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어.
거짓말이다. 거짓말이어야 했다.
바르셀민 백작을 기다리는 내내 페르소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만약, 루치아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머리가 욱신거렸다. 샤를로테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다시 되짚어보자.
샤를로테가 마법을 걸었다면, 도대체 언제 마법을 건 거지?
샤를로테와는 마차사고로 만났다. 마차사고로 머리도 부딪히고 다리도 다쳐서 황궁으로 데려와 치료했다. 그리고 다 나을 때까지 황궁에서 머물게 했다. 그리고, 그리고…….
‘그 뒤로 정부로 들였어.’
왜 정부로 들였지? 아, 그래. 처음에는 단순한 관심이었다. 신비로운 은빛 머리카락과 보석을 박아 넣은 듯한 금빛 눈동자가 예뻐서….
그래, 관심이었는데. 그저 관심이었다. 그리고 샤를로테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샤를로테를 사랑하게 된 시점이 언제지?
분명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어떤 계기로 인해 샤를로테를 사랑하게 된 것일 텐데.
그럼 언제부터 샤를로테를 열렬히 사랑했지? 로젤리아가 온갖 구설수에 시달림에도 그를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샤를로테를 사랑한 건 언제부터였지? 로젤리아를 사랑했던 것만큼 샤를로테를 사랑한 것은, 내가 로젤리아에게 차갑게 대한 것은 언제부터였지?
‘시녀들 관리를 좀 똑바로 하시오, 황후. 황후의 시녀가 퍼트린 헛소문 때문에 샤를로테가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소.’
……샤를로테가 1황녀임을 밝히고, 각혈을 하며 쓰러진 그 날.
그때 처음으로 로젤리아와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한 번도 그렇게 싸운 적이 없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로젤리아에게 화를 냈지?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었는데.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샤를로테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샤를로테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날 분명 샤를로테를 사랑하고 있었다……로젤리아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화를 낼 정도로. 세츠도 그때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지.
그럼 도대체 왜 샤를로테를 사랑한 거지?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니고.
샤를로테는 온몸으로 자신이 이방인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이방인의 말을 믿었다? 그것도 본인이 안케도니아 제국의 1황녀라고 말하는 데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믿은 것도 이상하다. 왜 나는 바로 믿었지? 샤를로테의 신분에 대한 의심을 내세우는 이들은 왜 없었지? 세츠도, 로젤리아도, 관리들도. 아무도 없었다.
무언가 크게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쯤, 바르셀민 백작이 집무실로 도착했다.
“백작. 그대는 마법사는 아니지만 마법 개념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소?”
“네, 제가 마법사는 아니지만 연구는 계속 해온 터라 웬만한 마법사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묻는 질문에 아는 대로 다 대답해줬으면 한다.”
마력학에 대해서는 공부했지만 그렇게 잘 알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루치아노가 한 말의 진실 여부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는 마력학에 대하여 박식한 사람을 통해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마법에, 정신을 조종하는 마법이 있나?”
“정신을 조종하는 마법이요? 네, 있습니다. 정신을 조종하는 것은 물론 기억을 억지로 지우게 하거나, 아예 세뇌를 시킬 수 있는 마법이 있습니다.”
심장 부근을 꾹 눌렀다. 그자의 말이 맞았다.
“그럼 그 마법에 걸리면 영원히 걸린 상태가 되는 건가?”
“아닙니다. 그쪽 계열의 마법은 계속 주기적으로 걸어주어야 한다더군요.”
“주기적이라고 하면?”
“정신 조종 계열의 마법을 계속 걸어주지 않을 시, 그 마법이 점점 서서히 풀린다고 합니다. 그 사이 마법에 걸린 대상들 중 간혹 몇 명은 두통이나, 고열을 앓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신체가 일부가 썩기도 한다더군요.”
두통이라고?
한껏 흔들리던 페르소나의 초록빛 눈동자가 궁의가 처방해준 약으로 향했다. 단순히 피곤하기 때문에 생긴 두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게 마법이 풀리고 있어서 그런 거라면?
“그럼, 세뇌마법은 마법사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사용하더라도 상급 마법사가, 그것도 마력이 평균 이상인 마법사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칼라일 그놈은 샤를로테에게 희미하지만 마력이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바르셀민 백작은 마력이 평균 이상인 마법사가 세뇌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그럼 희미한 마력을 가진 샤를로테가 세뇌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상급 마법사가 아닌, 마력이 거의 희미하게 흐르고 있는 자가 세뇌마법을 쓰면 어떻게 되지?”
“네? 그러면 정말 큰일 납니다.”
바르셀민 백작은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면 마력을 다 쓰고 수명을 쓰게 되는 것이니, 몸에 무리가 가면서 각혈을 하고 엄청난 고열을 앓습니다. 마치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라 하더군요. 어떤 경우는 온 구멍에 피가 흐른다고 하던데……한마디로 거의 죽기 직전까지에 이르는 거죠.”
페르소나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공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각혈. 온 구멍에 피가 흐르고. 고열을 앓는다?
샤를로테가 1황녀라고 밝혔을 때와 똑같은 증상이었다.
“세뇌마법으로 인해 마력을 모두 다 쓰면 어떻게 되지?”
“마력이 다시 차오르기는 합니다만 아주 천천히 차오르죠. 그래도 세뇌마법은 조금 나은 편입니다. 정신을 조종하는 마법 중 가장 마력이 덜 드는 마법입니다.”
“세뇌 마법은 다수에게 사용이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몇 명까지 가능하지?”
“제가 조사한 바로는 한 번에 이 황궁에 소속된 사람들의 수만큼은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그럼 샤를로테는 1황녀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게, 세뇌마법으로 인해 그런 거라면? 스트레스나 주변 시선 때문이 아니라 마법의 타격으로 인해 각혈을 하고 고열을 알았다면?
“……마력이 거의 없는 자가 다수에게 세뇌마법을 걸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그런 경우는 정말 목숨을 걸었다고 보아야죠. 겨우 살아나더라도 한동안은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할 겁니다.”
샤를로테는 고열을 심하게 앓은 뒤로, 침대에서 한동안 나오지 못했다. 다친 다리 때문에 잘 걷지 못하겠다며,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면서 침실 밖으로 거의 나오지 못했다. 바르셀민 백작이 지금껏 말한 것 중에서 샤를로테와 겹치지 않은 것은 없었다.
그럼 샤를로테는 세뇌마법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1황녀인 것을 믿게 했다는 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샤를로테를 사랑하게 된 것도, 세뇌마법 때문에….
그럼 샤를로테는, 왜 울었던 거지?
품에 안겨, 패전국 황녀인 탓에 몹쓸 말들을 듣고, 하녀들마저 자신을 무시한다고 한 말은? 왜 화를 낸 거지? 왜 시종들에게 그런 악랄한 짓을 저지른 거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래놓고 그렇게 죄책감 하나 없는 얼굴로?
‘왜, 도대체 왜!’
아예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패전국의 황녀는 어찌 되었든 노예가 되거나,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만약에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세뇌마법으로 사람들을 홀리고, 황궁에 붙어있기 위해, 가련한 척 처연하게 연기한 것이라면?
13황녀라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을 테니까. 눈앞에 황제인 내가 있고, 황궁이 있다. 어떻게든 황궁에 머물기 위해 선택한 자리가 황제의 정부였다면, 거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게 최선의 선택일 테니.
하지만 그렇게 모든 사람의 동정을 사고, 정부가 되기를 성공했다면 그쯤에서 끝냈어야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로젤리아를 악랄한 황후로…….
‘로젤리아.’
세뇌마법은 주기적으로 걸어줘야 한다. 샤를로테가 그걸 몰랐다면, 마법은 서서히 풀리고 있었겠지.
그리고 어느 정도 풀렸을 때가, 로젤리아가 이혼을 하자고 말했을 때….
로젤리아, 나의 황후. 나의 반려.
“그래, 수고했다. 도움을 줘서 고맙군. 백작은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라.”
모든 것을 알아버리자 지독한 허망함이 몰려왔다.
샤를로테를 사랑했다고 믿었지만, 아니었다. 그건 모두 샤를로테가 걸어둔 세뇌마법 때문이었다. 내가 보았던 샤를로테의 모습은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사용한 세뇌마법 때문이었고, 그 후로 샤를로테는 계속 거짓을 꾸미고 있었다. 모두에게 괴롭힘을 받는 가련하고 불쌍한 샤를로테. 그 속내가 시꺼먼 것도 모른 채 마법에 홀려 이리저리 휘둘렸다.
“폐하, 접니다. 지금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들어 오거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자 세츠가 밝은 얼굴로 들어왔다.
“몇몇 국가의 사절단들이 내일 마력연구소와 연구품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미리 평화 협정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도 합니다. 어떡할까요, 일정을 잡을까요?”
왜 밝은 얼굴인지를 알았다. 많은 국가가 저렇게 먼저 우호적으로 나오는데 보좌관의 입장에서는 좋겠지. 하지만 그 좋은 소식은 오히려 머리를 더 아프게 할 뿐이었다. 지금은 그저 혼자 있고 싶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틀 뒤로 일정을 잡아라.”
“네, 알겠습니다.”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자 세츠는 살짝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내 기분이 좋지 않음을 빠르게 파악한 세츠는 곧장 집무실을 나갔다. 문밖에서 기사들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당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공을 들인 마력연구가 온 제국에게 인정받을 기회였다. 대대로 군사강대국이 아닌, 마법강대국으로도 성장할 수 있음을 알릴 수 있는 이 좋은 소식. 축하하고 기뻐해야 한다.
하지만 함께 축하하고 싶은 상대는 따로 있었다.
로젤리아.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을 때도 너를 위해 버텼다. 너와 함께 꿈꾼 그 제국을 실현시키기 위해. 네가 곁에 없는데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가 사랑하는 네가 없는데.
샤를로테의 세뇌 마법만 없었다면. 그래, 그 마법만 없었다면. 에초에 샤를로테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로젤리아가 두고 간 그 목걸이를 쥔 채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목걸이가 잘그락거리며 책상 위로 떨어진 순간, 문득 떠오른 생각에 저절로 고개를 들렸다.
로젤리아가 내가 마법에 걸린 것을 알고 있나? 만약 모른다면?
마법에 걸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렇다면….
‘로젤리아가 돌아와 줄지도 몰라.’
황급히 일어나느라 책상 위에 올려둔 서류가 바닥으로 흩어졌다. 샤를로테를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야. 결국 나는 샤를로테에게 강제적으로 사랑을 요구당한 거야.
샤를로테만 아니었다면 결국 로젤리아 너를 계속 사랑했을 거야.
아이도 죽지 않았을 거라고.
내가 너에게 했던 행동들은 모두 다 샤를로테의 마법대로 조종당하면서 생긴 일이야.
눈가는 점점 붉어졌고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두 다 마법 때문이야. 너와 내가 이혼하게 된 것도, 모두 샤를로테 때문이야.
로젤리아가 두고 간, 붉은 보석이 달린 목걸이에 살짝 입을 맞추며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