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아이하라의 귀족
일부러 노출이 심하고 가장 화려한 검은색 벨벳 드레스를 골라 입었다.
악세사리도 과하게 달아야 했다. 반지나 팔찌,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샹들리에 귀걸이. 보석 케이스를 열어 귀걸이를 꺼냈다. 절대 착용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굵은 보석 알이 달린 목걸이. 사실 착용여부를 고민했다. 하지만 짙은 붉은빛 머리카락에 대한 시선을 분산시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
“로젤리아님.”
“칼라일.”
목걸이를 걸려던 찰나, 거울에 비친 칼라일이 보였다.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카렐리아를 잡아둔 곳이 노예시장이라는 것을 들은 뒤, 칼라일은 눈도 붙이지 못한 채 불안에 떨었다. 잠을 좀 자두라고 말했지만 기어코 한숨도 자지 않고 버틴 듯했다.
하긴, 나 같아도 못 잘 거야. 여동생을 찾을 수 있는 날, 자칫하면 또다시 잃을지도 모르는 날이니까.
“그 목걸이 말고, 이걸로.”
그가 건넨 목걸이에 손을 대니 마력의 이동이 느껴졌다. 그것도 상당한 마력이.
거부할까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머리카락을 살짝 들어 올리자 칼라일은 조심히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자 붉었던 머리카락이 그를 따라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칼라일을 돌아보자 그는 살짝 웃어보였다.
“그대의 머리카락은 악세사리나 화려한 드레스로도 가려지지 않으니까….”
당장이라도 죽을 듯 갈라진 목소리에 조용히 몸을 돌려 팔을 벌렸다.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까딱이자 칼라일은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채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카렐리아, 찾을 테니까. 칼라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깨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
로웬은 곧바로 황궁으로 향했다. 바올의 위치를 알아낸 이상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 주최자와 동참한 귀족들을 모두 잡아들여야 했다.
블랙던, 스불루, 이번에는 바올이었다. 제국에서 일어나는 노예시장은 큰 골칫덩어리였다. 가장 처음 잡았던 것은 블랙던이었다. 그다음이 스불루였다. 보고서를 받은 게 기억이 났다.
그때 잡아들였던 사람들과 특이 종족들, 살면서 한번이라도 볼 기회가 있을까 싶은 특이한 것들. 심지어 노예시장이라고는 하지만, 물건들도 많이 들어왔다. 어떤 품목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살아있는 인어도 있었다는 말이 돌았으니….
스불루를 마지막으로 십몇 년 동안 노예시장은 일어나지 않았다. 뿌리가 완전히 뽑혔다고 생각했는데, 로웬이 입수한 정보는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 진행되는 바올, 노예시장은 전에 열린 노예시장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 규모일지도 모른다는 정보였다. 십수 년 전에도 잡히지 않은 귀족들, 미처 회수하지 못한 물품들까지 전부.
노예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큰 문제였다. 윤리적으로나, 제국민들의 안위, 그리고 제국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노예시장은 뿌리를 뽑아야 할 존재였다.
블랙던이나 스불루 당시 제국민들이 얼마나 불안에 떨었는가. 노예시장의 주 타켓 층은 귀족인데, 얼마나 귀족들을 통제하지 못하면 이런 비윤리적인 행위가 일어나고 있냐며 황실을 비난하기도 했다.
‘바올에 잠입할 때는 그간 지니고 있던 모든 습관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굴어야 해. 원래는 충분히 조사 후 잡아들일 생각이었지만…네가 쓰러진 거야. 그 때문에 바올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어. 물론 비난하는 것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그럼 바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거야?’
‘다른 기사들에게 시켜서 얻은 게 그거야, 보랏빛 벨벳, 창살로 된 방들. 복도를 쭉 따라가면 굉장히 넓은 방이 있다고 했어. 아마 거기가 노예시장이 열리는 곳이겠지. 정말 간도 커. 어떻게 지하실 아래에 그런 공간을…그것도 제국 수도 한 가운데잖아!’
제국 수도니까. 제국 수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거지.
마차가 덜컹거렸다. 바로 앞에 앉은 칼라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칼라일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 내 시선을 인지했는지 느리게 눈을 떴다. 금빛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대가 쓰러진 일주일.”
낮은 목소리가 마차 안을 가득 메웠다.
“로젤리아님의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놀랐습니다. 놀랐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뭘 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릴리 양은 그대를 대신해 저택을 지키고, 루치아노는 그대가 깨어난 후에 먹일 마력 회복약을 만들기 시작했어요…저는 뭘 했는지 아십니까?”
“….”
“종이 던지기….”
칼라일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워프를 했어요. 그대를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멍청하게도 워프를 잘못된 곳으로 한 거예요. 루레드 양의 신문소로 워프를 했습니다. 마력을 억제하는 마법 때문이었어요. 그대가 있는 곳을 정확히 감지하지 못한 거죠. 그대가 있는 곳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손을 뻗어 천천히 내 뺨을 쓸었다.
“직접 황궁으로 들어가자니 또 막막했죠. 기사들을 마법으로 기절시킬까 싶었지만 또 몸이 문제였죠. 마법 여러 개를 동시에 쓰면 몸에 무리가 오니까요. 몸은 약하고 마법은 쓰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던 사이, 그대에 대한 소문을 들었어요,”
“….”
“그대가 샤를로테에게 독을 먹였다. 샤를로테를 시기했다. 가넷 가문의 수치, 로젤리아 가넷. 그래서 루레드 양에게 이를 막을 수 있는 기사를 써 달라 부탁하려 했는데. 이미 기사가 작성된 후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루레드 양이 쓴 기사를 마법을 이용해 공중에서 한 번에 퍼트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칼라일의 얼굴은 더 힘겹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 상황에서 무엇이든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오늘 아침에 릴리에게 들었었다. 칼라일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각에 기사가 적힌 종이를 공중에서 뿌렸다. 그 덕분에 헛소문이 만들어지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고.
“나는 이렇게 해준 게 없는데 그대는 내게 여동생마저 찾아주었어요. 그러니, 나는….”
그가 내 손을 쥐고는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만약 바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그대를 지킬 것입니다.”
“나 대신 여동생을….”
“카렐리아도 중요하지만 내게는 그대도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를 지킬 겁니다. 안전하게 대공저로 돌아갈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온몸의 뼈가 부러져도. 설령 손목이 잘리는 한이 있어도.”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카렐리아를 찾은 순간 그 애부터 지키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칼라일의 손이 가엾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
검은 마차는 내가 보았던 골목 앞에 멈췄다. 어쩐지 골목 안쪽에서 비릿한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듯했다.
릴리가 마차 문을 열었다. 얼굴에 검은 천을 쓴 채 위장을 한 릴리의 품속에는 단검만 수십 개 들어있었다. 나는 드레스 안에 숨겨진 검을 꽉 쥐었다. 목표는 카렐리아, 그다음이 바올 안의 모든 귀족들을 잡아들이는 것이었다.
로웬은 정확히 30분 후 이 주변의 일대를 가사들로 꽉 채워놓을 거라 말했다. 그 30분 동안, 카렐리아도 찾고 귀족들도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묶어둬야 했다. 안의 구조가 어떤지는 정확하게 모르니 귀족들이 나가더라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줄여야 했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지하실로 향하는 문이 보였다. 천천히 가면을 썼다. 까만 깃털과 보석이 잔뜩 박힌 가면을 쓴 순간 빠르게 뛰던 심장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카렐리아만 생각하자. 카렐리아. 그 애를 무조건 데리고 나와야 해. 지하실 문을 열며 나는 칼라일의 팔에 내 팔을 걸었다.
레베카 아이하나, 그리고 레오 아이하나. 밀수업으로 돈을 끌어 모은 몰락 귀족. 노예시장에는 언제나 여러 가지 가명으로 행세하고, 희귀물품만 가져간다는, 치정극에 나올만한 부부라는 설정.
문을 열자 보이는 긴 복도가 보였다. 창살로 막힌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끝에 있던 방, 카렐리아가 있던 방에도. 조용히 혀를 차며 복도 끝에 있는 문으로 다가갔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안쪽 공간에 있던 모든 귀족들의 시선이 나와 칼라일에게로 향했다.
그때, 미리 준비했던 것처럼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이번에는 규모를 늘린다 하지 않았어? 바올이라는 거추장한 이름치고는 별거 없는데? 안 그래, 레오?”
“그러게, 나의 레베카. 블랙던이나 스불루 때는 그나마 좀 볼거리를 전시해놓더니 이번에는 뭐야? 황실이 그렇게 무서웠어? 거대한 규모는 무슨. 복도는 폼인가 봐, 저번에는 바다에 사는 네빌론 괴수의 머리라도 장식해 놨잖아?”
“그러니까, 심지어 안내하는 놈도 없네. 예의는 어디 갔지?”
블랙던과 스불루. 그 두 단어에 가면을 쓴 다른 귀족들도 술렁거렸다. 하긴, 그때 당시 초대받았던 귀족들은 모두 몸을 사리거나 잡혀갔으니까. 들고 있던 부채를 활짝 펼치며 입을 가렸다. 그리고 가면 사이로 얼굴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가면을 써서 그런지 외향이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기괴한 사슴 가면을 쓴 사내는 초대장을 보여줄 수 있냐며 정중하게 물었다. 그러면서 시선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허세 많은 몰락 귀족으로 보는 듯한 시선에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찰나, 칼라일이 사내의 목을 세게 비틀어 쥐고는 바닥으로 내던졌다.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누구를 내려다보는 거지?”
“!”
“진짜 손님도 구별도 못하는 눈은, 뽑아버리는 게 좋겠지?”
충동적인 그의 행동에 놀랐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으며 쿡쿡 웃었다.
“어떻게 생각해, 레베카?”
“뽑아서 보석들과 함께 장식해줘.”
“그대를 위해서라면.”
사내의 목에는 손자국 모양의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칼라일은 사내의 가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그러더니 품에서 혹시나 하여 챙겨 주었던 단검을 꺼내들었다. 정말로 눈을 도려낼 듯 사내의 가면을 벗겨내려던 순간 보라색 비늘로 뒤덮인 가면을 쓴 여성이 다가왔다.
“저런. 이렇게 보잘 것 없는 눈 말고, 이것 먼저 봐주시죠. 부인. 이번 품목에는 ‘릴의 눈’도 있답니다.”
갑자기 끼어든 여성이 밝은 톤으로 웃으며 보여준 것은 ‘릴의 눈’이었다. 나는 말없이 릴의 눈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 보석이 아직까지도 노예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지금은 사라진 종족, ‘릴’들의 피는 보석이었다. 피가 굳으면 보석이 되었다. 그중 릴의 눈이 가장 비싼 값에 팔렸는데 릴의 눈 자체가 보석이었기 때문이었다. 겉은 다이아몬드에, 동공은 빛을 받으면 찬란하게 빛나는 에메랄드. 그렇기에 사람들은 릴의 눈을 얻기 위해 그들을 학살했고, 결국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릴의 무리는 동시에 독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릴의 눈은 릴들이 살았던 곳에 묻어주게 되었는데 탐욕에 미친 자들이 묻은 것을 캐내 계속 판매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지금, 소문이 아닌 진짜가 눈앞에 있었다.
“릴의 눈이라니.”
눈앞에서 반짝이는 릴의 눈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분을 만났군요.”
로웬이 보여준 노예시장 회수 목록에는 릴의 눈이 있었다. 분명 전부 압수했다고 적혀있었는데. 이렇게 버젓이 눈앞에 있다니. 그것도 이번 물품, 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귀족들과는 다르다는 소리겠지. 주최자만큼은 아니지만 관계자 정도 되려나.
관계자로 추정되는 여성을 보며 싱긋, 웃었다.
“레오. 이것 봐, 릴의 눈이야.”
“아아, 네 가면에 붙어있는 그 보석? 그게 남아있어? 저번에 전부 사들이지 않았나? 더 원해? 더 사줄까?”
그가 릴의 눈을 보조품 마냥 취급하자 앞에 있던 여성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천천히 칼라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칼라일이 연기하고 있는 레오 아이하라는 그랬다. 가장 좋은 고급품만 구해 아내인 레베카에게 선물하는 광기 어린 귀족. 자신을 조금이라도 깔보는 이들은 가차 없이 죽이고,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흥미가 없다면, 돌멩이보다 못한 것을 보는 듯한 시선을 던진다.
적어도 노예시장의 관계자들을 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잔혹하고 오만한 귀족을 연기해내야 했다. 그리고 칼라일은…놀라울 정도로 잘 소화해내고 있었다.
칼라일은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여성의 가면을 툭, 쳤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딴 게 아니야. 자신만만하게 보여 주길래, 최상급 릴의 눈인 줄 알았는데 어디 하급을 내밀어? 그딴 것은 내 저택 창고에 잔뜩 쌓여있어.”
주변을 둘러보니 귀족들의 모든 시선을 잡은 듯했다. 하긴, 섬 하나를 살 수 있는 고가의 릴의 눈을 하급 취급하는 귀족이 흔한 것은 아니겠지. 문제는 앞에 서 있는 여성이다. 이 여성이 바올의 관계자라면, 더 확실하게 붙들어 매야 해.
“아니면, 뭐. 그런 건가? 너도 우리를 다른 떨거지와 비슷한 취급으로 보는 것인가? 아아, 나도 그런 부류를 잘 알아. 우리가 돈도 없으면서 괜히 부자인 척, 물건 이것저것 들춰보다 그냥 가버릴 거라고 보는 것인가?”
“그럴 리가요, 부인. 저희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았어.”
차가운 시선으로 여성을 내려다보자 우리를 바라보는 여성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로웬은 정말 상위 클래스, 특별 고객만을 모시는 공간이 따로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만약 정말 그런 공간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야 했다. 칼라일의 허리를 천천히 쓸며 신호를 주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여성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리가 블랙던에서 산 물건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좋았어. 스불루에서 산 것도 마찬가지였지. 장미 비단의 심장, 살아있는 요정의 날개를 뜯어 만든 귀걸이. 현재 희귀종으로 손꼽히는 테리온의 머리. 그리고 며칠 전에 죽어버린 수컷 인어.”
언제 외운 것인지 칼라일은 블랙던 때 거래되었던 품목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과장된 몸짓을 하며 난동 피우는지 모르겠어? 우리가 저딴 놈들과 같아 보여? 정말 블랙던이나 스불루 때와는 다르네. 그때는 이런 하잘것없는 공간에 들어오지 않고 곧바로 안내받았는데.”
칼라일은 환하게 웃으며 여성의 턱을 잡은 채 귓가에 속삭였다. 그 말에 여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블랙던과 스불루에서 가장 고가품목만 나열한 탓인지, 뒤늦게 예의를 갖춰보였다. 곧바로 ‘안내’받았다는 말에 여성은 아까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역시, 다른 공간이 있었던 거야. 바올의 가장 중심부인 곳이.
여성은 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진 정중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경매 시작 후, 따로 모시겠습니다.”
따로 모시겠다는 건 중심부로 모시겠다는 소리겠지. 그제야 한시름 놓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만 더 붙들어놓고 있으면 된다.
특이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귀족들은 번호가 적힌 자리에 앉아있었다. 저 중에서 나와 웃는 얼굴로 이야기한 귀족들도 있을까?
그때 천으로 가려져 있던 무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는….
“하…”
“…이 짐승만도 못한 것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 널 부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