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괜찮을 거야.
귓가를 가득 헤집어 놓았던 비명이 아직도 가라앉지를 않았다.
손에 닿는 사체의 차가움과 살려달라며 외치는 듯한 짐승의 울음소리, 분명 이보다 더한 짓을 저질렀지만 직접 손에 피를 묻히자니 두려워졌다. 이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카니엘 대공의 말이 맞았어.’
샤를로테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은 마력을 빼앗는 것과 더불어 불어넣는 것이 가능했다. 실험 삼아 한 마법사로부터 마력을 모두 빼앗아 다른 이에게 불어넣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성공했다.
그래, 성공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동안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하마터면 죽을 때까지 몰랐던 능력을 발현시켰으니까.
하지만 그 능력을 이용해 이런 끔찍한 행위를 돕게 될 줄은 몰랐다.
“아아아악!”
흐읍, 샤를로테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방 너머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에 귀를 막았다. 손을 씻고 또 씻었는데도 그 끈적하고 차가운 액체가 손에 묻어있는 것만 같았다. 눈앞의 잔상이 잊히지 않았다.
이카니엘 대공은 분명 무기를 운반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무기가 마수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내 능력으로 마수를 만들어내게 될 줄도 전혀 몰랐다.
이카니엘 대공이 끌고 온 마법사의 몸에서 마력을 모두 빼앗았다. 그리고 텅 비어버린 몸에 마수로부터 빼앗은 마력을 다시 불어넣었다. 그러자 마법사는 괴로워하며 바닥을 기고 피를 토하더니 온몸의 뼈가 모두 튀어나오는 기괴한 형상의 마수로 변했다. 이카니엘 대공이 준 서류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
“이런.”
“!”
“생각보다 충격이 크셨던 모양이군요.”
이카니엘 대공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귀를 틀어막고 있는 샤를로테를 보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꼬리에 짙은 미소를 걸었다.
“지금이라도 백작 자리에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럼 운반 작업만 도와도 되실 텐데요.”
예전에는 저 미소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저 남자는 괴물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그 이상으로, 괴물이었다.
“샤를로테 양이 공작 작위를 얻으려면 그에 따른 사유가 필요하죠. 그래서 운반 작업과 더불어 마수를 생성하는 일에 돕겠다고 하신 것 아니신가요?”
“그만두겠다고 한 적 없어! 약속이나 잘 지켜. 저번처럼 배신하기만 해 봐. 그때는 정말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백작 작위로는 안 된다.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백작이라니. 그런 어중간한 작위로는 베논 제국에서 생활할 때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나라를 팔아먹어서 얻은 작위라며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공작이 되어야, 쉽사리 무시는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그 끔찍한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마수를 인위적으로 생산한다. 마수에 대해서 잘 못 하기에, 그렇게 괴롭게 울부짖고 눈알이 썩어들어가고 고통에 몸부림치다 못해 스스로 제 살갗을 뜯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마수를 만들어내는 그 재료가, 같은 인간일 줄이야. 가슴 안쪽에서 흐릿하게 죄책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이런, 짓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왜 마수를 만들어내는 거지?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야.”
“그것까지 굳이 알 필요가 있으시겠습니까?”
“전체적인 상황을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사실, 마수를 만들어내는 이유라도 정확히 알아야 덜 자책할 것 같았다.
단순히 침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들어낸 마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라도 알아야…….
“원래는 마수를 만들어낼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예상외로 강하더군요. 괜히 군사 강대국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뭐?”
“뭐, 설명해드리죠. 지하실에 가서 그놈을 데려와라.”
이카니엘 대공이 지시하자, 기사는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사는 문을 열자마자 바닥으로 누군가를 내던졌다.
그 얼굴은 익숙했다. 어떻게 잊겠는가. 로젤리아와 꼭 닮은 저 얼굴을.
‘로웬 가넷?’
이 자가 왜 여기에?
샤를로테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어쩐지 로웬의 눈동자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텅 비어있을뿐더러 그의 몸에는 고문당한 흔적이 가득했다. 뭐지? 로웬이 왜 여기에? 잡혀 온 건가? 기사단장인 그가?
“레이몬드 제국은 눈엣가시 같은 제국이죠. 그렇기에 침공 작전은 오래전부터 계획되어왔습니다. 하지만 마법사가 없다 해도, 강대국이다 보니 적절한 시기를 찾고자 했고……때마침 페르소나 황제가 헤레이스 왕국과 마력석 독점 무역을 대가로 군사지원을 해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죠. 이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입니까?”
“그게 왜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거지?”
샤를로테는 떨리는 손을 꽉 쥔 채 이카니엘 대공을 응시하자 그는 픽 웃음을 터트리며 로웬을 발끝으로 툭툭 쳤다.
“헤레이스 왕국에서 귀환하려면 베논 제국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때마침 베논 제국의 황제 폐하로부터 안케도니아 제국을 침공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죠. ”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인데?”
“귀환 도중이던 로웬 가넷을 붙잡아 세뇌 마법을 걸었습니다.”
로웬에게 세뇌 마법을 걸었다고?
“레이몬드 제국에는 첩자를 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 로웬 경에게 세뇌 마법을 걸어 첩자 노릇을 하게 만들어, 때를 노리려 했죠. 그런데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지……마법이 전혀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모진 고문을 통해 정신력을 약하게 만들고, 확실한 세뇌를 위해 전쟁에 참여시켰죠.”
하. 무슨 말인가 했더니…….
샤를로테는 머릿속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카니엘 대공의 말을 듣자 왜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말을 썼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세뇌 마법의 구조는 이러했다.
한 사람에게 세뇌를 걸었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을 두고 또 걸고, 또 걸고…….
이런 행위를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세뇌 마법을 풀기 어려워진다. 더불어 상대의 정신을 좀 더 강하게 옭아매는 게 바로 세뇌 마법이었다.
세뇌 걸지 않았다면, 단순히 고문만으로 로웬의 정신력을 약하게 하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안케도니아 제국을 침공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로웬을 앞에 세워 안케도니아 제국의 침공을 돕도록 세뇌를 먼저 걸었던 것이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걸어서 완전히 세뇌 상태로 만들었겠지.
‘그걸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말하다니.’
세츠에게 들은 적이 있다. 안케도니아 제국의 침공 당시, 로웬이 예정보다 빨리 귀환하려 했지만 ‘사고’가 생겨 늦어졌다고.
그 ‘사고’는 핑계였겠지. 애초에 그렇게 말하도록 로웬 뿐만 아니라 군사들에게도 세뇌했을 거고.
“처음에는 안케도니아 제국의 침공을 돕게 만들도록 세뇌를 걸었고, 두 번째는 마법사 가문의 멸문을 하게끔 세뇌를 걸었고, 세 번째는 안케도니아 제국의 황족들을 모두 죽이라고 세뇌를 걸었습니다. 그 뒤에도 계속.”
“!”
“마지막에는 안케도니아 제국에 관련된 일을 모두 잊으라는 세뇌를 걸었습니다. 열 번의 세뇌를 반복하니 그렇게 강한 정신력도 결국은 무너지더군요.”
예상이 맞았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무너지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열 번의 세뇌라니. 정신력이 강했으니 망정이니 다른 사람이었으면 정신이 완전히 파괴되어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열 번이나 세뇌를 걸었다고? 사실상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잖아.
……잠깐만, 그런데. 뭐?
“그 뒤로 로웬에게 첩자질을 하게끔 유도했죠. 세뇌 마법이 너무 빨리 풀리는 탓에 건국제 때마다 굳이 참여해서 다시 걸어야 하는 수고가…….”
마법사 가문을 멸문시키게끔 세뇌시켰다니?
“잠깐만, 마법사 가문이라면…….”
“아, 맞습니다. 어떻게 그런 우연이 있을까요. 그때 로웬 경에게 헬리오도르 가문을 멸문시키라 지시했습니다.”
“!”
“칼라일이 죽었을 것이라 믿었는데 버젓이 살아나간 것도 모자라, 제 가문을 멸문시킨 놈의 동생과 사랑에 빠지다니!”
이카니엘 대공은 웃음을 터트렸다. 방안을 가득 메우는 웃음소리가 소름이 끼치다 못해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그 뒤로 로웬은 계속 첩자 노릇을 했습니다. 물론 모르겠죠. 세뇌 마법과 더불어 기억을 지워두는 마법까지 걸었으니까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 칼라일 그놈과 샤를로테 양의 동생 루치아노 말입니다. 알아차렸더라고요.”
“루치아노가 왜?”
루치아노의 이야가 나오자 샤를로테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을 본 이카니엘 대공의 눈동자 위로 흥미로워하는 기색이 떠올렸다.
“루치아노가 로웬과 대치했었죠.”
“뭐?”
“살아남아 칼라일에게 접근했고, 그 일을 계기로 가넷 대공이 의심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세뇌에 걸린 로웬 경이 알리지 않았다면 그 사실도 모를 뻔했습니다.”
루치아노가 로웬과 대치했었다니.
“언제 어떻게 말할지 모르는 일이니, 차라리 한 번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마수를 이용하고자 생각했죠. 마수를 이용한 침공 계획은 그 전부터 있었으니…….”
“많이 다쳤어?”
“누가 말입니까?”
“루치아노, 많이 다쳤었냐고.”
또다시 이카니엘 대공은 눈을 살짝 흘기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궁금하십니까?”
“!”
“듣자 하니, 샤를로테님이 루치아노를 황궁에서 쫓아냈다고…….”
“아니야!”
어지러움을 느끼며 의자에 몸을 걸치고 있던 샤를로테는 자신이 루치아노를 황궁에서 쫓아냈다는 말에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려쳤다. 샤를로테의 금빛 눈동자에 선명한 살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소리 지른 것인지, 책상 위로 쏟아진 찻잔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눈앞으로 과거의 기억들이 잔상처럼 흐릿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니야, 진정해. 떠올리지 마. 겨우 호흡을 가다듬은 샤를로테는 주먹을 꽉 쥔 채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마수 생성 작업은 내일 마저 할 테니, 오늘은 이만 가줬으면 하는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샤를로테는 자신을 여전히 웃음기 서린 얼굴을 바라보는 이카니엘 대공을 향해 차가운 비소를 흘렸다. 도대체 뭐가 웃기고, 마음에 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카니엘 대공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문 쪽으로 향해 있던 몸을 순식간에 샤를로테를 향해 가까이 기울였다. 순식간에 다가온 그의 얼굴과 냉기 가득 서린 까만 눈동자에 시선이 마주치자 몸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원하는 답이 되었는지는 모르겠군요. 어찌 되었든 모든 상황을 알았으니, 아기를 위해서라도. 더…….”
“…!”
“열심히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협박인지, 아니면 격려인지 모를 말을 남긴 이카니엘 대공의 뒤를 기사가 뒤따라갔다. 마치 시체처럼 늘어진 로웬을 보며 샤를로테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발자국 소리가 귓가에서 멀어진 후에야 샤를로테는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너무 거대한 위압감 때문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샤를로테는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침대로 가 몸을 눕혔다.
방안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침대 바로 옆 선반에 올려둔 하다 만 자수를 꺼냈다.
로웬을 세뇌했다니, 그렇다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계획을 해왔다는 말이 된다. 생각보다 더 큰 일에 휘말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루치아노가……로웬과 대치했었다고?
샤를로테는 입술을 꾹 문 채 자수를 쥔 채 덜덜 떨었다. 다시금 마수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아니야,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아기를 위해서야.
그러나 자수를 쥔 손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