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후폐하의 이혼사유-148화 (148/170)

#148화, 미엘르 안케도니아

로웬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지, 이미 지시를 받아 군사들을 데리고 네스 영지나 다른 마수가 출몰한 곳으로 출발했을 수도 있었다.

당장 마수를 제어할 대책을 마련하고 제국민들을 피신시켜야 할뿐더러 혹시 모를 전쟁에 대한 경계 태세를 갖춰야 하니까. 릴리는……로웬을 따라갔나.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졌으니, 공식적인 기사는 아니지만 기사단장의 권한으로 임시적으로 데려갔을 수도 있어.

그럴 가능성이 충분한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루치아노…….’

그리고 루치아노는 왜 안 보이는 거지?

일이 벌이지고 칼라일과 함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면 켈빈 부인과 루아 남작부인에게 모든 일을 설명하느라 아직 돌아오지 않는 거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다고?

설마 칼라일을 따라갔나? 아니야, 칼라일의 성격이라면 루치아노에게 내 옆에 남아 있으라고 말했을 거야. 루치아노도 그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루치아노는 보이지 않았다. 마력연구소에도 없었고, 황궁 안에도 없었다. 님프 궁에 있나?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자 마수의 출현에 두려워하며 모여 있는 시종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마수를 본 적이 없던 탓에 이 중 몇몇은 극도의 공포에, 몇몇은 공포보다는 네스 영지에 머무는 친척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네스 영지로 가고자 했지만, 당장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황궁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더 안전했다.

시녀장에게 시종들의 지휘를 맡기며 최대한 황궁 안에 있기를 지시했다.

그때 클로이가 겁에 질려 바들바들 다른 하녀를 달래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클로이가 루치아노와 대화하지 않았나? 켈빈 부인을 데려다주러 나가던 루치아노와 마지막 대화를 한 사람이 바로 클로이였다.

“클로이, 혹시 그때 루치아노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아메님, 아니지. 루치아노님은 황궁에서 가장 구석지고 인적이 드문 장소를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황궁 후문 쪽을 가르쳐드렸고요. 황궁 후문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까요.”

켈빈 부인을 안전하게 옮기기 위함이었나? 하긴, 그때가 샤를로테가 막 도망친 상황이었으니까…….

“릴리도 똑같은 질문 했었는데, 신기하네요!”

“……릴리가?”

“네. 막 다급하게 뛰어가는 걸 봤어요.”

루치아노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던 사람이 클로이가 아니라 릴리라고?

“그 뒤로 릴리를 보았니?”

“아니요. 보지 못 했어요.”

내 예상대로 로웬을 따라간 걸까, 아니면…….

발걸음을 다시 황궁 후문 쪽으로 돌렸다.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린 채 다급하게 뛰어갔다. 기분이 이상했다. 자꾸만 좋지 않은 기분이, 크게 어긋난 상황의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심장이 덜컥거렸다.

분명 속으로는 아무 일 없을 거라고, 긴급한 상황이라 신경이 예민해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실제로 정말로 아무 일도 없어야 했다.

분명 그래야 하는데, 왜…….

“흐윽.”

숨이 턱 막혔다.

황궁 후문은 아무도 쓰지 않는다. 사실상 그 근처로 가까이 가지 않는다는 편이 더 맞았다.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없었고, 음산한 기운이 도는 탓에 관리를 미뤄두었다. 그 덕분에 화려한 황궁과 달리 후문은 옥의 티라고 불릴 정도로 오랫동안 관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아무도 오지 않는 이곳에, 핏자국이 난무하고 있는 걸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건가? 이렇게 누군가 피를 흘릴 정도의 사고가 벌어졌는데? 아니야, 아무도 오지 않으니까……도대체 언제?

피가 굳어있었다. 설마 루치아노의 피는 아니겠지. 그래, 아닐 거야. 루치아노의 피일 리가 없었다. 아니어야 했다.

그럼 루치아노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설마 베논 제국이……?’

아니야. 그들이 무슨 이유가 있어서 루치아노를 데려갔겠어.

손끝이 점점 차가워졌다. 마음 같아서는 루치아노를 먼저 찾고 싶었지만, 상황은 미처 루치아노까지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해지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일 중 하나인, 또 다른 마수의 출현이 타 영지에서도 출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수도에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수도도 뚫릴 것이 뻔했다. 게다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생물이다 보니 기사들은 마수를 제압하는데 애를 먹기 시작했다. 마수에게서 풍겨오는 특유의 마력, 그 기운 때문인지 기사들은 공포에 질려 제대로 마수를 상대하지 못했다.

“폐하, 이대로라면 수도가 뚫립니다. 아직 제국민들을 모두 피신시키지 못했으니, 군사들을 더 투입시켜 수도 근처를 전부 봉쇄해야 합니다!”

“공작, 지금 제정신입니까, 그럼 다른 영지에 있는 제국민들은 버리자는 소리입니까!”

“그럼 바르셀민 백작이 대답해보십시오! 그렇게 연구에 몰두했다면서 마수에 관한 그 잘난 지식을 한 번 늘어놓아 보시란 말입니다!”

관리들의 의견은 계속해서 충돌했다. 군사들로 막을 수 있는 것도 한계였다. 페르소나도 그를 인지하고 있는지 선뜻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트리벨 경, 현재 대치 상황에 대해서 보고하라.”

“네, 폐하. 현재 마수의 움직임은 수도를 향해 있으며, 막고 있기는 하나 아무래도 상대한 적이 없는 생물이니, 애를 먹고 있습니다. 게다가 마수들이 전부 덩치가 크고 무엇보다 행동이 빨라 쉽게 상대할 수도 없습니다. 함정을 시도하여 마수들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다면 수월할지 모르지만 그 함정을 현실화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제 2기사단장, 트리벨 경은 함정에 관해 말했지만 그의 말대로 함정을 시도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언제 어디서 출몰할지 모르는데다가 당장 마수를 처리할 방대한 양의 폭탄을 준비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더 큰 사상자를 낼 수도 있고…….

마수에게 물리적인 공격이 통한다면, 정말로 움직이지 못하게만 막는다면 승산이 있을 텐데. 문득 지금쯤 대공저에서 님프 궁 지하실로 데려온 고양이 형태의 마수가 떠올랐다.

그 마수는 참 빨랐다. 정말 빨랐지. 털이 보송보송한 앞발을 자꾸 얼굴에 들이밀어서 그때마다 칼라일이 세뇌마법을 걸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만약 다른 마수들도 세뇌마법이 걸린다면?

말없이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루치아노가 가지고 있던 정도의 마력이 몸속을 돌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트리벨 경, 마수의 움직임만 막는다면 가능하겠는가?”

“네, 각하. 하지만 지금 당장 마수의 움직임을 막을 만한 대책이…….”

“내가 마법으로 마수의 움직임을 막을 테니, 그 사이에 마수들을 죽일 수 있겠나. 지금까지 파악된 마수의 수가 총 몇이지?”

내 말을 들은 페르소나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이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수로는 모두 스물다섯 정도 됩니다.”

“스물다섯이라. 충분하겠군. 폐하, 제가 출몰 지역으로 가서 직접 마수들을 상대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이게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고, 지금 여기서 마수와 대등하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지? 칼라일은 네스 영지로 향했고, 부상당한 기사들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그러니 사실상 허락을 구할 필요 없이 곧바로 출몰 지역으로 향해야 했다. 한시가 급하니까.

그러나 페르소나의 입에서 허락이 나온 것이 한참 후였다. 무엇을 망설이는 것인지, 페르소나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겨우 허락했다. 마치 나를 마수 출몰 지역으로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트리벨 경은 가넷 대공과 함께 출몰 지역으로 가라! 가넷 대공이 마수를 막는 사이, 기사단은 둘로 나뉘어 생존자들을 치료하고, 남은 기사들은 마수 몇 마리를 생포하고, 나머지 마수들은 전부 모조리 죽여 없애라.”

“네, 알겠습니다. 폐하.”

“다른 기사들은 수도 경계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봉쇄는 제국민들의 피난이 완료된 후에 진행하겠다. 전서구를 이용해 각 영지는 피난처를 만들어 마수의 출현에 대비하도록 하고, 군사들을 배치시켜라.”

지시하는 페르소나의 목소리는 냉정하고 침착했지만 나를 보는 눈빛만큼은 초조해 보였다.

왜 저렇게까지 초조해하지? 전쟁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마수라서 그런가.

그 답지 않게 초조해 보이던 이유는 몇 시간 뒤, 마수 출몰 지역으로 가기 바로 직전에 알 수 있었다.

간만에 입은 제복, 허리에 찬 검. 전장에 가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던 찰나, 페르소나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것도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상태로. 상황을 지휘해야 하는 그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기사들을 격려해주려고? 아니야. 그럴 리가 없을 텐데.

“….”

“….”

페르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팔을 꽉 움켜쥐고만 있었다.

“가지 마.”

“….”

“……라고 말하면, 황제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겠지.”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뜻밖의 말이었다. 가지 말라니.

“저는 가야 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마수의 출현이라도 막아야…….”

“얼마나 위험할 줄 알고 그런 말을 하지?”

“제 위험보다 제국의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을 잘 알면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전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 상대는 베논 제국입니다. 만약 베논 제국이 마수를 앞세워 전쟁을 벌이려 한다면, 지금 당장 마수를 죽여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그럼 이대로 손 놓고 있으라는 말인가?

“나는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네가…….”

“폐하, 지금은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닙니다.”

사사로운 정, 그 안에는 나를 사랑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겠지.

“알고 있다.”

“그럼 놔주십시오.”

“꼭 가야겠느냐. 네가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느냐. 기본 마법만 배웠다고,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라고. 어쩔 수 없이 허락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거라……제발.”

페르소나의 눈에서 황태자 시절의 그가 보였다. 나를 사랑하는 눈. 페르소나에게는 더 이상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샤를로테의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마법이 완전히 풀렸다는 소리겠지.

하지만 이럴수록 그에게서 거부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정에 계속 휘둘리는 것도.

말없이 잡힌 팔에 힘을 주었다. 페르소나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다.

그 사이, 나와 페르소나의 눈치를 보던 트리벨 경이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웬 경은 지금 네스 영지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마력연구관과 합류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서구를 통해 전해왔습니다.”

로웬이 네스 영지에?

그가 네스 영지에 왜……. 로웬은 긴급회의에도 참여하지 않았잖아. 워프로 이동할 때 확실히 로웬은 없었다. 페르소나가 로웬을 네스 영지에 가라고 말했나? 네스 영지가 그렇게 먼 곳은 아니긴 한데, 페르소나가 추가적으로 군사 지원을 넣었나?

“폐하께서 네스 영지로 로웬 경의 기사단을 추가적으로 지원하셨습니까?”

“대공이 군사를 배치할 때 로웬 경을 그쪽으로 보낸 거 아닌가?”

“저는 수도 경계의 군사들만 지휘했습니다. 로웬 경을 네스 영지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직 전달받은 상황도 없는데…….”

서늘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페르소나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갔다. 그때 페르소나의 입구 너머로 기사들이 다급하게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황궁의 입구 근처로 달려간 기사들은 검을 꺼내들어 누군가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은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더불어 반짝이는 호박보석같은 금빛 눈동자도.

그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공 각하!”

시슬리?

“이게 무슨 소리……!”

은빛 머리카락, 금빛 눈동자. 샤를로테인 줄 알고 위협하고 있던 기사들과 페르소나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시슬리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당장이라도 감옥에 집어넣기 위해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시슬리가 정말 안케도니아 황족이었다고……?

그 순간 시슬리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은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기사들을 뿌리치고 곧장 나와 페르소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무릎을 꿇었다.

“레이몬드 제국의 황제 폐하와 가넷 대공을 뵙습니다.”

“너는 샤를로테가……아니군.”

“네, 저는 샤를로테도 아니고……시슬리도 아닙니다, 부디 제 얘기를 들어 주십시오. 저는…….”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바닥을 짚은 손끝이 다 갈라지다 못해 피가 맺혀있었다.

“저는, 미엘르 안케도니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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