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샤를로테의 결혼식
“정말로 가실 거예요?”
“그럼 안 가겠니, 클로이. 나는 대공이고, 황족들의 결혼식인데.”
다른 말로 하자면 전남편과 정부의 결혼식이지. 하지만 안 갈 수는 없다. 사회적 입지를 고려해서라도 이번 결혼식은 꼭 참가해야 했다. 다친 릴리를 대신 자진해서 따라온 클로이는 쭉 늘여놓은 보석 장신구들을 고르다 이내 손을 거두었다.
“로젤리아님. 어떻게 해드릴까요?”
“응?”
“제가 비록 나이는 어려도, 꽤 여러 귀족 영애들의 전담 하녀를 했었거든요. 원하신다면 황후 못지않게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드릴 수 있어요!”
거울에 비친 클로이의 손에는 멀리서도 시선을 끌 화려한 장신구와, 적당히 수수한 장신구가 들려있었다. 결혼식인 것을 감안하자면 수수한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굳이? 시종들에게 전해 듣기로는 오늘 샤를로테가 입을 드레스는 순백의 드레스에 크리스탈로 치장되어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고른 것이 바로 짙은 녹색의 드레스. 이 정도면 충분히 배려했다고 보는데….
“드레스 먼저 입고 생각해볼까?”
“네, 그럼 드레스 환복부터 도와드리겠습니다!”
굳이 저들을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오래된 지인, 정을 나눈 이들의 결혼식도 아니고 전남편의 재혼인데, 굳이 장신구 하나하나 눈치를 봐가며 고를 필요는 없지 않나. 물론 또 뒤에서 말이 나올 것이 분명하지만, 버려진 후 초라해졌다는 말보다는 훨씬 나았다.
“세상에, 녹색 드레스는 로젤리아님의 붉은 머리카락과 정반대되는 색이라 걱정했는데 너무 잘 어울리세요!”
“…그러게, 일부러 녹색으로 고른 건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아니지, 참 잘 어울렸다. 하지만 이 드레스는 분명 아셀라가 ‘나에게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드레스를 골라줘’라는 내 질문에 울면서 골라준 드레스였다. 그래서 다른 여분의 드레스는 가져오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얼핏 보면 꾸미지 않은 척 꾸몄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거기다 장신구까지 화려하면….
“이렇게 된 이상, 장신구도 화려하게 가요!”
아니다. 차라리 클로이의 말대로 아예 화려하게 가볼까?
어차피 수수하게 꾸미든 화려하게 꾸미든 구설수에 오를 거라면 신부 못지않게 아름답게 꾸미는 게 좋겠지.
“좋아. 클로이. 얌전하게 빗은 머리부터 다시 손보도록 해보자.”
“네, 로젤리아님! 저만 믿으세요!”
클로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부터 다시 손질하기 시작했다. 붉은 머리카락에 크리스탈 가루를 섞은 오일을 바르고, 목에는 클로이가 보여줬던 다이아몬드 장신구를 걸쳤다. 그리고 귀에는 샹들리에 귀걸이를 걸었다. 힐끗 거울을 보자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게 꾸며진 모습이 보였다.
‘클로이를 아셀라 의상실 조수로 보낼까…실력이 너무 아까운데.’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던 사이, 콧노래를 불러가며 치장에 공을 들이던 클로이는 팔찌를 보며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기울기를 반복했다.
“클로이?”
“어울리는 팔찌가 없어요. 이러면 손이 너무 허전한데….”
“굳이 팔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한번 꾸민 이상 제대로 해야죠!”
애초에 처음부터 가져온 장신구와 드레스는 현저히 적었다. 수수하게 꾸미고 나갈 생각에 저택에서 몇 개만 골라왔었다. 클로이는 그게 아쉬운 듯 보석함을 내려다보며 내 손목에 이리저리 가져다 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순간 클로이의 눈동자가 동그래지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정확히는 내 옆에 있는 거울을 향해.
“수수하게 꾸민다고 하지 않았어?”
문에 반쯤 몸을 기대로 있던 칼라일은 나처럼 저택에서 가져온 제복으로 환복을 한 상태였다.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 이만 나가보렴, 클로이.”
“화려하게, 꼭이요! 화려하게!”
“그래. 걱정하지 말고 가서 아메를 불러와주렴.”
칼라일은 클로이가 나가자마자 내 귀에 걸린 귀걸이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너무 잘 어울려.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면 어떡하지?”
“쓸데없는 걱정이네. 논의 자료는 다 준비했어?”
“응. 지금부터는 나도 네 옆에 있을 수 있어. 루치아노는?”
“바람 좀 쐰다고 나갔어.”
“그럼 우리 둘밖에 없는 거네?”
귓가에 속삭이는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렸다.
하지만 칼라일은 잠시 눈이 커지기만 할 뿐,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내 손목을 잡고는 쪽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추었다. 간지럽다고 놔주지 않고 그대로 손목 위에 입술로 지그시 눌렀다. 내 반응을 살피려 느릿하게 움직이는 은빛 눈동자가 꽤나 먹잇감을 탐색하는 늑대처럼 보였다.
“여기 밖이야, 저택이 아니니까 조금만 해.”
“정확히는 님프 궁 안에 있는 가장 큰 침실이지.”
“이상하게 침실이라는 단어만 발음을 강조한 것 같은데.”
“이런, 들켰네.”
나는 말없이 내 손을 감싸고 있는 그의 손을 찰싹 때렸다.
“아직 준비 다 안 했으니까 의자에 앉아있어.”
“내가 도와줄게. 뭐하면 되는데?”
다시 거울을 향해 몸을 돌리자 그가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으며 내 팔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손이 허전하대서. 수수하게 말고 화려하게 가자고 생각했거든.”
“좋은 생각이야. 화려하게라면…팔찌나 반지?”
“응, 그런데 가져온 장신구가 별로 없어서 드레스에 어울리는 것으로 골라야 할 것 같아.”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치던 칼라일은 아주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반쯤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그의 표정이 약간 오묘했다.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쩐지 망설이는 듯 보였다.
“나한테 너에게 잘 어울릴만한 장신구가 하나 있는데.”
“그래? 뭔데?”
칼라일은 대답 없이 미소만 지으며 커다란 손으로 내 눈을 덮었다. 어두워진 시야 사이로 ‘잠시 눈을 감고 있어’라는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 사이로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뭐지? 천의 감촉도 아니고, 금속처럼 느껴졌다. 뭐길래 그럴까.
“……잘 어울린다. 이제 눈 떠도 돼.”
천천히 눈을 뜨자 약간 귓불이 붉어진 칼라일과 함께, 내 손에 끼워진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약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붉은색과 금색이 오묘하게 섞인 빛의 반지, 테두리에는 섬세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
“사실 생일 연회 때 주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못 줬어.”
“….”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다행이다. 매번 너랑 손잡을 때마다 반지 크기 확인했는데, 안 맞으면 어떡하나……로젤리아?”
약지 손가락에는 언제나 허옇게 반지 자국이 남아있었다. 가끔은 그 자국을 볼 때마다 그 부분만 살을 떼버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지울 수 없는 흔적이었고, 볼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페르소나와의 시간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반지에 달린 보석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미세한 떨림이 손끝에서 일어났다.
“로젤리아.”
칼라일이 내 뺨을 감쌌다. 그의 얼굴에는 초조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칼라일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쳤다. 손바닥으로 아까처럼 차가운 감촉이 퍼졌다. 그의 손에도 내 손에 있는 것과 똑같은 반지가 끼워진 게 보였다.
“너무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든다는 말에 칼라일은 환한 표정으로 나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먼저 칼라일을 끌어안았다.
반지가 눈앞에서 반짝거렸다. 손가락 위로 퍼지는 금속의 느낌이 이렇게 기분 좋았던 적은 없었다. 칼라일은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잠시 놀란 듯 보였지만 이내 뻗었던 팔로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에게서 평소처럼 싱그럽고 시원한 향이 느껴졌다.
***
대연회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대했다.
재혼인만큼 인테리어에 많은 공을 들였는지, 각 벽면마다 배치된 황금으로 만든 장미나, 바닥에 뿌려진 자잘한 천연보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대연회장 바닥에 깔린 비단 카펫은 바깥에 설치된 계단 입구부터 이어져 있었다.
루치아노는 자꾸만 밟히는 보석들이 거슬리는지 보석을 피해 발을 옮기려다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돈을 바닥에 뿌렸네요, 아주. 아예 옷도 보석으로 만들지 그랬어.”
“루치아노, 조금만 작게….”
칼라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떻게든 웃지 않으려 끅끅대기 시작했다.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귀족들의 대화 소리가 한순간에 뚝, 하고 끊겼다. 모두들 나를 보지 않으려 하면서도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곁눈질로 살피기 시작했다.
그래, 마음껏 보렴.
전남편 결혼식에 온 여자가 양쪽에 수려한 외모의 남자 둘을 데리고 오는 데 무얼 상상 못 하겠니.
익숙한 시신이었으니 가볍게 무시하고 배정받은 자리에 가 앉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나를 멀찍이서 따라오던 루치아노가 걸음을 옮기다 말고 우뚝 멈춰섰다. 그러더니 그의 고개가 한 귀족 부부 커플을 향하여 기계처럼 돌아갔다.
“할 짓거리들 없나 보네, 혓바닥을 저렇게 함부로 놀려대고 말이야.”
“뭐, 뭐…?”
“저런 혓바닥은 뽑아서 들개한테나 던져줘야 하는데. 아니지, 먹고 뱉으려나. 그럼 저 하잘것없는 쓰레기 같은 살점덩어리는 어찌해야 하나.”
루치아노는 싸늘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들으라는 것처럼 외치더니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어디 일개 기사 따위가!”
“그쪽한테 한 말이 아닙니다만. 본인이 쓸데없는 살점 덩어리를 달고 있다는 자각은 하고 계신가 봐요.”
루치아노에게 욕을 먹은 귀족은 그에게 삿대질하며 얼굴이 벌게진 채 외쳤다. 멀찍이서 따라오던 터라 내 호위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귀족은 당장이라도 루치아노의 뺨을 치려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메.”
“네, 칼라일님.”
“저자가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이면 그냥 다리를 베거라.”
지시와도 같은 내 말에 루치아노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꽉 움켜쥐고는 서늘한 눈으로 귀족을 바라보았다. 귀족은 그제야 루치아노가 나와 칼라일의 호위로 온 것임을 깨달았는지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 한 채 얼어붙었다. 뒤로 주춤거리자 루치아노는 검을 반쯤 꺼내들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이면’이라고 하셨습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나에 대한 험담도 뚝, 하고 끊겼다. 한참을 거슬리게 하던 시선도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다들 허공을 쳐다보거나 대화를 나누는 척 어색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루치아노에게 옆으로 오라고 해도 거절하고 멀찍이서 따라오던 것도 이런 사람들 때문이었나.
“아메, 어서 가자. 곧 시작할 것 같구나.”
그제야 루치아노는 검을 집어넣고는 바로 내 곁으로 왔다.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침묵도 점차 풀리면서 다시 사람들의 수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나는 옅은 미소를 띠우며 나와 가까이 있는 루치아노와 칼라일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은 누구에게 배웠어요?”
“칼라일님께서 알려주셨어요.”
루치아노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칼라일은 고개를 다급하게 내저었다.
입을 뻐금거리며 조용히 투닥거리는 둘을 보며 나는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그 사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주례를 맡은 대신관이 자리에 서자 탑 위의 종이 울렸다. 나와 결혼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새하얀 제복을 입은 페르소나의 옆에는 정말로 ‘신부’같은 샤를로테가 서있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함께 연애를 하고, 그렇게 결혼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룰 날만 꿈꾸는 평범하고도 행복한 신부. 도저히 거짓말과 악행을 일삼는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저절로 흘러나오는 비소에 입술을 꾹 물며 나란히 대신관의 앞에 서있는 두 사람을 모습을 지켜보았다. 둘은 서로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래, 행복하렴.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행복하렴, 샤를로테. 페르소나,
그 미소도 얼마 가지는 못할 거야. 페르소나, 네가 사랑한 샤를로테가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샤를로테 네가 저지른 일에 대한 처벌을 받게 해줄 테니까.
‘지금이라도 즐겨.’
나와 눈을 마주친 샤를로테는 한순간 환하게 웃었다가 내 미소에 잠시 움찔거렸다.
샤를로테는 내가 왜 웃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페르소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형식에 맞춰 벽에 서 있던 기사들 사이로 루치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루치아노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 차라리 나가있으라 할 걸 그랬나. 꼭 샤를로테를 보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오기는 했는데….
루치아노는 보랏빛 눈동자로 정확하게 샤를로테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오로지 샤를로테만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루치아노의 뺨 위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루치아노가,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