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다시 예전으로.
루치아노가 왜 여기에 잡혀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루치아노는 강한 마법사였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상당한 마력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이런 꼴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도대체 왜!
샤를로테는 재빨리 감옥을 열 열쇠를 찾았다. 저대로 두면 죽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든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야겠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른 개체를 찾아 마력을 빼앗고, 치료 마법인지 그걸 써서 치료를……!
“도대체, 어디, 까지……망가질 생각…인데….”
루치아노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선명한 금안이 보였다. 그 눈동자에는 철저히 원망이 담겨있었다. 심장이 꾹 눌리는 느낌이었다.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저렇게 선명한 원망으로 보다니. 그래, 원망을 살 만한 짓을 많이 하기는 했지.
“나는 망가지지 않았어. 이번 일만 끝나면, 베논 제국에서 쉽게 시작할 수 있어. 공작이라고, 무려 공작. 이름도 바꾸고 성도 새로 살 거야. 샤를로테 안케도니아는, 13황녀는 이제 존재하지 않아!”
모든 일이 끝나면 바다에 가서 살아야지. 저렇게 탁하고 흐릿한 바다가 아니라, 내 아이가 보고 좋아할 수 있는 그런 바다. 매일 새 옷에, 좋은 음식만을 먹이면서 사는 거야.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배우게 해야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하게 해줘야지.
그래, 그렇게 살면 돼. 드디어 그렇게 살 수 있어, 이제.
“너는 이게 망가진 걸로 보여? 아니, 나는 망가지지 않았어. 오히려 망가진 사람은 너지. 이게 무슨 꼴이야, 죽어가고 있잖아?”
하지만 루치아노는 그런 샤를로테를 비웃기라도 하듯 헛웃음을 터트리며 벽에 몸을 기댔다. 피는 계속 흐르고 있었다. 피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면서 나는 그 ‘톡’소리가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 마치 점점 죽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해, 샤를로테는 다시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살려야 했다. 싫어……하는 동생이지만, 눈앞에서 유일한 혈육이 죽어가는 것을 무시할 만큼 매정하지는 않았으니까…….
“정말, 끔찍해…….”
“……내가 끔찍하다고?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너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면서, 어떻게 그렇게……!”
그래, 너는 내가 황궁에서 널 쫓아낸 것 때문에 이렇게 원망스러워하는 거겠지. 하지만 너는 내 과거를 알고 있잖아, 얼마나 끔찍하게 살아왔는지 알잖아!
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너는 어느 정도 나를…….
“아니, 너, 말고.”
네가 아니라, 나. 루치아노는 몸을 들썩일 정도로 크게 기침을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엉망진창이 된 얼굴로 웃었다. 몇 년 만에 보는 동생의 미소였다. 그런데 왜 그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끔찍한 게 아니라, 네가 끔찍하다니?
알 수 없는 말에 샤를로테는 창살을 더 꽉 움켜쥐었다. 죽을 때가 다 되니 정말 제정신이 아닌 건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왜 그렇게 슬픈 눈으로 나를 보는 건데.
“로젤리아와, 칼라일이, 틀리지 않았어. 그들은 내가……네 몰락을 지켜보기를 원하지 않았지……그래도 네가, 유일하게 남은 나의 가족이니까……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상관없다며 그들의 말을 부정했어. 하지만 사실은 아니야, 나는 네, 몰락을, 보고 싶지……않았어.”
“……뭐?”
“네가 끔찍한 짓을……저질렀다는 것을 알아……나를 구해준, 가족 같은 칼라일의 부모님을……죽이고, 괴롭혔지……그래, 너는 그랬어. 그걸 다 아는데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 몰락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고?
“몰락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면! 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데!”
샤를로테는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녹슨 쇠창살이, 자신과 루치아노를 가로막고 있었다. 손을 뻗어도 루치아노에게 닿지 않았다.
말과 행동이 전혀 맞지 않았다. 자신의 몰락을 보고 싶지 않았다면 왜 그런 걸까.
나를 원망해서 그런 거잖아. 나를 원망해서!
루치아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원망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저 원망이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샤를로테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무너지고……비참하게 끌려 내려지고……몰락할 순간이 점점 다가올 때마다 괴로웠어. 그런데 그 괴로움마저 싫었어. 너는 속죄해도……모자랄 짓을 했는데……끔찍했어, 내가. 그래서 어떻게든 떼어내려 했어…….”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너를 감시하고, 끌어내릴, 계획을 세우고, 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고……그런데도 죽기 직전까지도 지울 수 없었나 보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무슨 생각인지 당최 알 수 없었다. 멱살을 부여잡고 묻고 싶었다. 그럼 나를 미워한 게 아니야? 나를 미워한 게 아니었어? 그럼 지금껏 한 행동은 다 뭐야.
“항상 그런 생각을 했어.”
나를 원망한 게 아니라니, 그럼 너는…….
샤를로테의 금빛 눈동자가 순식간에 흐릿해졌다.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어머니도 죽지 않고. 네가 황실로 갈 일도 없지 않았을까……그럼 모두가 행복했겠지. 나도, 그리고 너도……네가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루치아노는 말끝을 흐리며 다시금 맞아서 터진 입꼬리를 힘겹게 끌어올렸다.
맞아. 행복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었겠지. 너나, 나나.
칼라일, 로젤리아. 당신들의 말이 맞았어.
사실 샤를로테의 몰락을 보고 싶지 않아. 끝까지 샤를로테에 대한 정을 버리지 못했어. 샤를로테는 되돌릴 수 없는 짓을 저질렀는데, 평생 속죄해도 모자랄 죄를. 칼라일과 로젤리아에게 평생 가도 지울 수 없는 잔인한 상처를 남겼는데…….
샤를로테와 관련된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어머니가 죽지 않았다면, 샤를로테는 황실로 갈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 황녀가 되지도 않았겠지. 샤를로테는 아픈 나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그 마을로 간 거니까. 샤를로테는 무척 아름답고 똑똑하니. 태어난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충분히 본인의 능력으로 위로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죄책감, 로젤리아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내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어떻게 자책하지 않을 수 있겠어.
부정하고 싶어도, 가슴 한쪽에는 샤를로테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죄책감과 함께 뒤엉켜 날카롭게 심장을 찔렀다. 내가 아프지만 않았다면, 내가 죽지만 않았다면. 내가, 내가…….
차라리 그때 아프지 말고 그대로 죽어버렸다면.
그럼 분명 무언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아파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그러면 모든 게 뒤틀리지 않았을 텐데. 비극으로 가지 않았을 텐데.
샤를로테, 네가 페르소나와 결혼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아.
너도 그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데…….
그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던, 샤를로테. 네가 죽도록 미워.
그러면서 동시에 네가 가여워.
너를 이렇게 만든 내가 미워.
예전과 달리 웃음을 잃어버렸고, 그 끔찍한 황실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며 배운 것은 남을 짓밟고 위로 올라가는 법이었어. 응당 배웠어야 할 것들을, 네가 가졌어야 할 것을 가지지 못한 채 남을 죽이고 모함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것을 네 신념처럼 생각하며 살아왔지.
사실 네가 나를 황궁에서 내쫓았을 때, 네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짐이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 너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어. 지금이라도…….
“제발, 그만둬.”
그때 내가 죽어버렸다면 뭔가가 나았을까?
“……루치아노.”
끝까지 내가 샤를로테에 대한 정을 떨쳐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 칼라일은 뭐라고 말할까, 로젤리아는, 나를 원망할까? 미워할까? 설령 그렇다 해도 할 말은 없을 텐데. 그렇게 밉다, 싫다, 원망스럽다 말해놓고 사실은 샤를로테를 지금껏 가여워하고, 살기를 바랐다니. 너무 위선적이잖아.
물론 어떤 말을 할지는 알 수 없겠지만…….
“루치아노, 루치아노 대답해! 정신 차려!”
샤를로테가 벽에 걸린 열쇠를 가져와 자물쇠를 여는 모습이 보였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어느 사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그 손으로 문을 열고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점점 시야가 흐릿해져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완전히 흐려졌다. 모든 소리가 귓가에서 멀어진지 오래였고, 서늘한 지하실의 공기와, 비릿한 피 냄새가 온몸을 뒤덮는 듯 했다. 추웠다.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는 복부 상처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뺨 위로 무언가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뭐지, 피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는데.
손을 들어 뺨을 더듬고 싶었지만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루치아노?”
“….”
“루치아노, 너는 끝까지……이 멍청한 것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루치아노는 이내 완전히 눈을 감아버렸다. 그저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샤를로테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눈을 감은 루치아노의 주변에 끝없는 어둠이 몰려드는 듯했다. 분명 조명하나 없는 어두운 지하실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겠지만, 저 어둠이 당장이라도 루치아노를 끌고 갈 것만 같았다.
아니야, 아니야! 안 돼!
비명을 지르며 루치아노를 끌어안았다. 몸이 차가웠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루치아노를 끌어안은 팔이 덜덜 떨렸다. 죽은 건가, 이렇게? 루치아노가 죽은 거야? 어째서, 네가 왜! 너는 이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 왜 네가 죽어야 하는 건데?
“루치아노, 제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점점 차가워지는 몸이 루치아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급하게 루치아노를 눕혀 옷을 헤집어 복부의 상처를 압박했다. 그리고 배를 부여잡은 채 다급하게 반대편 벽 쪽 쇠사슬에 묶여있는 마수에게로 달려갔다. 이빨을 드러내며 당장이라도 쇠사슬이 끊어질 듯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손으로 목을 꽉 쥔 채 마력을 빼앗았다. 손끝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차갑고 손가락이 떨어질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감각. 마수의 움직임이 줄어들고 이내 마수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살갗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코끝에서 느껴졌다. 루치아노의 상처를 치료할 목적으로 마력을 뺏고 또 뺏었다. 루치아노를 살리기 위해, 저 멍청한 놈을 살리기 위해!
루치아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상처 위로 손을 올린 순간,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었구나.
네가 죽었어.
미련하고도 멍청한, 죽도록 미운 네가.
죽기 바로 직전까지 사실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느니, 그만두라느니 헛소리만을 늘여놓은 네가!
“하…….”
당연히 네가 나를 미워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라고? 어째서?
황성으로 널 데리고 오고, 내 손으로 너를 내쫓았다. 네가 칼라일을 형처럼 따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칼라일의 부모님마저 죽였어. 암살자들이 죽였지만 결국 내 손으로 죽인 셈이나 다름없지.
그럼 나를 미워했어야지.
그런데도 나에게서 정을 떼지 못하다니. 사사로운 정에 휩쓸리니까 이런 꼴이 되어버린 것 아니야. 그저 내 몰락을 지켜보지, 왜 굳이 모습을 드러내, 왜 이곳에 잡혀 와, 왜. 왜!
네가 이렇게 멍청한데 어떻게 내가 싫어하지 않겠어.
너는 나를 싫어했어야지.
‘제발 그만둬.’
죽기 직전까지 그딴 소리 말고 나를 원망하는 소리나 늘어놓았어야지.
어떻게 그만두는데? 뭐를 그만두는데. 여기서 그만두면 내 발로 지옥에나 굴러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게 얼마나 멍청한 소리인지 알아?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이게 네가 원했던 모습이야?’
그 끔찍했던 시절로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도대체 이렇게 해서 얻는 게 뭐지?’
돌아가기에는.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도 죽지 않고. 네가 황실로 갈 일도 없지 않았을까.’
이미 전부 늦었잖아.
너를 살리기에도 이미 늦은 것처럼.
“….”
서늘한 공기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밖의 상황은 어떨까. 칼라일은 강하니까 분명 마수를 다 죽이고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다니고 있겠지. 이카니엘 대공 그 미친놈은……수도로 갔을까. 아닌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제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이 순간만 잘 넘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설령 내 선택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은 나를 이 지옥에서 끄집어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그 믿음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젤리아, 너는 나에게 이런 짓을 해서 얻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어.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원하는 풍경이 곧 눈 앞에 펼쳐질 수 있다고 믿었는데.
루치아노, 너는 왜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그런 말을 해서 나를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들어?
……정말로 내가 그만두기를 바랐어?
‘누나. 내가 여기서 나가면 누나는 행복해질 수 있어?’
편안히 잠이 든 듯한 네 얼굴에서 앳된 어린 시절의 네가 겹쳐진다.
생각해보니 너는 그때도 그랬다. 황궁에서 내쫓기기 전, 자신이 나가면 행복해질 수 있냐 묻는 네 눈동자에는 분명 나를 향한 증오가 담겨있었지만 슬퍼하는 모습이 더 컸다. 행복해질 수 있냐고. 네가 아니라, 내가.
그때 뭐라고 대답해주었는지……그저 그런 말을 하는 네가 밉다고 생각했다.
사실 언제부터 너를 미워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네가 미웠다. 황실에서 살아가는 것조차 급급한데. 너는 자주 아팠고, 나에게 달라붙었으니까. 너는 그저 의지할 상대가 나밖에 없는 거였을 텐데.
내가 언제부터 너를 미워했더라.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진 거더라.
네가 살아있었다면 내 물음에 대답해줄 수 있었을까.
“루치아노.”
몇 년 만에 네 손을 잡는다.
“루치아노. 일어나.”
차가웠다.
“루치아노, 일어나……제발…….”
힘없이 떨어지는 루치아노의 손을 바라보는 샤를로테의 뺨 위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덜덜 떨리는 손이 루치아노의 뺨에 닿았다. 맞기라도 한 건지 멍으로 가득 한 얼굴이……찢어진 살갗이 비수가 되어 심장에 박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아팠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
그러나 그 순간, 옅은 바람이 손끝을 스쳤다.
찰나의 감각에 샤를로테는 커다랗게 눈을 떴다.
미세한 숨결.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흔들리는 숨결.
‘설마.’
샤를로테는 곧바로 심장 부근에 귀를 갖다 대었다. 아직 뛰고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심장이 뛰고 있었다.
“아, 아아…….”
루치아노가, 아직 살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