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폐하께서 데려온 저 아이들은 누구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메리골드 고아원에서 데려온 아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메리골드 고아원? 어쩐지 단어가 귀에 익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고아원을 아냐, 모르냐가 아니었다. 페르소나가 아이를 데려왔다는 것. 그것 하나였다.
페르소나가 평소에도 개인 사비로 후원을 하고 고아원 후원 제도를 만들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궁으로 데리고 온 적은 몇 번 없었다. 심지어 흙먼지 가득 묻은 아이들을 직접 안아서 데리고 온 적은 더더욱 없었다.
샤를로테는 곧장 황궁 밖으로 나왔다. 자연스럽게, 산책하려 나온 것처럼, 한 손에 양산을 들고 마치 우연인 것처럼.
“폐하.”
샤를로테는 페르소나를 보고 일부러 놀란 척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눈은 이미 그가 데려온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기분 나쁘게도 페르소나와 비슷한 눈동자였다. 누구는 아기의 외향이 페르소나를 닮지 않을까 봐 불안해하는데….
“세상에, 폐하.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어디서 데려오신 겁니까?”
일부러 아이들이 좋아하는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머리에 손이 닿은 순간, 손끝이 살짝 데인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메리골드 고아원에서 데려온 아이들이다.”
“고아원에서요?”
설마 입양했을 리는 없고, 설마 후원인가?
“그래. 이 아이는 페리, 그리고 저 아이는 도트라고 한다. 하지만 곧 그 이름을 지우고, 새 이름을 부여할 생각이다.”
“…폐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황제가 어디 출신인지 모르는 아이에게 직접 이름을 내린다고? 도트라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멈췄다. 단순한 후원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그러지 않는 이상, 어떻게 황제가 고아에게 이름을 내린단 말인가.
그 순간 따끔거리던 통증이 마치 불이 붙은 것 마냥 뜨거워졌다.
예상치 못한 고통에 비틀거리며 손을 뗐다.
이 기운, 어디서 많이 느껴본 적이 있는 기운이었다. 그래, 마력이었다. 백마법사들의 순도 높은 마력, 설마 페르소나가 이 아이들을 데려온 이유가….
“이 아이들, 설마 마법사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알았지?”
“아, 그게…이 아이들의 주변으로 어쩐지 흰 연기 같은 것들이 보입니다.”
마법사라니. 게다가 샤를로테와는 정반대인 백마법의 마력이었다.
샤를로테는 욱신거리는 손을 감싸 쥐고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뭐지? 이 제국에 마법사가 존재했나? 아니지, 마법사가 없을 텐데 어째서 마법사 아이가 둘씩이나! 너무 놀란 탓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 탓에 샤를로테는 페르소나가 자신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만약 정말로 이 아이들이 마법사라면….’
왜 하필 지금 마법사가 나타난 것인지, 뱃속의 아이도 태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라고? 그것도 고아?
페르소나의 눈에서는 페리와 도트에 대한 애정이 꿀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손을 쓰려고 한다면 금방 그에게 들킬 것이다. 그리고 마법사 아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더 각별히 신경 쓸 테고. 그렇다면….
“안녕, 페리. 도트? 만나서 반가워.”
일부러 화사하게 웃으며 몸을 웅크린 채 두 아이와 눈을 맞췄다. 그러자 페리는 반짝거리는 샤를로테의 금빛 눈동자와 눈을 맞추며 쉽게 호감을 드러냈지만, 어쩐지 도트는 겁먹은 듯한 몸짓으로 페르소나의 다리 뒤에 숨었다. 페르소나는 도트가 토끼처럼 오들오들 떨자 다시 안아주었다.
“도트, 이리와….”
게다가 샤를로테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확연히 다른 두 아이의 태도에 샤를로테는 조용히 혀를 찼다. 보아하니 페리는 마력이 많다, 그에 비해 도트는 마력이 현저히 적었지만 그 순도만큼은 높았다. 샤를로테의 몸속에 흐르는 정반대 속성의 마력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누나. 누나 이름은 뭐예요?”
“나는 샤를로테 레이몬드라고 해. 귀엽게 생겼구나.”
페리의 머리를 쓰다듬자 아이의 마력이 크게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주변에 마법사도 없고, 마법사인 것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던 탓에 마력이 제대로 몸에 안착되지 못했다.
‘조금이지만 이 아이의 마력이 내 몸속으로….’
마치 칼라일의 마력석을 먹는 것 같아.
마법사를 데려왔다는 것에 꽤나 불안했는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샤를로테는 뜻밖의 수확에 환하게 웃으며 페리를 자신의 아이마냥 끌어안았다. 페리는 순수한 얼굴로 샤를로테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 아이들은 오늘부터 황궁에 머무는 것인가요?”
“그럴 생각이다. 하지만 마력연구관이 말하길 아이의 마력이 불안정하여 둘을 떼어놓아야 한다더군.”
“그럼 귀빈들이 묵게 하는 궁을 내어줘야겠군요.”
칼라일이 또 쓸데없는 말을 해놨군. 이래서는 함께 있겠다고는 못하겠는데, 그럼 아침마다 찾아가야 하나….
“저, 저는 페리랑 같이 자고 싶어요, 폐하.”
“저는 도트랑 누나랑 다 함께 자고 싶어요!”
페르소나의 어깨에 얼굴을 묻던 도트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하자 페리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난감한 듯 도트의 등을 토닥였다.
“그럼 폐하, 이 두 아이를 제 침실에 머물게 하는 게 어떨까요?”
“황후의 방에?”
“제 침실은 방 두 개가 붙어있는 구조 아닙니까. 벽에는 문이 설치되어 드나들 수도 있고요. 제가 엄마처럼 이 아이들을 돌봐주겠습니다.”
배를 쓰다듬으며 페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모습, 그것을 보여줘야 했다. 실제로 이 아이들이 나에게 애정을 품으면 더더욱 좋고. 페리는 샤를로테와 함께 지낸다는 말에 좋아했지만, 도트는 금방이라도 울듯이 페르소나에게 매달렸다.
원래부터 소심한 성격인 듯하니, 아마도 페르소나의 눈에는 그저 낯선 환경에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샤를로테는 페리를 내려놓고 조그마한 손을 꼬옥 잡았다. 황실의 후원을 받는 고아원의 아이. 또래에 비해 작은 체구에, 적당히 마른 체형. 그리고 연한 초록빛의 눈동자.
“응?”
하지만 햇살을 받으니 그 초록빛 눈동자가 약간 노란빛을 띄웠다. 이렇게 두 색이 섞일 수도 있구나. 특이한 눈동자네. 어쩐지 가까이서 보면 금색으로 빛나는 것 같기도….
‘샤를로테 누나!’
그 순간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샤를로테는 오래 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어린 남자아이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에 이마를 짚었다.
왜 갑자기 그 애가 떠오르지? 샤를로테의 시선이 다시 페리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본 그 아이의 체구가 딱 이 정도였다. 외형은 전혀 닮지는 않았지만, 이 아이의 눈 때문에 그런가. 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자 억지로 잊고 살았던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왜 루치아노에 대한 기억이….’
샤를로테는 페리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가 조심스레 놓았다.
“황후, 왜 그러지?”
“…배가 조금 아픈 듯합니다.”
배가? 페르소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샤를로테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먼저 돌아가겠다며 황궁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 걸음씩 내딛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쓸데없는 것을 기억해내고 말았다. 계속 잊었다면 좋았을 것을.
루치아노가 떠오르자 안케도니아 제국에 있었던 다른 일들도 함께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샤를로테는 복도를 걷다 말고 숨이 가빠와 복도 벽면을 짚고 숨을 골랐다.
어쩐지 정말로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드디어 마법사를 찾았다. 그것도 어린아이로, 두 명씩이나. 9대 황제 이후로 처음 발견한 마법사였다. 마법 연구를 시작한 이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법사를 찾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귀족 평민. 심지어 노예까지 가리지 않고 마력이 있는지, 마법적 재능이 있는지 검사하고 또 검사했다. 기술적 문제였는지, 아니면 그때는 정말 마법사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희망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마법사를 찾기 위한 테스트는 거의 완성된 상태였고, 벌써 두 명이나 나온 것을 보면, 어딘가에 본인이 마법사인 것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페리와 도트가 마법사인 것을 알고 황궁으로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그 두 아이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본 순간 거의 무의식적으로 로젤리아를 돌아보았다. 로젤리아도 기뻐하는 듯 보였지만….
“팔은 괜찮아?”
“응, 쓸린 것뿐이야, 신경 쓰지 마.”
다정히 칼라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 순간 피가 거꾸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이름을 부르며 대화하는 것도 모자라, 존칭도 없이 편하게 말을 나누고 있었다.
왜 네가 거기에 있냐고 묻고 싶었다. 너는 내 옆에 있어야지. 마법사를 찾은 이 기쁘고 영광스러운 순간에 내 옆에 있어야지. 나와 함께 기뻐하며, 화사하게 웃어보여야 하는데….
그러나 너는 칼라일이 다른 마법사가 있는지 확인하러 가는 순간마저 내가 아닌 칼라일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 순간 신문에서 보았던 기사가 떠올랐다. 샤를로테와의 결혼식을 발표하고 며칠 뒤 기사가 나왔다. 로젤리아와 칼라일이 정식적인 연인 관계임을 발표하는 기사였다.
일부러 발견하지도 못하게 백작의 작위를 수여한다는 것을 구석 쪽에 써놓았는데, 기어코 그것을 발견했구나. 그와 동시에 가슴 안쪽이 욱신거렸다. 화를 동반한 통증이었다. 로젤리아도 이럴까 싶었다. 샤를로테와 결혼한다는 기사를 보았겠지. 화가 났을까, 아니면 아팠을까. 괴로웠을까.
그러나 로젤리아는 내가 낀 결혼바지를 보았음에도 나와 샤를로테에게 부부의 축복이 내리기를 바랐다.
차라리 저주를 하면 모를까. 잘 살지 말라고, 비참하게 끝나버리라고 말하면 좋았을 텐데. 잘 살라니. 내가 샤를로테와 잘 살았으면 좋겠어? 행복하게? 아니야, 내가 샤를로테와 결혼을 한 것은 건국제 때문이었고, 샤를로테에게 든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어.
‘내가 정말로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하지만 내 말은 로젤리아에게 닿지 못했다. 칼라일은 곧바로 로젤리아의 눈을 가려버렸다. 하지만 로젤리아라면 분명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았을 것이다. 이윽고 나 또한 알 수 있었다.
내가 아직 로젤리아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칼라일이 로젤리아를 데리고 가버리는 데도 내 손은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페리와 도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 툭하고 내뱉은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그런데 폐하, 황후 폐하는 어디 계세요?”
황후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 황후 폐하와 함께 돌아가셨잖아요!”
그래, 함께 돌아갔지. 이제는 돌아가지 못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한 말일수록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황궁에 도착하는 순간에도 나는 페리와 도트의 말에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나는 왜 로젤리아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