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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폐하의 이혼사유-82화 (82/170)

#82화, 페르소나가 데려온 아이들

루아 남작부인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이른 아침부터 하녀들을 시켜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의 품속에는 샤를로테가 구해다 준 독약 병이 쥐어져 있었다.

며칠 전, 샤를로테는 루아 남작부인에게 켈빈 부인을 죽일 수 있는 극독을 구해다 주었다. 병 안에 든 사탕같은 알약은 샤를로테의 머리카락처럼 백색이었다.

‘즉사시킬 정도로 강한 독이지만 독처럼 보이지는 않지. 물에 닿자마자 녹을 터이니. 음식에 섞어주든, 약인 척 건네주든 네 마음대로 하거라.’

본인 입으로 ‘즉사할 정도로 강한 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샤를로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에 있는 과일과 디저트들을 입에 넣으며 한가로운 티타임을 즐겼다.

독약 병을 받은 순간부터 남작 부인은 마치 그 독을 먹기라도 한 사람처럼 안색이 나빠지고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딸을 위해서라지만, 아무리 친구보다는 제 자식들이 더 중요하다지만 이것을 어떻게 먹일까.

만약 무거운 죄를 지었다면 조금이나마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켈빈 부인은 하나뿐인 동생을 위해서 그런 일을 벌인 것이었다. 그게 과연 죽을죄라 할 수 있을까….

결국 루아 남작부인은, 그날 독을 먹이지 못한 채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샤를로테의 시선을 피해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한숨도 자지 못한 채 황궁 감옥으로 왔다.

샤를로테의 악행을 눈앞에서 지켜본 그녀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독을 먹이지 못하면 켈빈 부인처럼 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어떻게 해서든 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켈빈 부인을 죽여야만 한다는 잔혹한 결심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감옥 앞에 도착한 순간, 루아 남작부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헛숨을 삼켜야 했다.

켈빈 부인이 자살했다. 독을 마시고, 자살했단다.

그럴 리가 없었다.

샤를로테가 준 독이 아직 품속에 있었다.

그런데 왜, 어떻게? 누가 그런 거지? 누가 켈빈 부인에게 독을 준 것일까? 공포와 불안함이 뒤섞인 어두운 기운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혹시나 그날 저택으로 돌아 가버려서, 나에게 실망을 했나? 그래서 나를 내치고 다른 시녀에게 부탁을 했나?

루아 남작 부인은 곧장 샤를로테의 집무실로 뛰어갔다.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야 했다. 어떤 변명이라도 만들어내서 샤를로테에게 빌 생각이었다. 황궁 복도를 가로지르는 내내 여러 이름들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델라, 부아르, 로먼, 켄틀라, 후젠.

전부 샤를로테의 심기를 거슬린 후 황궁에서 쫓겨난 시녀들….

그 이름 옆에 ‘루아’가 추가 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더 말도 안 되는 일이 집무실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루아 남작부인. 그대는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이군요.”

샤를로테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고급스런 드레스와 보석이 가득 담긴 케이스, 그리고 이름다운 구두가 놓여있었다. 하지만 루아 남작부인의 눈에는 그런 것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샤를로테가 한 말만이 귓속을 맴맴 돌고 있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오랫동안 황궁 시녀 일을 해온 루아 남작부인은 곧바로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켈빈 부인에게 독을 먹였다고 생각 하는구나’

그 순간 루아 남작부인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켈빈 부인은 타살인지 자실인지 모른다. 독을 먹이지 않았다.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일 텐데, 샤를로테는 그녀가 일이라고 믿고 있다.

…말해야 했다. 만약 켈빈 부인이 타살이라면, 황궁 내부의 누군가가 살인을 저지른 셈이 되는 거니까. 그 대신 기껏 얻은 샤를로테에게 신용을 잃겠지. 어떡해야 하는 거지?

하지만 남작부인은 곧이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샤를로테는 그 비싼 드레스와 보석, 구두를 루아 남작 부인에게 건넸다.

“보아하니 첫째 딸이 무척 예쁘던데, 외모에 비해 드레스가 너무 수수하더구나.”

“…네?”

“한 번에 딸들 모두를 주선해 줄 수 없으니, 급한 대로 첫째부터 백작 가의 영식과 연결시켜주도록 하겠다.”

백작가의 영식. 드레스를 받아든 손이 덜덜 떨렸다.

“내일 재무 관리의 아들이 황궁에 올 거야. 그의 아들이 천재거든. 그러니 루아 남작부인도…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심지어 재무 관리의 아들.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그 천재…!

이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딸을 결혼시키면 그만이었는데 샤를로테는 결코 뿌리칠 수 없는 것들을 켈빈 부인을 죽인 대가로 주고 있었다. 사실 죽인 사람이 따로 있었지만, 루아 남작 부인은 도저히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뻔뻔하게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있는 힘을 모아 입꼬리를 끌어올릴 뿐이었다.

그렇게 침묵한 상태로 또다시 밤을 새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독을 먹고 발작을 일으키는 켈빈 부인이 나왔다.

‘왜 그랬어? 네가 그런 게 아니잖아…나를 죽인 사람이, 황궁에 있어, 버젓이 돌아다닌다고!’

‘아니, 아니야. 너를 죽인 것은 나야, 나여야 해…!’

‘어떻게 네가 나를 배신해, 어떻게 네가! 아아아! 아아아악!’

피를 뚝뚝 흘리며 켈빈 부인은 끔찍한 몰골로 달려들었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식은땀을 닦아내며, 루아 남작부인은 처음으로 악한 샤를로테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나도 차라리 저렇게 나빴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암살 사주까지 시킬 정도로 악할 수 있다면….

하지만 본성은 바꾸지 못했다. 소중한 친구의 목숨을 대가로 결혼시킨다 한들, 사랑스러운 딸들의 결혼식에서 환하게 웃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루아 남작부인은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옷을 입고 황궁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환하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딸을 본다면 이 마음이 흔들릴까 봐.

저택을 나가려던 찰나, 집사가 막내딸의 이름이 적힌 선물 상자를 안고 오지만 않았다면, 상자에서 흐릿한 피비린내만 느껴지지 않았다면….

“꺄 악!”

불길한 마음에 집사를 시켜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갈기갈기 찢겨진 막내딸 라비란느의 초상화와 죽은 쥐가 가득 들어있었다. 집사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루아 남작부인은 칼로 난도질 당한 라비란느의 초상화를 보며 입을 막았다.

라비란느을 좋다며 쫓아다니던 그 후작가의 영식, 그 놈의 짓이 분명했다. 하다하다 이제 죽은 쥐까지 보내왔다. 저번에는 사람을 시켜 딸을 납치하려고도 했었다.

그 소란을 듣고 라비란느와 시종들이 내려왔다. 라비란느는 자신의 찢어진 초상화와 쥐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엉엉 울며 주저앉은 막내딸을 달래주려 손을 뻗은 순간 꿈속에서 본 켈빈 부인이 떠올랐다.

눈을 비비며 눈앞에 있는 대상을 다시 확인했다. 켈빈 부인이 아니었다. 라비란느였다. 그녀가 보일 리 없었다. 그녀는 이미 죽었으니까….

루아 남작 부인은 그대로 라비란느를 끌어안으며 애써 울음을 참았다.

딸을 지킬 힘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후작 가의 영식이었다. 겨우 남작 가인 자신들은 후작 가에 대응할 힘이 없었다. 그 순간 품속에 있던 독약 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을 구르는 병을 보며, 루아 남작부인은 샤를로테를 떠올렸다.

‘…샤를로테라면.’

지금의 샤를로테라면, 라비란느를 괴롭히는 그 망할 놈에게 죄를 붙여 감옥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황후니까. 그리고 자신은 그런 황후에게 신용을 얻은 상태였다.

켈빈 부인을 다른 사람이 죽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본인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

라비란느를 끌어안은 루아 남작부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

“지금쯤이면 난리가 났겠지?”

샤를로테의 손에는 고급 실크가 들려있었다. 그 실크 위에는 새하얀 백합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 백합은 샤를로테의 머리카락처럼 은은한 색이었다.

‘몰래 죽은 쥐를 구하느라 고생하기는 했지만…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차라리 앓아눕는다면 더 좋을 텐데. 죽은 쥐와 사랑하는 딸의 초상화가 갈기갈기 찢겨져 있을 테니. 가위로 실을 자른 샤를로테는 천을 들어 올리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이에게 직접 모자를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자신을 닮는다면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아기가 되고, 페르소나를 닮는다면 분명 출중한 외모를 가진 채 자라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샤를로테는 정보 길드에서 보내온 루아 남작부인의 막내딸, 라비란느 루아에 관한 정보를 훑으며 자수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세 명의 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라비란느 루아. 정부만 열다섯을 둔 리버티 후작가 영식이 짝사랑하는 상대. 하지만 그 사랑은 비뚤어졌고, 라비라느는 그를 너무나도 경멸한다…. 하지만 남작가의 여식인 만큼 뿌리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상태.

그럼에도 어떻게든 그 놈을 치우고 싶어 안달이 났겠지. 신분은 겨우 남작에, 연줄 하나 없는 상태에서 의지할 사람은, 나밖에 없겠지. 그리고 부탁을 받아주는 대신, 또 다른 손을 더럽힐 일을 시킬 생각이었다.

샤를로테는 쿡쿡 웃으며 접시 위에 올려놓은 쿠키를 집어 입 속으로 넣었다.

이렇게 좋은 패가 어디에 있을까. 켈빈 부인도 처리하고, 쓸데없이 선량하면서도 자식을 위해 모든지 하는 루아 남작부인을 제 발 밑에 묶어놓기에 성공했으니까.

백합 자수가 완성되었다. 샤를로테는 기지개를 피며 창틀 위에 앉아있는 작은 새에게 다가갔다. 황궁 화단에는 새가 많았다. 이렇게 종종 새들이 쉬다가는 경우도 흔했다. 하지만 이렇게 예쁜 새는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하얀 털에 호박같이 노란 눈동자를 가진 새는 처음 보았다.

자신과 꼭 닮은 새를 보며 샤를로테는 미소 지었다. 새의 부리를 천천히 쓰다듬던 샤를로테는 창가 쪽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자신의 손등 위에서 가볍게 몸을 흔드는 새를 보며 샤를로테는 환하게 웃었다.

“새야, 일이 점점 잘 풀리는 것 같아. 그렇게 꼴 보기 싫던 켈빈 부인도 없애는데 성공했고, 내 말이라면 무조건 들을 사람도 생겼어….”

머리 위로 내리쬐는 해살에 샤를로테는 졸린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새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손등에 알 수 없는 새의 털처럼 새하얀 가루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어?”

그런데 어쩐지 새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희미한 마력이 느껴졌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모를 아주 희미한 마력. 뭐지 싶던 찰나, 마력의 기운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력이 거의 없는 샤를로테가 느낄 정도로 순도 높은 마력.

칼라일인가 싶어 창밖으로 몸을 빼던 순간, 두 눈에 의심스런 광경이 펼쳐졌다.

“앞에 돌이 있으니 조심해서 걷도록 해라. 가장 좋은 궁에, 좋은 옷들을 입혀주겠다. 가자마자 먼저 씻고, 맛있는 음식들을 가져다주마.”

페르소나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것도 마력의 기운이 느껴지는 아이들을, 두 명씩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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