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독사과-21화 (21/139)

제 21 화

벨라의 보랏빛 눈동자가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키안의 고백에 놀란 게 아니라,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키안은 벨라의 반응에 오히려 더 놀랐다. 남자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는 무용담에 가까운 자랑거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것에 익숙해진 키안에겐 몽정에 관한 얘긴, 성인들 사이에선 입에도 담지 않는 유치한 대화에 속했던 것이다.

“남자들은 첫 몽정을 대부분 십대 초반에 하거든. 하지만 난 그런 경험이 전혀 없어서, 여자라 다르다고만 생각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내가 몽정이란 걸 했지 뭐야. 그래서 스무 살이 넘어야 하는 건지 궁금했어. 혹시 벨라 너도 해봤어?”

키안의 질문에 벨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벨라는 키안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이라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다.

“저기, 그게…….”

벨라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사실 벨라는 4년 전에 결혼을 하긴 했다. 뭐, 지금 그녀의 신분은 미망인이었으니까. 하지만 결혼 첫날밤을 치르기도 전에 아키텐 공작은 죽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슬프다거나, 자신의 운명이 박복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키텐 공작의 나이는 벨라보다 서른다섯 살이나 더 많았다. 거기다 젊어서부터 여성 편력이 대단했고, 워낙에 유명한 색골이었기 때문에 결혼이 결정되었을 때, 벨라는 죽고만 싶었다.

하지만 벨라의 아버지는 그녀가 18세가 되었을 때, 엄청난 돈을 받고 아키텐 공작의 세 번째 부인으로 팔아 넘겼다.

‘빌어먹을 아버지. 도박에 빠져 딸을 팔아넘기다니.’

지금 생각해도 벨라는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그렇게 벨라는 결혼을 했고, 아키텐 공작이 첫날밤을 치르기 위해 침실로 들어온 순간 그의 목을 검으로 찔러 죽일 결심까지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가 죽이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평범한 쾌락에 만족하지 못했던 아키텐 공작은 첫날밤에 어린 신부와 극한의 쾌락을 맛보기 위해 미약을 복용했다가 죽은 것이다. 욕심을 부릴 걸 부려야지. 어리석게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더한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했는지, 그는 갖고 있던 미약을 통째로 입안에 털어 넣고는 심장마비로 죽어버린 것이다.

벨라에겐 정말 행운 같은 사건이었다. 그런 의미로 벨라는 미망인이었지만, 성 경험이 없었다.

“벨라, 혹시 없는 거야?”

키안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벨라는 고민했다. 사실 사교계에선 아키텐 공작이 죽은 이유가 약물 과다 복용이 아니라, 어린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다 복상사 당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무리 아키텐 공작이 개차반 같은 자였다고 해도 첫날밤도 치르지 못한 채 죽었다는 사실이 아키텐 공작가에 알려진다면, 유스타나의 상속법상 벨라에겐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재산도 하나 없이 쫓겨날 판이었다.

그래서 벨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아키텐 공작의 공식적인 사인을 첫 관계 시 지나친 쾌락이 원인이라고 적었다. 은어로는 복상사였다. 제길, 정말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뭐, 나도 이상야릇한 꿈을 꾸긴 했지. 하지만 레이디들 사이에선 그걸 몽정이라고 부르는지는 정확히 몰라.”

“그래? 다행이야.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사실 레이디들은 어떤지 알 수가 없어서, 내가 이상한 건 아닌지 걱정했었거든.”

“이상한 건 아니야. 레이디라고 해서 성욕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니까. 개개인마다 다르다고 생각해. 사실 하드윅 백작 부인은 그런 쪽으로 엄청 밝히는 사람인데, 백작 부인의 지나친 요구에 백작께서 도망을 칠 정도라고 했거든.”

“그래? 그럼 벨라는 레이디들이 성욕을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위를 한다던가, 사창가에 가서 돈을 주고 창녀를 사거든.”

키안의 말에 벨라가 진지한 얼굴을 했다. 사실 유스타나 제국 역시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성적으론 그렇게 폐쇄적인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나라든 레이디들에게 제약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사실 혼자서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돈을 주고 남자를 사지 않는 건 확실해. 아무리 유스타나 제국이 성에 있어서 폐쇄적인 곳은 아니라지만, 어느 나라든 레이디들에겐 평판이란 게 따라붙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전하께 술을 먹인 후, 덮치는 건 어때?”

“그건 안 돼. 전하께선 술을 드시지 않거든. 무엇보다 무척이나 예민하셔서 작은 소리에 깨셔. 침대에 묶어두지 않는 한, 불가능해.”

키안이 회의적으로 대답하자, 벨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하드윅 백작 부인이 남편과의 만족스럽지 못한 성생활을 고백하며,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물품을 구입했다는 말을 했었다.

그러곤 미망인인 자신에게 은근슬쩍 그 가게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귀띔까지 했었다. 사실 그땐 그녀의 무례한 태도에 콧방귀를 뀌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잘 들어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키안. 사실 하드윅 백작 부인이 그런 쪽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었어.”

“하드윅 백작 부인?”

“응, 응.”

분명 하드윅 백작 부인은 바레나 거리에 귀부인들을 위해 은밀히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다고 했었다.

“바레나 거리에 있다고 했어. 하지만 그곳은 소개장을 갖고 가지 않으면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아. 귀부인들은 소문이 나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거든. 특히 남편들은 자신들이 성적으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그래서 밖으로 알려지는 걸 죽는 것보다 싫어하거든.”

키안 역시 벨라의 말에 동의했다. 기사들 사이에서도 자신들의 물건의 크기와 함께, 얼마나 오랫동안 여인을 기쁘게 했느냐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소개장? 그러니까 남성 전용 클럽처럼 회원제와 비슷한 거네.”

키안의 말에 벨라가 고갤 끄덕였다. 그러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키안, 우리 같이 가볼래?”

“거기를 가자고?”

“응, 사실 나 역시 궁금했거든. 만약 네가 같이 간다면 그곳이 어딘지 내가 알아볼게.”

사실 하드윅 백작 부인에게 가서 갖은 애교와 비위를 맞춰가며, 소개장을 받아내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하지만 키안과 함께 가는 것이라면 그런 수고쯤 충분히 할 용의가 있었다.

“괜찮을까?”

“너, 참을 수 있겠어? 그러다 전하를 덮쳐 버릴 것 같다며.”

벨라의 지적에 키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실 벨라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키안의 삶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여자인데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하필 욕망을 느낀 상대가 세이란 님이란 게 문제인 거지.’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고민 따위 할 필요도 없었다.

“키안은 싫은 거야?”

벨라의 목소리에 키안이 고갤 들었다. 그러곤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좋아, 같이 가보자.”

“키안, 진심이지?”

“응, 전하께서 사흘간의 휴가를 주셨어. 사흘 안에 가보는 게 좋겠어.”

사흘 안이라고 못을 박은 이유는 마음이 바뀔 것 같아서였다.

“알았어. 내가 하드윅 백작 부인에게 가서 물어볼게. 오늘 밤 당장 가자.”

벨라의 말에 키안 역시 고갤 끄덕였다.

“좋아, 오늘 밤이야.”

대답을 하는 키안의 얼굴이 비장했다. 벨라 역시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곤, 하드윅 백작 부인에게 소개장을 받기 위해 서둘러 저택을 나섰다.

**

루시타니아 상단의 주인인 알베르트 루칸 백작은 손바닥에 흥건하게 배어 나온 땀을 바지에 닦아냈다.

숨이라도 크게 쉬었다간 얇은 벽 너머에 있는 자들에게 자신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수 있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숨을 골랐다. 하지만 긴장이 되는지, 자꾸 입안에 마른침이 고였다.

‘제길, 내가 지금 뭘 하는지 모르겠군.’

얇은 벽에 귀를 대곤 알베르트는 자신의 행동에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그는 지금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남성 전용 클럽 안에 있는 비밀공간에서 귀족들의 비밀스런 회합의 내용을 엿듣는 중이었다.

렌스터 공작이 자신이 운영하는 남성 전용 클럽의 회원이란 사실은 행운이었다. 미행하지 않고도 렌스터 공작의 움직임을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그때 옆방에서 귀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알베르트는 숨을 죽인 채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전하께서 초대장을 보냈더군요. 대체 무슨 의도일까요?”

“그거야, 당연히 우릴 설득하려는 것이겠지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전하라면 우릴 설득하는 게 아니라, 명령을 하셨을 겁니다. 다 알고 계시겠지만, 황태자 전하께선 태어날 때부터 차가운 성격이셨다는 것을요. 설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이십니다.”

렌스터 공작의 말에 동의하듯 귀족들은 말이 없었다.

“그럼 렌스터 공작님께선 전하께서 우릴 티룸으로 부른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이곳에 오기 전, 대신전에 잠깐 들렀습니다.”

“대신전이면, 대신관님을 만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요?”

“그게 아센 공작님의 부탁을 받아 신탁을 받기 위해 기도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신탁이라면?”

“황태자비에 대한 신탁인 것 같았습니다.”

순간 방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황태자비에 대한 신탁을 받기 위해 대신관이 기도를 시작했다는 의미는 황태자인 세이란이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혹시 황태자비로 점찍어놓은 레이디가 있는 건 아닐까요?”

“전하께서요? 말도 안 됩니다.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전하께선 레이디들에게 관심도 없다는 걸요. 예전엔 그 일로 인해, 전하께서 미소년을 좋아한다는 황당한 소문까지 돌았지요. 아마 그 소문의 대상이 어린 레녹스 공작이었던가요?”

“헛소문이었습니다. 전하께서 그 해에 사교계에 데뷔했던 레이디에게 첫눈에 반하셔서, 그 레이디가 가는 파티마다 참석하셨거든요. 처음 있는 일이라, 한동안 사교계에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제 기억으론 그 레이디가 아마…….”

“흠흠, 내 여식이었습니다. 제가 그 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답니다. 거기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오던 청혼서도 뚝, 끊겼지 뭡니까.”

“세상에, 그 생각이 이제야 나다니. 혹시 전하께서 마음에 두고 계신 신붓감이 공작님의 영애가 아닐까요?”

“저 역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성 캐서린 수도원에 연락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키엘체로 돌아올 준비를 하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알베르트는 귀족들의 대화를 엿듣는 걸 중단했다. 더 듣지 않아도 이번 모임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알베르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방을 나왔다.

하지만 알베르트가 빠져나간 직후, 그가 엿듣고 있던 렌스터 공작의 방 안으로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간발의 차이로, 알베르트 루칸은 중요한 정보를 놓쳐 버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패트리샤에게 걸음을 재촉했다.

**

제임스 에버콘 공작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했다. 지금 이 방문 너머에서 비밀 회합을 하고 있는 렌스터 공작은 자신의 방문을 반기지 않을 게 뻔했다.

사실 몇 번이나 공작가로 사람을 보냈지만, 번번이 집에 없다는 대답을 보내온 것이다.

‘쳇, 날 피할 생각인 모양이군. 욕심 많은 늙은 여우 같으니라고.’

하지만 제임스 에버콘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황태자인 세이란이 셀서스 궁의 티룸에서 귀족회의를 열겠다고 한 이상, 무슨 수를 쓰더라도 렌스터 공작을 만나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분명 자신의 딸이 황태자비가 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을 테니, 날 경계할 게 분명해.’

마음 같아선 늙은 렌스터 공작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협박을 할까도 했다. 그게 성격에 맞았으니까.

하지만 현명한 그의 어머니인 샤론 에버콘 공작부인은 최대한 그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쳇, 어머니께선 고귀하고 지혜로운 분이시니까 따라야 해.’

제임스는 냉소로 비틀린 입꼬리를 바로 했다. 그러곤 어머니인 샤론 에버콘의 충고대로 최대한 예의 바른 표정을 했다.

그러자 조금 전 비열해 보이던 모습은 사라지고, 잘생기고 겉이 번드르르한 귀족의 모습이 되었다.

똑똑, 노크를 한 제임스 에버콘은 들어오란 대답도 듣지 않고 벌컥, 문을 열었다.

그러자 비밀 회합 중이던 렌스터 공작을 비롯해 해링턴 백작, 그리고 스텐호프 백작의 고개가 동시에 그에게 향하는 게 보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세 사람은 모두 놀란 얼굴들이었다.

방으로 들어선 제임스 에버콘은 선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먼저 입을 뗐다.

“렌스터 공작님, 이곳에 계셨군요. 공작님 댁으로 사람을 보냈더니, 집을 비우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공작님을 뵙게 되다니, 제가 운이 좋은 모양입니다.”

제임스 에버콘 공작의 등장에 렌스터 공작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에버콘 공작, 그대가 날 찾은 이유를 모르겠군요.”

렌스터 공작의 싸늘한 반응에도 제임스 에버콘은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권하지도 않는 의자에 자릴 잡고 앉기까지 했다.

“아마, 제 얘길 들으시면 조금은 관심이 생기실 겁니다.”

렌스터 공작은 제임스 에버콘 공작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유스타나 제국의 황태자인 세이란을 제외하곤, 눈앞에 있는 제임스 에버콘 공작이 가장 높은 신분이었다.

‘뭐, 샤론 에버콘 공작부인이 황제 폐하의 이복 여동생이니, 황실의 피가 섞여 있긴 하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황태자인 세이란이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황태자가 있는 한 그는 언제나 2인자일 뿐이었다.

“그럼 어디 한번 들어보도록 하지요. 하지만 우린 할 얘기가 많으니, 최대한 빨리 끝내줬으면 합니다.”

렌스터 공작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임스 에버콘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곤 서둘러 준비해 온 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

알베르트가 방을 나오자,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패트리샤가 서둘러 다가왔다.

“별 얘긴 없었고, 며칠 뒤에 있을 귀족회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 렌스터 공작가의 영애가 성 캐서린 수도원에서 키엘체로 돌아올 것 같더군.”

알베르트의 말에 패트리샤가 고갤 끄덕였다.

“전하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패트리샤가 소매에 넣어두었던 종이를 하나 꺼내 알베르트에게 건넸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물어도 될까?”

“1년 반 전부터 셀서스 궁에 들어온 자들의 명단입니다.”

패트리샤의 말에 알베르트가 고갤 끄덕였다. 황태자인 세이란이 뭘 궁금해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전하께 조만간 찾아뵙는다고 전해줘.”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패트리샤는 알베르트에게 인사를 한 후 서둘러 남성 전용 사교 클럽을 나왔다. 그러곤 세이란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기 위해 어두운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급히 서두르던 패트리샤는 바로 자신의 앞을 지나치는 마차를 보지 못해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놀란 패트리샤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자신과 부딪힐 뻔한 마차를 쏘아보았다. 그런데 그 마차는 자신의 친구인 진의 가게 앞에 멈춰 섰다.

“펫숍에 온 손님인 모양이군.”

패트리샤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고갤 돌렸다. 펫숍에 드나드는 대부분의 손님이 무엇을 목적으로 오는지 뻔히 알고 있었다.

“앉아서 또 돈을 긁겠군.”

패트리샤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마차에서 검은 망토를 쓴 레이디 두 명이 내리는 게 보였다. 긴장을 했는지 두 사람은 펫숍의 문을 두드리기 전 망설이는 듯했다.

“특이하군. 혼자 찾아온 게 아니라, 둘이 함께라니. 이런 비밀을 공유할 정도로 친하다는 건가?”

패트리샤는 호기심에 어둠 속에서 좀 더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키가 작은 여인이 결심이라도 한 듯 펫숍의 문을 두드렸다. 이내 문이 열리고 펫숍의 주인인 진이 밖으로 나왔다. 집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진의 얼굴은 물론 망토의 후드를 깊게 눌러쓴 여인들의 얼굴이 슬쩍 보였다.

“잠깐, 저 얼굴은…….”

무심한 눈빛으로 레이디들을 바라보던 패트리샤의 눈동자가 놀란 듯 커졌다.

“말도 안 돼. 그분이야. 전하의 레이디.”

황제의 독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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