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후폐하의 이혼사유-86화 (86/170)

#86화, 샤를로테의 신분을 알아버렸다

아니야, 거짓말이야. 카렐리아가 왜 여기에 있어? 이 아이가 왜….

잃어버렸다고 했잖아. 설마 찾은 거야? 죽은 게 아니었어? 샤를로테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카렐리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카렐리아가 살아있다. 자신이 1황녀가 아니라 13황녀임을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람!

샤를로테는 칼라일과 똑같이 생긴 카렐리아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손끝이 볼에 닿자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꿈이 아니다, 진짜야. 진짜 카렐리아야.

“아이가 참으로 귀엽네요.”

내 말에 로젤리아가 실소를 터트리는 게 보였다. 어떻게든 손가락을 거두며 당황한 티를 내지 않도록 노력했다. 카렐리아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지만…몸도 약하니까, 큰 상처를 입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렐리아는 아주 멀쩡했다. 게다가 이렇게 버젓이 생일파티에 데려올 줄은 몰랐다. 샤를로테는 카렐리아가 자신의 바라보는 시선에 놀라 고개를 돌려버렸다.

카렐리아가 나를 기억할까. 기억하지 못할까…. 떨리는 손을 숨기려던 순간, 카렐리아가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렐리아라고 해요!”

사랑스럽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에 어깨가 흠칫 떨렸다.

…기억하지 못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샤를로테 맑고 깨끗한 카렐리아의 은빛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마음 한구석에 넣어두었던 불안감이 자시 가시처럼 뾰족해져서 가슴 한쪽 구석을 이리저리 찔렀다.

“자리를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으로.”

페르소나의 팔에 몸을 기대면서도 심장은 기분 나쁘게 마구 뛰었다. 방금 전에 본 카렐리아의 눈동자가 자꾸만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그 시선이 등 뒤로 진득하게 따라붙는 것만 같았다.

확인해야 했다. 카렐리아가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칼라일이 모르는 척 하도록 시킨 것인지 알아봐야 했다. 카렐리아는 워낙 사람들을 잘 따르는 성격이니까 떠보기도 쉬울 것이다.

샤를로테는 자리에 앉자마자 쿠키를 입에 문 채 주변을 둘러보는 척, 조용히 루아 남작부인을 찾았다.

루아 남작부인은 피곤한 얼굴로 다른 시녀들 사이에 서 있었다. 울다가 지쳐 쓰러진 라비란느 걱정에 밤을 설쳤다고 했었지.

아마도 하루빨리 라비란느를 쫓아다니는 그 지독한 놈을 떨어트려 놓고 싶겠지. 하지만 샤를로테는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감옥에 넣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그녀의 부탁을 잠시 미뤄둔 상태였다.

‘그때 미뤄두기를 잘했네.’

샤를로테는 페르소나의 시선이 칼라일과 카렐리아에게 향한 사이, 샴페인을 가져다주던 시종을 붙잡고 조용하게 말했다.

“가서 루아 남작부인을 불러와.”

***

딸기잼을 듬뿍 올린 쿠키를 두 손으로 쥔 채 오물오물 먹는 카렐리아는 꼭 햄스터 같았다. 쿠키가 생각보다 입에 잘 맞는지 벌써 다섯 개째 과자 가루를 입가에 잔뜩 묻혀가면서 먹고 있었다. 냅킨으로 카렐리아의 뺨에 묻은 가루와 크림을 닦아내자 칼라일이 이를 저지했다.

“흘리지 않고 먹어야지, 카렐리아.”

평소에도 예법을 엄격하게 가르치던 그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카렐리아는 마치 성난 고슴도치처럼 행동했다.

“오빠도 흘리고 먹잖아.”

“내가 언제 흘리고 먹었다고 그래.”

“저번에 케이크 먹을 때! 오빠도 흘렸잖아!”

“그건 네가 내 옷에 케이크를 엎은 거잖아!”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은 채 씩씩거리던 카렐리아는 이내 팔짱끼고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이 정도는 괜찮잖아. 그리고 아직 어린데 흘릴 수도 있고.”

“로젤리아, 자꾸 감싸주지 마, 카렐리아 버릇 나빠져.”

“때 되면 다 고쳐져.”

“안 고쳐져. 카렐리아, 자꾸 말 안 들으면…미워할 거야.”

단호한 칼라일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카렐리아는 쿠키를 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잠깐의 정적 후, 결국 카렐리아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터졌다. 얼굴이 빨개진 채 눈물을 글썽이던 카렐리아는 엉엉 울면서 굵은 눈물을 떨어트렸다.

“아,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그러게 내가 그만하랬잖아. 카렐리아, 뚝 하자. 응?”

“히끅, 오빠 미워어! 흐아아아앙!”

당황한 칼라일이나, 칼라일 품에 안겨서 우는 카렐리아나 둘 다 너무 귀여웠다. 울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탓에 달래줄 수도 없었다. 칼라일도 더 이상 혼내지 못하고 카렐리아를 품에 안은 채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않자 결국 세실리아가 가리킨 귀빈실 쪽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귀엽네요.”

“귀엽죠.”

“진짜 귀여워요.”

하나같이 카렐리아에게 귀엽다는 찬사가 떨어졌다. 내 여동생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으쓱해지는 마음에 입가에 미소를 걸친 채 카렐리아가 나에게 쥐어준 쿠키를 입에 넣었다.

“그런데 두 분 정말 다정하시네요.”

그때 카렐리아에게 쿠키나 케이크를 권유해주던 레블린 부인이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블린 부인은 나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특이한 경우였다. 게다가 서로 죽고 못 살기로 유명했고, 지금은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이런 질문이, 조금 무례하다고 생각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괜찮아요. 말씀해보세요, 레블린 부인.”

“각하께서는 칼라일님과 결혼하실 건가요?”

결혼이라. 나는 샴페인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칼라일과 카렐리아가 행한 쪽을 말없이 응시했다.

세실리아는 나와 칼라일, 그리고 카렐리아가 있었을 때 부부와 딸 같았다고 말했다. 물론 세실리아의 눈에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남들 눈에는 다르게 보일 수 있겠지만…부부, 그리고 딸이라. 저번에도 했던 생각이지만 부부는 나에게 낯선 단어이면서도 거부감이 드는 단어였다.

첫 결혼이 무참히 실패해서 그런가. 하지만 그렇게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잘 모르겠어요.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해서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기를 선포할 때 내 옆에 서있는 사람이 칼라일이라면…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제가 청혼을 하든, 칼라일이 청혼을 하든, 여러분께 가장 먼저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오히려 첫 번째 결혼할 때보다 더 떨릴지도 몰랐다.

“그럼 제가 가장 먼저 기사를 쓸게요!”

“제가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와 구두를 선물해드릴게요!”

“두 분은 정말 아름다운 신랑, 신부가 될 거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한껏 낮춘 목소리였지만 무척이나 흥분한 상태였다. 물론 칼라일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라면 나의 인생을 함께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

조용히 그가 달아준 가슴 위 브러치를 매만졌다.

***

작다.

루아 남작부인이 카렐리아를 보며 한 생각이었다. 자신을 멀뚱멀뚱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렐리아라는 아이는 정말 귀여웠다. 보석 같은 은빛 눈동자에 햇살을 머금은 듯한 금빛 머리카락이라니.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번에 샤를로테에게 지시받은 일은 누구를 해치라는 것도, 소문을 퍼트리라는 것도 아닌, 단순히 이 작은 아이에게 ‘샤를로테 레이몬드’에 대한 것을 물어보라는 것뿐이었다.

생각보다 쉬운 일에 마음 편히 카렐리아와 단둘이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칼라일이 카렐리아를 혼자 두고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빨리 일을 끝내고 가자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언니는 이름이 뭐에요?”

“으, 응?”

“저는 카렐리아에요. 언니는요?”

맑고 깨끗한 눈동자를 보니 어쩐지 이유 모를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라비란느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아이를 해치라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몇 가지만 물으면 되는 거야.

“나는 메릴리 루아라고 해.”

“메릴리 루아요? 그럼 메릴리 언니구나!”

루아 남작부인은 미리 준비한 사탕을 카렐리아의 입에 넣어주며 무릎을 굽히고 카렐리아와 눈을 마주쳤다. 어쩐지 가슴 한쪽이 욱신거렸다.

“카렐리아, 혹시 샤를로테라고 아니?”

“샤를로테 언니요? 알아요! 엄청 친해요!”

…방금 샤를로테 언니라고 부른 거야? 게다가 친해?

칼라일과 로젤리아의 기사를 봤을 때는 칼라일이 타국 출신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샤를로테를 어떻게 알지? 친하다니? 그러고 보니 샤를로테는 타국 출신이잖아? 어?

“친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가 카렐리아랑 자주 놀아줬어요! 막 같이 뛰어다니기도 하고 낮잠도 잤고요! 그리고, 우응, 또 뭐했지…?”

그 말을 들은 순간 샤를로테가 왜 카렐리아에게 그녀에 대해 물어보라고 했는지 뒤늦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는, 마침내 라비란느와 그놈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샤를로테는, 카렐리아에게 자신을 아는지만 물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루아 남작부인은 하나둘 질문을 늘려갔다. 그리고 카렐리아는 꼬박꼬박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샤를로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

“아! 샤를로테 언니는 황녀에요!”

“응?”

샤를로테가 황녀인 것까지 알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 거지? 샤를로테는 분명 안케도니아 제국 출신이었다. 그렇다면 카렐리아도 안케도니아 제국 출신인가? 칼라일도?

“…샤를로테가 황녀라는 것은 누가 알려줬니?”

제국민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황궁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안는 샤를로테의 출신은 지금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단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아이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 거지? 이상했다. 그리고 루아 남작부인은 그 순간 카렐리아의 눈동자가 기이할 정도로 차갑게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방금 전만 해도 순수하고 맑았는데 지금은 어쩐지 내 속을 꿰뚫어보는 듯했다. 분명 작고 어린 아이인데 아이 같지 않았다.

“샤를로테가 언니라는 것은 칼라일 오빠가 알려줬어요!”

“카, 칼라일님이? 칼라일님이 정확하게 뭐라고 했는데…?”

칼라일이 말해줬다고? 로젤리아가 말한 것도 아니고, 칼라일이?

루아 남작부인은 카렐리아의 어깨를 붙든 채 재촉하듯 말했다. 그러자 카렐리아는 그녀가 쥐어준 사탕을 만지작거리다 입에 넣으며 활짝 웃었다.

“13황녀라고 그랬어요.”

…뭐?

“칼라일 오빠가 샤를로테 언니는 13황녀라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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