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독사과-6화 (6/139)

제 06 화

세이란은 의자에 깊이 몸을 기댄 채, 가면을 쓴 채 맞은편에 앉아 있는 키안을 응시했다. 목덜미를 가리던 아름다운 은발은 사라지고, 허리까지 오는 구불거리는 금발이 눈에 들어왔다.

‘가발에 화장까지 한 모양이군. 입술이 평소보다 더 붉잖아.’

세이란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키안의 입술을 보았다. 그러자 이 상황이 몹시도 난처한지 입술을 깨무는 키안이 보였다.

가면 아래 붉은 입술이 새하얗고 고른 치아에 짓이겨지자, 세이란은 신체의 한 부분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었다.

‘정신이 나간 모양이야. 이런 상황에서 그런 미친 상상을 하다니.’

세이란은 가까스로 키안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곤 입고 있는 드레스를 천천히 훑어 내렸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키안의 가슴에 닿았다. 순간 세이란은 저런 곡선을 만들기 위해 대체 저 안에 뭘 넣었는지 궁금해졌다.

‘설마 저게 다 자기 것은 아닐 테지? 저 정도의 크기는 절대 압박붕대로는 가릴 수 없는 크기니까.’

그런 생각이 들자, 세이란은 헛기침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욕구불만인 모양이었다. 특히 눈앞에 여인의 모습을 한 키안을 보자, 도무지 이성으로 제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세이란은 귀족들의 시선이 키안의 가슴에 있는 걸 본 순간, 불쾌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제길, 눈을 다 뽑아버려야겠군. 감히 허락도 없이 쳐다보다니.’

세이란이 화가 난 표정으로 키안을 보았다. 숄이나 외투로 가슴을 가리는 게 좋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작 키안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들의 시선조차 느끼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경계심이라곤 전혀 없는 그 모습에 세이란은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소유욕이 불같이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봐.”

가면을 써서일까? 그의 목소리며 눈빛이 평소보다 더 차가웠다. 그 서늘함에 키안은 이제 끝이란 생각이 들었다.

“혀가 잘려 나가기라도 한 거야? 왜 말이 없지, 키…….”

“릴리스. 릴리스입니다.”

그때까지 키안의 옆에서 쥐 죽은 듯 앉아 있던 벨라가 주위를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세이란은 키안의 가슴을 흘끗거리던 귀족들이 이젠 대놓고 세 사람을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마뜩잖은 표정을 했다.

부유해 보이는 귀족 한 명과 아름다운 레이디 두 명의 조합이라. 세이란은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제길.”

세이란은 욕설을 내뱉었다. 마음 같아선 키안을 데리고 당장 이 되지도 않는 가면무도회장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이 무도회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루시타니아 상단의 엘베르트 루칸 백작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는 자가 아니었다. 그가 오늘 이 무도회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얻는데도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세이란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순 없었다.

하지만… 키안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여장한 키안을 남겨둔 채, 알베르트 루칸 백작을 만나러 가는 걸 망설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 고민할 가치도 없는 걸 두고 고민에 빠지다니 말이야.’

세이란은 그런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목소리가 퉁명스러워졌다.

“네가 이런 취미가 있었는지 몰랐군.”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왜 이 꼴로 여길 온 거지? 네 성격에 강제로 입힌다고 입을 네가 아닐 텐데 말이야.”

“그건…….”

키안이 난처한 듯 머뭇거리자, 눈치 빠르게 벨라가 끼어들어 대신 대답했다.

“내기 때문입니다.”

“내기라고?”

“네. 굉장히 사적인 것이라 내기의 내용은 알려 드릴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지금 릴리스는 내기에 져서 벌칙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우습군. 내기의 벌칙이 이런 것이라니 말이다.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의 지적에 벨라가 고갤 숙이며 서둘러 설명을 덧붙였다.

“전하께서 키엘체를 떠나 계셔서 유행을 몰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사교계에선 이런 벌칙이 유행이거든요.”

키안은 벨라의 거짓말에 질끈 눈을 감았다. 거짓말을 하려면 좀 더 그럴듯하게 했어야 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세이란을 속이려면.

그리고 벨라의 연기 역시 너무도 어설펐다. 그녀의 목소리가 불안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에…….

“유행이었군. 난 또 괜한 오해를 한 모양이야.”

뭐? 순간 키안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잠깐, 지금 오해라고 한 것 같은데? 그 말은 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믿는다는 거야?’

하지만 세이란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키안의 시선을 외면한 채, 태연한 얼굴로 앞에 놓여 있는 음료를 마셨다.

“뭐, 오늘로써 평생 놀릴 약점을 쥐었으니 이걸로 넘어가 주지.”

더는 추궁하지 않고 눈감아주겠다는 뜻이었다. 다행이라고 안도해야 했지만, 키안은 불안했다. 그는 대충 넘어가는 성격이 절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벨라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안심한 모양이었다. 그러곤 바로 엉뚱한 질문을 했다.

“유행이라고 하니 요즘 들리는 소문엔 남성 전용 클럽에서도 비슷한 내기를 한다고 하더군요. 사실인가요?”

사실 세이란은 남성 사교 클럽엔 관심조차 없었다.

“관심 없다, 그런 쪽은.”

“아, 그럼 전하께선 주인님 놀이 같은 변태적인 행위엔 관심이 없다는 말씀이시네요. 보기 드물 정도로 건전하시군요.”

변태라니. 당황한 키안이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제 그만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키안이 눈치를 주자, 벨라가 아차 싶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을 보고 있던 그가 벨라에게 뜻밖의 제안을 해 왔다.

“남장에 취미가 있다면, 데려가 줄 수도 있다. 그대가 말하는 남성 전용 클럽에.”

“호기심에 해본 말이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당황한 키안이 서둘러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대답을 무시한 채 벨라에게 말했다.

“약속이 정해지면, 여장을 좋아하는 릴리스에게 통보하도록 하지.”

키안은 속이 탔다. 그의 태도가 묘하게 차갑긴 했지만, 화가 나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여장을 했다는 사실에도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덥네요.”

키안이 앞에 놓여 있던 에이드 잔을 들어 올렸다. 상큼한 레몬 향과 함께 달콤한 음료를 마시자 더위가 조금 가시는 느낌이었다.

“더우신 모양이군요. 제가 바람을 쏘일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키안은 잔을 내려놓으며, 자신에게 말을 거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키가 굉장히 컸다. 그리고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곧은 콧날과 각진 턱에선 남성미가 물씬 풍겼다.

‘누구지? 분명 검을 다룰 줄 아는 귀족 중 한 명이야. 설마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겠지?’

키안은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화려한 옷 속에 감춰져 있었지만, 남자의 몸은 틀림없이 근육질일 게 분명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그랬다. 그리고 장갑을 끼지 않은 그의 손은 살짝 그을려 있었다.

“꺼져.”

낮게 울리는 세이란의 목소리에 키안이 고갤 돌렸다. 그러자 위험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그가 귀족 사내를 쏘아보고 있는 게 보였다.

“내 여자 앞에서 당장 꺼져.”

그의 경고에 가면을 쓴 사내가 똑바로 세이란을 바라보았다. 두 남자는 기 싸움이라도 하듯 서로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잠시 후 사내가 정중한 태도로 고갤 숙였다.

“파트너가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키안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호기심이 생겼다. 지금까지 세이란과 눈을 마주한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만약 우연이라도 그와 눈치 마주치면 세이란의 위협적인 기세에 눌려 뒷걸음치기 일쑤였다.

‘제법이야. 황실 기사단에 들어온다면 좋을 것 같군.’

키안은 그에게 황실 기사단에 지원할 생각이 없냐고 묻기 위해 따라 일어났다. 하지만 세이란이 자신을 무서운 기세로 쏘아보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모습이 그런 권유를 할 상황이 아니란 것 역시도.

“남자에게 추파를 받아 좋은 모양이군.”

“아닙니다. 아는 자인 것 같아 유심히 본 것뿐입니다.”

“그런 것치곤, 사심이 담겨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네가 당장에라도 저 남자의 옷을 벗기고 근육을 만질 것처럼 보였거든.”

그의 비아냥에 키안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어떤 의미에선 비슷했다. 하지만 그건 세이란이 말하는 그런 성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기사로서의 호기심이었다.

“솔직히 보고 싶긴 했습니다. 이젠 근육만 봐도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알 수가 있으니까요.”

“네가 남자의 몸에 관심이 있는지 전혀 몰랐군. 알았다면, 보여줬을 텐데 말이야.”

“네?”

키안이 고갤 들어 불쾌한 듯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세이란을 보았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 전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하지만 키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일어나. 너는 당장 돌아가는 게 좋겠다.”

세이란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키안의 손목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아직 무도회가…….”

“넌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가면무도회가 뭔지나 알고 온 것이냐?”

그의 물음에 키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사교계의 파티에도 거의 참석한 적이 없는 키안이었다. 이런 비밀스럽고 은밀한 무도회가 어떤 의미인지 알 리 없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그러니 어서 돌아가. 곧, 따라갈 테니까.”

“같이 가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키안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자신에겐 당장 돌아가라고 호통을 치더니, 그는 이곳에 더 머무를 생각인 모양이었다.

“만날 사람이 있다. 잠시면 되니, 너는 돌아가.”

세이란이 키안 옆에 서 있는 벨라를 쏘아보았다. 그러곤 그녀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또다시 내 허락 없이 이곳에 이 녀석을 데려온다면, 그땐 용서하지 않겠다.”

순간 벨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사실 벨라는 무도회장에서 보여준 세이란의 태도에 그가 소문만큼 두려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벨라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키안에게만 예외일 뿐, 다른 사람에겐 소문보다 더 차갑고 냉혹한 사람인 게 분명했다.

“벨라 잘못이 아니라, 제가…….”

그 순간 세이란이 고갤 들어 입구 쪽을 보았다. 그러곤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시간이 없다. 이 문젠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 넌, 어서 돌아가.”

세이란이 팔을 놓고는 입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키안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그가 걸어가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붉은 빛 드레스를 입은 육감적인 레이디가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세이란이 레이디 앞에 서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팔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설마 만날 사람이란 게 저 레이디였나?’

키안은 레이디와 함께 나가는 세이란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한 것이었다. 그도 남자였고 여인을 안아 욕망을 해소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맙소사, 지금 저 상황은 내가 상상하는 그것 맞지?”

벨라 역시 놀란 듯 연신 맙소사만 연발했다.

“벨라, 음료를 마셨으면 좋겠는데. 어디로 갈까?”

“너, 돌아가려던 것 아니었어? 전하께서 최대한 빨리 가라고 명령하셨잖아.”

벨라의 말에도 불구하고 키안은 서늘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곤 음료가 준비되어 있는 테이블로 걸어가며 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난 어린아이가 아니야. 집에 돌아갈 시간은 내가 정해.”

**

“여깁니다. 그를 만나시는 동안,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이곳에 있겠습니다.”

세이란은 자신의 비밀 정보원인 패트리샤를 향해 고갤 끄덕였다. 그러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곤, 다시 그녀를 돌아보았다.

“패트리샤,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

“뭐든 말씀하십시오. 따르겠습니다.”

“조금 전 내가 함께 있던 레이디가 파튬을 떠났는지 확인해 줘.”

순간 패트리샤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 하지만 잘 훈련된 정보원답게 서둘러 표정을 갈무리한 후 재빨리 고갤 숙였다.

“확인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패트리샤가 복도를 빠져나가는 것을 본 세이란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드윈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를 맞았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 있던 알베르트 루칸 백작 역시 따라 일어나 고갤 숙였다. 사실 알베르트 루칸은 가면을 쓴 채로 방 안으로 들어오는 남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온몸이 두려움으로 떨렸다.

“어떻게 됐지?”

세이란이 의자에 앉으며 에드윈을 보았다. 그러자 에드윈이 알베르트 루칸 백작을 돌아보았다. 직접 말하라는 뜻이었다.

“그게… 독입니다, 아주 특별한.”

알베르트가 에드윈이 건넸던 병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말을 해야 했지만, 혀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알베르트는 떨리는 손으로, 준비해 온 기다란 종이를 병의 입구로 밀어 넣었다. 독의 성분을 추출한 특수 종이인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가 종이를 꺼내 세이란 앞으로 내밀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 독의 출처를 아는 모양이군.”

세이란의 목소리는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그가 뿜어내는 냉기에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두려웠다.

‘유스타나 제국에서 이런 위압적인 존재감을 가진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어.’

그 순간 알베르트는 본능적으로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군지 깨달았다. 세상에, 알베르트의 눈이 커지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열었다.

“황…….”

하지만 알베르트는 말을 끝마치지도 못한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멍청하게도 유스타나 제국의 법무대신인 에드윈 리치문트 공작이란 걸 알았으면서, 그가 복종하는 사람이 누군지 깨닫지 못하다니.

그때 세이란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이제 이야기가 쉽겠어.”

그의 가면이 바닥에 떨어지자 알베르트가 천천히 고갤 들었다. 그러곤 유스타나의 황태자인 세이란을 처음으로 올려다보았다.

황금빛 머리카락에 조각처럼 완벽한 얼굴은 사내인 자신이 봐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그 잘생긴 얼굴 아래, 무섭도록 잔혹한 맹수가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루칸 백작, 앞으로 루시타니아 상단의 도움을 받고 싶은데, 가능할까?”

알베르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당연히 받아들이겠다고 말을 해야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입이 얼어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전하의 분위기에 압도돼 말을 잇지 못한 듯합니다. 조금만 표정을 푸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에드윈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꿇어앉아 있는 알베르트를 보자, 안쓰러웠다. 사실 자신 역시 로열 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황태자인 세이란을 만났을 때 똑같은 심정이었다.

“루칸 백작, 어때? 루시타니아 상단의 정보력과 힘을 전하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겠나?”

에드윈의 물음에 알베르트가 고갤 끄덕였다.

“영광입니다. 오늘부터 루시타니아 상단은 황태자 전하의 눈과 귀가 되겠습니다.”

알베르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복종을 맹세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알베르트의 머릿속은 수만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다. 무엇보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독이 신경이 쓰였다.

그 독은 유스타나 제국의 개국 공신 가문인 렌스터 공작가에서만 제조되는 특별한 것이었다.

‘설마 별일 아닐 거야. 그저 우연일 뿐…….’

하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엔 황제인 윈슬러가 쓰러진 사건과 너무도 시기가 겹쳤다.

설마, 떠도는 소문이 사실은 아니겠지? 알베르트는 불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1년 전쯤 전이었던가? 국경지대에서 만난 떠돌이 점성술사가 이런 비슷한 얘길 했었다, 곧 유스타나 제국에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사실 그땐 정신 나간 미친 늙은이의 헛소리라고 치부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영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제길, 그 점성술사를 찾아야겠어.’

알베르트는 국경지대로 사람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루칸 백작, 오늘부터 그대는 내 사람이다.”

세이란의 말에 루칸 백작은 고갤 들었다. 여전히 그를 마주 보는 일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을 정도로 공포였다. 만약 자신이 산전수전 다 겪은 상인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오줌을 질질 쌌을지도 몰랐다.

알베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눈앞에 앉아 있는 자를 위해 목숨을 걸게 될 것이란 사실을.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다급하게 문이 열렸다. 그러곤 패트리샤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지금 당장 나와 보셔 할 것 같습니다.”

황제의 독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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