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후폐하의 이혼사유-81화 (81/170)

#81화, 두 명의 마법사 아이

자그마치 두 명, 그것도 5살 남짓해 보이는 이 아이들은 마법사의 재질을 타고났다. 그것도 선천적으로 마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페르소나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옷에 흙먼지가 묻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얼떨결에 안긴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으며 페르소나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한참을 아이들을 끌어안던 페르소나는 아이들의 뺨을 쓰다듬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저는 페리고, 얘는 도트에요!”

초록빛 눈동자를 깜빡이는 둘은 다른 외모였지만 눈동자 색만큼은 똑같았다. 그리고 그 눈동자색은 페르소나와도 무척 흡사했다. 페르소나는 좀 더 진한 녹색이었지만 햇살 아래에서는 에메랄드 보석처럼 투명하고 빛났다.

“그 이름은 누가 지어준 것이냐.”

“이름이 없어서, 저희 둘이 이렇게 지었어요!”

페르소나를 따라온 호위기사들과 교사들이 바닥에 앉은 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를 보며 안절부절 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르소나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오히려 소매로 아이들의 뺨을 닦아주며 안아들었다.

“황궁으로 돌아가겠다.”

“폐하, 그 아이들은….”

“황궁으로 데려가겠다.”

“버려진 아이입니다, 어찌 황궁에 데려가겠다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희도 듣지 않았느냐, 마법사 아이다. 선천적인 마력이 있는, 이 제국을 이끌어나갈 희망과도 같은 아이인 것을.”

난데없이 아이들을 데려가겠다고 하자 비서는 이마를 짚으며 안된다고 극구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르소나는 이미 페리와 도트를 돌봐준 교사들에게 페리와 도트에 대한 개인 후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 각하! 연구관님!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폐하께 말씀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죽하면 나와 칼라일에게 부탁할 정도로 비서는 단호한 페르소나의 모습에 정말로 난감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마법사 아이라고 하니 페르소나도 제대로 된 현실 파악을 하지 못하는 듯싶었다. 8대 황제에서 끊긴 마법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니까, 그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말려야 할 것은 말려야 했다.

“폐하, 페리와 도트에 대한 개인 후원은 좋은 취지라고 봅니다. 하지만 일단 자세한 경위를 마력연구관에게 듣고, 결정하도록 하세요.”

“자세한 경위라니?”

내가 칼라일에게 눈짓을 하자 칼라일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며 아이들의 조그마한 손을 잡았다.

“폐하, 잠시 아이들을 바닥에 내려놓아 주시겠습니까?”

페르소나가 페리와 도트를 내려놓자 칼라일은 둘의 손에 손끝으로 무언가 그리기 시작했다. 비서가 다가와 저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칼라일이 아이들의 손에 그리는 것은… 마법진이었다.

“자, 내가 그려준 것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칼라일이 페리와 도트에게 무어라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모았다. 그러자 페리의 몸이 약간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도트도 페리만큼은 아니지만, 땅에서 한 뼘 정도 떠올랐다.

“폐하, 페리는 도트보다 훨씬 마력이 많습니다. 데려가셔서 연구에 참여하게 해주시는 것은 좋은 방안이기도 합니다만 마력의 흐름이 잡히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 마력이 잡아먹히기도 합니다.”

“마력이 잡아먹힌다고?”

“즉, 페리의 마력이 도트의 마력을 모두 흡수해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지요. 그러니 데려가실 것이라면 적어도 두 개의 방에, 며칠 정도는 멀리 떨어트려서 각각의 마력이 몸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럼 귀빈들이 머물게 하는 궁을 내어주겠다.”

칼라일은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고 비서는 이마를 짚다 못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이 상황에서 페리와 도트는 칼라일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마법을 썼다는 것 자체가 좋은지 서로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날아다녔다. 페리는 도트의 손을 잡고 하늘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페리가 손을 놓아버린 탓에 도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트!”

아이들이 떨어질까 살짝 팔을 벌려 살피던 나는 도트가 떨어지려는 순간 팔을 뻗어 안았다.

“로젤리아!”

“대공!”

도트를 받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대로 넘어진 탓에 드레스가 찢어졌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도트가 보였다.

“로젤리아, 괜찮아?”

곧바로 내 곁으로 온 칼라일에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도트를 일으켜주었다.

“페르!”

“도트으…내가 미아내….”

도트의 손을 놓친 페르는 얼른 하늘에서 내려왔다. 도트도 하늘을 나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금방이라도 굵은 눈물을 떨어트리려 했다. 나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페르의 눈가를 꾹꾹 눌러주었다.

“너희는 마법사이니, 언제나 조심해서 마법을 사용해야 한단다. 이렇게 다치는 사람이 생길 수 있고. 알겠지?”

피가 손목을 타고 팔꿈치까지 흘렀다. 생각보다 많이 찢어진 것인지 통증은 심해졌지만 치료하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페리와 도트를 진정시키는 게 중요했다. 도트는 울먹거리면서 페리에게 가려다가 크게 휘청거렸다.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도트의 발목이 부어있었다.

“폐하, 가자마자 궁의에게 먼저 보여야 할 듯싶습니다.”

기사들은 페르소나의 지시에 따라 페리와 도트를 마차에 먼저 태웠다. 그사이 후원 물품을 모두 나눠주었는지, 교사들이 페르소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게 보였다. 페르소나는 미소로 화답하다가 건물 안에서 뛰어나오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더 있나? 못 보던 아이들도 있는 것 같은데.”

“네, 최근에 버려지는 아이의 수가 급증하는 바람에….”

“……후원물품을 추가로 늘리고, 마력연구관은 혹시 모르니 페리와 도트같은 아이들이 더 있는지 살펴보라.”

칼라일은 인상을 찌푸린 채 손수건으로 내 상처를 누르다가 페르소나의 지시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금방 올게요. 마법으로 치료해줄 테니까, 여기 있어요.”

단순히 페르소나의 지시를 받는 게 싫었던 것인지, 칼라일은 자신의 다리에 매달린 아이들을 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카렐리아를 돌볼 때도 그랬지만,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네. 고아원 아이들은 칼라일의 길고 옅은 머리카락이 신기한지 아기 오리처럼 칼라일을 우르르 따라갔다. 순식간에 주변을 둘러싼 아이들을 보며 당황한 칼라일은 당황한 나머지 그대로 얼어붙었다.

“자, 잠깐만. 한 명씩 안아줄 테니까….”

한 명씩 들어서 살펴볼 생각인지 한 명을 안아 올리자 다른 아이들도 안아달라며 팔을 뻗었다.

“대공.”

소리없이 다가온 페르소나가 나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칼라일의 손수건을 들어보이자 그는 인상을 쓰며 수건을 펼쳐 내 팔에 묶었다. 페르소나의 앞이라 치유 마법도 쓰지 못했다. 하는 수없이 페르소나가 상처를 압박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오늘은 그대의 공이 정말 컸다.”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마력연구관의 공이 가장 크지요. 그 말은 연구관에게 해주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페르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칼라일에게는 칭찬해주기 싫은 듯 보였다. 그때 페르소나의 손이 멈췄다. 내 시선도 한 곳에서 멈췄다. 정확히는 그의 약지 손가락에.

화려한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의 손가락에 에메랄드와 다이아로 장식된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샤를로테가 선물 했겠지. 일부러 반지에서 시선을 멀리 떨어트리자, 페르소나는 손으로 천천히 반지를 가렸다.

“아….”

마치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보여준 사람처럼 반지를 가렸다. 이제와서 왜 저러나 싶었다. 미안함, 죄책감? 정부를 들인 것은 괜찮지만 정부와 함께 나눠 낀 반지를 보여주는 것은 미안하다 이건가.

아, 혹시 저거, 결혼반지인가? 문득 페르소나와 샤를로테가 결혼한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나는 축하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뒤늦게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드디어 황후 폐하와 결혼식을 치른다지요. 제국 최초의 마법사 황후가 탄생되는 영광스러운 순간이겠군요.”

“!”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 부부의 축복이 내려지기를.”

축하해주기는 싫다. 불행하게 살라고 하고 싶었다. 부부의 축복같은 거, 절대 빌어주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황제고, 나는 대공이니까. 황제와 황후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것 또한 귀족의 임무이고…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 표정 없이 그저 나에게로 손을 뻗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뭐가 되었든 그 말에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대할 마음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페르소나의 손끝이 내 뺨에 아주 잠시 닿았다. 뒤에서 칼라일이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그가 내 뺨을 쓰다듬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내가 손을 쳐냈거나.

“마법사 아이는 페리와 도트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이만 돌아가도 될까요. 폐하.”

칼라일은 억지로 화를 참는 듯 보였다. 그가 잡은 팔이 욱신거렸다. 나는 몸을 돌려 칼라일 쪽으로 돌려 그를 진정시키고자 노력했다. 미처 칼라일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연인이 전남편과 대화하는 것을 본 것인데. 게다가 칼라일은 페르소나를 꽤 싫어했으니까.

칼라일은 내가 그의 뺨을 쓸어주는 것을 좋아하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진정시키려고 했다. 페르소나가 내 팔을 잡지만 않았다면.

“로젤리아.”

“!”

“아니야,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샤를로테가 아니라….”

그러나 페르소나는 말을 미처 잇지 못했다. 이번에는 내가 그의 팔을 뿌리쳤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한 것도 있었고,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칼라일의 손을 잡고 타고 온 마차로 돌아갔다. 비서와 호위기사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행이다, 아무도 듣지 못해 다행이야. 비참함으로 일그러진 내 얼굴을 아무도 보지 못해서….

“로젤리아.”

“….”

“로젤리아, 나를 봐. 응? 로젤리아.”

마차에 올라타고 문이 닫히자마자 칼라일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내 얼굴이 얼마나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을지,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치욕스럽고, 비참했다.

“…칼라일, 너도 들었지. 페르소나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로젤리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어떻게, 어떻게 끝까지, 나한테 이래?”

샤를로테와 함께 하고 싶지 않다. 그럼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데?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착각이 아닌 것 같았다. 왜 내 팔을 잡고, 그렇게 말했지? 잘 불러주지 않던 이름을 왜 부른 거야. 왜 나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보았지?

“뒤늦게 나를 사랑한다는 거야?”

“로젤리아.”

“샤를로테를 데려와서, 그렇게 처참한 기분을 느끼게 했으면서….”

“로젤리아!”

“페르소나가 샤를로테만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내 아기가 죽을 일도 없었을 텐데….”

내가 원할 때는 돌아 봐주지 않았잖아, 도대체 왜? 눈가가 뜨거워졌다. 눈가가 뜨거워지다 못해 아파왔다.

나를 바라보던 페르소나의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비참했다. 차라리 평생 모르고 살면 좋았을 그런 모습이었다.

칼라일이 내 눈가에 입을 맞췄다. 내 손을 감싸듯 꼭 잡아주고는 나와 이마를 맞댔다. 그도 울고 싶은 듯 보였다.

“도와주지 말 걸 그랬어.”

“….”

“네가 제국을 사랑하니까. 이혼한 것과 별개로 네가 아끼던 레이몬드 제국이니까 그래서 도와준 거야. 하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그냥, 돌아올 걸. 네가 보고싶어하는 아이들만 보고, 바로 돌아올 걸. 그럼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텐데.”

그가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미안해야 할 사람은 칼라일이 아니라 페르소나였다.

“내가 미안해.”

페르소나야말로 다시 나를 사랑해야 할 게 아니라, 미안하다고 해야 했다.

“다 내 탓이야. 내가 미안해, 울지 마. 로젤리아.”

네 탓이 아닌데도 자꾸만 자신의 탓이라 말하는 칼라일을 보자 복잡하게 뒤엉키던 머릿속이 가라앉았다. 점차 이성이 돌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네 탓이 아니야.”

“!”

“네 탓이 아니라, 페르소나의 탓이야. 다시 나와 함께 하고 싶다는 그가 잘못한 거야.”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칼라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는 겉옷을 벗어 내 어깨에 걸쳐주려 했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의 겉옷을 옆에 두고는 처음으로 먼저 그의 품에 안겼다. 싱그러운 풀냄새가 기분을 점차 나아지게 했다.

“칼라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금껏 생각해본 적 없는 만약의 상황이 자꾸만 눈앞으로 펼쳐지려 했다.

“너는…그러면 안 돼.”

“…응?”

“너만큼은 나를 떠나면 안 돼. 칼라일.”

일부러 느리게 말을 이었다. 그의 품에 몸을 맡긴 채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 이런 말을 하는 건 부끄러웠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칼라일?”

그에게서 몸을 살짝 뗀 순간 칼라일이 다시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놀라서 그의 이름을 재차 부르자 겨우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겠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게 달아오른 칼라일의 얼굴이 보였다. 칼라일은 열기로 가득 찬 눈을 살짝 내리깔며 달뜬 숨과 함께 깊은 진심을 말했다.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니 차라리 눈을 가려버릴 거야. 그럼 너만을 사랑하겠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고는 나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가슴 속 단단한 응어리와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네가 불안하지 않도록, 좀 더 노력할게, 사랑해 로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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