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지금 어디에 있지?
“샤를로테는 마력을 빼앗는 것과, 불어넣는 것.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합니다.”
칼라일은 자신의 옷에 묻은 검은 액체를 털어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폭발하듯 터져버린 것을 목격한 탓인지, 그의 안색은 나쁘다 못해 창백했다.
“하,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마력을 불어넣고, 빼앗는 일은 전례에 없는 일입니다!”
마력학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마력은 마법사 고유의 것이라 빼앗는 거나 추가적으로 불어넣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그런데 그걸 샤를로테가?
“샤를로테는 가능합니다. 정작은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만약 본인의 능력을 알았고, 이와 같은 현상이 마력을 강제로 불어넣어 생긴 현상이라면 하루빨리 잡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마력을 불어넣어서 생긴 현상이라면, 그 마력은 어디서 충당해온 것일까. 아벨리로부터 빼앗은 마력으로? 아니야. 시신을 만졌을 때 잠깐이지만 상당한 마력이 느껴졌었다. 그렇다면 분명 다른 곳에서 마력을 충당해온 것이 분명해, 하지만 어디서?
설마 정말로……?
“폐하, 베논 제국이 시행한 연구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연구라니?”
“리엘 공작부인을 통하여 듣기로, 베논 제국은 1년 전, 마력을 흡수하는 연구를 진행했고, 성공했다고 합니다.”
만약 샤를로테가 사라진 것이 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샤를로테는 아이를 가진 몸이었다. 절대로 아무도 들키지 않고 황궁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해. 그런 상황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마수로 추정되는 생물이 나타났어. 이건 절대 우연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야.
“리엘 공작부인에게 들었다고?”
“네.”
“확실한 정보인가?”
“리엘 공작부인께서 먼저 알려주시겠다 하면서 알려주신 겁니다.”
베논 제국과 붙어있는 헤레이스 왕국의 공작부인이 직접 전한 말이었다. 확실한 것은 리엘 공작부인에게 다시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페르소나는 곧바로 기사들에게 리엘 공작부부를 불러오게끔 지시했다.
그러나 십 분 후, 기사는 사색이 되어 다급하게 뛰어왔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리엘 공작 부부께서 독을 먹고 쓰러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
“칼라일. 말해야 해. 이건 우리 둘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리엘 공작부부가 독을 먹고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하게 증언을 해줄 공작부인이 갑자기 독을 먹고 쓰러지다니. 심지어 독을 넣은 범인으로 추정되는 하녀는 황궁에서 고용한 적 없는 신원 불명의 여성이었다.
사태는 점점 커지고 있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베논 제국의 짓이 확실하다고.
“그럼 기사 보고서 얘기마저 해야 하는 거잖아.”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반역이라며, 황실 간의 조약을 깨는 거라 반역으로……!”
“칼라일. 독을 먹고 쓰러진 리엘 공작부인이 말해줬어. 그날, 안케도니아 제국이 침공당하던 날, 로웬을 포함한 기사단은 예정보다 일찍 귀환을 했다고.”
내 어깨를 꽉 붙든 채 안 된다고 말하는 칼라일의 뺨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하지만 로웬은 귀환 예정일보다 늦게 귀환했어. 기사 보고서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지? 기억하잖아. 귀환 도중, ‘베논 제국의 군사지원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레이몬드 제국에는 언질조차 없었어. 심지어 로웬에게는 세뇌 마법이 걸려있었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베논 제국을 잡아들일 수 있어.”
칼라일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잘 안다.
그는 이미 헬리오도르 가문을 잃었고, 친척들을 잃었고. 부모님을 잃었고……약혼자라 믿었던 여자에게 배신당했다. 이미 수도 없이 절망해왔고, 괴로워 해왔다. 그런 와중에 내가 독을 먹어 그의 앞에 쓰러지기까지 했으니 오죽할까.
“마력연구관님. 지금 당장 폐하의 명을 따라 네스 영지로 가셔야 합니다.”
“……가서 대기하고 있어라. 곧 가겠다.”
그 와중에 페르소나가 칼라일과 기사들을 네스 영지로 보내어 사태를 파악하라는 지시까지 내렸으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덜덜 떨리고 있는 그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칼라일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태는 점점 커지고, 나와 칼라일 둘이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지금껏 칼라일과 내가 조사해온 것들을 모두 밝혀야 했다. 칼라일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무서운 거겠지……칼라일은 나를 꽉 끌어안은 채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네스 영지에 다녀오는 사이,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 하지만, 너는……나보다 더 강하니까. 분명 괜찮겠지.”
칼라일은 떨리는 손으로 내 두 뺨을 감싸 쥐고는 입을 맞추었다. 차가웠다. 숨결도, 내 뺨을 감싼 두 손도. 칼라일은 이미를 맞댄 채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을 다시 떴을 때는 그의 은빛 눈동자가 선명한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순간 여러 개의 마법진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금방 다녀올게, 절대로 다치지 마.”
“걱정하지 마. 너야말로 다치지 마.”
그 짧은 말 한마디와 함께 칼라일은 순식간에 마법진 속으로 사라졌다. 내 뺨 위에 머물던 익숙한 온기가 사라졌다. 칼라일이 네스 영지로 떠났다. 언제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칼라일이 떠난 뒤에야 몰려오는 두려움……하지만 그렇다고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곧장 대책 마련을 위해 관리들을 소집한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드레스 소매 안에서 페르소나의 집무실에서 빼돌린 기사 보고서를 꽉 움켜쥐었다.
“폐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냉정하고도 침착한 목소리에 소란스럽던 분위기 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집무실 속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더불어 내 손에 들려있는 기사 보고서에도. 지금부터 내가 할 행위는, 레이몬드 제국 때부터 이어온 조약을 깨버리는 셈이 된다. 페르소나가 나를 반역으로 몰아도, 나는 대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로웬을 이용해 헬리오도르 가문을 멸문시킨, 이카니엘 대공을…….
“가넷 대공,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보고서를 꽉 움켜쥔 채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페르소나의 녹색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폐하, 저는 폐하의 집무실에서 기사 보고서를 빼돌렸습니다.”
“……대공, 지금 그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인가.”
“압니다. 황실과의 조약을 깨는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전부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빼돌린 보고서를 봐주십시오.”
세츠는 머뭇거리다 내가 건네는 기사보고서를 받아 페르소나에게 전했다.
페르소나는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보고서를 읽어내렸고, 그 시선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 날짜는……안케도니아 침공 날짜가 아닌가? 대공, 설명하라. 왜 로웬 경이 안케도니아 제국의 침공을 도왔다고 서술되어있는 거지?”
로웬이 안케도니아 제국의 침공을 도왔다는 말에 관리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곳의 관리들도 가넷 가문과 황실이 어떤 조약을 맺었는지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로웬 경이 안케도니아 제국을 침공을 도왔다니! 설마 가넷 가문이 군사권을 독자적으로 휘두른 것입니까!”
“독자적으로 휘두른 것이 아닌, 로웬 경이 이카니엘 대공에게 세뇌 마법으로 조종당한 것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 기사보고서의 존재 자체 또한 모르고 있었습니다. 세뇌 마법과 더불어 기억을 지워두는 마법에 걸렸으니까요.”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 말인즉슨, 제국의 기사단장이 적국으로 불리는 베논 제국의 마법사에 의하여 조종당했을뿐더러, 체스 말처럼 강제적으로 침공에 투입되었는데, 지금까지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될 테니까. 그때 사색이 된 채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츠가 다급하게 외쳤다.
“각하, 그 말이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화, 확실한 증거가 있는지를 묻는 겁니다. 기사 보고서는 조작될 수도 있고……!”
“그때 로웬 경이 안케도니아 제국을 침공하면서 헬리오도르 가문을 멸문시켰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직접 내 입으로 그 사실을 토해내니, 거대한 죄악감이 등 뒤로 흐르는 듯했다. 팔다리가 모두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지만, 아직 그들에게 보여줄 것이 남아있었다.
페르소나에게 모든 사실을 전하기 전, 사람을 시켜 대공저에서 가져온 것.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고, 그렇기에 책상 서랍 가장 구석에 놓아두었던 것. 이제는 거의 다 부서진, 내가 칼라일의 기억을 보게 만든 그 돌.
돌을 꽉 움켜쥐자 흐릿한 안개가 집무실을 가득 메우더니, 그때 보았던 참혹한 장면이 모두 앞에서 재생되었다. 무너지고, 학살되고, 칼라일이 그렇게 사랑했던 저택이 불에 타 사라지고……그런 참혹한 광경 한가운데 서서 광기 어린 목소리로 헬리오도르 사람들을 멸문시키라 주도하는 로웬이.
꽉 움켜쥐었던 돌에 금이 가더니 이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러자 안개도 사라지고, 잔상처럼 떠올랐던 칼라일의 기억도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영원할 것 같았던 침묵을 가른 것은 페르소나였다.
황제답게 누구보다 냉정함을 되찾았지만, 페르소나의 눈동자는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 이 마수와 관련된 일도, 베논 제국의 짓인 건가.”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가장 혼란스러울 때 마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칼라일이나 제가 머무는 황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네스 영지에 말입니다. 이 사실을 말해준 리엘 공작 부부가 독을 먹고 쓰러진 이 상황에서, 다른 의심할 것이 있을까요?”
하지만 몇몇 관리들은 내 주장에 반박하며 페르소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폐하, 아직 확실한 것 하나 없습니다! 만약 베논 제국의 짓이 아니라면, 그때는 정말 베논 제국과 척을 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베논 제국이 먼저 제국의 기사단장인 로웬 경에게 세뇌 마법을 걸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전쟁을 하자는 것과 다름없지요!”
“폐하, 일단 마수 사건부터 해결한 뒤에 판단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각기 다 의견이 달랐다. 베논 제국이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것부터, 마수의 출몰을 대비해 제국민들을 피난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당장 이카니엘 대공부터 잡아들여야 한다는 의견까지. 관리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지만, 페르소나는 그 어느 하나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리엘 공작부부에게 독을 먹인 자를 심문하던 기사가 달려와 말했다.
“그 하녀의 신원을 알아냈습니다. 이카니엘 대공 각하를 모시던 시종이라고 합니다.”
모두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순간, 페르소나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당장 국경을 페쇄하라! 이카니엘 대공은 아직 제국 내에 있을 것이다. 무력으로라도 좋으니 당장 잡아들이고, 가넷 대공은 지금 당장 군사를 이끌고 마수의 출몰과 침공에 대비하면서 제국민들을 황궁 안으로 피신시켜라!”
“네, 폐하의 명을 받습니다.”
아마 칼라일이라면 분명 마수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이카니엘 대공을 잡아들이면 된다. 물론 쉽게 잡히지야 않겠지. 잘못하다가는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어, 하지만 칼라일과 루치아노가 그렇게 알고 싶어 하던 사실을…….
‘……잠깐만.’
억눌러졌던 초조함과 불안함이 다시 머릿속을 가득 뒤덮고, 온몸으로 덮쳐왔다. 손끝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로웬과 릴리. 그 둘은 지금 어디에 있지? 이런 상황에 왜 로웬은 보이지 않지? 아무리 긴급하게 소집되었다고 해도, 이 자리에 제 1기사단 단장인 그가 오지 않았다고? 왜 릴리는 보이지 않지?
그리고, 루치아노.
루치아노는 지금 어디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