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독사과-20화 (20/139)

제 20 화

“하아-”

키안은 달콤한 숨을 내쉬었다. 입술 새로 흘러 들어오는 물을 마시자, 지독한 갈증이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독한 갈증을 해갈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키안은 좀 더 입술을 벌린 채 물을 더 받아 마셨다. 그러자 좀 더 많은 물이 입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만족감에 나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곤 이번엔 혀까지 내밀어 물이 있는 곳을 핥아 먹기까지 했다.

말캉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기분이 좋았다. 키안은 혀로 핥는 걸로 만족할 수 없어 이번엔 아이처럼 그곳을 쪽쪽 빨기 시작했다. 나른하고 만족스러운 감각이 온몸으로 퍼졌다.

이상했다. 물을 마셔 갈증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지만, 기분 좋은 감각 때문에 그곳에서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키안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핥아 먹고 나서야 아쉬운 듯 입술을 뗐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갈증이 가시자, 키안은 따뜻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베개에 얼굴을 묻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해. 뺨에서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다니.’

키안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뺨에 닿는 포근함이 좋아 한없이 기대 잠을 자고 싶었다. 키안은 베개에 뺨을 비볐다. 그러자 폭식하던 베개가 단단해졌다.

‘정말 특이한 베개야.’

몸을 감싼 따뜻함에 등골까지 서늘하던 냉기가 사라졌다. 물을 마시고 나니, 지끈거리던 두통도 사라지고 없었다. 아레오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더니, 정말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잠깐, 감기라고?’

순간 키안은 미간을 모았다. 분명 자신은 황실 기사단의 임명식에서 세이란과 검술 시합을 했었다.

그리고 그에게 진 후, 그의 품에…….

순식간에 머릿속이 맑아졌다. 정신이 확 든다는 느낌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놀라 번쩍 눈을 뜨자, 어김없이 세이란의 녹색 눈동자가 있었다. 그리고 이내 녹색 눈동자가 안도감으로 흔들리는 게 보였다.

“드디어 깨어났군. 열이 내려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하던 참이었다.”

“전하.”

세이란의 품에 아직도 안겨 있다니. 그 사실에 놀란 키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으어억!”

첨벙, 첨벙.

그의 품에서 내려오려던 키안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세이란이 재빨리 물속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키안을 두 팔로 바짝 끌어안았다. 그러곤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조심해. 여긴 금원의 호수다. 가까스로 열이 내렸는데, 물에 빠져 죽는다면 억울하잖아.”

“아아, 네. 금원……. 호수군요.”

키안이 금원의 호수라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황제와 직계 혈족만 들어올 수 있는 금원에 자신이 들어왔다고 생각하자,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키안은 호기심에 고갤 들고는 천천히 금원을 두리번거렸다. 난생처음 보는 금원은 아름다웠다. 나무와 꽃으로 가득 차 있어 공기 역시 상쾌했다.

아니, 뭔가 달랐다. 공기의 흐름이 멈춘 듯 금원 안엔 바람 한 점 없었다. 싱그러운 향이 났지만, 춥지 않았다. 마치 유리로 만든 온실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데 제가 왜 여기에?”

“감기로 열이 났다. 의사가 열을 내려야 한데서 급한 마음에 이곳으로 널 데려왔던 거야. 최대한 빨리 열을 내려야 한다고 했는데, 생각나는 게 여기밖에 없었거든.”

그제야 자신이 왜 옷을 입을 채로 물속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에 하나 열을 내린다며 의사가 옷이라도 벗겼다면, 자신이 여인이란 사실을 알게 됐을 터였다.

‘방심하다니, 정말 위험했어.’

키안은 안도감과 함께 자신의 부주의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깨닫곤 키안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사실 일곱 살 때 로열 아카데미에 들어간 후 지금까지 아프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었다. 세이란은 그런 키안을 보며 어린 나이에 노인처럼 몸에 좋은 것들만 먹는다고 타박을 했지만, 키안에겐 너무도 절박한 문제였다.

하지만 키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처럼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혼자 해열제를 삼킨 채 방문을 잠그곤 방에 틀어박혔다. 어린 나이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서 모든 고통을 인내해야 했다.

그나마 최근 몇 년간은 건강했다.

‘방심해 버리다니.’

아레오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고 했을 때, 약을 먹었어야 했다. 아니, 출근 전 머리가 아팠을 때부터 약을 먹었어야 했다.

하지만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키안의 머릿속은 황실 기사단의 임명식에서 세이란을 어떤 얼굴로 봐야 할 것인가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것보다 더 신경이 쓰는 일이 생긴 건.

“저 때문에 전하께서도 젖으셨습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키안의 사과에 물속에 있던 세이란이 키안을 안고 일어섰다. 그러곤 호수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키안을 바위 의자에 앉힌 후 옆에 놓여 있던 타월을 건넸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 게 좋겠다, 키안. 기껏 열을 내렸는데 다시 아프면 곤란하잖아.”

“아, 네.”

타월을 받아 든 키안은 젖은 머리카락을 닦았다. 그러곤 그가 가져온 마른 옷을 받아 들었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크기를 맞추지 못했어. 크더라도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만 참아.”

세이란이 밖으로 나가려 하자, 키안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전하께서도 젖으셨습니다. 이걸로 닦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세이란은 키안의 손을 떼어내더니, 걱정할 것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지금 갈아입으러 가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 허물없이 지내온 사이라 해도, 서로 알몸을 보이며 옷을 갈아입는 건 사양이거든. 사내자식의 몸을 봐봤자, 눈만 버릴 테니까.”

키안의 얼굴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아, 네. 제가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서 가서 옷을 갈아입으십시오.”

하지만 세이란은 금원을 나가는 대신 손을 뻗어 키안의 마른 입술을 쓸었다.

“걱정했다, 키안. 다신 아프지 마.”

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이 녹을 것처럼 다정했다. 키안이 고갤 들자, 그의 녹색 눈동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 키안은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감사합니다, 전하. 다신 아프지 않겠습니다.”

그가 키안의 입술에서 손을 뗐다. 그러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조금 전과는 달리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옷을 다 갈아입으면, 이 길을 따라 나오면 돼. 금원 입구에서 아이크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가 널 저택까지 데려다줄 테니 거절하지 말고 따라가도록 해. 나는 밀린 업무가 있어서 가봐야 하거든.”

그제야 키안은 자신 때문에 그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저 때문에, 여러 가지로 폐를 끼쳤습니다.”

키안이 면목 없다는 얼굴을 했다. 사실 밀린 업무 때문에 가야 했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키안, 사흘 동안 집에서 쉬도록 해. 전쟁터에서 돌아온 후에도 편히 쉬지 못했잖아.”

“아닙니다, 전하. 이제 괜찮습니다.”

“말 들어. 아픈 몸으로 기사단에 나오는 게, 오히려 더 폐가 된다는 걸 잊지 마.”

세이란의 지적에 어쩔 수 없이 고갤 끄덕였다. 세이란이 손을 뻗어, 키안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그러곤 서둘러 금원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키안은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가 머리카락을 쓸어주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키안은 두 손으로 달아오른 뺨을 감쌌다. 이상하게도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온몸이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다시 열이 오르려는 건가?”

차가운 손으로 뺨의 열을 식힌 후, 키안은 다시 열이 오르기 전에 젖은 옷을 벗었다. 마른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아낸 후 그가 가져다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다 입은 키안은 옷 속에 얼굴을 묻고는 숨을 흠뻑 들이마셨다.

‘옷에서 세이란 님의 향기가 나.’

고갤 든 키안은 자신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옷을 입은 자신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소매와 바지를 조금 걷어 올리자, 그나마 봐줄 만은 했다. 마지막으로 외투를 몸에 걸친 후에야, 금원을 나갈 준비를 끝냈다.

“다행이야. 외투가 크고 두꺼워서 몸의 윤곽을 다 감출 수 있겠어.”

키안은 벗어놓았던 옷을 타월에 돌돌 말았다. 그러곤 그가 알려준 대로 길을 따라 금원을 나왔다.

“마차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레녹스 공작님.”

금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종장 아이크가 정중하게 허릴 숙였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군, 아이크.”

“아닙니다, 레녹스 공작님. 공작님을 돕는 일은 언제나 제 기쁨입니다.”

그렇게 대답한 후 아이크는 마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키안은 아이크를 따라나서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키안의 시선은 어느새 세이란이 머물고 있는 궁으로 향했다.

“레녹스 공작님, 전하께서 감기에 걸리시지 않게 최대한 빨리 모셔다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이크의 말에 키안이 고갤 끄덕인 후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마차에 오른 키안은 저택으로 오는 동안 내내 자신이 정신을 잃은 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이크, 혹시 전하께서 날 금원으로 데리고 올 때 옆에 있었나?”

키안의 물음에 아이크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했다. 세이란이 키안의 몸에 있다는 상처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함께 있었습니다. 전하께서 레녹스 공작님의 걱정을 아주 많이 하셨습니다.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하시면서 직접 공작님을 간호하셨거든요. 이런 전하의 모습은 처음이라,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전하께서 레녹스 공작님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의 대답에 키안 역시 놀랐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다음번에 만나면, 전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겠군.”

그 말을 끝으로 키안은 고갤 돌려 창밖을 보았다. 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이크의 말을 듣긴 했지만, 도무지 그가 자신을 직접 간호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기 전 갈증으로 인해 물을 마시던 기억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어떻게 물을 마셨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순간 키안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곤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아이크의 눈을 피하기 위해 두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하지만 그것밖엔 없었다. 호수 안에서 물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세이란의 입을 통해서 밖엔. 순식간에 키안의 얼굴이 새빨갛다 못해 새파랗게 변했다. 그리고 자신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세이란의 입술을 혀로 핥고 아이처럼 칭얼대며 더 달라고 했다는 사실 역시 떠올랐다.

정말 망했다.

‘전하께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에게 그저 물을 주려던 것뿐이었는데, 나는 전하의 혀를 빨고 핥고 별짓을 다하다니.’

아무리 정신이 없다고 해도 정말 미친 게 분명했다.

그때 마차가 멈췄다. 집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이크가 먼저 내려 키안을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고마워, 아이크.”

마차에서 내린 키안은 아이크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내 마차는 황실로 향했고 혼자 남겨진 키안은 낭패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어두운 얼굴로 혼잣말을 했다.

“이러다 정말 전하께 발정하고 말겠어.”

근데 발정이란 말이 맞는 건가? 성에 대한 용어며, 지식이 전혀 없는 키안은 고갤 갸웃했다. 하지만 기사들에게 주워들은 성에 관한 상식들 중엔 자신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은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인이든 남자든 한 번 발정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섭게 열중한다고 했는데, 설마 나도 그런 건가?”

키안은 기사들이 웃으며 했던 말이 떠오르자, 두려움에 고갤 흔들었다. 지금 자신의 상태로 보건대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안 되겠어. 최대한 빨리 벨라를 만나야겠어.”

**

“하아- 하아.”

방으로 돌아온 세이란은 젖은 옷을 벗으며, 참고 있던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온몸을 태울 것 같은 열기가 느껴지자, 세이란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손등으로 쓸었다.

질끈 눈을 감자, 또다시 억누르고 있던 욕망이 고갤 들었다. 제길, 물을 먹이기 위한 행위가 그렇게 야릇하고 섹시한 것인 줄 처음 알았다.

키안의 붉은 혀가 자신의 입술을 핥았었다. 물을 마시기 위한 행위가 분명했지만, 열기를 품은 뜨겁고 촉촉한 혀가 자신의 입술에 닿자 심장이 무섭게 뛰었다.

그리고 집요하게 그의 입술을 핥고, 입안에 머금고 있던 물을 받아 마시기 위해 혀를 얽어오던 그 감각이 너무도 생생했다. 순간 세이란의 다리 사이가 묵직해졌다.

“하아, 좀 더 원해. 이제 이걸론 부족해.”

세이란은 주먹을 꼭 쥐곤, 온몸을 뒤흔들고 있는 욕망을 삼켰다. 처음엔 키안의 하늘빛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그다음엔 자신의 시선을 의식하는 키안의 표정, 또 당황해 고갤 돌리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키안이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다가 미약을 마시는 돌발상황이 일어났다.

그 일로 인해 세이란은 키안을 안았고,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짙은 쾌락을 맛봤다. 등골이 오싹하고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쾌락은 독과 같았다. 절대 끊어낼 수 없는 지독한 독.

‘그래서인 건가, 이젠 키스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세이란은 이내 고갤 가로저었다. 육체적으로 맛본 욕망 때문에 이렇게 키안에게 집착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건 욕망만이 아니야.”

온몸을 관통하던 날 것 그대로의 지독한 쾌락 역시 좋긴 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키안의 모든 걸 소유했다는 생각이 그를 먼저 집어삼켰다.

생각지도 못했던 완벽한 만족감에 온몸이 떨렸다. 심장 역시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뛰었다.

“이런 내 마음을 키안이 안다면, 도망칠 거야. 분명 두려움을 느낄 테지.”

세이란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이 스스로도 두려웠다. 키안에게 지독한 소유욕을 느끼게 된 순간,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그를 막을 수 없었다. 키안을 갖는 데 방해가 되는 게 있다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일 수도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은 맹수의 성향을 가진 냉혈한이었다. 일곱 살이던 키안을 만나기 전까지 세이란은 아버지인 윈슬러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었다. 몸이 어렸을 뿐, 그는 한 번도 어린아이인 적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동정심과 안타까움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갖게 한 사람이 바로, 키안이었다. 그의 심장은, 아니, 그에게 있는 유일하게 말랑말랑하고 뜨거운 부분은 오직 키안의 것이었다.

“어떻게 한다?”

세이란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곤 창문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금원에서 나온 키안이 자신이 있는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세이란은 심장을 태울 것 같은 지독한 만족감을 느꼈다.

“너 때문이다, 키안. 날 이렇게 만든 건.”

세이란은 멀어져 가는 키안을 보며, 다시 한 번 맹세했다. 그 누구도 자신의 것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라고.

**

“뭐, 발정을 해? 누가, 네가? 그것도 전하께?”

벨라의 반응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호들갑을 넘어서 뒤로 까무러칠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벨라를 보며, 키안은 얼굴을 걱정을 찌푸려졌다. 벨라의 반응이 이 정도면, 자신의 상태가 심각한 건 분명한 듯했다.

“맞아. 내가 전하께 발정을 하는 것 같아.”

키안의 진지한 고백에 벨라는 가슴에 성호를 긋더니, 손을 가슴에 모으기까지 했다. 그러곤 누가 들을까 무섭다는 듯 침대에 누워 있는 키안 쪽으로 고갤 숙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그럼, 증상을 말해봐. 어떻게 발정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들어야겠어.”

“그게, 우선 전하의 손이 닿으면 온몸에 열이 나.”

“그리고.”

“그리고 눈만 마주쳐도 심장 뛰고, 몸이 떨려.”

“그건 뭐,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전하께서 숨도 못 쉬게 잘생기셨으니, 당연한 일이거든. 아마 키엘체의 대부분의 레이디들이 같은 증상을 앓고 있다는데 내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어.”

“정말 그래?”

“그렇다니까. 사실 지금까지 네가 이상했던 거야. 그렇게 숨 막히게 잘생긴 전하 곁에서 14년이나 있었는데, 심장이 멀쩡하다는 게 말이야. 이게 정상인 거야.”

벨라가 걱정할 것 없다는 얼굴로 말하자, 키안이 참고 있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자신이 정상이란 사실에 안도한 나머지, 며칠 전 꿈속에서 느꼈던 야릇한 느낌에 대해서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벨라. 내가 며칠 전에 몽정을 했어.”

“몽……. 잠깐, 그러니까 몽, 정이라고 했어?”

황제의 독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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