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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폐하의 이혼사유-55화 (55/170)

#55화, 배신의 감정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샤를로테를 사랑하는 페르소나라면, 나에게도 약간의 책임을 물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의 시간을 저버리고 샤를로테를 택한 그였으니까.

하지만 나에게 모든 죄를 묻는다고? 샤를로테를 구해준 나에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겨눠진 칼을 손등으로 탁, 쳐냈다. 그럴수록 기사들은 검을 들고 더 가까이 다가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페르소나의 눈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나와 페르소나, 둘 다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그 서늘한 침묵 속, 먼저 입을 뗀 것은 나였다. 한숨 섞인 말 한마디에 페르소나는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지금 시녀의 확실치 않은 말 한마디에, 제게 칼을 겨누신 겁니까?”

한 글자, 한 글자에 조용한 분노가 담겨있었다. 어떻게든 진정하고자 했다.

“스스로가 독초를 넣었고 지시한 이까지 모두 불었는데 무엇이 잘못 된 거지? 대공저에 기사들을 보냈다. 사용인 한 명까지 모두 잡아드리라 일렀으니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을 거다.”

“…죄가 확실하지도 않은데 대공저에 기사를 보냈다고요?”

모두 잡아들이라 명했다고? 저택에 기사를 보내?

고작 시녀 한 명의 말을 믿고. 아이를 잃을 뻔했으니 이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어이가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거대한 분노가 가슴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기가 찼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온다는데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내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것은 독이었다. 그것은 페르소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독을 삼키고 아파한 적이 있었다. 목이 타들어 가는 고통,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 모습을 페르소나는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그러니 알 텐데. 그 뒤로 음식을 잘 먹지 않게 된 것. 물 한 잔 마실 때조차 조심스러운 것. 모든 물품을 시녀들을 시켜 매일 깨끗하게 닦는 것. 어릴 때 배워둔 지식을 더 넓혀 독초에 대해 정리해둔 사전을 모두 외워버린 것.

나는 패르소나 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독을 이용해서 황후 폐하를 독살하려 했다니요.”

“….”

“그럴 리가요.”

“….”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폐하. 제가 어찌 독을 씁니까.”

그래. 이렇게, 이렇게 훈훈하게 끝날 리가 없었다. 샤를로테를 구해줬다는 것을 포상이나 칭찬을 받을 생각을 전혀 없었다. 파도처럼 후회가 밀려왔다. 진즉에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왜 몰랐을까. 샤를로테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녀를 들고 온 건 바로 나였다. 그 상황에서 시녀를 처벌하고 나를 보내줄 리가 없는데.

아, 혹시 그런 것인가? 눈엣가시 같은 가넷 가문을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 그래서 독은커녕 독초와 비슷하게 생긴 풀은 절대 만지지 못하는 내게 뭐든 일단 뒤집어씌운 것인가? 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이 굳어버리는 내게?

그 시녀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든 아니든, 화살은 나한테 돌아올 거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내가 멍청했지.

만약 샤를로테가 깨어난다면, 이 상황을 보고, 어떤 말을 할까. 웃을까? 통쾌하다는 미소를 지을까? 아니야. 상상이 안 되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 하지만, 페르소나 저놈은 아니야.

“저는 황후 폐하와 아기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황후 폐하를 독살하라 그랬다고요?”

그 말에 그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어쩐지 상처받은 것처럼 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고통스러운 듯이 일그러졌다. 왜 네가 그런 눈이야, 여기서 상처받아야 할 사람은 나인데.

저는 황후 폐하와 아기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폐하는 이 상황을 보며 저를 없앨 수 있는, 가넷 가문을 없앨 수 있는 좋은 상황이라 판단하셨습니까? 그래서 이러시는 겁니까?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갗 사이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황후 폐하께 독살을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폐하, 그거 아십니까? 그 파돈이라는 독초.”

화를 내려고 해도 이미 그에게 모든 화를 쏟아낸 후였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실랑이조차 하고 싶지 않은 탓에, 잇새 사이로 힘없는 웃음소리만이 터져 나왔다.

“황후 시절 제 아기를 죽게 만든 독초라는 것을요.”

“…그 독초가, 파돈이라고?”

“그것도 모르고 계셨습니까? 뭐, 이제는 상관없죠. 좋습니다. 폐하의 명을 따라 제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도록 하죠. 하지만 죄가 명확한 것도 아니니, 지하 감옥 대신 황궁에 딸린 탑으로 가겠습니다. 제 발로. 직접.”

페르소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얼음조각상처럼 굳어있었다. 정말 몰랐나 보네. 아무런 대답도 없는 것을 보니. 나는 그대로 페르소나의 곁을 지나쳤다. 그가 다급하게 내 팔을 붙들었지만 내가 먼저 페르소나의 손을 쳐냈다.

페르소나는 단 한 번도 나를 믿은 적이 없었다. 먼저 묻지도, 내 얘기를 들어준 적도 없다. 샤를로테를 왜 구해줬을까.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다.

***

일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책상 위에 놓여있던 모든 서류가 바닥으로 흩어졌다.

왜 내 의도를 몰라주지? 정말 시녀 말을 듣고 그랬을 리 없잖아! 그녀가 알현을 왔을 때 주려고 했던 보석들이 바닥으로 굴렀다. 책상을 두 손으로 짚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로 잡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시녀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으니까.

다만 평소 가넷 가문을 싫어했던 관리 몇몇이 이를 가지고 또 다른 구설수를 만들어낼까 봐, 그래서 그런 것뿐이었다.

가넷 대공이 샤를로테 쿠키에 낙태약 성분이 들어간 독초를 섞었다, 황족을 독살하려 했다. 이는 가넷 가문에 큰 타격을 줄 테니까. 그러니 일단 상황만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놓으려고 했다. 정말로 잡아서 죄를 물을 생각은 없었다. 며칠만 감옥에 가둬두고는, 진짜를 배후를 찾아낸 다음에 바로 풀어주려고 그런 건데.

작위 박탈이나 재산 몰수라는 말도 전부 주변 시선을 생각해서 내뱉은 말이었다. 분명 로젤리아를 시기하는 자들이 이번 일을 어떻게든 걸고 넘어가려 들겠지. 그러니 일단 체포하는 척은 해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 전 황후라서 일부러 봐줬다는 말이나 다른 헛소문 같은 게 나오지 않을 테니까.

‘제가 독을 썼다고요? 그럴 리가요, 폐하.’

그래, 알고 있었다. 로젤리아가 독을 쓸 리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모르겠는가? 로젤리아는 눈앞에서 독을 마시고 쓰러졌다. 그녀가 피를 토하고, 숨도 쉬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절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즉위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독을 먹은 로젤리아는 이틀 후 새벽에 일어났다. 늦게까지 일을 하던 도중 상태가 어떤지 보러 그녀의 침실로 찾아갔다. 깨어난 로젤리아는 시녀를 부르지도 않고 아픈 몸을 움직여 물을 마시고 있었다.

- “황후. 왜 시녀를 부르지 않고!”

- “새벽이잖습니까. 괜찮습니다.”

힘없이 미소 지으며 로젤리아는 침대로 가 몸을 눕혔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부가 창백했다. 로젤리아는 한참을 나를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날은 로젤리아는 처음으로 나에게 뭔가를 요구한 날이었다. 하루만 함께 있어달라고. 그래서 모든 일을 미뤄두고 로젤리아와 함께 침대에 누워 그녀를 다독였다. 황후라며 흘리지 않던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것을 밤새 다독였다.

모를 리가 없었다. 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머리가 울렸다. 심하게 울렸다. 아팠다.

로젤리아를 생각하면 이렇게 두통이 몰려왔다. 특히 무도회 날 이후 통증은 더 심해졌다.

무도회라니, 로젤리아와 춤이라도 추고 싶어진 마음에 집무실로 갔다가 다시 무도회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미리 손봐두었던 샹들리에가 정부라는 놈 머리 위로 떨어졌다. 정말 운이 좋았다.

사람을 시켜 샹들리에가 떨어질 때쯤 그 놈을 샹들리에 밑으로 떠밀 생각이었는데, 그녀가 알아서 거기에 서 있다니. 그리고 무너지듯 주저앉아 칼라일의 뺨을 쓰다듬던 로젤리아를 본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차마 그 분노가 가라앉기도 전에 로젤리아가 피를 토했다.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비명이 난무했다. 왜 로젤리아가, 왜. 왜? 그리고 로젤리아는 정부 놈과 함께 사라졌다. 그 후 로젤리아의 대한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죽었다거나, 다쳤다거나. 그놈이 데려가 치료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편지를 보낼까 싶었지만 보내지 못했다. 편지를 쓰려 할 때마다 쓰러지던 로젤리아가 떠올랐다. 그래서 몰래 찾아갔다. 로젤리아는 정원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안도와 동시에 또 다른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그렇게 환하게 웃다니, 그것도 정부 놈과 함께. 샹들리에 사건 때처럼 손을 쓰려고 했다. 대공이 된 탓에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지만 그녀의 주변에 있는 사람만큼은 떼어놓자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로젤리아의 모습, 피를 토하던 그때가 생각났다. 로젤리아의 주변 사람을 없애고, 나에게 돌아오게끔 하고 싶었지만 로젤리아가 다칠까 봐 무서워졌다.

로젤리아에 대한 갈망은 더 커져 가는데…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분명, 아침에 정부 놈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겠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머리카락을 정돈해주거나, 안아주었을 거야.

원래는 나한테 해야 하는데, 나한테만 해주던 건데. 내 것이었는데!

- “저는 황후 폐하와 아기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폐하는 이 상황을 보며 저를 없앨 수 있는, 가넷 가문을 없앨 수 있는 좋은 상황이라 판단하셨습니까? 그래서 이러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왜 몰라줘? 예전에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았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손끝으로 내 어깨를 살짝 툭 치며 나에게 윙크했잖아. 내 의도가 무엇인지, 무얼 위해 이러는 건지! 모든 걸 다 안다는 눈빛으로!

이혼했으니까? 내가 이제 네 남편이 아니라서?

나에게 향하던 애정은 이제 없어? 이젠 날 사랑하지 않아? 단 한 줌의 사랑도 남아있지 않은 거야?

난장판이 된 방 한가운데에 서서 숨을 골랐다. 그때 시녀를 끌고 갔던 기사 한명이 노크를 했다. 부서지고 망가진 방을 보며 몸을 굳혔다.

“…폐, 폐하. 시녀를 어떻게 할까요?”

“여전히, 대공이 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나?”

“네.”

“배후가 누군지 알아내. 시킨 자는 내 앞으로 데려오고 계속 범인으로 가넷 대공을 주장할 시, 달군 쇠막대로 혀를 지져라.”

“네, 알겠습니다.”

일말의 감정도 없는 차가운 목소리에 기사는 섬뜩한 감각이 등 뒤로 타고 오르는 걸 느꼈다.

“로젤리아는……지금 어딨지?”

“대공께서는 스스로 탑으로 가셨습니다.”

“…그 탑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을 텐데.”

“네?”

“더럽고, 추울 것이다. 걸칠만한 옷이나 담요가 필요할 것이다.”

“시종들을 시켜서 가져다주라 하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시녀의 대한 처분을 물으러 왔던 기사는 빠르게 집무실을 나갔다.

겉옷을 집어든 손에 흐르는 피가 보였다. 책상 위 물건을 부수다 어딘가에 베이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겉옷 몇 벌과 담요를 집어 들었다.

시선을 창문 밖으로 보이는 탑으로 옮겼다. 보기 만해도 냉기가 느껴지는 북쪽 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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