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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폐하의 이혼사유-165화 (165/170)

#165화, 깨어났다.

처음 겪는 출산의 고통 속에서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딱 하나였다.

아이가 나를 닮으면 안 될 텐데.

나를 닮지 말아야 할 텐데. 은발만큼은, 제발 은발은 아니기를.

내가 아니라 차라리 페르소나를 빼닮기를, 내가 아니라 페르소나를…….

그렇게 속으로 수없이 빌고 외치며 출산했다.

아이를 안은 순간, 자신의 외향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까만 머리카락에 딸이 아닌 아들을 품에 안은 순간 샤를로테는 그간 참았던 눈물을 떨어트렸다.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 페르소나를 꼭 빼닮았다.

한 달 전, 미엘르는 떠나기 직전 자신에게, 아이가 후계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황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전해주고 떠났다. 더불어 페르소나가 황족으로 인정 하겠다는 말을 할 때 거부감을 느끼기는커녕 순순히 인정해줬다는 것도. 아이가 불행하게 살지 않을 거라는 말도.

그때는 그 말이 절실했다. 불행하게 살지 않기를 바랐다. 이 아이가 자신과 똑같은 과거를 살지 않기를 바랐다. 이 아이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 마음이 너무나도 절실한 탓에 눈물은 끝없이 흘렀다.

그런 샤를로테의 모습을 본 하녀들과 유모가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를 불쌍하게 여길 정도로 샤를로테는 서럽게 울었다. 분명 샤를로테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샤를로테가 침실에서 혼자 조용히 울게 내버려 두었다.

모든 감정을 토해내듯 울던 샤를로테는 자그마한 손을 만져도 보았고, 까맣고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도 보았다. 뽀얀 뺨을 눌러보기도 했고, 아이는 샤를로테가 엄마라는 것을 인식하듯 울다가도 샤를로테가 안아주면 울음을 그쳤다.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렇기에 더 괴로우면서도 아이가 부디 행복하기를 빌었다.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빌었다. 누군가를 모함하고 괴롭히는 일 따위 배우지를 않기를, 시기나 질투라는 단어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기를.

“아가야.”

샤를로테는 품 안에 들어오는 아기를 끌어안은 채 작게 속삭였다.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사랑해…….”

눈물 때문에 눈가가 짓물렀지만, 샤를로테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기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다. 축복을 내려주듯, 쉴새 없이 행복하게 자랄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또 그렸다.

페르소나가 배정한 유모가 아이를 데리러 올 때까지. 그렇게 눈앞에서 아이가 유모의 품에 안겨 떠나갈 때까지.

기사들에게 자신의 처형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샤를로테는 끊임없이 아이의 행복을 빌고 있었다.

***

참으로 작구나.

페르소나는 아이를 받아든 순간 작으면서도 참으로 가볍다고 느꼈다.

그러나 가볍기에, 더더욱 그 가벼움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다. 이 작은 아이, 이 아이가 자신의 핏줄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쏙 빼닮았다. 검은 머리카락에, 녹색빛 눈동자. 샤를로테의 외향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다행일지, 불행일지.

황제인 자신을 빼닮은 것이 과연 독으로 작용할까, 아니면 이 아이를 보호해줄까.

페르소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이의 손을 톡 건드렸다. 그러자 아이는 그 작은 손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서부터 전해져 올라왔다. 정말로 사랑스럽구나.

사랑스럽고도 귀여운 아이.

그러나 아이를 볼 때마다 두 가지의 감정이 충돌했다.

그날 미엘르가 가져온 서류는 이카니엘 대공과의 전투를 상세하게 적은 보고서였다. 그리고 그 보고서에는 샤를로테의 공도 적혀있었다. 아마도 샤를로테의 아이를 황족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결정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겠지.

그러나 페르소나는 그 서류 없이도 아이를 황족으로 인정하려고 했다. 자신의 핏줄을 타고난 아이인만큼 어떻게든 지켜주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를 마주하고 보니, 눈가가 절로 뜨거워졌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이 아이가 로젤리아와 나의 아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샤를로테를 황궁으로 데려왔던 결정은 비수가 되어 심장에 박히고,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로젤리아는 점점 그리워졌고, 잃은 아이에 대한 후회가, 점점 깊어져만 갔다.

로젤리아의 배 속에 있었던 아이는 과연 누구를 닮았을까. 이 아이처럼 자신을 쏙 빼닮았을까. 아니면 붉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이었을까. 아들이었을까 딸이었을까. 똑똑하고 총명했을까, 그래. 로젤리아의 아이니까 분명 좋은 황제가 될 수 있었겠지.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을 것이다. 어쩌면 마법사였을 지도 모른다. 마법의 재능이 있는 그녀의 능력을 물려받아, 칭제 이후 처음으로 마법사가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번지고 번져, 결국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이의 볼 위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깊은 후회와, 아이에 대한 애정은 충돌하고 또 충돌했다. 사랑스러운 아이였고, 어떻게든 잘 키울 것이다.

그러고 아이를 볼 때마다, 후회를 하겠지. 내가 망친 모든 것들을.

페르소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작게 꼬물거리는 아이의 움직임을 느끼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황제의 눈물을 본 세츠는 놀라 움찔거렸지만, 말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세츠.”

페르소나는 아이를 소중히 끌어안다가 자신의 뺨을 톡톡 건드는 아이를 보며 서글픈 웃음을 터트렸다.

“……샤를로테의 처형 준비는 끝이 났나.”

***

샤를로테의 처형이 결정되었다.

사실상 어쩌면 처형까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침공에 도모했지만, 마지막에는 오히려 침공을 막는데, 도움을 줬으니까. 노예를 만들어 추방하는 게 가장 알맞은 처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샤를로테는 결국 처형을 선고받았다.

단두대에 올라, 목이 잘릴 거라고 말했다. 관리들이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샤를로테의 처형뿐이라며 강하게 주장한 탓이었다. 몇몇 귀족들은 기자들을 고용해 샤를로테가 저지르지 않은 악행을 만들어내 뿌리기도 했다. 기어코 샤를로테가 처형을 선고받았게 만든 이유는 뻔했다.

샤를로테의 아기.

비록 샤를로테의 피가 섞였지만, 그녀도 한때 황녀였고, 결정적으로 페르소나의 핏줄이자 그의 외향을 똑 닮았다. 몇몇 이들은 페르소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닮았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 아이를 노리는 것이겠지.

아이는 아주 좋은 패가 될 테니까. 페르소나가 다른 황후를 들일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그 아이가 유일한 적정자였다. 게다가 페르소나가 황족으로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새로 들인 황후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면? 외향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휘와 정치력까지 닮았다면?

어떻게든 장차 황자로서 클 아이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겠지. 페르소나가 아이를 방치하고, 샤를로테를 처형시켜 아이의 주변에 아무도 없게 만들고, 자신들의 사람을 심어두려 하겠지. 일단은 아이와 친해져야 하니까. 진작부터 눈도장을 찍어두려고. 불 보듯 뻔했다.

‘아이의 유모가 되겠다며 자처한 여인의 수가 서른이 넘는다고 그랬나…….’

샤를로테의 처형은 어쩌면 합당한 처벌일 수도 있다. 그녀가 피해를 입힌 사람은 차고 넘치니까. 그러나 그 처형이 다른 귀족들의 정치로 인해 조장된 처형이라고? 샤를로테의 악행이 벌어지기 전에는 어떻게든 그녀에게 달라붙으려 한 이들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니 역겨웠다.

뒤늦게 마녀라며, 죽여야 한다고 외치는 그들을 보며 비소를 삼켰다. 더러운 종자들 같으니.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꾹꾹 눌러놓은 기분 나쁜 감정도 함께 덜컥거렸다. 그때마다 칼라일은 그런 내 심정을 이해하기라도 한 듯 내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칼라일도 나와 마찬가지인 심정일 텐데. 말없이 칼라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자, 그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 샤를로테를 만났을 때 말이야.”

느릿하면서도 물에 젖은 듯 먹먹한 목소리가 마차를 가득 메웠다.

“샤를로테에게 저주를 걸었어, 그날.”

……저주를 걸었다고? 천천히 기댔던 머리를 들고 칼라일을 올려다보자, 그는 슬프게 웃으며 내 손을 좀 더 강하게 잡아 왔다.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인가 봐, 로젤리아. 샤를로테가 도저히 용서되지 않았어.”

“…….”

“사실 지금도 용서 되지가 않아. 샤를로테는 내 가족을 모두 죽였어, 카렐리아를 잃어버렸어. 내 믿음을 배신했고. 너를 상처 주고 끊임없이 괴롭혀왔지.”

칼라일은 웃고 있었지만, 그 입꼬리가 떨리고 있었다. 우는 것인지, 웃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도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듯 보였다.

“샤를로테를 마주한 순간, 나는 그렇게 말했어. ‘네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 그걸 매일, 죽을 때까지 후회하며 살아.’라고. 너와 지내면서 그간의 상처를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샤를로테를 보자마자 그간 원망하는 마음을 눌러놓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칼라일은 심장 부근을 꾹 누르며 중얼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처형 소식을 들었음에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오히려 괴로워.”

그 괴로움은 샤를로테가 처형당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그게 무슨 마음인지 알기에 칼라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복합적인 감정일 것이다.

한때 좋아하던 약혼자였지만 지금은 끔찍하게도 싫은 샤를로테.

샤를로테가 어릴 적 끔찍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이제는 칼라일도 안다. 황궁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알게 된 칼라일은 혼란스러워했지만, 샤를로테를 이해한다거나, 용서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끔찍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고 해도, 칼라일은 샤를로테로 인해 부모님을 잃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샤를로테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아마 샤를로테의 처형 소식은 용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분노를 일으키는 촉발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불행한 샤를로테의 과거. 그와 대치되는 분노. 그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아 마구 그 감정들을 휘젓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루치아노도 마음에 걸리겠지.

칼라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불안정한 호흡을 이어나갔다. 그가 내뱉는 숨결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칼라일.”

“…….”

“나도 그러니까.”

그를 마주 안은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황궁에 도착해, 마부가 문을 열어주었지만 나는 다시 대공저로 가라고 지시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루치아노를 깨울 수도 없었다. 또한, 이 분노를 삭이기도 적합하지 않았다. 심적으로 나와 칼라일은 너무 지쳐있었다.

그렇게 샤를로테의 처형을 전해 들은 지 다시 사흘이 흘렀다. 처형일이 정해졌다. 당장 이틀 뒤였다.

그리고 황궁에서 또다른 서신이 날아왔다.

루치아노가 의식을 찾고 깨어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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