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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폐하의 이혼사유-65화 (65/170)

#65화, 더 이상 도움만 받고 있지 않을 거야.

황제가 직접 문을 여는 경우는 없었다. 누군가 와서 열어준다. 그건 마차를 올라탈 때나 내릴 때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마차 문을 여는 건 극히 드문 경우였다. 당장 기절할 것 같았다. 정부의 가슴을 만지는 것을 전남편이 목격한 이 상황. 정말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페르소나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그리고 정확하게 칼라일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손에 시선이 향했다. 끔찍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빠르게 손을 떼려고 했지만…칼라일이 손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들켰으면 놔줘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칼라일은 부끄러워하던 표정은 어디 가고 야릇한 얼굴로 내 손을 가슴에 더 밀착시켰다.

마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근육이 있었구나. 단단했다. 제복은 껴입는 옷이 많은데…그런데도 이렇게 가슴이 크고 단단한 게 그대로 느껴진다면…맨살로 만지는 가슴은 어떨지….

이런 상황에서 야한 궁금증을 떠올리고 있는 내가 싫었다.

“로젤리아님, 여기서 이러면 곤란해요. 오늘 밤에 제가 준비하고 기다릴 테니까. 그때 해요, 네?”

응? 뭘 해?

“그때는 옷 위로 말고, 직접 만져주셔야 해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칼라일은 그제야 손을 놔주었다. 푹신한 감촉이 손에서 떠나갔다. 어쩐지 살짝 아쉬웠지만, 지금은 이 상황을 수습하는 게 중요했다. 페르소나는 굉장히 충격 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충격 받을 만했다. 어떻게 충격을 안 받겠니. 나도 네가 샤를로테 가슴을 만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무척이나 놀랐을 거야.

마차에서 내리려는 데 충격으로 굳어져 있던 페르소나가 손을 뻗어왔다. 잡고 내리라는 건가 싶었는데 칼라일이 먼저 페르소나의 손을 잡고 내렸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급격하게 인상을 구긴 페르소나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는 칼라일을 보며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페르소나는 말없이 칼라일이 잡은 손을 털어냈다.

“로젤리아님도 어서 내리세요.”

웃음을 겨우 참고 내리려는데 갑자기 몸이 붕 떴다. 놀라 칼라일의 어깨를 잡았다. 허리를 끌어안은 채 나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주변을 보니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는 시종들이 보였다.

내가 칼라일의 가슴을 만지는 것을 봤을까.

살면서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

집무실에는 나와 칼라일, 페르소나만 자리에 앉아있었다. 참으로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혀를 깨물며 그 찜찜한 상황을 버텼다. 지금은 전남편이 아니라 황제를 마주하는 자리니까. 그러나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크게 들려왔다.

“바올과 관련된 귀족을 모두 잡아들였다. 모두 로웬 경과 대공의 공이 크다. 그리고 칼라일 자네도.”

“해아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렇기에 그대들에게 상을 내리려 하네.”

칼라일을 이름으로 불렀다고? 게다가 상을 줘? 곁눈질하며 칼라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것처럼. 페르소나가 신호를 보내자 시종들이 온갖 패물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흔히 드레스나 보석들, 구두 같은 품목이 잔뜩 있었다.

“바올에서 회수한 물건들과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건들, 특히 릴의 눈이나 선샤인 네페론 같은 귀중품들은 제 주인을 찾아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중 경매로 구한 물건은 황실에 귀속시키기로 했고. 릴의 후손이나 인어 같은 경우는 모두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는 작업을 거치고 있다.”

“다행입니다.”

옆에 쌓이는 패물들에는 시선을 전혀 두지 않자, 페르소나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플로트 가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플로트 가문은 작위를 박탈하고 바올로 끌어 모은 재산 모두 몰수할 것이다. 그리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노예로 살게 해, 그들이 타인에게 주었던 고통을 그대로 돌려받게 할 생각이다.”

페르소나가 내민 서류에는 그간 3건의 노예시장 말고도 더 많은 추악한 짓을 저질러왔음이 적혀있었다. 총 7건이었다. 나머지 4번은 뭐지? 4번은 인신매매가 주로 이루어졌다고?

그럼 원치 않게 노예가 되어 팔려간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 고문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생각보다 더 끔찍했다. 눈앞에서 사람들을 물건처럼 다루고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한 걸까. 오히려 몰락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중 두 건은 내가 황후였을 시절에 일어났다.

조사를 해야 해. 노예, 하녀 모두 상관없다. 귀족들의 집을 전부 뒤져야 해. 애초에 바올에 참여한 귀족들은 제국 내 귀족들 중 이름을 들어본 가문도 꽤나 있었다. 그러니 귀족들의 저택을 수사해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나머지 4건도 충분히 조사 후, 피해자들을 찾아내 보상 및 치료를 할 생각이다. 그리고 대공도 생각했을 것 같은데, 저택 수사를 실시할 생각이요.”

“저택 수사에 반발하는 귀족도 많을 겁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대공의 정부, 아니. 칼라일이 내게 의견을 냈다.”

칼라일이 의견을 냈다고? 그날 도대체 페르소나와 무슨 대화를 나눈 거지? 그 순간 작은 빛 몇 개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건, 칼라일이 마법을 쓸 때 나오는 그 마력이잖아. 놀라 그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칼라일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페르소나도 그렇게 많이 놀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덤덤한 눈빛이었다.

“칼라일이 피해자 조사에 협력해주기로 했다. 마법으로.”

“…칼라일.”

“그냥 도와주겠다는 건 아닙니다. 폐하께서 공동 마력연구관으로 임명 해준다고 하셨습니다.”

마력연구관 자리? 공동 마력연구관?

“폐하.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이다. 황실에서 직접 채용했다는 공식서류를 내줄 것이며, 마력연구원들과 관리들에게 정식적으로 칼라일을 정식적으로 소개를 시킬 것이다. 정식 복장과 보수도 충분히 지급할 거고.”

“제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폐하.”

내가 맞게 들은 게 맞나? 황실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채용하는 마력연구관 자리를 준다니. 공동이라 했으니 아마도, 바르셀민 백작과 동등한 위치에서 일한다는 소리겠지.

공식서류까지 내준다는 것을 보면 정말로 칼라일을 마력연구관 자리에 앉힌다는 소리겠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설마 페르소나와 나눴던 대화가 이런 거였나? 건물을 전부 없앴는데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게….

“칼라일이 무슨 제안을 했나요?”

그때 칼라일이 조심스레 손을 겹쳐왔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둘의 대화가 흘러들어왔다.

‘가넷대공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황실에는 마력연구소라는 곳이 있다고요. 그러니 저를 황실 소속의 마법사든, 마력연구원이든 사용하세요. 그러면 황실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

‘어차피 마법사도 없지 않습니까. 마법 이론으로만 언제까지 마력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겠습니까?’

‘….’

‘폐하께서 흥미로워하실 만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마법사들 중, 평균 이상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는 마력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력의 기운?’

‘한마디로 이 제국에 정말 마법사가 없는지. 아니면 단지 찾지 못해서 그 재능을 썩히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말없이 겹쳐진 손을 뺐다. 칼라일이 저런 제안을 했다면 페르소나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칼라일이 마법사인 걸 알았음에도 황실에서 일해 볼 생각을 권유하지 않았던 것은……뭐, 여러 가지 이유겠지. 사적인 감정도 섞여 있을 테고.

그러나 이번은 상황은 달랐다.

건물을 전부 없앴다. 그것도 기사들이 전부 깔린 수도 한 가운데에서. 분명 말이 나올 게 분명했다. 노예시장 일도 충분히 기삿거리가 되는데 마법사 한 명이 지하실 전체를 도려내듯 끌어올린 것도 모자라 건물까지 전부 없애버렸다는 말까지 나온다. 분명 누군지 말이 나오겠지.

그리고 황실에 대한 욕이 나올 게 분명했다. 노예시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공표를 해야 할 텐데 그럼 제국의 치안에 대해 말이 나올 것이다. 노예시장이 제국의 수도 한 가운데에서 일어났으니 더 하겠지.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마법사가 모든 일을 처리했다? 사실상 세르빈 플로트를 잡은 건 칼라일이니까. 근데 그 마법사가 가넷 대공의 정부. 무슨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황실에 대한 신뢰가 뚝 떨어지겠지.

‘받아들이는 게 당연해. 하지만….’

왜 칼라일이 저런 제안을 한 거지? 바올을 잡은 데 일조한 보상? 아니야, 보상을 받겠다고 저렇게까지 페르소나를 밀어붙였을 리 없어.

“바르셀민 백작은 마법의 이론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뛰어나지. 칼라일은 마법사고. 둘이 공동 마력연구관으로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연구를 해주길 바라네.”

시종이 칼라일에게 마력연구관에게 부여하는 제복을 건넸다. 새하얀 제복이 칼라일과 참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어쩐지 기뻐 보이는 칼라일을 보며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

“왜 그런 제안을 한 거예요?”

오늘따라 마차 안이 참 좁게 느껴졌다. 제복을 쥐고 있던 칼라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가 났다고 느낀 것인지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 화난 표정을 지었다.

“계속 도움만 받아서, 저도 로젤리아님께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손을 꼼지락거리던 칼라일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보답을 바라고 한 게 아니에요.”

“그래도 뭔가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다치기까지 했으니까요. 저는 뭔가 패물을 선물해드릴 수도 없고, 그래서 로젤리아님의 권력을 좀 더 탄탄하게 다질 수 있는 것을 생각했어요.”

말끝을 잠시 흐리던 칼라일은 더 이상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뭐라 얘기해도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다. 만약 칼라일이 내 가족을 지키다 다친다면, 그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화나지 않았어요. 다만 걱정될 뿐이에요.”

“네?”

“마력 연구로 다치는 사람이 의외로 많으니까요.”

마력 연구 도중 몸에 불이 붙은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라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가지를 않았다. 칼라일은 마법사니까 그런 사고가 일어날 경우가 무척이나 적지만…그래도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되게 이기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만약 위험한 상황이 오면 본인부터 먼저 챙긴다고 약속해줘요. 약속하지 않으면…이번에는 한 달 동안 피해 다닐 거니까.”

“조심할게요. 약속해요. 정말 조심하겠습니다.”

“왜 하필 마력 연구관이에요. 정말 걱정되게….”

“로젤리아님을 위하면서도, 제 목적도 충족할 수 있는 건 마력연구관밖에 없었어요.”

“목적?”

무슨 목적을 말하는 것이지?

“기사 보고서. 로웬이 베논 제국으로 군사적 지원을 나갔는가에 대한 보고서. 그걸 찾을 것입니다.”

“!”

“마력연구관이라면 황궁을 돌아다녀도 그렇게 의심받지 않을 것입니다”

칼라일은 잠시 내 눈치를 보다가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더 이상 그대에게 도움만 받고 있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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