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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폐하의 이혼사유-69화 (69/170)

#69화, 굳이 그걸 증명해야 합니까.

마력연구관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염려했던 것은 칼라일이 샤를로테와 마주치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아무래도 그의 부모님을 죽게 만든 원인이었으니까.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책임을 회피하는 건가요? 그리고 내가 마법사라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나는 말없이 칼라일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하지만 칼라일은 괜찮다는 듯 내 손을 감싸 쥐며 샤를로테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게 아닙니다. 대처를 하지 못한 제 잘못도 있지만, 폐하의 말씀에 모순이 있어서요.”

“내 말이 무슨 모순이 있죠?”

“마수는 순전히 마력만을 노리는 괴물입니다. 마법사는 마수를 감지할 수 있지만 감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죠. 특히 오늘 연구소로 들어온 마수는 대부분의 마법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마수입니다. 폐하도 마법사시니까 잘 아시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지…잘 모르겠습니다.”

칼라일이 다시 한 번 샤를로테가 마법사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건 마법사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일 텐데 말이죠. 폐하의 말씀대로라면 오랜 기간 마력석에 노출된 마력연구원의 탓도 있네요. 연구원들의 몸에 흡수된 마력들을 모두 모아보자면, 대충 마법사 한명의 마력이 나오니까요. 마수들이 충분히 노릴 만한 양이죠.”

“….”

“황후 폐하께서도 마법사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이상해서요.”

“…나는 마법사가 아닙니다.”

샤를로테는 더 이상 마수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거듭 마법사가 아니라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꽤나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샤를로테에게 당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사람들 많은 곳에서 말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네? 마법사가 아니시라니.”

칼라일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루치아노가 말하는 예의상의 미소가 저런 것이었나. 그 와중에 샤를로테는 이내 침착하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칼라일을 보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마법사이십니다. 몰랐던 것입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시는 겁니까?”

칼라일이 샤를로테가 마법사라고 단호하게 말하자 다른 마력연구원들의 시선이 샤를로테에게로 모였다. 마력연구관이 직접 황후가 마법사라고 하고, 그 와중에 샤를로테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부정하니까 다들 궁금한 모양이었다.

“황후는 마법사가 아니다.”

그때 칼라일과 샤를로테의 대화를 중재하면서 페르소나가 나섰다.

“황후가 마법사였다면 진즉에 나와 연구원들에게 말해줬겠지.”

“그럼 전자겠네요. 황후 폐하는 마법사이고, 그 사실을 모르셨나봅니다. 그래서 마수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계셨군요. 이런, 제가 실수를 했네요. 저는 폐하께서 본인이 마법사라는 것을 알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황후가 마법사라는 것을 증명할 방도가 있나?”

그 순간 칼라일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을 굳이 증명해야 합니까?”

“?”

“제가 마법사인데 그 정도도 모르겠습니까. 폐하.”

경쾌할 정도로 가벼운 대답에 페르소나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마법사는 마법사를 못 알아볼 리 없잖아? 딱 그런 뜻이었다. 칼라일은 인상을 찌푸린 페르소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샤를로테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샤를로테는 마치 칼라일이 자신을 검이라도 위협하는 것 마냥 그가 내민 손을 보고는 미세하게 떨었다.

“황후 폐하. 폐하의 몸에는 희미하지만 마력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폐하의 몸 속에 있는 마력을 실체화 시킬 생각인데, 협조해주시겠습니까?”

안색이 창백했다. 배를 감싸 쥔 샤를로테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칼라일이 샤를로테가 마법사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눈은 순식간에 공포에 질렸다.

그러고보니, 샤를로테는 왜 진즉에 마법사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지? 페르소나는 마법 연구에 관한 일이면 샤를로테와의 약속도 저버릴 정도로 마법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그때 연구소의 잔해를 치우던 사람들과 연구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황후 폐하께서 정말 마법사시라면 잘된 일 아니야?”

“그러니까, 그럼 연구를 도와줄 마법사가 두 명이나 생기나?”

“하지만 황후 폐하는 전혀 모르셨나본데…연구에 도움이 될까?”

“에이, 마력연구과님께서 도와주시겠지! 어쨌든 우리한테는 잘된 일 아니야?”

칼라일은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분위기만 보자면 샤를로테에게 좋은 이미지만 심어주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정부 출신의 황후. 업무도 제대로 못하는 황후. 하지만 마법사. 전례 없는 레이몬드 제국의 마법사 황후.

이러면 샤를로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순식간에 사라질 텐데. 칼라일이 그것을 모를 리도 없고. 뭐지?

“…샤를로테가 정말 마법사라면 제국의 발전의 큰 도움이 되겠군.”

“그렇죠. 크나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샤를로테는 지금 임신한 몸, 마법사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절차는 출산 후 몸이 다 회복된 뒤에 했으면 하는데.”

샤를로테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페르소나는 샤를로테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표정은 좋지 않았다. 샤를로테가 마법사이면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일 텐데.

“강요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마력연구관으로서 마법 연구 발전에 대해 제안을 해드린 것뿐이니까요.”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네.”

“네, 그리고 연구소 복구는 오늘 안에 끝내놓도록 하겠습니다. 마수에 대한 경비 강화에 대한 기획안도 빠른 시일 내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칼라일이 부서진 벽을 향해 손을 뻗자 바닥에 흩어져 있던 잔해들이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다시 복구되기 시작했다. 자잘한 금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망가졌던 연구품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페르소나는 해쓱해진 샤를로테를 데리고 연구소를 빠져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수군거리는 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나 마수에 대한 이야기와 마수의 출현을 막지 못한 칼라일의 이야기는 잊혀졌다. 남은 것은 샤를로테가 마법사라는 것과 칼라일의 화려한 마법 이야기뿐이었다.

시끄러운 소리 속, 칼라일이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잡아왔다.

“아까 마수 제압할 때 너무 멋있었어요, 로젤리아님.”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칼라일의 표정이 너무 환했다. 나는 말없이 칼라일의 손을 쓰다듬었다.

***

페르소나에게 보고서를 전달하러 온 김에 칼라일도 보고 갈 생각이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이렇게 일이 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샤를로테가 마법사라는 말이 순식간에 퍼졌다. 그리고 마수의 출현으로 사람들의 의견이 갈렸다.

마수의 출현은 앞날을 위한 좋은 징조다, 아니다 마수의 공격 위험에 노출되는 환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나를 호위하러 온 기사들도 그 이야기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대화 소리를 들으며 소문이라는 게 참 빨리도 퍼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마차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쉬고 있는데 마차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칼라일이었다.

칼라일은 옷매무새가 다 흐트러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마차에서 기다리겠다고 해서 그런가?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빠르게 마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문을 닫자마자 나를 끌어안았다.

“미안해요.”

“?”

“그대를 난처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난처하게 만들어? 칼라일이? 그가, 나를?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정말 미안해요.”

그 순간 칼라일이 무엇을 말하는 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연구소를 나와 마차까지 가는 내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뜨거웠다. 샤를로테가 마법사라는 소문도 마수의 이야기와 함께 퍼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샤를로테가 마법사라는 소리를 듣고는 내 눈치를 보았다. 그 이유가 대충 예상이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남편과 바람난 여자가 제국 최초의 마법사 황후가 된 셈이니까. 그것 때문에 이러나…나는 말없이 칼라일의 등을 토닥였다.

“칼라일. 나는 괜찮아요. 혹시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들어서 그런 가요?”

칼라일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내가 소문에 예민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때마다 두통에 시달린다는 것도. 나는 칼라일을 자리에 앉혔다. 칼라일은 정말로 미안한 표정이었다.

“원래는 샤를로테만 곤경에 처하게 만들려 했는데….”

“나는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약하죠.”

곤경이라, 역시 일부러 그런 거구나.

“샤를로테가 마법사라는 것을 밝힌 것은…일부러 그런 것이죠?”

“…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샤를로테에게 좋은 이미지로 자리 잡는 게 아닌가요?”

“그렇겠죠. 하지만 샤를로테가 마법 연구에 도움을 주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그녀에 대한 평은 점점 추락하게 될 거에요.”

연구를 돕는 순간부터 샤를로테의 평이 추락 한다 라….

칼라일의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곰곰이 생각하는데 칼라일이 잠시 내 눈치를 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마력연구소는 황실에서 지원하는 것에 비해…많이 부족했습니다.”

마력연구소의 안 좋은 평을 하는데 왜 내 눈치를 보지? 내가 전 황후여서 그러나? 나는 일부로 미소를 띠며 계속 말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많이, 모자랐습니다. 아, 물론 제가 그 부족한 부분을 거의 다 채워놓았습니다. 밤을 새가면서 일한 보람이 있더라고요.”

바르셀민 백작이 칼라일에 대해 칭찬하기는 했다. 중간에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 연구의 대부분을 칼라일이 끝냈다고. 그리고 새로운 연구에 대한 기획과 그 연구에서 발생될 수 있는 제국민들의 복지 정책에 대한 발상이 몹시도 뛰어났다고. 침까지 튀겨가면서 말했지.

“연구원들의 열정은 뛰어났고, 제가 그 열정에 보답을 했습니다. 몇몇 이들은 몇 년간 풀리지 않는 연구가 해결되자 눈물을 흘릴 정도였죠. 그러니 샤를로테에게 그들이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클까요.”

“!”

“그것도 샤를로테는 현재 황후인데 말이죠.”

그래, 샤를로테는 황후였다. 황후니까 거는 기대는 당연히 크겠지. 칼라일이 타국 출신의 마법사라면서 탐탁지 않아 하던 이들은 이제 칼라일보다는 제국의 황후인 샤를로테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하고 따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기대에 비해 실망은 훨씬 더 크게 다가오겠지.

칼라일이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일 줄은 몰랐다. 이것은 샤를로테에게 황후의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게 할 수도 있으니까. 샤를로테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바들바들 떤 것일까?

“마력연구관의 자리를 받은 순간부터 계속 기회를 노렸습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로젤리아님이 또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어요.”

그는 흐트러진 옷깃을 정돈하며 침울해 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샤를로테와 비교되는 말들이 사교계를 떠돌겠지만, 나는 이미 이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비교 당해왔다. 하나 더 추가된다고 뭐가 달라질까.

“아니요, 칼라일. 잘했어요. 잘한 거예요.”

“잘한 것은 아니죠, 제가 정말 미안해요. 좀 더 생각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물론 구설수에는 오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좋아요. 칼라일이 샤를로테에게 그런 행동을 한 게 말이에요.”

그때 샤를로테의 얼굴은 정말 창백하고 안쓰러울 정도였지만….

“조금, 통쾌한 것도 있고 그래서.”

통쾌했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칼라일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정말이에요? 저는 로젤리아님께서 화내실 줄 알았어요. 아무래도 황후를 건드린 거니까요.”

“화나기는, 오히려 칭찬해주고 싶은데요.”

“그럼 해주십시오, 칭찬.”

칭찬? 쓰다듬어주면 되려나.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데 어쩐지 칼라일의 표정이 무덤덤했다. 이게 아닌가, 안아줘야 하나? 팔을 벌린 채 가만히 앉아있자 칼라일이 자리를 옮겨 내 옆에 앉았다.

“쓰다듬는 것과 포옹은 너무 많이 했어요.”

내 쪽으로 몸을 기울더니 가볍게 입을 맞췄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닿았던 입술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좋아한다고 해주세요.”

“뭐라고요?”

“한 번도 좋아한다는 말 안 했잖아요. 아니면 입맞춤이라도 해주세요.”

얼굴을 붉히면서 내 쪽으로 몸을 붙이는 게 귀여우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예전에는 손잡는 것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더니, 아니지. 그때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서 그랬나?

“칭찬해주신다면서요, 로젤리아님. 네?”

“자, 잠깐. 너무 빠르다고 생각 안 해요?”

“빨라요? 빠른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싫으신가요?”

싫지는 않다, 하지만 도저히 먼저 입을 맞추거나 좋아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저렇게 간절한 눈빛으로 보는데….

하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입은 못 맞추겠어.

“싫지는 않아요, 대신 다른 거 들어줄 테니까….”

“그럼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요? 로젤리아, 라고 부르고 싶어요.”

“…좋아요. 입맞춤 대신인 거예요.”

그의 눈을 가린 손을 떼자, 칼라일은 원한 것을 이룬 듯한 미소를 띠며 내 뺨을 감싸 쥐었다.

“그래, 로젤리아.”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칼라일이 다시 한 번 입을 맞춰왔다. 안한다며! 이름 부르는 것으로 대신한다며!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터질 지경이라 말없이 그의 어깨를 퍽 내려쳤다. 그 의도를 알아차린 것인지, 칼라일이 얄밉게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그대가 먼저 하기 싫다며. 그럼 내가 먼저 하면 되는 거니까.”

얄밉다, 진짜. 나는 장난스럽게 웃는 칼라일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려다 천천히 놓아주었다. 싫지는 않으니까. 아니, 솔직히 좋았다.

존칭을 사용하지 않고, ‘님’을 붙이지 않은 채 이름으로 불러주고….

“얼굴이 붉어, 로젤리아.”

분명 같은 목소리인데 존칭을 쓸 때와 안 쓸 때가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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