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모든 게 제자리로.
참으로 질긴 악연이다. 루치아노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끔찍하리만큼 거대한 죄를 지은 자신의 쌍둥이. 네가 왜 그렇게까지 악독해져야 했을까. 누구보다도 네 죄를 가장 잘 아는데, 나는 왜 너를 끝까지 미워하지 못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그 답을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루치아노는 칼라일을 사랑했고, 로젤리아도 사랑했다.
그럼에도 샤를로테의 손을 놓지 못했다. 어쩌면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고 힘들게 만들었는데도 네 처형 소식을 들은 순간,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다.
샤를로테, 죽기 직전까지 내가 떠올렸던 것은 네가 그리도 회피하는 어린 시절이었다. 너는 네 어린 시절이 싫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때 너는,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칼라일과 함께 했던 시간도 행복했지만, 그럼에도…….
자책과 그리움이 뒤섞인 감정은 지우려 해도 지워질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너를 가엾다고 여기는 것이겠지.
샤를로테는 너는 내가 어린 시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 하지만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내 어머니가 사고를 당해 크게 다친 것도, 피를 흘리며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은 것도. 너에게 말했듯 여전히 내가 죽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그래서 너를 놓지 못했나……불쌍하고도 잔인한 내 쌍둥이.
“루치아노.”
익숙한 손길에 느릿하게 눈을 떴다. 칼라일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님프 궁이 아니었다. 대공저였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 나도 모르게 황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에 어깨가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샤를로테의 걱정이 피어올랐다. 결국 나도 좋은 사람이 못 되는구나.
“루치아노.”
“네, 칼라일님.”
“이제 어떡하고 싶어?”
천천히 고개를 들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는 칼라일이 보였다. 그는 단 한 번도 나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 원망한 적도 없었다. 분명 샤를로테를 놓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면 티를 내지 않은 걸 수도 있지.
“……칼라일님은 제가 어쩌셨으면 좋겠습니까?”
“네가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어.”
칼라일은 자신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곧 그게 정답이라는 듯이.
“침공이 일어나고, 네가 나를 찾아온 날부터 지금까지……네가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어. 나는 너를 헬리오도르 가문에 일원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는 아니었지. 항상 어딘가에 묶인 채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어.”
쫓기고 있다는 표현도 어울리겠다, 칼라일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루치아노. 나는 샤를로테를 용서하지 못해. 그건 로젤리아도 마찬가지일 거야.”
“…….”
“하지만 그런 너를 이해해. 네가 샤를로테를 가엾다고 여기는 것도, 불쌍하게 여기는 것도. 처형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마치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한 말에 루치아노의 얼굴은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샤를로테를 가엾다고 여긴 것도 맞았고, 처형을 당하지 않기 바란 것도 맞았다. 사람들에게 비난당하지 않기를 바랐고, 그녀가 그렇게 삶을 마감하지 않기를……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샤를로테가 내일 처형을 당할 거야.”
“……칼라일님, 저는.”
“그래, 형식상으로는 샤를로테가 처형을 당하겠지. 실상은 추방형이지만.”
……뭐? 추방형이라니?
“황제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샤를로테가 처형을 당하는 ‘척’을 하게끔 지시했어. 실제로는 샤를로테로 분장한 죄수가 올라갈 테고, 샤를로테는 죽은 사람이 되어 추방당할 거야.”
루치아노의 금빛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샤를로테가 처형을 당하지 않아. 죽은 사람이 되어 추방형을 당한다고? 그럼 칼라일은, 당신은 아무렇지 않아? 왜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 자신을 원망해도 충분할 텐데.
“용서하지 못한다면서요.”
“그래. 맞아.”
“그런데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이미 너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었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
핏줄이 터져 붉게 충혈된 눈은 칼라일을 향했다. 그의 얼굴에서 원망 한 줌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샤를로테가 추방당할 때, 함께 따라가도 좋아. 아니면 지금 당장 샤를로테를 데리고 떠나도 좋고.”
“!”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해. 네가 샤를로테가 행복하기를 바란 것처럼. 피가 이어졌든 이어지지 않았든, 너는 내 가족이니까. 떠나도 가끔가다 편지는 써줬으면 좋겠네.”
……샤를로테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생각까지 들켜버렸구나. 숨기려고 해도 숨겨질 수가 없었다. 그를 따라 헬리오도르 가문에 들어갔을 때부터 그랬어. 언제나 전부 알고 있었지. 어쩌면 처음부터 샤를로테를 놓지 못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 진심을 물었던 것이겠지.
머리 위로 묵직한 느낌과 함께 위로하는 듯한 손길이 느껴졌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온 숨결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걸 알기라도 하듯, 칼라일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네가 너 자신을 미워한 만큼,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
잠이 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잠들지 못했다.
내일이 처형식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도망치고 싶기 때문일까. 그래, 도망치고 싶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이가 있지 않은가. 자신이 도망치게 되면, 아이는…….
아이에게 같은 과거를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샤를로테는 떨리는 손끝을 꽉 움켜쥐었다. 이제 어떡하면 좋을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신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어차피 죽을 테니 이런 생각도 소용없는 것인가.
로젤리아, 네 말이 맞았다. 이렇게 해서 얻는 것은 없었다. 내가 멍청했던 것일까, 욕심에 눈이 멀었던 것일까. 지금 와서야 네 말이 모두 옳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가야.”
샤를로테는 자수가 놓인 수건을 꽉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아기는 어쩌고 있을까, 누군가 방치하지는 않았을까. 자지러지게 우는데도 아무도 달래주지 않는 것이 아닐까. 빈방에 홀로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니겠지.
아가야, 그때 너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었어. 나는 너를 도구로 생각했던 적이 있단다. 그걸 사과하지 못했네. 정말 미안해. 나를 평생 원망하고 살아도 좋단다.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너에게……나라는 존재가 없는 존재이기를 바라. 그게 훨씬 나을 테니까.
샤를로테는 품에 아이라도 안은 듯 몸을 웅크렸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텅 빈 눈에는 더 이상 눈물도 고이지 않았다. 그러나 귓가에 울려 퍼지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샤를로테의 금빛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아가.”
울음소리만 들었는데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자신의 아이가 우는 소리였다.
“아가, 아가야!”
아기가 님프 궁에 있었나, 데려간 것이 아니었나. 하지만 아이가 우는 소리는 점점 멀어져가고, 이내 그것이 환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님프 궁 밖으로 빠져나오자 새까만 하늘이 보였다. 별 하나 없는 하늘……죽기 마지막에 보는 밤하늘은 이리도 어둡고 까맣다. 황실로 가기 전, 루치아노의 손을 잡고 올려다본 하늘은 어떠했지? 그래……별이 가득했지.
행복한 어릴 적 기억에, 미소를 지었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투명한 눈물 한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금빛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이며 입 밖으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행복을 망가트린 사람은 나였을까…….’
다른 삶이 주어진다면, 그때는 다른 선택을 할 텐데.
하지만 그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바라오고 꿈꿔왔던 행복을 부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만약 정말 다른 곳으로 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악독한 짓은 하지 말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 거야. 속죄하며 살아가자. 그것은 행복한 삶일 것이다. 그리고……루치아노도 함께.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그런 기회가 없겠지.
그저 헛된 희망일 뿐일 텐데…….
“샤를로테.”
“…….”
“일어나. 그렇게 주저앉아있지 말고.”
흐릿한 시야 위로 루치아노가 보였다. 그가 왜 여기에 있는가. 이번에는 환각인 것인가.
“일어나라고. 아무리 네가 미워도 이렇게 추한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나 환각 따위가 아니었다. 정말 루치아노였다. 샤를로테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쌍둥이를 바라보았다.
“네가 왜,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돌아가, 여기가 어디라고 외!”
“다른 사람이 듣겠어, 조용히 해.”
“너……!”
“여기에 왜 왔겠어, 같이 떠나려고 온 거지.”
떠나다니? 자신은 당장 몇 시간 후면 처형을 당할 사형수였다. 그런데 떠나……?
“황제가 너를 추방한다고 했어.”
“!”
“처형식에 오를 죄수는 네가 아니라 다른 죄수야. 너는 지금부터, 죽은 사람이 되는 거야, 샤를로테.”
샤를로테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처형당하지 않는다. 추방을 당한다. 루치아노가, 자신과 함께 떠난다고 말했다. 샤를로테는 맞잡은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만약 이대로 추방당한다면, 그 후의 삶이 어떨지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루치아노는? 만약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루치아노와 함께 떠나고 싶다고도 생각한 것은 맞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그를 눈앞에 두니 순식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다, 그를 데려갈 수는 없다.
왜 굳이 고난을 자처하려는 거야. 샤를로테는 손을 뿌리치기 위해 세게 휘둘렀지만, 루치아노는 더 꽉 손을 잡아 왔다.
“가라고 해도 안 가.”
“루치아노!”
“이제 그만해, 가자고. 떠나자고! 가서 속죄하며 살아!”
“내 속죄에 네가 포함될 필요는 없어, 오히려 내가 너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그럼 나에게도 속죄하며 살아, 나도 이제, 그만 쉬고 싶어.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마법사이니 뭐니, 황자이니 뭐니 그런 거 신경 쓰며 살고 싶지 않아!”
루치아노는 악을 쓰듯 외치며 떨리는 입술을 꾹 물었다. 샤를로테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치아노의 눈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냥 떠나자……다시 어린 시절처럼, 살자고……너도 그걸 바라잖아.”
우리 둘 다 그걸 바랐잖아. 루치아노는 중얼거리며 참아왔던 숨을 터트렸다. 샤를로테, 네가 바랐던 것을 나도 바라왔어. 서로를 놓지 못한 채 평범한 삶을 얼마나 갈구해 왔는지 너도 잘 알잖아. 그러니 이제, 그만두자. 그리고 떠나자. 샤를로테.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 거야.”
“…….”
“그리고 나는 너와 함께 떠나기로, 결정했어. 네가 뭐라 하든 상관없어.”
루치아노는 샤를로테에게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이제 이 질긴 악연을 끝내자.”
***
다음날, 아침, 처형식이 진행되었다.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끌려 나왔다. 눈과 입은 모두 가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샤를로테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고, 돌을 던졌다. 여성은 버둥거렸지만, 사형 집행자는 여성의 머리를 단두대 위에 올려두었다. 날카로운 검이 높게 올라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여성의 목이 잘려 나갔다. 바닥에 데구르르 구르는 머리에, 사람들은 그 여성이 샤를로테가 아닌 잔인무도한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은빛 머리카락이 아닌 은여우 털이라는 것을. 샤를로테는 루치아노와 함께 떠났다는 것을 모른 채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샤를로테는 죽었다. 형식상으로는.
그 환호성이 얼마나 컸는지, 대공저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흐릿하게 들려오는 환호성에 칼라일은 나를 끌어안았다. 등 뒤로 느껴지는 온기와 허리에 감긴 팔을 툭툭 두드리며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괜찮아?”
“괜찮아. 안 괜찮을 수가 없지.”
그의 품에 안긴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편안해 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루치아노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상관없었어. 애초에 루치아노가 미안해할 것이 아니었으니까.”
칼라일의 뺨을 쓰다듬으며 몸을 돌려 그를 마주 안았다. 눈을 지그시 감자, 그에게서 싱그러운 향이 느껴져 왔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