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후폐하의 이혼사유-124화 (124/170)

#124화, 저주

샤를로테가 마법을 걸었다, 그것도 세뇌 마법.

샤를로테가 언제 마법을 걸었지? 걸만한 상황이 있었나? 1황녀인 것을 의심하지 못하고, 페르소나가 샤를로테를 사랑하게끔 마법을 걸었다고? 그렇다면 적어도 샤를로테가 정부가 되고 가증스러운 눈물과 함께 1황녀라고 거짓말을 했을 때 마법을….

‘꺄아아악! 샤를로테님!’

‘폐하, 샤를로테님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셨습니다!’

‘열이 계속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위험한 상황입니다.’

피를 토하고, 고열을 앓았었지. 그래, 왜 그걸 기억하지 못했을까.

나도 그랬었잖아. 칼라일을 치유 마법으로 치료했을 때도 마력을 과다 사용해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어. 샤를로테가 만약 그때 마법을 쓴 거라면, 그래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면? 역시 스트레스는 무슨,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어째? 모든 게 다 거짓이었어. 어떻게든 황궁에 붙어있기 위해 안간힘을 썼구나, 정말.

이쯤 되니 정말 궁금해졌다.

칼라일과 함께 있었다면 전문적이지는 못해도 마력을 너무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목숨을 내걸 정도로 황궁에 붙어 있으려 한 이유가 도대체 뭐야, 샤를로테.

헛웃음을 터트리자 나를 끌어안고 있던 페르소나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래서 지금 이걸 나한테 알려주는 이유가 뭘까. 이렇게 끌어안는 이유는? 밀쳐내기 위해 뻗었던 팔로 내 허리를 안고 있는 페르소나의 팔을 떨어트렸다. 하고 싶은 얘기가 겨우 그거였나. 샤를로테가 마법을 걸었고, 이 모든 게 샤를로테의 책임이라는 것?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로젤리아.”

“샤를로테를 사랑했던 것은 모두 거짓이고, 사실은 너를 사랑하니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달라, 이런 무책임한 말은 아니겠지요, 폐하.”

샤를로테는 확실히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런 샤를로테를 데려온 사람은 바로 페르소나였다. 사고를 당한 그 자리에서 황궁의만 보내주면 될 것을 굳이 황궁으로 데려와 치료하는 것을 지켜본 사람이 누구지? 바로 페르소나 아닌가?

그런데 그걸 모두 샤를로테의 책임으로 넘긴다고? 그래놓고 이제 와 돌아와 달라고?

“널 사랑해.”

“황후 폐하는요?”

“사랑하지 않아.”

“황후 폐하를 정부로 들이셨을 때도 그리도 말씀하셨죠. 저보다 황후 폐하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요.”

“그건 전부 마법 때문이었어.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착각한 거야!”

“어찌 그리 단정하십니까?”

확실히 샤를로테가 마법을 쓴 것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마법을 썼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애초에 다른 귀족들이 말하는 것처럼 참으로 우스운 상황이었다. 페르소나는 이렇게 나를 붙잡고 모든 것들이 샤를로테의 마법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말하지만 사실상 샤를로테를 관심 있게 보지 않았나? 그래서 황궁으로 데려온 거고?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고, 그가 급한 업무로 황궁으로 돌아가 봐야 했을 때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사랑하는 내 부인, 오늘은 황후의 자리를 내려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그런데 돌아가 보니 웬 여자가 귀빈 궁에 누워있질 않나, 페르소나는 호감이 가득 담긴 눈으로 샤를로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마법으로 인해 생긴 일인가?

아닐 텐데.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로젤리아.”

“그리고 설령, 샤를로테가 마법을 썼다고 한들, 폐하는 이미 결혼식으로 샤를로테를 황후로 올리셨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군요. 저한테 이런 말을 할 시간에 결혼을 취소하시는 게 정상 아닌가요?”

“그럴 수는 없어.”

페르소나는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 끝을 살짝 잡아왔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일의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결혼식을 치렀잖아. 그것도 시간을 앞당겨서. 무슨 생각이 있겠거니 했는데,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결혼을 했으니 옆에 두겠다는 것 아닌가?

“샤를로테의 뱃속에는 내 피를 이은 아이가 있으니까.”

“!”

“아이를 빼앗아야 해. 그리고 그 뒤에 샤를로테를 추방시킬 것이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아이를 빼앗는다고요?”

“그래. 아이를 빼앗을 거야.”

“샤를로테는 어떻게 되는 거죠?”

“노예든, 타국으로 추방시키든. 아이를 떼어놓지 않으면 어떻게든 아이의 어머니인 것을 빌미로 황궁에 붙으려고 할 거야.”

“그럼 왜 샤를로테를 황후로…!”

“아이는 죄가 없으니까.”

아이에게 죄가 없다고? 그래서 아이와 어머니를 생이별 시키겠다고, 아냐. 아니지.

“그 아이는 무슨 죄가 있겠어. 후계자로 올리지는 못해도, 황족으로는 만들어줘야지. 아이도 원해서 샤를로테의 아이로 태어난 게 아니잖아.”

아무리 샤를로테가 저지른 악행은 거대하고, 그에 따른 처벌은 받아야 한다지만, 아이를 낳자마자 추방을 시키겠다고? 노예로 만들어?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너무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미친 게 아닐까?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말을 망설임 없이 툭툭 내뱉는 걸까?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는 저 눈빛이었다.

이 모든 일이 샤를로테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 믿고 있었다.

“폐하는 이 모든 일이 샤를로테 때문이라 생각하십니까?.”

“…!”

“글쎄요, 저는 아니라 봅니다. 적어도 폐하는, 폐하께서는….”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페르소나의 어깨를 세게 밀친 채 테라스를 나왔다. 그 와중에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는 했는지 나를 따라 나오지는 않았다. 아직 남아있는 귀족들을 의식하며 발걸음을 느릿하게 움직여 걸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이 연회장을 나가고 싶었다.

연회장을 나와 화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람이라도 쐬어야지 머릿속의 열기가 가라앉을 듯싶었다. 도대체 나는 저런 남자를 왜 사랑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더 이상 감정 한 줌 남아있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그가 내뱉는 말들은 하나같이 다 끔찍했다.

샤를로테는 이 사실을 당연히 모르겠지.

자신의 자식이 후계를 잇고 황후의 자리에 계속 앉아있으리라 믿고 있겠지.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아이를 낳고, 모두의 축하를 받고 자라나는 아이가 결국 레이몬드 제국의 황제가 되는 것을 보며 꿈꾸고 있을까? 참으로 헛된 꿈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페르소나는 ‘추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말했다. 이혼 절차도 밟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샤를로테를 죄수로서 황궁에서 내보내겠다는 소리였다.

***

침실로 돌아오자 바로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로젤리아님.”

“아, 루치아노.”

그러고 보니 제정신이 아닌 탓에 루치아노롤 연회장에 두고 나와 버렸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지금 님프 궁에 그 용병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칼라일님이 그 용병을 님프 궁으로 데려왔습니다.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칼라일이 용병을 님프 궁으로 데리고 왔다고? 내일 있을 협정을 준비 중인 게 아니었나? 아니야, 이렇게까지 늦게 연구소에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아까 연회장을 나오기 직전, 바르셀민 백작이 다른 귀족들과 있는 것을 얼핏 보았다. 그렇다면, 칼라일은….

“칼라일님이 데려온 그 용병, 칼라일님의 부모님을 암살하려 했던 자들 중 한 명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그 암살자들은 칼라일이 전부….”

“죽였죠. 도망친 자들을 제외하고요.”

그럼 내가 데려오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그 용병을 데리고 이유가, 그 당시 도망친 암살자 중 한 명이라서?

“칼라일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님프 궁 지하실에 있지 않을까요?”

“님프 궁에는 지하실이 없어요.”

“칼라일님의 마법이라면 사람 한 명 정도는 거뜬히 숨길 수 있는 지하실을 만들어낼 수 있죠.”

루치아노가 침실 문 바로 옆을 살짝 두드리자 문의 형태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고통에 찬 신음도 함께 들려왔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흐릿한 피비린내,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는 것까지.

아주 잠깐 문 앞에서 망설였지만 이내 계단 아래로 걸음을 내딛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그 순간 바로 앞에서 쇠사슬이 철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앞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 맡았던 피비린내도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축축한 공기와 함께 지금 내 앞에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묶여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칼라일님은 어디에 있죠?”

“지하실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어떡할까요?”

“루치아노, 등불을 가지고 있나요?”

그때 칼라일의 기억 속에서 본 장면.

루치아노로부터 등불을 건네받아 들고 남자의 얼굴 근처로 등불을 가까이 댔다. 그제야 남자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허벅지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입에 천이 물린 채 온몸이 쇠사슬로 묶여있었다.

그리고 나를 살려달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자를 마주한 순간,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으며 등불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로젤리아님?”

“이 자에요.”

“네?”

“이 자가 칼라일의 어머니를 죽였어요.”

남자의 얼굴을 콱 붙든 채 그의 뺨 위에 있는 흉터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맞다. 똑똑히 기억한다. 칼라일이 마법으로 공격을 한 순간 남자는 간신히 그 공격을 피해 바닥으로 쓰러졌었다. 그러나 마법이 스쳤던 것인지 복면은 찢어지고 뺨의 살점이 뜯어지면서 뼈가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는 낯빛이 새파랗게 질린 채 도망갔지.

그때는 기억 속 칼라일에게만 집중하느라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라며 넘겼지만, 이렇게 남자의 얼굴을 보니 그 기억이 다시 되살아났다.

정작 부모님을 죽게 만든 암살자는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었구나.

칼라일이 이 자를 마주쳤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내가 겪은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참담한데, 칼라일은 얼마나 더 괴로웠을까.

“루치아노,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나요?”

“무슨 부탁 말씀이십니까?”

“이 남자에게 세뇌를 걸어주세요.”

“…어떤 세뇌를 말씀하시는 거죠?”

말없이 짐승처럼 울부짖는 남자를 내려다보다 이내 싱긋, 웃었다.

칼라일이 괜히 이 남자를 데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이렇게 살려둔 것은 모두 샤를로테의 몰락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겠지.

가까이 다가온 루치아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 순간 루치아노의 눈동자가 커졌다가 이내 작아졌다. 루치아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발버둥 치는 남자의 상처 부위를 구두로 지그시 누르다 이내 콱 밟았다.

“네 목에 검을 박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

루치아노의 단호한 목소리와 찢어질 듯한 비명이 뒤엉켜 귓가를 가득 메웠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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