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너도 마법사잖아
마수가 왜 여기 있어? 아니, 예측을 못 한 건 아니다. 칼라일이 그랬잖아, 마수라는 게 때때로 마법사를 잡아먹기 위해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고. 칼라일을 잡아먹기 위해서? 아니, 마력연구원들을 공격했어. 그럼? 심지어 이 연구소는 황궁 안에 있잖아. 어떻게 들어온 거지?
“칼라일!”
“로젤리아님?”
침착하게 상황부터 살피기 위해 다 부서진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마력연구원들 중에서 다친 사람들도 많았다. 일단 궁의부터 불러야 했다. 아니, 부를 수가 있나? 칼라일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팔을 뻗어 오지 못하게 막았다.
마수가 아직 살아있었다.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얼음송곳이 꽂힌 등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건, 피 인가. 어쩐지 눈물처럼 보이는데. 그의 팔을 잡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털 대신 비늘이 솟아있는 고양이 형태의 마수였다.
“칼라일, 이것은 마수, 맞죠?”
“네. 마수가 맞습니다. 고양이 마수군요. 그것도 몸 크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마수에요.”
크게 몸을 부풀리자 주변으로 커다란 불길이 일었다. 이걸로 불길을 일으켰구나. 조용히 손가락을 튕겨 방어 마법을 펼쳤다. 방어 마법에 튕긴 불이 마수를 향해 날아갔다. 몸에 불이 붙지는 않았지만 불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긴 꼬리가 벽 이리저리 부딪혔다.
“…이상해.”
마수의 공격을 피하던 칼라일이 중얼거렸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이 마수, 지금 낯선 환경에 당황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세히 보면 눈에 뭔가 씌워져 있어요. 그냥 난동을 부리는 게 아니에요. 지금 앞이 안 보여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겁니다.”
“천?”
마수에게 좀 더 가까이 가자 눈을 꽉 짓누르고 있는 까만 천이 보였다. 저게 뭐야. 누군가 씌워놓은 건가? 마수에게? 누가?
“저것만 벗기면 괜찮아질지도 몰라요.”
“그럼 제가 마수의 다리를 얼려놓을 테니, 검으로 천을 떼어내 주시겠습니까?”
“나에게 맡겨요.”
겉옷 안에 숨긴 검을 꺼내들었다. 검을 꽉 쥔 채 몸을 낮췄다. 그리고 칼라일이 마수의 다리를 얼려놓은 순간, 마수의 허리를 딛고 등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천을 검 끝으로 베어냈다. 마치 루비 같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먀우웅.”
‘먀웅?’
“먀, 먀우우, 우으….”
뭐야, 운다. 왜 울지? 울지 마. 어 귀여워, 아, 아니지. 울지 마!
마수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눈물이 펑 하고 터졌다. 마수가 운다. 너무 서럽게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그사이에 고개를 묻은 채 엉엉 운다. 어떡해, 너무 귀엽다. 근데 이걸 어쩌지? 마수잖아. 마력연구원들도 다쳤는데.
“칼라일, 이거 어떡해야….”
“귀여워.”
“칼라일?”
“눈동자가 로젤리아님을 닮았어.”
“뭐라고요?”
입을 가리더니 눈을 반짝인다. 로젤리아님을 닮았어! 라고 소리쳤다. 한 대 때릴까 생각하며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눈물 뚝뚝 흘리며 경계태세를 취하던 마수는 칼라일이 콧등을 몇 번 쓰다듬어주자 점점 표정이 바뀌었다. 곧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칼라일의 손에 이마를 비볐다.
“성격은 로젤리아님을 안 닮았네요.”
“내 성격은 더럽다는 건가요?”
“아,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됐어요, 비켜요.”
칼라일이 마법으로 얼음송곳을 꽂았는데도 이렇게 금방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마수라니. 이마를 쓰다듬자 방긋, 하고 웃었다. 아 귀엽다. 잠시 주변을 살핀 뒤 얼음송곳에 손을 갖다 대고 치유 마법을 흘려보내자 얼음도 녹고 상처도 아물었다.
“먀아.”
몸을 뒤집고 배를 드러내 보인다. 아무리 봐도 사람의 손을 많이 탄 것처럼 보인다. 배를 문지르자 도톨도톨한 것이 많이 만져졌다. 헤집어보니 상처가 보였다. 그런데 누가 마수를, 이렇게까지 다치게 했지? 뭐지? 사람의 손을 탔는데 상처는 많다? 기다란 상처에 깊지도 얇지도 않은 상처, 채찍인가?
“대공!”
“아, 제국의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뒤늦게 소란을 들었는지 페르소나가 연구소로 왔다. 그도 마수를 처음 보았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마수는 들어봤겠지 4대 황제, 유일하게 마법사가 두 명이 있었던 시절에 마수가 출몰했었으니까. 페르소나는 조심스럽게 마수에게로 다가왔다.
“마…수인가?”
“마수입니다, 폐하.”
“마수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황궁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냐. 마력연구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라.”
“마수의 출몰은 마법사가 있는 제국이라면 종종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보고서를 올렸다시피, 현재 제 소량의 마력을 이용해 좀 더 완전한 마력농축액을 연구 중이었습니다. 지금 마력연구소에 있는 마력은 웬만한 마법사 세 명의 분량이고요. 그래서 출몰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큰 마수가 왔는데 아무도 못 알아차렸다 이건가?”
“이게 또 알아차릴 수가 없는 마수라서.”
칼라일이 손을 모아 작은 틈을 만들었다. 그러자 마수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순식간에 몸을 작게 만들어 그 틈 속으로 들어갔다. 칼라일이 모았던 손을 펼치자 손 크기 정도로 변한 마수가 작게 울음소리를 냈다.
“이것보다 훨씬 더 작아질 수 있는 마수입니다. 그러니 못 알아차린 거죠. 황궁의 벽 틈, 아니면 옷 주머니에 들어가 이동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공간의 크기에 따라 변하는 거라면 못 볼 수도 있었겠다. 칼라일의 말대로 옷 틈사이나, 벽 틈 사이에 있다가 이곳으로 온 걸지도 모른다. 그럼 못 본 게 이해가 된다. 근데 마수가 너무 사람의 손을 탄단 말이지. 칼라일이 마법으로 공격까지 했는데.
“마수라니, 이걸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군.”
“그저 더 나은 앞날을 위한 사고라고 인식하시죠, 폐하.”
벽에 난 큰 구멍을 보며 페르소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칼라일의 말대로 마수가 나타난 것은 어쩌면 좋은 신호일지도 모른다. 인정하기 싫지만…칼라일이 마력연구소에서 정식으로 일한 지 3일밖에 안 되기는 했지만…불과 3일 만에 기대했던 성과를 뛰어넘은 성과가 나왔다.
일단 미완성이었던 마력농축액을 몇 시간 만에 완성 직전까지 만들어냈고, 이를 응용해 마법사를 찾아내는 수식과 기획안까지 작성했다. 타국 출신 마법사라며 꺼려하던 이들도 하나같이 칼라일을 칭찬했다. 그때마다 ‘마법사니까. 우리도 마법사만 있었으면 이 연구, 금방 성공시켰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지만, 8대 황제 당시에도 이뤄졌던 연구, 그 연구 때 마법사가 남긴 기록을 읽어보아도 이렇게 빨리 단기간에 성과를 낸 기록은 없었다. 게다가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보다 훨씬 월등한 마법사라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페르소나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마력연구관은 마수에 대한 것을 총 정리 해 나한테 보고하라.”
“와, 신나는 야간작업.”
칼라일은 손가락으로 마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페르소나의 이마에 희미한 실금이 돋아났지만 말없이 칼라일의 손에 있는 마수에게로 손을 뻗었다. 일단 마수니까 붙잡아둘 생각이었다. 뭣하면 연구용으로 쓰거나. 하지만 따끔한 통증과 함께 손가락에 접촉이 느껴졌다. 마수가 페르소나의 손가락을 물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명백한 경계였다.
“페하가 싫은가 봅니다.”
나는 마수를 페르소나에게서 떨어트리며 말했다.
“지하 감옥에 가둬놔라.”
“그럼 지하 감옥의 크기만큼 커집니다만.”
“그럼 제 저택에 보금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소, 대공?”
“괜찮습니다.”
손가락을 깨무는 게 귀엽기도 하고. 루치아노에게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연구소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의외의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샤를로테, 쟤가 왜 여기에 있어? 일이 밀려있다 하지 않았나. 아닌가. 마력연구소가 터졌다고 하니까 내려왔나?
“폐하, 괜찮으신가요? 이게 무슨 일입니까. 폭발이라뇨.”
“제국의 달,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마수의 출현으로 폭발사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수의 출현?”
안케도니아 제국에도 마법사가 있다고 했을 테니 마수의 출현을 종종 목격했겠지. 칼라일의 손에 올라온 마수를 보며 샤를로테는 눈을 크게 떴다. 놀란 것 같지는 않고 ‘정말이네?’하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놀란 건 칼라일을 본 후부터였다. 칼라일을 보더니 정말 놀란 표정으로 치맛자락을 꽉 부여잡았다.
칼라일도 눈을 가늘게 뜨며 샤를로테를 응시했다. 마력연구관으로 취임 되었다는 보고서를 받았을 텐데, 읽지 않았나 보군. 하긴, 취임 보고서 같은 경우는 나중에 한꺼번에 확인하거나 시녀가 대신보고 알려주기도 하니까.
“여기는 괜찮으니 올라가렴, 샤를로테. 그러다 아이가 다칠 수도 있으니.”
“폐하, 저자가 어째서 여기에!”
“너도 바올에 대한 보고서를 받았겠지, 그에 대한 공적을 높이 사 공동 마력연구관으로 취임시켰다. 너도 알다시피 마법사이지 않느냐.”
“그렇지만 폐하, 타국의 마법사입니다. 아시다시피 저와 같은 안케도니아 제국의…마법사이고….”
말끝을 흐리던 샤를로테는 잠시 내 눈치를 보는 척 하더니 울먹이며 페르소나의 품에 안겼다. 페르소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려 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도 어쩐지 난감하면서도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잠깐, 미안해한다고, 왜?
“폐하, 제 얘기를 모두 들으셨으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샤를, 저자는 황실의 마법사 생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야.”
뭘 말했다는 거지. 아, 그 순간 페르소나가 탑에서 했던 말이 기억났다. ‘칼라일이 샤를로테를 찌르려 했다던데.’ 그래서 내가 어떻게 아냐고 받아쳤었지.
샤를로테가 뭐라고 말했을까. 칼라일이 자신을 찌르려 했다. 눈물을 퐁퐁 흘리면서. 어쩐지 대충 예상이 된다. 분명 그렇게 말했겠지. 자신이 칼라일을 찔렀다고는 말 못 할 테니까. 그리고 약혼자인 것도 말했을 것 같은데. 물론 칼라일을 끔찍한 쓰레기로 만들고.
페르소나의 입장에서…샤를로테를 찌른 놈을 마력연구관으로 임명한 거니까. 그래서 미안해하는 건가.
“이미 진행된 거라면 어쩔 수 없죠….”
샤를로테는 아직 불안해하는 건가. 칼라일이 자신에 대해 전부 불어버릴까 봐. 어쩐지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칼라일의 표정도 어느 정도 구겨져 있었다. 그 순간 샤를로테의 아기를 구해줬던 것, 그녀에게 내가 황후 시절 정리해둔 자료를 넘겨주라 지시했던 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샤를로테는 내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편지라도 보낼 법한데. 어쩌면 다음 세대의 황제가 될 아이를 구해줬음에도.
“그런데 마수의 출현이면 보통 마법사가 먼저 감지를 하지 않나요? 칼라일?”
“네. 보통, 그럽니다. 하지만 이 마수 같은 경우는 워낙 몸을 숨기는 데 특화된 마수이기 때문에….”
“그래도 미리 대처했어야죠. 마력연구관이고, 마법사로 오래 살았다면 마수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나요? 그럼 이런 연구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한 안전 대처 방안을 먼저 만들어뒀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런데도 저런 태도라니. 그리고, 칼라일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지금 주의를 주는 듯하면서도 상황을 칼라일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나 같으면 칼라일 앞에서 고개도 못 들 것 같은데.
“마력연구관은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주의해주세요. 그리고 마력연구소에 대한 수리비용은 대공저에 청구하겠습니다.”
“청구는 상관없습니다만 이해를 잘 못 하겠군요. 마력연구관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마수의 특성상 미리 감지라는 게 어렵다고요. 황후 폐하께서는 모든 게 마력연구관의 탓이라 말하고 계십니다.”
“그가 마력연구관이니까요. 그리고 마법사죠. 그럼 마법사가 연구를 주도할 때와 평범한 인간이 마력연구를 주도한다면, 분명 그에 따라 생길 현상들을 더 신중하게, 확인했어야….”
가만히 나와 샤를로테의 대화를 듣던 칼라일이 부드럽게 웃으며 샤를로테의 말을 끊어냈다.
“마력연구관의 잘못이 마수 현상의 감지를 놓친 거라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황후 폐하의 잘못도 있겠군요.”
페르소나도 말리고자 했지만 샤를로테의 말에도 딱히 틀린 것이 없어서 망설이던 찰나 칼라일의 마지막 말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내 잘못이라니?”
“황후 폐하께서도 황궁의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게 황후로서의 일이죠.”
칼라일이 가르치듯 말하자 샤를로테는 기분이 나쁜 듯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샤를로테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먼저 선수를 쳐 말했다. 그녀가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를 이용해서.
“황후 폐하께서도 마법사이시면서 마수 출현을 감지하지 못하신 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