿐이었다.
“카이우스는?”
목욕을 끝마치고 나온 키안이 에리스에게 카이우스의 상태를 물었다.
“잠이 드셨습니다. 침대 밑엔 새끼 늑대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고요.”
유모인 에리스의 말에 키안이 고갤 끄덕였다. 승마도 하고, 오후 내내 넓은 들판을 뛰어다녀서인지 카이우스는 목욕을 하는 동안에도 잠을 참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었다. 급기야 편안한 옷을 갈이 입히는 동안 잠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지 못해서 새벽에 배가 고플 거야.”
“걱정 마십시오, 주인님. 제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를 챙겨놓겠습니다.”
“고마워, 에리스.”
“고맙기는요. 제가 당연히 할 일인걸요. 주인님께선 어서 식당에 내려가셔야죠.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래, 에리스도 그만 쉬도록 해.”
키안이 방을 나와 복도를 따라 걸었다. 키안 역시 카이우스와 새끼 늑대를 씻기느라 흠뻑 젖은 탓에 대충을 몸을 씻은 후였다. 지금쯤이면 세이란 역시 목욕을 끝마치고 식당으로 나왔을 시각이었다.
“레녹스 공작님, 저녁 식사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제가 식당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어디에 계시지?”
“1층 끝 전하의 방에 계십니다. 제가 가서 모셔오겠습니다.”
“아니, 내가 갈게.”
키안의 말에 아이크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레녹스 공작님. 전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이크가 식당으로 향하자, 키안은 세이란의 방으로 향했다. 사실 식당에서 세이란을 기다려도 상관없었지만, 그가 얘기했던 구스타프 1세가 남겨놓은 지도를 빨리 보고 싶었다.
“구스타프 1세의 비밀 방으로 가는 지도라니.”
7년 전 세이란과 우연히 황실 비밀 서고에서 구스타프 1세의 보물에 대해 적혀 있던 책을 발견했을 땐, 흥분으로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방학을 이용해 두 사람은 황제의 보물을 찾기 위해 황실 사냥터를 찾았었다. 그땐, 금방이라도 황제의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세이란이 지도를 발견하다니. 키안은 까마득히 잊고 있던 기대감에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똑똑똑.
방문 앞에 도착한 키안은 서둘러 노크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듣지 못하신 걸까? 전하, 접니다.”
키안이 다시 노크하며, 세이란을 불렀다. 하지만 안에선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전하, 저 들어가겠습니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 키안은 서둘러 안을 살폈다. 창문도 굳게 닫혀 있었고, 방 안 역시 단정하게 꾸며진 모습이 침입의 흔적도 없었다.
“대체 어딜 가신 거지?”
키안이 방을 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는 그 순간, 갑자기 욕실 문이 열렸다. 뭐야? 아직까지 씻고 계셨던 거야?
“죄송합니다, 전하. 노크했는데도 대답이 없으셔서…….”
당황한 키안이 허락도 없이 방에 들어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키안은 세이란의 모습에 놀라 더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뭐야? 남자 몸 처음 본 것 아니면서 얼굴을 왜 붉히는 건지 모르겠군.”
세이란은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러곤 마른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닦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키안은 당혹감에 고갤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아름다운 몸에 사로잡힌 듯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아니, 너무 놀라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그의 벗은 가슴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세이란이 훈련을 하는 동안 옷이 땀으로 젖어 벗곤 했으니까.
하지만 세이란이 허리에 수건만 두른 모습은 달랐다. 그리고 수건이 그의 몸에 비해 너무 작은지, 다리 사이에 자리한 남성의 크기와 윤곽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미친 게 분명해. 세이란 님의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니.’
키안은 고갤 돌리며, 기사들이 농담 삼아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들은 여인의 몸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가 바로, 다 벗고 있는 때보다 살짝 가리고 있는 순간이라고 했다. 그때가 더 야하고 섹시하다고.
그런데 그 말은 사실인 듯했다. 허리만 살짝 가렸을 뿐인데, 세이란의 모습은 쉽게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뭐야? 너도 있는 것 아니었어? 왜 처음 보는 것처럼 구는지 모르겠군. 지금 네 태도, 남자의 몸을 처음 본 처녀 같다는 것 알아?”
‘그래서 나를 미치게 한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키안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보다니요. 며칠 전 우물에서도 기사들이 옷을 벗고 목욕하는 걸 보았는걸요.”
키안이 발끈하며, 세이란의 말을 부정했다.
“그랬던 것 같군.”
순간 세이란이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키안의 언급으로 조금 전까지 잊고 있던, 며칠 전 사건이 떠올랐다. 특히 우물가에 서 있던 키안이 스텐호프의 물건을 보곤 얼굴을 붉혔던 그 일이 말이다.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자, 세이란의 입매가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래서 비교한 결과 누구 몸이 더 좋은지 말해봐.”
“네?”
“너도 그날, 다 봤을 것 아냐. 그러니 나와 스텐호프 중에서 누가 더 좋았는지 말해보라고.”
키안은 세이란이 갑자기 왜 스텐호프의 얘길 꺼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 자신은 스텐호프의 몸을 뚫어지게 쳐다본 적도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앞에 있으니, 본 것뿐이었다, 하늘이 있으니 올려다본 것처럼.
“뭔가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저는 스텐호프의 몸은 물론, 다른 기사들의 몸을 훔쳐본 적은 없습니다. 흥미도 없고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세이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이 얼마나 싸늘한지 키안은 바짝 긴장했다. 그의 태도로 보아 분명 자신이 뭔가를 단단히 잘못한 모양이었다.
“키안, 거짓말하지 마.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
그날 분명히 키안의 시선이 스텐호프의 다리 사이에 닿아 있었다. 그냥 무심히 스쳐 지나가듯 본 게 아니라, 한동안 그곳에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거기다 자신에게 스텐호프의 물건을 보다 들킨 순간, 얼굴까지 붉혔었다. 그 순간 세이란은 키안의 눈을 가리고 싶었다. 다시는 자신 외에 아무도 볼 수 없도록.
“그런 적 없습니다. 분명 오해가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수천 명이 옷을 홀딱 벗고 제 앞에 서 있다고 해도, 저는 아무런 감흥도 없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듭되는 키안의 대답에 세이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땐 화가 나서 냉정하게 상황 파악을 할 순 없었지만 지금 잘 생각해 보니, 자신과 눈이 마주치기 전까진 키안의 표정은 평온 그 자체였다.
‘그럼, 왜 얼굴이 붉어진 거지? 스텐호프의 물건이 생각보다 컸던 건가? 그래서 놀라 얼굴이 붉어진 건…….’
아니었다. 스텐호프보다 더 큰 물건을 가진 녀석들이 황실 기사단에 세고 셌으니까.
‘그럼 대체 왜 그런 반응이었던 거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당혹스러움에 얼굴이……. 잠깐. 그렇다는 건, 나 때문이었다는 건가?’
세이란은 당장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테니까.
“오해가 있든 없든 이제 상관없다. 그러니 이젠 네 감상을 말해봐. 나와 스텐호프 중에 누가 더 나은지 말이야.”
“전하, 잠깐만…….”
키안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곤 그를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세이란은 허리를 감고 있던 수건으로 손을 뻗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가 하체를 가리고 있는 수건을 풀어낼 모양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의 물건과 자신의 물건을 비교시키기 위해서.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키안은 눈을 질끈 감고는 그가 수건을 풀기 전에 재빨리 대답했다.
“전하입니다. 전하가 더 훨씬 크고 좋습니다.”
더 좋다는 말이 대체 뭐라고.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세이란은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가려는 걸 억지로 붙잡았다.
“보지도 않고서 그걸 안다고? 그러지 말고 눈을 떠봐. 내가 직접 보여줄 테니까.”
세이란이 일부러 키안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또다시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더는 가까이 오지 말란 말입니다.”
세이란은 키안의 모습에 이젠 웃음이 삐져나오려 했다.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너무도 귀여워 더 놀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우물가에서 있었던 때와는 반응이 확연이 달랐다. 눈앞에 수십 명의 남자가 옷을 벗고 있는데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던 키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이란 쪽으로 고갤 돌리지도 못한 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좋아. 더는 다가가지 않겠다. 대신 내 것은 직접 봐야 할 거야.”
이내 키안의 어깨가 움찔 떨리더니, 고갤 가로저으며 재빨리 대답했다.
“안 봐도 압니다. 수건 위로 크기며 모양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니까요. 장담컨대, 유스타나 제국에서 전하의 크기를 따를 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세이란은 피식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네 말을 믿도록 하지.”
“하아.”
세이란이 수건을 풀지 않겠다는 말에 키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쉽기도 했다. 마음 저 밑바닥엔 음란하게도 그의 남성을 보고 싶다는 마음 역시 존재했다.
키안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곤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옷을 들어 그에게 건넸다.
“여기 옷입니다. 아이크가 미리 챙겨놓은 모양입니다.”
다행히 세이란은 아무런 말 없이 옷을 받아 들었다.
“그럼 전, 이만……. 흐헙! 전하.”
키안은 팔을 붙잡는 세이란의 손에 화들짝 놀랐다. 그러곤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소릴 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대체 그 기괴하고 이상한 소린 뭐야? 깜짝 놀랐잖아.”
깜짝 놀랐다고? 그보다 더 놀란 사람은 바로, 키안이었다.
“갑자기 붙잡으셔서 저도 모르게 그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키안이 민망함을 숨긴 채 최대한 침착한 모습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 역시 봐줄 수 없을 만큼 붉어졌을 게 분명했다. 키안을 바라보던 세이란의 입꼬리 살짝 위로 말려 올라갔다.
지금 이 표정은 자신이 키스를 할까 두려워하는 표정이었다.
‘설마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 테지? 아니, 기대했으면 좋겠어.’
키안이 내 생각을 했으면 했고, 또 나와 키스하는 상상을 하며 얼굴을 붉혔으면 했다.
“너, 벌써 잊었어?”
“잊다니, 무얼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동그랗게 눈을 뜨곤 자신을 바라보는 키안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더 놀려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키안의 붉어진 얼굴이 열이 올라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그럼 안 되지. 이제야 감기가 다 나았는데, 또 열이 났다간 큰일이야.’
세이란은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일부러 구스타프 1세의 보물에 대한 얘길 꺼냈다.
“유스타나 제국의 첫 황제인 구스타프 1세의 보물 지도 말이야. 함께 가자고 했잖아. 너, 잊고 있었던 거야?”
“아, 구스타프 1세의 보물 지도요? 아니요, 아닙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전하의 방을 찾은 이유 역시 지도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 그럼 새벽 3시 서재로 와.”
“새벽 3시요? 하필 왜 그 시간에?”
“와보면 알아. 대신 비밀이다, 키안.”
세이란이 키안의 팔을 놓아주었다. 그러곤 옷을 입으려는 듯 허리에 묶여 있는 수건을 풀려 했다.
“어, 저는 그만 나가 보겠습니다.”
키안이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그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떠올랐다.
새벽 3시. 키안과 세이란은 서재에 있었다. 세이란이 긴장한 표정으로 벽에 놓여 있는 책장으로 걸어가더니, 가장 낡고 허름한 책 하나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러자 덜컹 소리와 함께 벽을 가리고 있던 책장이 뒤로 밀려나더니, 한 사람만 겨우 통과할 정도의 공간이 나타났다.
“이런 곳에 비밀통로의 입구가 있었네요.”
키안이 놀란 얼굴을 하자, 그가 키안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키안, 여길 만져 봐.”
손바닥 아래서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흥분되십니까?”
“7년이나 기다렸는데, 당연하지.”
세이란이 벽에 걸려 있는 등을 하나 집어 들며 말했다.
“건물 지하로 내려갈 거야. 길이 미로 같아서 놓치면 곤란하니까, 손을 잡는 게 좋아.”
“지도는 어디에?”
“걱정 마. 길은 다 외웠으니까.”
키안이 고갤 끄덕인 후,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황제의 독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