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후폐하의 이혼사유-95화 (95/170)

#95화, 뒤늦게 알게 된 사실

“루치아노라고?”

“!”

“루치아노가 누구, 아, 그런데 목소리가….”

페르소나는 내가 내뱉은 이름에 한번, 그리고 목소리가 돌아왔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지금 당장이라도 황궁의를 부르려는 건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왜 하필 지금 저주가 풀린 거지? 나는 루치아노의 이름을 담은 입을 원망하며 그의 팔을 꽉 부여잡았다.

“폐, 폐하!”

죽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정말 죽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만약 살아있다면. 그래서 페르소나가 루치아노를 찾아낸다면. 아니, 그런 일은 있으면 안 되는 거였다. 내가 1황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레이몬드 제국 안에 발을 들이게 할 수는 없었다.

“샤를로테, 일단 황궁의를 불러오고….”

“루치아노는 제 쌍둥이 동생입니다.”

“쌍둥이 동생?”

팔이 덜덜 떨렸다. 어떻게 얻은 황후 자리인데, 만약의 상황도 미리 대비해야 했다. 지금 그에게 말해야 했다. 페르소나가 먼저 조사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페르소나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다.

“제가 데리고 나오려 했지만 결국 기사들에게 살해당한 제 동생의 이름은 루치아노입니다.”

루치아노를 1황자라고 말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레이몬드 제국에 교역이나 사절단 대표로 한 번 와봤을 것 같았다. 그러니 거짓말을 말하기 보다는 일부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루치아노는 황위 계승권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계승권을 포기하고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찾으시려거든, 신전과 관련 있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봐주십시오.”

하지만 찾지 못할 게 뻔했다. 신전에는 신분 자체가 비밀로 붙여져 있다. 공개되는 건 이름뿐이었다. 게다가 가장 먼저 신전이 침공을 당했고, 신전의 대부분 사람들이 죽었다. 모든 게 불타 사라졌다.

그러니 쉽게 찾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찾더라도 죽었다는 소식밖에 듣지 못할 것이다.

루치아노는 죽었다. 죽었을 것이다. …죽어야 했다.

“샤를로테.”

“네, 폐하.”

“그렇게 울 정도로 찾고 싶은 동생이었나?”

“…네?”

빠르게 굴리던 머리는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에 의해 멈춰버렸다. 나는 손끝으로 뺨을 더듬었다. 뭐지? 왜 갑자기 눈물이. 황후의 자리를 위협당하는 느낌이라 두려웠나? 그래서 이러는 건가?

루치아노는 쌍둥이 동생이지만 쓸모없는 동생이었다. 쌍둥이면서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동생이었다. 내 손으로 궁에서 내쫓은 존재고, 운 좋고 칼라일의 손에 구해져 마법사에, 대사제까지 된 놈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은 성인식을 치르는 나에게 성수를 뿌려주던 그때뿐이었다. 그 뒤로 본 적 없었다. 아니, 보고 싶지도 않았고, 설령 살아있다 해도 만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살아있다면 이번에는 확실하고 강한 암살단을 보낼 생각이었다.

“네, 찾고 싶었어요.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어요. 사람을 구해서 찾아보려고 했지만…혹여나 폐하께서 오해하실까 봐.”

그런데 왜 이렇게 심장이 아픈 것일까.

“오해할 게 뭐가 있겠느냐. 지금이라도 말해주니 고맙구나, 샤를로테.”

눈물을 훔치며 애써 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페르소나는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나를 침대에 눕혔다.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

“네 동생을 찾아보라고 지시할 터이니. 궁의가 올 테니 잠자코 누워 있거라 샤를로테.”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방을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심장 부근을 꾹 눌렀다. 이대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다. 묵직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창가 쪽으로 갔다.

“삐, 삐이-”

그리고 창가에 앉아 쉬고 있는 새가 보였다. 샤를로테는 살짝 밝아진 얼굴로 새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작게 날개짓을 한 새가 샤를로테의 손가락 위에 앉았다. 보드라운 깃털이 살갗 위로 느껴졌다.

작은 부리로 털을 고르는 게 귀여웠다. 그러나 기분 나쁠 정도로 빠르게 뛰는 심장은 좀처럼 가라앉지를 못했다.

***

“루치아노 안케도니아를 찾아보라고요? 그자가 누구입니까?”

“황후의 가족이라 하더군. 동생이라 하던데.”

“황후 폐하의 친동생 말씀이십니까? 가족이 있으셨습니까?”

그러게, 있을 줄은 몰랐는데. 페르소나는 귓가에 맴도는 루치아노 안케도니아, 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안케도니아라는 성을 쓴 것을 보면 황족일 것이다. 집무실로 돌아온 페르소나는 곧장 사람을 시켜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만약 샤를로테의 가족을 찾았다면 칼라일과 샤를로테, 이 둘의 의심스러운 관계를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샤를로테는 죽었다고 했지만 한두 명은 살아있지 않을까, 샤를로테가 제국으로 도망쳐 온 것을 보면 약간의 가능성은 있었다. 특히 그 루치아노라는 황족이 살아있다면 좋을 텐데.

“폐하, 밖에 황후 폐하의 시녀가 와 있습니다.”

“들어오라 해라.”

문이 열리자 향긋한 과일과 풀 향이 느껴졌다.

“폐하, 황후 폐하께서 전해드리라 한 것들입니다. 폐하의 안색이 최근 안 좋으신 것 같다면서 특별하게 준비하신….”

“거기 두고 가라.”

샤를로테가 외국에서 특별히 공수해온 온갖 몸에 좋은 것들이었다. 페르소나는 루아 남작부인이 가져온 것들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루아 남작부인이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나가지 않고 뭐 하는 거지?”

그제야 루아 남작부인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푹 숙이며 연신 죄송하다고 답했다. 페르소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황궁에서 일하는 시종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꽤 오래 일한 시종 몇몇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루아 남작부인이었다. 그리고 샤를로테에게 독을 먹인 켈빈 부인과 친한 사이였다는 것도.

켈빈 부인이, 자살했다고 그랬지. 친한 사이여서 저렇게 넋이 나갔나. 그런데 왜 이렇게 얼굴이 창백하지? 그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루아 남작부인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의 시선이 서류 위에 적어둔 루치아노 안케도니아라는 이름으로 향해 있었다.

샤를로테가 말한 루치아노 안케도니아에 대한 정보를 정보 길드에 의뢰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루아 남작부인은 샤를로테의 전속 시녀지…혹시 뭔가 알고 있는 거라도 있나?

“루아 남작부인.”

“네, 네?”

“혹시 이 자에 대해 아는 게 있나?”

루아 남작부인은 루치아노 안케도니아, 라고 쓰인 서류를 받아 읽으면서 손을 살짝 떨었다. 루치아노 안케도니아? 안케도니아 제국의 황족인가? 집중하려고 해도 글씨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로젤리아의 생일 파티 당일 카렐리아가 한 말이 자꾸 귀에 맴돈 탓이었다.

그날 이후 샤를로테의 손에 쫓겨난 시녀와 하녀들을 만나러 갔다. 하녀들은 다른 귀족가에서 일하려 해도 황궁에서 쫓겨난 탓에 쉽사리 들어갈 수가 없었고, 시녀들은 아무래도 귀족이다 보니 사교계에서 은밀하게 배척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켈빈 부인의 동생, 라벨. 불쌍한 그 아이.

실어증이었지만 그녀의 친척들의 정성어린 간호와 도움으로 나은 상태였다. 잠시 안정된 듯했지만, 아니었다. 켈빈 부인의 자살을 전해 듣고는 완전히 미쳐버린 상황이었다.

‘내가 샤를로테를 죽일 거야…그 망할 년을 죽여 버릴 거야….’

침대에 발목이 묶인 채 중얼거리는 라벨을 보며 루아 남작부인은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1황녀가 아니라면, 라벨은 어떻게 되는 거지? 멸망한 제국의 1황녀인 자신을 무시하고 모독했다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쫓겨나지 않았나. 라벨의 복수를 하려다 자살한 켈빈 부인은?

“루아 남작부인. 안색이 안 좋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할까? 아니야, 어린아이니까 더 확실하지 않을 수 있어. 아니야, 아니야…!

“폐, 폐하.”

하지만, 약간의 가능성이 있으니까.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이 일을 혼자 조사할 수 없다.

“제, 제가,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이상한 말?”

루아 남작부인이 꺼내려는 말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안 것인지 페르소나는 그녀를 재촉했다.

“이상한 말이 무엇이지?”

“….”

“샤를로테와 관련된 것인가?”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샤를로테와 관련된 것이 분명했다. 건국제와 결혼식을 앞둔 상황에서 불안 요소들을 얼른 제거해야 했다. 페르소나는 하얗게 질려 드레스 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는 라벨 남작부인을 가만히 응시했다.

하긴, 함부로 입을 열면 안 된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을 게 뻔했다. 자신보다 높은 지위, 특히 황후의 경우 입을 잘못 놀렸다가 불구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으니까.

“말해도 좋다. 내가 보장하지. 이 일로 샤를로테가 너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하겠다. 그러니 말해보도록.”

그제야 고개를 든 루아 남작부인은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 글자씩 겨우 내뱉었다.

“샤를로테 황후 폐하가, 1황녀가, 아니라…13황녀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충분했다. 페르소나의 손에 쥐어져 있던 펜이 뚝 소리를 내며 반으로 부러졌다. 잉크가 새고 서류들을 적셨지만 그런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샤를로테 안케도니아가 13황녀라고?’

그럴 리가 없다. 하마터면 그렇게 말할 뻔했다. 그도 그런 것이 샤를로테는 1황녀였다.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그리고 패전국의 1황녀라며 구설수가 점점 선을 넘자 스트레스 때문인지 고열을 하고 눈은 충혈되어 각혈을 하며 쓰러졌다.

그런 샤를로테가 13황녀일 리가.

“그 말을…누구에게 들었지?”

그러나 루아 남작부인의 얼굴이 너무 공포에 질려있었다. 본인도 믿기지는 않지만, 믿을 만한 누군가에게 들었으니 그랬겠지. 페르소나는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손수건으로 손을 닦는 척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단순히 13황녀라서가 아니었다. 13황녀일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1황녀인 자신을 패전국 황녀라고 모독했다며 내쫓은 이들은, 강하게 처벌한 이들은?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샤를로테가 내쫓은 이들이 어디 한 둘이었나?

그럼에도 놔뒀던 것은, 황녀였으니까. 황녀로 살아왔고, 한순간에 황실이 무너졌으니까. 갑작스럽게 패전국의 황녀가 되어버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놔두었다. 그것도 안케도니아 제국에서의 1황녀였으니까.

만약 그게 전부 사실이라면, 억울하고 비참하게 내쫓겨진 사람들은….

“루아 남작부인, 대답하라. 그 말을 누구에게 들었지? 왜 진즉에 와서 알리지 않은 것이냐!”

“그, 그게, 저도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해준 사람이, 너무 어린아이여서…그래서….”

어린아이라고? 아이가 샤를로테가 13황녀라고 말했다?

“그 아이가 누구지?”

“아, 아….”

“어서 대답하라, 황명이다!”

제국민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샤를로테의 출신을, 어떻게 어린아이가…?

루아 남작부인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덜덜 떨었다.

“마, 마력연구관님의 동생이신, 카렐리아님이.”

‘카렐리아?’

“카렐리아님이, 황후 폐하께서 13황녀라고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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