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싫지는 않았다.
마차에서 내리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누군가 막고 있는 듯했다. 문고리를 잡고 당황하는 사이, 마부의 비명이 들려왔다. 상당히 당황한 듯한 목소리에 마차 문을 열려 했지만 마부가 나오지 말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 들려온 ‘도망쳐’라는 단어에 문을 발이 절로 앞으로 나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눈앞에 보인 것은, 까만 비늘로 뒤덮인 뱀이었다. 은색 눈을 반짝이는 뱀은 바닥을 기어 다니며 금색 혀로 루치아노의 뺨을 핥고 있었다. 루치아노는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는 듯, 굉장히 해탈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저 동물은 뭐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물인데?
징그럽지는 않지만, 굉장히, 괴물다운 동물인데. 이게 뭐지?
순간 뱀의 은빛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더니 가까이 다가온다. 뭐지? 생각보다 너무 큰대? 어, 어? 혀가 뺨에 닿았다. 미끄러운 촉감에 그대로 굳었다. 뭐지, 이 뱀. 뭐야, 도대체 뭔데. 떨리는 눈동자로 칼라일과 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쩐지 칼라일이 웃고 있었다.
“그런 걸로 변신하면 사람들이 놀라, 카렐리아.”
“카렐리아?”
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 남은 것은, 눈을 반짝이고 있는 카렐리아였다. 칼라일과 똑같은 색의 금빛 곱슬머리가 어깨 위로 찰랑거리고 있었다. 참 작았다. 가만히 내려다보자, 카렐리아는 환하게 웃으며 팔을 벌렸다.
“언니!”
진짜 카렐리아였네.
“그래, 카렐리아. 아픈 것은 이제 괜찮니?”
안아주자, 카렐리아는 품에 꼭 안기고는 작게 웃었다. 팔에 있던 자잘한 상처는 다 나아있었다. 긴 상처가 있던 볼에는 붉은 홍조가 있었다. 복숭아 같았다. 볼을 콕, 찌르자 꺄르르,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귀여웠다. 아기 햇살 같았다.
“언니 말이 맞았어! 진짜 오빠랑 있었어!”
카렐리아는 헤헤, 하고 웃으며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카렐리아도 울지 않고 잘했어. 너무 대견해. 언니가 좀 더 빨리 데리러 갔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찾으러 가서 미안해.”
“우응, 아니야. 괜찮아! 언니가 나 꼭 안아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줬잖아. 이렇게 머리 손으로 쓰다듬어줬잖아! 또 해줘!”
카렐리아가 원하는 대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쩐지 강아지 같았다. 손에 뺨을 부비는 것도 칼라일과 꼭 닮았다.
“카렐리아님.”
“응?”
“슬슬 이리 오세요. 로젤리아님은 바쁘신 몸이라 계속 안기고 있으면 업무에 방해가 될 겁니다.”
“싫어!”
슬슬 팔이 아파갈 때쯤, 루치아노가 카렐리아를 안아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카렐리아는 품에 안긴 채 떨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떨어지지 않을 거라며, 드레스 자락을 꼭 붙잡았다. 루치아노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 떨어지기 싫다며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을 글썽였다.
“언니, 같이 있으면 안 돼?”
“아, 그. 카렐리아, 언니가 너무 바빠서….”
“안 돼.”
그때 바로 뒤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라일이 카렐리아의 팔 밑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 올리더니 엄한 표정을 지었다. 안 돼! 그러자 카렐리아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펑, 하고 터졌다. 엉엉 울기 시작했다.
“흐에에엥! 오빠 나빠!”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진짜 우는 것도 똑 닮았다. 너무 귀여워. 카렐리아가 울자 루치아노가 말없이 칼라일을 노려보았다.
“아, 아니, 갑자기 울리면 어떡해!”
“칼라일님, 정말…애를 울리면 어떡합니까. 겨우 되찾은 동생이잖아요.”
“아, 아니, 울리려는 게 아니라….”
어쩐지 억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루치아노는 품에 카렐리아를 안은 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칼라일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차갑게 식은 눈은 처음이었다. 칼라일은 어이가 없던 표정으로 저택으로 들어가는 루치아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때 서럽게 울던 카렐리아가 울음을 뚝 그치더니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칼라일을 향해 혀를 내밀었다.
“카렐리아가 그대를 닮았네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칼라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귀여웠다. 너무 귀여웠다. 우는 척하는 것도, 남 골려주는 것도. 문득 마법으로 페르소나의 뒤통수를 후려치던 때가 떠올랐다. 칼라일이 ‘어디가 닮았는데요?’라고 물었지만 웃음을 참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전체적인 면에서 닮았네요. 외향이나, 성격이나, 귀여운 거나, 아. 카렐리아도 그대처럼 마력이 많은가요?”
그러고 보니 카렐리아도 마법사라고 했지. 저렇게 어린 나이인데도 마법을 쓰다니.
“저처럼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린 아이치고 많은 편이죠. 마법도 생각보다 잘 다루지만 금방 풀려요. 아까 그 뱀처럼 카렐리아는 모습을 바꾸는 걸 잘해요. 숨는 것도 잘하고요.”
“아까 그 뱀은 본 적 없는 동물인데. 어떤 동물인가요?”
“그건 동물이 아닙니다. 마수죠.”
잠깐, 마수라고?
“마수는 쉽게 마력을 품은 괴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른 동물들과는 외적이나 힘, 사는 환경 자체가 다르죠. 상대가 누구든 공격부터 하는 포악한 존재입니다. 보통 기사 여섯은 있어야 마수 한 마리를 겨우 처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뱀이 마수였구나. 마수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마수가 제국 내에 출몰한 적이 있었지만 극히 드물었다. 그러니 직접 본 적은 없다. 마수로 인해 입은 피해도 거의 없고.
“마수에 대하여 들은 적은 없어요, 레이몬드 제국에서는 마수가 출몰한 적이 극히 드물었거든요.”
“그렇죠. 마수는 극한의 환경에 머뭅니다, 그러니 마수가 사는 곳을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볼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마법사가 서식하는 곳에는 의외로 많이 출몰하죠.”
“어째서죠?”
“마수는 마력을 품은 괴물, 그들의 심장에 마력이 모여 있습니다. 마수들이 죽을 때는 몸에 남은 마력이 자연히 사라질 때죠. 그와 반대로 마력을 많이 품을수록 강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몇몇 마수들은 마법사를 잡아먹음으로서 더 강해지고자 하는 경우도 있어요.”
마법사를 잡아먹는다, 그래서 레이몬드 제국에 마수의 출몰이 거의 없었던 거야. 마법사가 없으니까. 그럼 레이몬드 제국에 마법사를 생산할 경우 마수의 출몰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야 하나?
그럼 마물이 출몰하면 칼라일이 나서서 막아야 하나? 이제 공동 마력연구관이니까. 그럼 위험할 텐데….
“그렇다고 떼거리로 몰려오는 경우는 없어요. 생각보다 자주 출몰하지도 않고요. 안케도니아 제국에서도 마수의 출몰이 있었습니다만 그 횟수가 열 번 이내에요.”
“생각보다 적군요”
“네, 일부러 마수들이 출몰하게끔 유도하지만 않으면 말이죠.”
내 걱정을 눈치챈 것인지 칼라일은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걱정은 여전했다. 아까 카렐리아가 변한 그 마수, 그런 마수가 제국에 출몰하면 칼라일 성격상 그 마수를 막겠다고 할 텐데.
“나와 약속한 거 잊지 않았죠?”
“네?”
“위험한 짓 하지 말기, 자기 몸부터 챙기기.”
약속 안 지키면 정말 안 볼 테니까.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자 칼라일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끝을 잡고, 아까 품에 안겼던 카렐리아처럼 볼에 홍조를 띄웠다.
“그럼 로젤리아님도 약속 지켜줘요.”
“무슨 약속이요?”
“밤에 침실로 와달라고 했잖아요. 준비하고 기다리겠다고….”
뭐, 뭐? 잠깐, 뭐? 밤에 침실로 와달라고, 준비하고 기다리겠다, 했다고? 아, 아니. 그러기는 했는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잘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그 말 진심이었어? 그 상황을 넘기기 위한 말 아니었어? 진심이었다고? 아냐, 가겠다고는 안 했어.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나, 나는 가겠다고 안 했는데.”
“그럼 제 가슴은 왜 만지셨어요?”
“그건 사고였어요. 그리고 목소리 너무 크니까 좀 조용히….”
혹여나 누군가 들을까 주변을 살피는 사이 칼라일이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다.
“사랑해도 된다면서요.”
“!”
“로젤리아님도 저에게 마음이 있어서 그러신 것, 아닌가요?”
마음이 있다. 그래, 인정하자. 나는 칼라일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카, 칼라일. 기다려요. 진도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괜찮은 거죠?”
진짜 머리가 어지러웠다. 원래 이렇게 저돌적으로 나오나? 이렇게 침실로 와 달라고 하나? 다른 남자도 이래? 페르소나는 안 그랬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안 갈 거라고 했음에도 칼라일은 야릇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안 갈 거라고! 근데 왜 웃는 거야? 칼라일이 허리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뺨을 대었다. 목덜미가 후끈거렸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나는 천천히 칼라일을 마주 끌어안았다.
칼라일이 자꾸만 목덜미에 입을 맞췄지만 차마 밀쳐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