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최근 깊게 잠드는 일이 많아졌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최근에 신경 쓰는 일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최근 업무량이 많이 늘어나기는 했다. 그래, 밤새는 날도 많았지. 그래서 이러는 건가. 살짝 눈을 뜨자 팔로 내 머리를 감싸주고 있는 칼라일이 보였다.
칼라일은 되도록 아침이든 밤이든, 잠든 나를 깨우지 않으려 했다. 갑작스럽게 새벽에 급한 업무가 있더라도 나를 깨우지 않고 혼자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평소에도 일이 많고 피곤해도 쉬지 못하니, 아침잠이라도 폭 잤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깨우지 않았는데…….
하지만 오늘은 그와 함께 지내면서 처음으로 나를 깨웠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나 눈이 부셔서, 그의 품에 얼굴을 묻자 칼라일은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내 등을 토닥였다. 그 손길에 다시금 졸음이 몰려왔지만, 다시 잠들 수는 없었다.
일부러 몸을 일으켜 팔을 위로 쭉 뻗었지만……역시나 피곤함은 가시지 않았다.
“많이 피곤해?”
“으응……조금. 최근에 신경 쓸 일이 많았잖아.”
“역시 며칠 전부터 계속 쉬게 놔뒀어야 했나, 이렇게 피곤해하니 어쩌지?”
칼라일은 소곤거리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는 나를 미안하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지만 괜찮았다.
아직 피곤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좋은 날이 아닌가. 그걸 생각하자면 피곤도 전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미소를 지으며 칼라일의 목을 끌어안은 채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드디어 오늘이었다.
나와 칼라일이 그렇게나 기다리고 염원하던 결혼식 날이.
***
하녀들은 내 머리카락에 장미 향유를 바르고 엉킨 부분 없이 빗으로 빗으며 내가 결혼식을 치를 그 성에 대해 감탄했다. 그리고 성에 대한 감탄은 점점 나로 향했다. 아셀라 영애에게 선물 받은 순백의 드레스보다 훨씬 아름다운 드레스. 새하얀 드레스에 달린 풍성한 레이스는 인어의 지느러미를 연상시켰다.
그 레이스에 콕콕 박힌 은빛 보석들 덕분인지 드레스가 찬란하게 빛이 났다. 하녀들은 환복을 도와주기 위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드레스 쪽으로 다가가던 도중, 창밖으로 대공저 앞에 가득 세워진 마차가 보였다. 결혼식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았는데 벌써 저렇게 몰리다니.
시종들에게 저들의 안내를 하라고 지시하려는 순간 어쩐지 오한이 들었다. 뭐지? 갑자기 왜 이렇게 오한이 들지? 설마……감기라도 걸린 건가?
“혹시 창문을 열어놓았니?”
“창문이요? 아니요. 모두 닫아놓았는데요? 왜 그러세요?”
“오한이 조금……드는구나. 왜 이러지?”
“설마 감기라도 걸리신 건가요? 지금이라도 의사를 불러올까요, 로젤리아님?”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단다. 굳이 소란스럽게 만들지 말렴.”
하지만 밖의 햇살이 쨍쨍한 걸요……하녀들이 중얼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 밖의 햇살이 따뜻하기는 했다. 그러니 나도 더 이해가 가지 않고.
일부러 따뜻한 봄에 결혼식을 준비했는데, 설마 정말 감기라도 걸린 거라면…….
아니야, 그런 생각하지 말자.
이쯤 되니 정말 감기라고 생각되었지만 그걸 드러낼 수는 없었다. 어떻게 티를 내겠는가. 오늘은 모두에게 축복받을 행복한 결혼식 날이었다. 그리고 칼라일에게는 첫 결혼식이었다. 사실상 나는 재혼이었지만, 칼라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칼라일이 이 결혼식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뻔히 아는데, 내가 아프거나 기운 없어 하는 것은……정말 상상도 하기 싫었다.
어떻게든 오늘은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
결혼식이 곧 시작된다.
분명 두 번째 결혼식일 텐데도,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안으로 들어서면, 연회장 한가운데에 칼라일이 있을 것이다. 천천히 걸어가 그의 손을 잡으면……이제 부부가 될 것이다. 나에게 상처 따위 주지 않을, 오로지 나만을 사랑해줄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겠지.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결혼식이 시작되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그런데 문틈으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있던 관리들도 그 소리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관리 중 한 명이 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거대한 문이 열리면서, 그 사이로 칼라일이 걸어 나왔다.
천장에서는 보석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경이로울 정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 어느 때보다도 나를 사랑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칼라일이 내민 손을 잡았다.
이러면 결혼식 절차에 어긋난다.
신부는 연회장 한가운데까지 걸어가고, 중간에서 신랑의 손을 잡고 다시 단상까지 걸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결혼식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칼라일은 직접 문을 열고 나올 뿐만 아니라, 연회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나와 손을 잡고 함께 입장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기를 원하고 있었다.
칼라일의 손을 잡은 순간, 벅찬 희열과 기쁨이 동시에 몰려왔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그와 나눠 낀 반지가 시야 안에서 반짝였다.
대신관은 나와 칼라일이 손을 맞잡은 채 단상 앞에 서자,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인자하게 웃으며 주례를 읊었다.
“로젤리아 가넷은 칼라일 헬리오도르를 앞으로의 행복 속에서 평생의 반려로 맞이할 것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리고 나도 더는 들을 것 없다는 듯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칼라일 헬리오도르는 로젤리아 가넷을…….”
“제 심장을 바쳐서라도 영원토록 부인에게 행복한 일만 있게 해주겠다고 맹세합니다.”
주례 중간에 튀어나온 대답이었지만 아무도 그를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재치있고 진심이 있는 그의 대답에 모두 작게 웃을 뿐이었다. 대신관은 허허, 웃음을 터트렸고 칼라일의 말이 끝나자마자 울려 퍼진 종소리에 맞추어, 칼라일은 내 허리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다시 손을 맞잡고 연회장 끝까지 걸어야 한다고 속삭였지만, 칼라일은 내 입술을 덮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했다.
결국, 키스를 하면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에, 우리 둘 다 서로를 마주보며 환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
결혼식이 끝난 후, 나와 칼라일은 다시 환복을 하고 결혼식에 초대받아 온 사람들을 만나러 다시 연회장으로 왔다. 연회장 한쪽에는 온갖 선물이 놓여있었고, 세실리아 영애가 직접 준비했다던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벽 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생일 연회와 마찬가지로 다들 열심히 준비해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하. 그리고 칼라일님. 드디어 부부가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연회장에 들어서자, 아셀라 영애가 가장 먼저 나와 칼라일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잠들 시간도 없이 바쁜 와중에서도 찾아와준 아셀라 영애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런데 아셀라 영애의 손에 작은 상자가 들려있었다. 그것도 어쩐지……열어보면 안 될 것 같은 보라색 상자가.
“각하께 직접 드리고 싶었답니다. 부부에게 꼭 필요한 필수품이랍니다. 지금 살짝 열어보시겠어요?”
상자를 받아들고는 살짝 흔들어 보았지만, 무엇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아셀라 영애의 표정에 미소로 화답하며 상자를 살짝 연 순간, 나도 모르게 손으로 상자 뚜껑을 퍽 내려쳤다.
도대체 이런 옷은 어디서 구해온 거야?
아니, 옷이기는 해? 다 찢어져 있잖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셀라 영애를 바라보는 사이, 칼라일이 슬쩍 상자 뚜껑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천천히 닫았다. 너무 당혹스럽고 부끄러우면서도 왜 필수품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칼라일은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내 허리 위로 손을 올려두었다.
“이런 중요한 필수품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군요, 영애.”
“저희 부모님도 즐겨 쓰셨다고 해요. 명색이 결혼식 날인데……특별히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군요. 남성용도 있는지 찾아봐야겠군요. 제 부인이 은근히 이런 것을 좋아해서…….”
“아셀라 영애, 아까 누가 찾던데, 이만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내가 단호하게 칼라일의 말을 끊어내자, 아셀라 영애는 위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부채로 가리며, 연회장 한가운데로 사라졌다. 이런 선물이 한 가지쯤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그게 믿었던 아셀라 영애일 줄이야.
“무척이나 놀랐나 봅니다, 부인. 이리도 안색이 창백한 것을 보니.”
분명히 놀리는 어투였다. 나는 상자를 시종에게 전달하며 미소를 유지한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내가 입어주길 바라는 거라면, 저것과 똑같은 옷을 먼저 그대가 입어준다면 한번 생각해볼……칼라일?”
그런데 어쩐지 나를 보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뭐지? 비슷한 것을 입어달라는 게 충격이었나?
“얼굴이 정말 창백한데?”
“응?”
“괜찮은 거야?”
창백하다니?
설마, 감기가 더 심해진 건가……?
순간 덜컥하는 마음에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싶었는데, 아니었던 거야? 나는 뺨 부근을 더듬으며 재빠르게 괜찮다고 말했다. 즐거운 이 날에, 그가 나를 걱정하며 제대로 못 보내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그러지 말고, 저쪽으로 가자.”
걱정스러워하는 칼라일의 팔을 끌어안은 채 일부러 세실리아가 준비해준 연회 음식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 순간 속이 매슥거린다 싶더니 음식 냄새를 맡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으며 주춤거리자, 칼라일이 당황하며 내 팔을 곽 붙들었다.
“로젤리아, 괜찮아? 왜 그래?”
“아니야, 속이 좀……울렁거려서.”
하지만 점점 어지러울 정도로 속이 울렁거렸다. 뭐지? 왜 이러지?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친 순간 샴페인을 들고 가던 시종과 부딪혔다. 그 순간 샴페인 잔 중 하나가 내 발목과 부딪히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칼라일은 다급히 나를, 깨진 파편으로부터 떨어트려 놓았지만, 깨지는 순간 튀어 오른 파편이 손등을 스쳤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통증보다는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더 심했다.
결국, 연회는 급하게 중단되었다.
***
칼라일은 나를 침실로 옮겼고, 내가 그에게 안긴 채 침실로 오자 내 환복을 도왔던 하녀들이 발을 동동 굴리며 칼라일에게 내가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았음을 전했다. 그 일을 전해 들은 칼라일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나는 괜찮으니 다시 연회를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칼라일은 안된다며 나를 말렸다.
아셀라 영애가 부른 의사가 침실로 오자마자 내 상태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손등의 상처는 칼라일이 진작에 치료했지만,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원인을 알려고 하는 것인지 일부러 더 이상은 치료하지 않고 옆에서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아침에 유난히 피곤해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미안해, 내 잘못이야. 아직도 속 울렁거려?”
칼라일은 중얼거리며 손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시작하기 전에 말하는 게 좋았을까.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숨긴 것이었는데.
“각하, 그러니까 유난히 피곤하고 오한이 있고, 속이 울렁거렸다는 말씀이시죠?”
“무리하여, 일 한 것이니 아무래도 스트레스 때문에…….”
“각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각하의 몸에 잠시 손을 대도 괜찮겠습니까?”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칼라일과 잠시 바라보던 나는 손을 건넸고, 의사는 아까보다 더 심각한 얼굴로 맥을 짚기 시작했다. 어쩐지 심장이 더 크게 뛰는 듯했다. 이런 상황을……예전에도 겪은 적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언제였더라?
‘폐하, 혹시 모르니 잠시 검사를 해봐도 되겠습니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맥을 짚던 의사의 손에서 내 손을 확 빼냈다. 나도 모르게 칼라일의 손을 꽉 움켜쥔 채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내가 의사에게서 손을 뺀 순간, 의사는 탄성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임신입니다!”
“……뭐?”
“각하, 임신입니다! 각하의 배 속에 아기가 있습니다!”
아기?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하다 헛숨을 삼켰다.
“아기라니, 내 배 속에 아기가 있다고……?”
나를 걱정하며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하녀들이 나처럼 멍을 때리더니 이내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손을 맞잡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는 황궁에서 나를 따라 대공저로 온 이도 있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축하한다는 말을 연신 내뱉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검진을 해봤는데, 각하의 배 속에는 아기가 있습니다. 유독 피곤해하시며 깊은 잠이 든 것도, 감기에 걸린 것만 같고 속이 울렁거린 것 모두 임신 증상이었습니다.”
“임신 증상…….”
그게 임신 증상이었구나.
나도 모르게 의사가 맥을 짚은 부분을 툭 건들다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임신 증상……몰랐다. 황후 시절 첫 임신 때는 이런 증상조차 없었다.
그때는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업무에 시달리니 그런 증상을 가볍게 넘겨서 잘 못 알아차린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었다. 그래서 그랬나, 내가 이번에도 못 알아차린 것이…….
나도 모르게 배 위로 손을 얹었다. 아직 부르지도 않았고, 배 속에 아기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무거우면서도 빠르게 뛰는 내 심장 소리만이 느껴졌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너무 이상해서, 이 모든 게 꿈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로젤리아.”
그러나 칼라일이 내 이름을 부른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로젤리아, 로젤리아…….”
칼라일의 눈가가 붉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칼라일은 나를 끌어안기는 커녕,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이름을 부르며, 떨리는 손을 뺨 위에 얹었다. 따뜻한 온기가 뺨 위로 퍼져나가자 그제야 이 모든 일이 꿈이 아님을, 정말로 내가 임신했음을 알 수 있었다.
“……괜찮아?”
칼라일이, 뭐라고 할까. 내 임신 소식을 들은 그가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고맙다고 할까, 사랑한다고 할까. 아니면 다른 말을 할까? 그러나 칼라일은 내가 예상한 말들을 내뱉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은 하나였다. 괜찮냐는 말, 딱 그거 하나였다.
그 말이 내가 유산했던 기억을 고려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미친듯이 기쁘고 벅찼지만, 주변 모든 이들이 축하해주는 행복한 순간이었지만, 그는 모든 감정을 억누른 채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괜찮냐고, 아무렇지 않냐고. 혹여나 내가 유산의 기억을 떠올릴까 함께 염려하면서.
“……괜찮아, 칼라일.”
떨리는 입술을 꾹 문 채, 내 뺨을 감싼 그의 손과 내 손을 포갰다.
“나 정말 괜찮아, 오히려 나는……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행복해서…….”
그제야 심장은 다시 가파르게 뛰고, 멈춘 듯했던 호흡이 울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그때와는 달랐다. 외롭고 괴롭기만 했던 황후 시절의 첫 임신 소식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때는, 이제야 나를 온전히 사랑해줄 아이가, 내가 마음 편히 사랑해줄 아기가 생겨 기쁜 것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저 슬프고 기뻤다.
온전한 사랑 안에서 태어난 아이라.
먼저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심장을 눌렀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배를 감싸고는 울음을 토해냈다. 뜨거워진 눈가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를 끌어안고 울었다.
“괜찮아. 지금이라도 알면 되는 거야.”
칼라일은 내 머리를 감싸며 등을 쓸어내렸다. 그 손길이 떨리는 것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그도 놀랍고 벅찼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그 순간조차 자신보다 나를 더 위하고 있었다. 그 손길이 느껴질 때마다 점점 나를 현실로 끌어 당겨주는 듯했다.
꿈이 아니야, 정말로 네게 찾아온 행복이야.
“그 행복을 잊지 못하도록,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그 한마디 한마디가 따스하게 나를 감싸왔다.
더는 베개에 얼굴을 묻지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지도. 주변을 모두 물리고 문을 걸어 잠그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아서.
칼라일을 마주한 그 순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가장 행복한 감정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의 나는,
모든 이들의 축복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