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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독사과-12화 (12/139)

제 12 화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키안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스텐호프란 이름을 들었을 때 귀에 익다고 했더니, 어젯밤 파튬의 가면무도회에서 자신을 도와주려고 했던 남자의 이름 역시 스텐호프였다.

‘그럴 리 없어. 가면무도회에서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키안은 고갤 들어 사무엘 스텐호프를 보았다. 세이란 만큼이나 큰 키에 훈련으로 다져진 몸은 단단해 보였다. 얼굴 역시 눈이 갈 정도로 미남이었다. 특히 검은 눈동자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스텐호프, 잘 부탁한다.”

키안이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사무엘 스텐호프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검을 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자, 두 사람의 체격 차가 두드러졌다. 근육질에 장신인 사무엘에 비해 키안은 호리호리 한데다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 역시 강하다는 느낌보단 아름다웠다.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얼굴이 빨개질 만큼.

“드레이크님, 또 시작됐군요.”

아레오가 피식 웃으며 신입 기사들을 보았다. 드레이크 역시 이미 예견했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곧 알게 되겠지, 황실 기사단의 단장이 얼마나 강한지를.”

잠시 후, 드레이크의 예상대로 사무엘 스텐호프를 비롯해 신입 기사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장신의 사무엘이 키안의 발아래 넘어져 있었다. 연습용 검이긴 했지만 키안의 검이 사무엘의 목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하아, 하아-”

바닥에 넘어져 있는 사무엘은 짧은 시간 무섭게 밀어붙인 키안의 공격에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지만 키안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냉정한 눈으로 사무엘을 바라보았다.

“제가 졌습니다.”

사무엘이 검을 내려놓으며 패배를 시인했다. 그러자 키안은 검을 거둬들이더니, 넘어져 있는 사무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실력이 좋군. 하지만 상대를 얕잡아 보는 건 단점이다. 그리고 공격에만 치중한 것 역시 약점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거야.”

사무엘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작고 가느다란 손이었다. 검술보단 우아한 찻잔이 어울릴 만큼. 하지만 사무엘은 이번 검술 시합을 통해 똑똑히 알게 되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기억하겠습니다, 단장님.”

사무엘이 키안의 손을 붙잡곤 일어났다. 그러곤 황실 기사단의 단장인 키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무엘은 처음으로 귓불이 붉어졌다.

‘미쳤군. 남자에게 얼굴을 붉히다니.’

그때 키안이 사무엘의 손을 놓았다. 그러곤 드레이크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드레이크 경, 오늘 저녁에 신입 기사단의 환영식을 해야겠다. 준비하도록 해.”

키안의 명령에 기사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호했다. 그 모습에 키안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단장님께서도 환영식에 참석하시는 겁니까?”

아레오의 질문에 기사단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빛났다. 키안은 잠시 망설였다. 집을 나오기 전 카이우스가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저녁 약속은 취소해야 할 것 같군. 집으로 사람을 보내야겠어.’

키안은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들을 보며 고갤 끄덕였다.

“잠깐만이다.”

“들어가시는 겁니까? 제가 댁까지 모시겠습니다.”

술집을 나오려던 키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자신과 검술 시합을 한 사무엘 스텐호프가 서 있었다.

“그럴 필요 없다, 스텐호프. 가서 충분히 즐기도록 해. 오늘은 신입 기사들을 환영하는 자리니 마음껏 먹어도 좋다.”

키안은 한껏 분위기가 무르익자 눈치껏 자릴 뜰 참이었다. 경험 상 눈치 없이 상사가 자릴 지키고 있으면, 부하들은 마음껏 놀지 못했다.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보단 조용한 걸 더 선호하기도 하고. 바람도 쏘일 겸,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키안은 거절할까도 했지만 진중해 보이는 검은 눈동자를 보자 마음을 바꿨다.

“그럼 부탁하지.”

허락이 떨어지자, 사무엘이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지나가던 마차를 잡은 다음, 문을 열어주었다.

“술에 취하신 것 같아, 말보단 마차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굉장히 세심하군.”

“위로 누님이 세 분이나 계십니다. 그리고 누이동생이 있고요.”

한마디로 몸에 밴 행동이란 뜻이었다.

“레이디들이 좋아하겠군. 인기가 많겠어.”

키안이 마차에 오르자, 사무엘이 마부에게 레녹스 저택으로 가달라는 말을 하고 마차에 올랐다. 그러곤 맞은편에 자릴 잡았다.

“스텐호프가라면, 남쪽에 영지를 둔 백작가군. 장남은 아닌 것 같고.”

“차남입니다.”

사무엘의 대답에 키안이 고갤 끄덕였다. 그제야 로열 아카데미에서 사무엘을 보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왜 황실 기사단에 지원했는지 물어도 될까?”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습니다. 작위를 받지 못하는 귀족가의 차남은 특별히 쓸모가 없기 때문에 제 길을 찾은 것뿐입니다.”

사무엘의 말에 키안 역시 동의했다. 유스타나 제국에서 작위를 계승할 장남 외엔 차남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 치부되었다. 사실 차남만이 아니었다. 유스타나 제국에선 쌍둥이로 태어나는 것 역시 죄악이었다. 키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그대는 다행인 셈이군. 황실 기사단에 들어올 수 있어서.”

“용병이나 상인이 되는 것보단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키안은 진중해 보이는 사무엘을 응시했다. 뭔가 사정이 있는 듯 얼굴엔 그늘이 져 있었다. 그가 황실 기사단에 들어오기 전까지 복잡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

그때 마차가 멈춰 섰다. 벌써 레녹스 공작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스텐호프, 앞으로 황실 기사단의 기사로 잘해주길 바란다.”

키안은 사무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문을 열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사무엘 역시 따라 내렸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사무엘의 배웅을 받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엔 집사인 가브리엘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키안에게서 술 냄새가 났는지 가브리엘은 옆에 서 있던 하녀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서둘러 부엌으로 간 하녀가 쟁반에 물잔을 들고 오자, 유리잔에 들어 있는 물을 다 마셨다. 목이 탔던 모양이었다.

“고마워, 가브리엘. 이제 됐으니, 들어가 쉬도록 해.”

키안이 조금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가브리엘은 조금 불안한 얼굴로 키안을 보다, 뒤에 서 있는 하녀에게 그만 가도 좋다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곤 가브리엘 역시 별채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간 키안은 겉옷을 아무렇게 바닥에 던져 놓은 후 욕실로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욕조엔 뜨거운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서둘러 옷을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첨벙, 첨벙.

물이 욕조 밖으로 튀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욕조 안에 몸을 묻었다. 그러자 따뜻하고 기분 좋은 물이 몸을 감쌌다.

“하아-”

만족스러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키안은 욕조 안에 앉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압박붕대가 가슴을 사슬처럼 꽁꽁 묶고 있었다. 손을 뻗어 붕대를 풀었다. 그러자 붕대 안에 숨겨져 있던 뽀얗고 모양 좋은 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갤 들자, 욕실에 놓여 있는 거울을 통해 새하얀 등 위에 난 검붉은 흉터가 보였다.

“14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군. 오히려 더 선명해졌어.”

키안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검상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특히 오늘처럼 못하는 술을 마신 날이면, 더욱 또렷하게 기억났다.

여린 등을 꿰뚫던 서늘한 검의 느낌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참혹했다.

하지만 어린 키안에게 더 지독한 아픔을 준 것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자신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동자였다.

"불길함의 징조입니다. 이 아이로 인해, 레녹스 공작가는 피로 물들 겁니다."

레녹스 공작가에 쌍둥이가 태어나던 날, 늙은 노파 하나가 레녹스가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곤 자신을 점성술사라고 말하며 태어난 쌍둥이 중 하나를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레녹스 공작부인은 거절했고,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숨겼다.

"10년입니다. 이 아이를 10년 동안 옥탑에 가두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말을 남긴 채 노파는 떠났고, 레녹스 공작은 키안을 옥탑에 가두었다. 옥탑은 철저히 통제되었고 키안의 존재를 아는 자는 공작 부처와 유모인 에리스, 그리고 쌍둥이 형제뿐이었다. 하지만 불행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었다.

결국 떠돌이 점성술사의 예언대로 레녹스 공작가는 후계자를 잃었다. 그렇게 피로 물든 레녹스 공작가는 불운의 징조인 예언의 아이가 레녹스가의 새로운 후계자가 되었다. 지독한 운명이 레녹스 공작가를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널 죽였어야 했다. 그 떠돌이 점성술사의 예언을 들었을 때, 망설이지 말았어야 했다."

키안의 등을 벤 직후, 아버지는 오빠의 시신을 끌어안고 그렇게 말했었다. 키안은 생각했다. 그때 자신이 죽은 것이라고. 지금 살아 있는 자신은 의무와 책임을 짊어진 껍질뿐이었다.

키안은 등에 난 상처에서 시선을 거둬들였다. 술 때문인지 평소와 달리 감상적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상한 날이군. 자꾸만 잊고 있던 것들이 떠오르다니.”

키안이 목욕을 끝내고 욕조를 나왔다. 대충 수건으로 몸을 닦은 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슴을 가릴 붕대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아-”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욕실로 들어오느라, 가슴을 가릴 붕대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키안은 벽에 걸려 있는 목욕가운을 걸쳤다. 손으로 가운의 앞섶을 바짝 당겨 여민 후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헙-”

순간 키안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방어할 새도 없이 자신의 뒤에서 누군가 입을 막았다. 그러곤 강한 힘으로 끌어당기더니, 순식간에 차가운 벽과 벽보다 더 단단한 사람 사이에 가둬 버렸다.

침입자였다.

놀란 키안이 침입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다. 하지만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힘이 세,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키안이 자신의 입을 막은 손을 물기 위해 입술을 벌린 순간 콧속으로 익숙한 체향이 확 끼쳐 들었다.

“쉿! 키안, 나다.”

순간 저항을 멈췄다. 그러곤 놀란 얼굴로 고갤 들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세이란의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늦었다면 그인 줄 모르고 공격할 뻔했다. 하지만 키안 만큼이나, 세이란 역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자정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키안을 방에서 기다리다, 마차 한 대가 저택 앞에 멈춰 서는 걸 봤다. 신입 기사단의 환영식이 있다고 하더니, 조금 늦은 듯했다.

이내 키안이 마차에서 내렸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남자가 뒤따라 내린 것이다.

분명 신입 기사단의 기사 중 하나일 게 분명했지만, 불쾌했다. 거기다 키안이 저택으로 들어올 때까지 서 있는 남자를 보자, 기분이 나빠졌다.

잠시 후 키안이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세이란이 놀려줄 심산으로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온 키안은 옷을 벗어 던지며 욕실로 가버린 것이다.

결국 세이란은 침대에 기대앉아 키안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욕실을 나오는 키안을 끌어안는 순간 목욕가운 아래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가슴 아래서 부드럽고 물컹한 게 짓눌렸던 것이다.

키안이 저항하는 바람에 그의 가슴에 키안의 가슴이 비벼졌고 그 말캉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뭔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제길, 그땐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생각보다 크잖아.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붕대 아래 감출 수 있었던 거지?’

세이란은 가슴 아래 느껴지는 뭉클함에 온몸이 뻣뻣해졌다. 순식간에 아랫배가 뻐근해 왔지만 재빨리 숨을 삼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노, 놓아주십시오.”

당황한 키안이 그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세이란은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그의 다리 사이의 분신이 단단하게 일어서 있어서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전하.”

키안이 세이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고갤 들었다. 불안했다. 세이란과 몸이 닿자 키안은 목욕가운 아래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이러다 세이란이 고개라도 숙인다면 가슴을 볼 수도 있었다.

‘하아, 어쩌지? 이러다 들키겠어.’

자신의 비밀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초조함 때문에 키안은 그의 다리 사이가 단단해졌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도 못했다.

단지 이 상황을 넘겨야 한다는 것만 생각뿐이었다.

“세이란…….”

“쉿, 키안. 지금부터 시험해 볼 생각이다.”

시험이라고? 대체 뭘 시험한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세이란이 키안 쪽으로 고갤 숙여왔다.

그의 청량한 숨결이 뺨에 닿는가 싶더니 서로의 입술이 스칠 만큼 가까워졌다.

놀라 고갤 들자, 짙어진 녹색 눈동자가 열기를 품고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 순간 그가 뭘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전하, 흣-”

밀어낼 틈도 없이 세이란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닿았다. 뜨거운 숨결과 함께 입술에 닿는 나른한 감촉에 자신도 모르게 헉하고, 숨을 삼켰다.

왜 그가 이런 시험 따위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키안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세이란의 눈빛 때문인 건가? 키안은 그의 시선에 사로잡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뜨겁고 말캉한 혀가 키안의 입술을 쓸며 닫혀 있는 입술을 갈랐다.

“하아-”

키안이 참았던 숨을 내쉬자, 순식간에 두 사람의 뜨거운 숨결이 하나로 얽혔다.

“키안.”

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키안은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왜일까? 왜 그의 키스에 몸이 반응하는 거지?

키안은 탐색하듯 조심스럽게 입술을 겹쳐 오는 그의 키스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흐읏-”

입술 새로 젖은 신음이 새어 나오자,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 순간 뜨겁고 말캉한 혀가 입술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그의 혀가 키안의 입안에 달콤한 꿀이라도 있는지 진득하게 안쪽의 예민한 부분을 자극했다. 키안은 주먹을 꼭 쥐었다. 자꾸만 젖은 신음이 입술 새로 새어 나올 것 같아 두려웠다.

“그, 그만…….”

키안이 그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그를 밀어냈다. 그러자 세이란의 입술이 떨어졌다. 키안이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갤 들었다. 드디어 끝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착각임을 깨달았다. 그의 손이 키안의 턱을 붙잡더니, 이번엔 단숨에 깊숙이 혀를 묻어왔던 것이다. 순식간에 뜨거운 혀가 키안의 혀를 얽더니, 강한 힘으로 빨아 당겼다. 그 아릿한 아픔에 키안은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확 일었다.

‘하아, 어쩌지. 그를 밀어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

온몸을 뒤흔드는 격정에 키안은 몸을 떨었다. 그에게 붙잡힌 턱이 경련이 일 듯 아파왔다. 하지만 그의 혀는 집요하게 자신의 입술을 파고들며 더욱 농밀하게 혀를 얽어왔다.

키안은 나른한 열기에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벽과 세이란 사이에 갇혀 있어 주저앉는 추태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아-”

키안이 뜨거운 숨을 뱉어냈다. 키스가 깊어질수록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맞닿은 입술이, 얽힌 혀가 농밀하게 젖어들수록 키안은 그에게 매달려 좀 더 키스를 조르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하아, 키안.”

그때 세이란이 거친 숨을 내쉬며 입술을 뗐다. 그의 속삭임에 키안이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세이란의 녹색 눈동자가 열기 띠고 짙어져 있었다. 입술 역시 키스로 인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잔뜩 흐트러진 세이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키안은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때 세이란의 입술이 자신의 귓불에 닿았다. 입술에 닿았을 때와 달리 나른한 열기로 어깨가 움찔 떨려왔다. 키안은 그 나른한 열기를 참아내기 위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젖은 숨결이 키안의 귓가에 닿더니, 이내 거역할 수 없는 나른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눈 감아.”

황제의 독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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