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샤를로테의 몰락.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페르소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내 드레스가 점점 붉게 물들 때쯤,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꺄아아악!”
누군가 비명을 지르자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비명을 지르며 상황은 혼비백산으로 변했다. 몇몇은 로젤리아가 마셨던 샴페인이 든 잔을 바닥으로 내던지기도 했다. 나는 겨우 버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황후의 의자에 앉아있는 샤를로테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비소까지.
그래, 네 계획이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하지만 성공한 것은 네가 아니라 나란다.
“로젤리아!”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피에 흠뻑 젖은 드레스가 보였다.
지금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쓰러지지 않은 것을 보니, 처음에 루아 남작부인이 받은 그 독이 아니라 다른 독을 썼음을 알 수 있었다.
‘독성은 약하되, 사람을 좀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독…….’
입을 틀어막은 채 몸이 기우는 것을 느꼈다.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처절한 음성을 내뱉으며 나에게 손을 뻗는 페르소나가 보였다. 하지만 머리가 바닥으로 부딪히기 직전, 누군가 나를 끌어안았다. 아니지, 누군가가 아니라 칼라일이겠지. 나는 불타는 고통을 억누른 채 나를 끌어안은 칼라일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누군가 독살을 시도했다. 지금 당장 연회장을 폐쇄하라! 한 명도 나가지 못하게 막아라!”
울부짖듯 외치는 칼라일의 목소리에 나는 흐릿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이었다.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어서……칼라일이 나를 놓치지 않고 받아주어서. 안아주어서.
“칼……라일…….”
겨우 그의 이름을 내뱉자 격렬한 통증과 함께 다시 각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칼라일은 나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내 목 근처에 손을 갖다 대었다. 이마에 입을 맞추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손에 경련이 온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금방 안 아프게 해줄 테니까……괜찮아. 괜찮아.”
목 위로 점차 온기가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은 고통스러웠지만 통증이 아주 조금씩 잦아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숨을 겨우 몰아쉬며 칼라일을 손을 움켜쥐었다. 아직은 힘이 없어서 세게 잡지는 못 했지만, 칼라일은 내 손등에 입을 맞추며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페르소나를 노려보았다.
“누군가 독살을 시도했습니다, 샴페인 잔에 독이 들어있던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 이런 짓을 저지른 자에게 죗값을 치르도록 해야 합니다.”
칼라일은 그렇게 외치면서 샤를로테를 향해 똑바로 고개를 돌렸다. 칼라일은 누군가, 라고 말했지만 그 대상으로 샤를로테를 가리키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내 모습에 반쯤 정신을 놓고 있던 페르소나는 칼라일을 따라 기계처럼 고개를 샤를로테에게 돌렸다. 샤를로테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점점 생기가 돌아오더니 거대한 분노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나와 칼라일은 샤를로테가 독을 넣었다는 증거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니 페르소나의 입장에서는 범인으로 샤를로테를 지목하는 칼라일의 행동을 제어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했다. 하지만 페르소나는 알고 있는 듯했다.
잔혹한 악행에, 세뇌 마법을 쓰며 나를 악랄한 황후로 몰았던 샤를로테. 그것도 모자라 끊임없는 거짓말을 일삼은 샤를로테가, 나에게 독을 마시도록 꾸몄다는 것을. 애초에 샤를로테의 평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이 상황에서 나에게 독을 먹일 귀족은 없었다.
칼라일에게 기댄 채 몸을 반쯤 일으킨 채 샤를로테를 바라보았다. 샤를로테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런데 다른 의미로 놀란 듯 보였다.
마치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마주한 사람처럼, 자꾸만 힐끗거리며 어딘가로 시선을 보냈다. 처음에는 주변을 살피는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 시선 끝에 이카니엘 대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이카니엘 대공을 보는 걸까.
“샤를로테.”
페르소나는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샤를로테의 이름을 읖조리듯 불렀다.
샤를로테, 라고 불렀다. 황후라고 칭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지만 겨우 정신을 다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페르소나는 나에게서, 독을 먹고 쓰러진 두 번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내가 괴로워하던 그 순간을. 그리고 내가 쓰러지기 전에 한 말도 떠올렸겠지.
페르소나는 까맣게 죽어버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고통스러워하며, 피에 흠뻑 젖은 하얀 드레스를 입은 나를, 그는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칼라일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습니까, 혹시나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기어코 일을 저지르는군요. 황후 폐하. 아니, 샤를로테.”
그때 세츠가 궁의들을 데리고 연회장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궁의들 서넛이 나를 살피기 위해 다가오자, 칼라일은 눈을 표독스럽게 뜬 채 이를 으득, 갈았다.
“나와 로젤리아가 모든 것을 말해버릴까 두려웠나? 그래서 독을 먹인 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마력연구관. 지금 나를 독살의 범인으로 몰고 있는 건가요? 폐하, 지금 마력연구관의 무례한 행동을 당장……!”
하지만 샤를로테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페르소나가 힘겹게 손을 들어 샤를로테의 말을 막았다. 그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마력연구관은 계속 말해보도록.”
“폐하!”
샤를로테의 얼굴이 또다시 창백하게 질렸다.
“샤를로테는 안케도니아는 13황녀이다.”
“그만, 그만해!”
“1황녀인 척 모두를 속이고, 폐하께 세뇌 마법을 걸어 의심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로젤리아를 악랄한 황후로 만들게끔 여론을 조장했다. 더 말해볼까?”
칼라일은 모든 것을 토해내듯 소리쳤다. 그렇게나 샤를로테가 막으려 했던 사실들이 모두의 앞에서 까발려지자, 샤를로테는 크게 비틀거렸다.
“황후 폐하께서 13황녀라고? 1황녀라고 하시지 않았어? 이게 지금 다 무슨 소리야?”
“세뇌 마법은 또 무슨 소리야, 황후 폐하께서는 본인이 마법사인 것을 몰랐다고 하셨잖아!”
“그럼 수도에서 난동을 부렸던 그 영애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이야? 그건 어떻게 되는 건데?”
샤를로테는 점점 거세지는 비난 속에서도 고개를 굽히지 않은 채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담겨있었다. 분노, 두려운, 공포, 그리고……배신? 샤를로테는 수군거리는 귀족들이 있는 방향을 살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상냥하고 천사 같았던 얼굴이 아닌, 샤를로테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 귀족들은 절로 헛숨을 삼켰다.
하지만 샤를로테는 자신을 향해 비난을 던지는 귀족들을 노려본 게 아니었다. 그 사이에 있는 이카니엘 대공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배신을 알아차린 듯.
“……내가 13황녀라고? 내가 독을 먹였다고 말하는 겁니까.”
“더 이상 부정하지 마, 샤를로테. 모든 게 밝혀졌으니까.”
“아니, 내가 13황녀라는 증거가 있나? 내가 독을 먹였다는 증거가 있어?”
샤를로테는 끝까지 발악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황후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듯이. 추하다 못해 가여울 정도로.
“제가 증거입니다.”
그때 루아 남작부인, 아니 그녀의 얼굴을 한 켈빈 부인이 연회장 한 가운데로 나섰다. 샤를로테는 아직도 루아 남작부인이 사실은, 모습을 숨긴 켈빈 부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지, 난데없이 개입한 그녀를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형히 빛나는 샤를로테의 눈동자는 ‘한마디만 더하면 네 가족들은 물론 너까지 죽여 버릴 거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페하, 제가 각하의 잔에 독을 넣었습니다. 저 여자의 지시를 받아서요.”
“그게 정말인가, 샤를로테?”
“아닙니다, 폐하, 저 여자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 루아 남작부인을 체포하셔야 합니다!”
“폐하. 제가 루아 남작부인으로 보이십니까?”
그 순간 마법으로 바꿨던 루아 남작부인의 얼굴은 점점 마법이 풀려 켈빈 부인의 얼굴로 변했다. 그 모습을 본 페르소나는 눈을 부릅떴고, 자리에서 내려와 켈빈 부인에게 다가오던 샤를로테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죽은 줄 알았던 켈빈 부인이 연회장에 나타났으니까.
“켈빈 부인?”
“폐하, 제 얘기를 들어주십시오. 샤를로테는 제 동생 라벨의 인생을 비극으로 몰아넣었고, 저는 그 복수심을 위해 샤를로테에게 독을 먹인 겁니다. 그 후, 샤를로테는 친우인 루아 남작부인을 이용해 저에게 독을 먹여 자살로 조장하려 했습니다.”
“아니야! 폐하, 거짓말입니다. 모두 모함입니다!”
“저를 구해준 것이 바로 가넷 대공 각하십니다! 폐하, 샤를로테는 악랄한 여자입니다. 용병단까지 고용해 라벨을 죽이고, 사고를 조장해 쫓아낸 시종들이 샤를로테의 악행을 까발리지 못하도록 입을 막았습니다!”
불법 용병단 얘기까지 나오자 숨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던 귀족들은 충격 받은 얼굴로 샤를로테를 바라보았다. 그 잔혹하고 끔찍한 용병단에게 접촉을 했다고? 또다시 비난 어린 목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이 중에서는 용병단에게 크게 당한 귀족들도 있었다. 그들은 샤를로테는 악마 보듯 보고 있었다.
그러나 샤를로테는 그런 시선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는 칼라일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연회장은 다시 정적에 휩싸이고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꽂혔다.
“켈빈 부인마저 나타난 상황에, 무엇을 더 부정하려는 거야.”
“나는……!”
“네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죄책감이라고는 없나? 너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은, 너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은. 네가 죽인….”
칼라일의 부모님은, 너 때문에 칼라일이….
호흡을 멈춘 채 샤를로테의 코앞까지 다가가 속삭였다.
“더 이상 아무것도 부정하지 마. 네가 하는 말들은 모두 거짓이라 여겨질 것이고, 네가 망친 모든 이들의 원망을 받겠지, 네가 아무리 발악을 해봤자 너는 결국 안케도니아 제국의 13황녀, 모두를 속인 잔혹한 황후가 될 테니까.”
하지만 샤를로테는 똑같이 맞받아쳤다.
“아니, 나에게는 폐하의 피를 이은 아이가 있어. 네 말대로 될 것 같아?”
“가엾은 너의 아이 말이야?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불쌍한 샤를로테.”
샤를로테의 귓가로 고개를 숙여 읊조리듯 말했다.
“폐하께서는 네가 아이를 낳자마자 빼앗는다고 하셨어. 그리고 너를 노예 신분으로 만들어 타국으로 추방한다고 하셨지.”
“……뭐?”
“네가 악랄한 짓을 저질렀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잠깐이나마 네가 가엾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폐하는 아니시더라. 폐하는 내가 독을 마시기 직전까지 그렇게 말했어, 돌아오라고. 모든 게 샤를로테 네 탓이라고.”
결국, 너를 짧게나마 동정했던 사람은 페르소나가 아니라 네가 죽이려 했던 나야.
샤를로테의 금빛 눈동자는 점점 빛을 잃어갔다. 생기 없이 죽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 샤를로테는 내 어깨를 팍 밀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폐, 폐하, 제가 거짓말을 한 게 맞습니다.”
“!”
“하지만 두려웠습니다. 저는 패전국 출신이고, 1황녀이니. 응당 노예가 되거나 죽었어야 할 몸. 저는 폐하를 사랑했고 언제 내쳐질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악한 행동을 한 게 맞습니다. 그들이 원한다면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용병단이니, 제가 사고를 조장했다느니, 그런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페르소나는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샤를로테는 배를 꽉 감싸 안은 채 외쳤다.
샤를로테, 끝까지 너는…….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나오다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명확한 증거를 가져오기 전까지 인정하지 못합니다, 재판을 열어주세요!”
“재판이요?”“그래요, 재판…….”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칼라일이나 켈빈 부인이 한 말도 아니었다.
연회장으로 걸어 나오는 루치아노를 보며, 숨을 삼켰다. 샤를로테의 몰락을 지켜보겠다고 했던 그가 왜 왜 모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본 순간 그가 무슨 행동을 하려는 지 알 수 있었다. 저건 아일라에게 전해 받은 것이었다. 샤를로테로 인하여 쫓겨난 시종들에게 들은 샤를로테의 악행에 대해 적은 것들이었다.
“이건 샤를로테가 쫓아낸 시종들의 리스트와 그 증언입니다. 그리고 샤를로테는 13황녀가 맞습니다. 1황녀인 척 그런 악행을 저지른 것이 맞습니다.”
“!”
“제가 그 증인입니다.”
엄습해오는 불안감. 설마, 설마…….
“네가 증인이라고?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너는 누구지?”
“나를 모른다니, 섭섭하네. 우리 정말 오랜만에 만난 건데.”
안 돼, 루치아노에게 손을 뻗으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칼라일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루치아노의 눈동자가 흐릿한 푸른빛으로 반짝였다. 마법으로 몸을 제어했구나. 칼라일은 재빠르게 루치아노의 마법을 풀었지만 이미 그의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루치아노의 얼굴. 샤를로테와 꼭 닮은…….
“오랜만이야, 누나.”
마법이 완전히 풀리자 연회장은 숨 막히는 정적에 휩싸였다.
칼라일이 황급히 루치아노을 제지하려 했지만 마법은 이미 풀려버렸다.
“몇 년 만에 만난 동생의 얼굴을 보니까 기분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